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시조 27/75 – 어부사시사 01/40
춘사(春詞) 01/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앞 개에 안개 걷고 뒷뫼에 해 비친다
밤물은 거의 지고 낮물이 밀어온다
강촌(江村)에 온갖 곳이 먼빛이 더욱 좋아라
앞 개 –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
걷고 – 걷히고. 사라지고.
뒷뫼 – 마을 뒷산.
밤물 – 밤에 들어오는 조수(潮水).
지고 – 떨어지고.
낮물 - 낮에 들어오는 조수(潮水).
강촌(江村) - 강 마을. 강을 끼고 있는 마을.
곳 – 꽃.
먼빛 – 멀리서 보는 경치. 원경(遠景).
<어부사시사>는 신묘년(1651, 효종2) ○ 부용동(芙蓉洞)에 있을 때이다.
고산 시조의 대작(大作)인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만나봅니다. 춘하추동(春夏秋冬) 각 계절마다 10수씩 모두 40수나 됩니다. 고산은 한해 열두 달을 노래한 월령체의 또 다른 형식으로 4계절을 각 열 개의 장면을 들어 정치(精緻)하게 그려냈습니다.
학자들은 이 대작이 고려시대 작자 미상의 ‘어부가(漁夫歌)’에 연원한다고 봅니다. 그 어부가를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가 가사(歌詞)로 바꾸었고, 이를 바탕으로 순 우리말 어휘를 사용하여 부르기 쉽게 고쳤다는 것인데, 배경과 내용이 상당부분 창작(創作)이라 할 수 있어 다만 창작의 동기로서 어부가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배 떠라(띄워라)’ ‘지국총’ ‘어사와’ 등은 시조 본문 표기에서 생략하고 감상하려고 합니다. 이 대작에 녹아든 우리말 어휘와 시대적 풍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강촌 마을은 강가의 마을이기도 하고, 바닷가 마을이기도 하겠는데, 오늘날도 보길도 등지의 내해(內海)는 호수처럼 고요하기 때문에 심상(心象)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밤물 낮물 등으로 조수(潮水)를 말하고 있으니, 오늘날 한강의 수위도 인천항의 물때와 연동(連動)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이 춘사(春詞)인 것은 종장에 나오는 ‘온갖 꽃’에서 드러납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앞 강에 안개 걷히고 뒷산에 해 비친다
배 떠라 배 떠라
밤물은 거의 지고 낮물이 밀려온다
지국총(至匊悤) 지국총 어사와(於思臥)
강촌(江村)의 온갖 꽃들 먼빛이 더욱 좋다
후렴구처럼 쓰인 의성어가 각 편마다 조금씩 다르게 각 장 사이에 들어가 있습니다.
고전번역원 각주를 옮겨옵니다,
지국총(至匊悤) : 배에서 노를 젓고 닻을 감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어사와(於思臥) : ‘어여차’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어라 : 흔든다는 뜻으로 배를 저으라는 말이다.
고산시조 28/75 – 어부사시사 02/40
춘사(春詞) 02/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날이 덥도다 물 위의 고기 떴다
갈매기 둘씩 셋씩 오락가락 하는구나
아이야 낚대는 쥐여 있다 탁주병(濁酒甁) 실었느냐
낚대 – 낚싯대.
탁주병(濁酒甁) - 막걸리가 들어 있는 병.
날씨가 춥지 않고, 물 위로 고기가 떠오르니 고기를 잡으러 나갑니다. 중요한 것 두 가지, 낚싯대는 잊지 않고 손에 들었고, 빠지면 서운한 막걸리는 아이더러 좀 챙겨라 이르는군요.
갈매기 두서넛 함께할 한 나절이 무척 즐거울 것입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날이 덥도다 물 위에 고기 떴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갈매기 둘씩 셋씩 오락가락하는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낚싯대는 쥐고 있다 탁주 병은 실었느냐
고산시조 29/75 – 어부사시사 03/40
춘사(春詞) 03/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동풍(東風)이 건듯 부니 물결이 고이 인다
동호(東湖)를 돌아보며 서호(西湖)로 가자스라
두어라 앞뫼이 지나가고 뒷뫼이 나아온다
건듯 – 얼핏, 잠깐.
고이 – 곱게.
가자스라 – 가자꾸나.
두어라 – 가만히 놔 두어도. 배가 절로 나아가듯 진행하는군요.
‘앞뫼이, 뒷뫼이’의 ‘이’는 ‘가’의 옛말 형태임.
낚대를 드리울 지점, 곧 고기가 잡힐 것 같은 곳으로 지금 배가 나아가고 있습니다. 순풍에 돛을 단 듯이. 별도의 설명이 필요도 없습니다만, 이런 가벼운 진행 경과도 한 수의 훌륭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연시조의 기능을 열 수의 시조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동풍이 건들 부니 물결이 곱게 인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동호(東湖)를 돌아보며 서호(西湖)로 가자꾸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아온다
고산시조 30/75 – 어부사시사 04/40
춘사(春詞) 04/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우는 것이 뻐꾸긴가 푸른 것이 버들숲가
어촌 두어 집이 냇속에 나락들락
두어라 말가한 깊은 소(沼)에 온갖 고기 뛰노나다
버들숲가 – 벋들숲인가? 음수율을 맞추려고 ‘인’을 뺐어도 의미 전달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냇속 – 연기 속. 안개 속.
나락들락 – 들락날락.
두어라 – 어촌의 풍경에 취할 게재가 아니라 이제는 낚대 드리울 고기 많이 노는 곳에 왔으니 정신을 차리자. 환기성(喚起聲).
말가한 - 맑은.
소(沼) - 깊은 물.
뻐꾸기, 버들숲, 안개 등의 소재로 멋진 봄 풍경화를 그려내었습니다. 질주하듯 내달린 낚싯배는 어느새 깊은 물에 도착하여 3온갖 고기들을 만나는군요.
참고로 이 시조의 초장과 중장은 그대로 쓰고 종장만 달리한 작품이 여럿 전합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 것이 버들 숲인가
이어라 이어라
어촌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맑고 깊은 소(沼)에 온갖 고기 뛰노누나
고전번역원 각주를 옮겨옵니다,
이어라 : 흔든다는 뜻으로 배를 저으라는 말이다.
고산시조 31/75 – 어부사시사 05/40
춘사(春詞) 05/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고운 빛이 쬐였는데 물결이 기름 같다
그물을 주어 두랴 낚시를 놓을 일까
탁영가(濯纓歌)의 흥(興)이 나니 고기조차 잊을로라
빛 – 원문은 ‘볕’으로 되어 있다. 빛과 볕은 구별사여 써야 하는데, 빛은 색이고 볕은 온기이다.
기름 같다 – 반짝거린다. 윤슬. 물비늘.
놓을 일까 – 놓아볼 것이겠는가? 또는 ‘일까’는 ‘일일까’의 음수율을 위한 ‘일’의 생략으로 볼 수도 있겠다.
탁영가(濯纓歌) - 굴원(屈原)이 지은 초사(楚辭) 어부편(漁夫篇)에 나오는 문구(文句)를 빌어다가 지은 노래로, ‘갓끈을 빨다’는 물이 맑으면 갓끈을,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라는 어부의 충고를 듣게 되었다는 고사로, 여기서는 어부가(漁夫歌)라는 뜻으로 쓰였다.
고기조차 잊을로라 – 고기 잡으러 나온 본래의 목적을 잊을는지도 모르겠다.
고전번역원 각주를 옮겨옵니다,
탁영가(濯纓歌) :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강호에 있을 적에 어부를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어부가 세상과 갈등을 빚지 말고 어울려 살라고 충고를 했는데도 굴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어부가 빙긋이 웃고는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했다는 내용이 《초사(楚辭)》 〈어부사(漁父辭)〉에 나온다.
풍류(風流)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본래 어부가 아닐진대 그물을 놓든 낚대를 넣든 아니면 탁영가에 빠져 탁주나 마시든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자연 속에 빠져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고운 볕이 들었는데 물결이 기름 같다
이어라 이어라
그물을 넣어 두랴 낚싯줄을 놓을 건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탁영가(濯纓歌)에 흥이 나니 고기도 잊겠도다
고산시조 32/75 – 어부사시사 06/40
춘사(春詞) 06/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석양(夕陽)이 비꼈으니 그만하여 돌아가자
안류정화(岸柳汀花)는 굽이굽이 새롭고야
삼공(三公)을 부럴소냐 만사(萬事)를 생각하랴
비꼈으니 – 비스듬히 비추니.
안류정화(岸柳汀花) - 강 언덕의 수양버들과 물가에 핀 꽃.
새롭고야 – 새롭구나. 새롭도다.
삼공(三公) - 삼정승.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부럴소냐 – 부러워 할 것이 있겠느냐.
만사(萬事) 세상의 모든 일.
해가 기우니 집으로 돌아갑니다. 가는 길에 눈에 드는 풍경이 새롭답니다. 자연에 들어 사니 전에 아니 보이던 것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삼공도 아니 부럽고, 세상만사도 자신을 얽매지 않으니 참 자유롭답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석양이 비꼈으니 그만하고 돌아가자
돛 내려라 돛 내려라
언덕 버들 물가 꽃은 굽이굽이 새롭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삼정승을 부러워하랴 만사를 생각하랴
고산시조 33/75 – 어부사시사 07/40
춘사(春詞) 07/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방초(芳草)를 밟아보며 난지(蘭芝)도 뜯어보자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실은 것이 무스것고
갈 제는 내 뿐이요 올 제는 달이로다
방초(芳草) - 꽃다운 풀. 향기나는 풀.
난지(蘭芝) - 난초(蘭草)와 지초(芝草).
일엽편주(一葉片舟) - 작은 거룻배.
무스것고 – 무엇인고.
내 – 연기. 안개.
봄에 만나는 기화요초(琪花瑤草)를 밟아도 보고 뜯어도 보잡니다. 배를 대면 어디든 마음대로 닿을 수 있는 강호(江湖)이니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서울의 쓰레기 매립지 난지도(蘭芝島)에도 난초와 지초의 향기가 가득했던 강마을 시절이 있었을까요?
돌아오는 길에 배 위를 채운 것은 달빛이라니 거의 환상적입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방초(芳草)를 밟아 보며 난초며 지초 뜯어 보자
배 세워라 배 세워라
일엽편주에 실은 것이 무엇인고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갈 적에는 안개뿐이었고 올 적에는 달이로다
고산시조 34/75 – 어부사시사 08/40
춘사(春詞) 08/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취(醉)하여 누었다가 여흘 아래 내리거다
낙홍(落紅)이 흘러오니 도원(桃源)이 가깝도다
인세홍진(人世紅塵)이 얼마나 가렸느니
취(醉)하여 - 술에 취해서.
여흘 – 여울.
내리거다 – 떠내려 갈 것이다.
낙홍(落紅) - 낙화(落花).
도원(桃源) - 무릉도원(武陵桃源).
인세홍진(人世紅塵) - 인간 세상에 가득한 흙먼지.
가렸느니 – 가렸는가.
술에 취해 배 안에 누었다가 여울물로 떠내려가도 모르겠구나. 새삼스런 깨달음이니 배는 태워주는 사람 덕으로 놀 줄만 알았다가 운행도 직접 해야 하나 봅니다. 무릉도원의 고사, 별유천지(別有天地)요 비인간(非人間)인 시 속의 세상을 경험하는 생경한 기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홍진에 인간세상은 아득히 멀리 가려지고 있답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취하여 누웠다가 여울 아래 내리련다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붉은 낙화(落花) 흘러오니 무릉도원 가깝도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속세의 티끌이 얼마나 가렸느냐
고산시조 35/75 – 어부사시사 09/40
춘사(春詞) 09/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낚싯줄 걷어 놓고 봉창(篷窓)의 달을 보자
하마 밤 들거냐 자규(子規) 소리 맑게 난다
남은 흥(興)이 무궁(無窮)하니 갈 길을 잊었도다
낚싯줄 걷어 놓고 – 낚시는 그만 하고.
봉창(篷窓) - 대나무 잎을 엮어 만든 거적을 씌운 창문. 배 뜸의 창문.
하마 – 이미. 벌써.
밤 들거냐 – 밤이 깊어질 것이냐.
자규(子規) - 두견새.
낚시질 그만 하고 달과 함께 즐기는데, 작가는 아마도 편한 자세로 눕다시피하여 봉창으로 달을 보나 봅니다. 자규가 울음으로 장단을 맞춥니다. 밤이 깊어지도록 흥겨움에 젖어 집에 돌아가는 일을 잊고 맙니다. 추운지 모르고 이불 걷어차고 잠을 자도 좋은 호시절에 조옹(釣翁)은 달과 함께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낚싯줄 걷어 놓고 봉창의 달을 보자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벌써 밤이 되었느냐 자규새 소리 맑게 난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남은 흥이 무궁하니 갈 길을 잊었도다
고산시조 36/75 – 어부사시사 10/40
춘사(春詞) 10/10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내일(來日)이 또 없으랴 봄밤이 몇 덧 새리
낚대로 막대 삼고 시비(柴扉)를 찾아보자
어부(漁夫) 생애(生涯)는 이렁구러 지낼로다
내일(來日)이 또 없으랴 – 내일은 또 온다.
몇 덧 – 얼마 되지 않는 동안. 덧은 짧은 시간.
새리 – 새리라. 날이 샌다는 뜻.
막대 – 지팡막대. 지팡이.
시비(柴扉) - 사립문. 들고나는 문.
생애(生涯) - 일생. 살아 있는 동안.
이렁구러 – 이렁구렁. 이리하여.
지낼로다 – 지내겠도다. 지낼 것이로다.
춘사의 끝입니다. 열 수의 연시조 마지막이지만, 사십 수의 연시조 중 '하사'로 이어지는 길목이기도 합니다. 개개의 단시조로서 완결성도 갖추고, 앞뒤로의 연결성도 있어 고산의 풍미가 살아 있습니다.
낚싯배 내려 집엘 가는데, 어언간 달도 지고. 다니던 걸음걸음 종잡아 집을 찾는데 역시 그 낚대가 곧 지팡이 막대기가 됩니다. 내일은 또 새로운 태양이 뜨고, 달도 뜨고. 이러구러 이 좋은 봄도 지나가리니, 이 또한 어부의 일생이 아니겠느냐. 이 작품을 읽는 후세의 독자들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요.
고전번역원 현대어 번역본을 끌어옵니다.
내일이 또 없으랴 봄날 밤이 곧 새리라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낚싯대로 막대 삼고 삽짝문 찾아보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부의 생애는 이러구러 지내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