한 달란트의 무게
마치 철이 되고 때가 되면 서는 장처럼 교회 주일학교에서도 철 따라 달란트 시장이 열리는 곳이 많다. 칭찬 받을 만한 선행으로 모은 종이 달란트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지고 온 아이들은 행복에 겨워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들을 달란트 시장에서 구입한다. 이 주일학교의 풍습은 잘 알다시피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달란트 시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찬반의 의견이 존재하지만 성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달란트 시장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찬반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다. 달란트 시장이 이 비유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하면 좀 지나친 말일까?
교회의 달란트 시장에서 통용되는 달란트의 거래를 보다 보면 달란트의 가치가 몇 천, 몇 만 원 쯤 된다는 인상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제로 달란트는 고대에 무게를 측정하는 단위로 1달란트는 약 26-36 킬로그램의 무게에 해당한다. 그러니 이 정도로 금의 무게를 환산한다면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금 1달란트는 노동자의 15년 이상의 품삯, 대략 5억 원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환산이 정확한 계산은 아닐지라도 금 35 킬로그램 정도의 무게가 주는 금전적 가치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결국 달란트 비유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사실은 가장 적게 받은 자도 이미 넘치도록 충분히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인 것이다. 그러기에 재능을 뜻하는 talent가 이 달란트에서 유래했다면 재능과 관련하여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당신이 하나님께 받은 재능이 아무리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당신은 실상 엄청난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에서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종이 달란트 몇 장에서 이런 무게가 느껴질 리는 없지 않을까?
보잘것없이 적게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충분히 많이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주위를 돌아보면 내 경제적 상황은 초라하기 그지없으니까. 그러나 조금만 더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흥미롭게도 내가 도대체 얼마나 부자인지를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바로 Global Rich List(www.globalrichlist.com)라는 사이트다. 화폐 단위로 원을 선택하고 내 연 수입을 입력하면 사이트는 간단하고 신속하게 내가 세계에서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 부자인지를 알려준다. 예를 들어 연 수입 3천만 원을 입력했다고 치자. 그러면 사이트는 당신이 세계에서 0.97 % 안에 드는 부자임을, 더 나아가 당신의 월급이면 아제르바이젠에서는 143명의 의사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음을 알려준다. 연 수입이 4천만 원이라면 세계에서 0.45 %, 5천만 원이라면 0.24 %에 드는 부자가 된다. 여기서 그의 찔림이 우리의 허물 때문이며 그의 상함이 우리의 죄악 때문(사 53:5)이라는 성경의 논리를 세계경제윤리에도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타인이 적게 가진 것이 내가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 나는 죄인임을 피할 도리가 없다. 어딘가의 누군가가 굶고 있는 것이 지금 여기서 내가 많이 먹고 있기 때문이라면, 나는 심판을 피할 도리가 없다. 나는 주님께서 주신 한 달란트를 여전히 손아귀에 쥐고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거운 한 달란트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마 25:44-45)
이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