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8월 25일 일요일. 맑고 뜨겁다. 저녁은 온화하다.
터미널에는 섬 모양에 버스 번호가 잘 기록되어있다. 건너편 작은 공원에는 나무들이 가득 심어져 있고 벤치도 있다. 그리고 새를 쫓는 소녀상이 만들어져 있다. 시인 고르그 피사니(Gorg Pisani 1909~1999)동상도 있다.
빅토리아 시내 구경을 한다. 작은 광장을 갖고 있는 교회(Church of St James)가 있다. 교회 앞에 사베리오 카사르(Saverio Cassar 1746~1805)신부의 동상도 있다. 독립 고조의 총독이며, 고지탄의 사제였다.
고지탄 국가(Gozitan Nation)는 일반적으로 Gozo로 알려져 있으며 프랑스 독립 전쟁 중 1798 년에서 1801 년 사이에 Gozo 섬에 위치한 미인정 국가였다. 나중에 몰타에 합병되었다. 광장 중앙에는 예수님 상도 있다.
목숨을 잃은 고지 족을 기리기 위해(In memory of the Gozitans who lost their lives, 1939~1945) 세워진 기념비다.
빅토리아는 고조 섬 중앙에 위치한 산정 마을이다. 몰타는 섬이지만 높은 지대에는 어김없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산정마을이 있다. 그리고 산정마을 아래쪽에 도시가 발달했다.
지중해 문명과 교역의 교차로에 위치했기에 외침이 잦았기 때문이다. 빅토리아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먼저 대영제국 시절의 빅토리아 여왕이 떠오른다.
몰타의 고조 섬에 있는 산정마을에 빅토리아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궁금해 검색해보니 역시나 몰타의 마지막 외세 지배자였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서 이름을 따왔다.
1887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기념해 런던의 웨스트민스트 사원에서 골든 주빌리(Golden Jubilee)가 열렸다. 골든 주빌리는 50주년 기념식이나 이벤트를 말한다.
이를 기념해 코미노 섬의 몰타어 지명 라바트(Rabat)가 영어 빅토리아(Victoria)로 바뀌었다. 역사를 좀 더 깊게 들여다보니,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개명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당시 코미노 섬의 주교가 자발적으로 개명한 것이다.
고조 사람들은 아직까지 빅토리아라는 이름보다는 라바트라는 이름을 더 선호한다. 라바트는 모로코의 수도 이름이기도 하다.
어원은 아랍어로 성채 요새 도시를 뜻한다. 빅토리아 이전에 라바트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북아프리카의 아랍 이슬람 세력이 오래 지배했기 때문이다.
아랍의 지배는 키프로스 섬에서 구호 기사단의 도착 이후로 종식됐지만 아직도 몰타어에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성당 맞은편에는 작은 궁전이 보인다. 우리는 길을 건너 고원 위에 쌓은 성채 ‘빅토리아 시타델’ 로 올라간다.
방어를 위한 요새였단다. 시타델(Citadel)이라는 용어의 뜻은 ‘요새’ 또는 ‘성채’, ‘도시’라는 뜻이다. 대부분 높은 지대의 평평한 곳에 자리한 거대한 성채를 말한다.
높은 지대에 성채를 지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쟁 시 방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어원은 라틴어로 도시를 뜻하는 치비타(Civita)에서 나왔다.
고대 라틴어 치비타는 영어로는 City로 분화되었고 중세 이후에 Citadel로 정착했다고 한다. 시타델은 고유명사이기보다는 보통명사다. 시타델은 몰타 외에도 전 세계 곳곳에 있다.
빅토리아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시타델을 보기 위해서다. 몰타의 고조 섬에서 고지대인 빅토리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시타델이 위치했다. 빅토리아 시타델의 역사는 기원전 1500년 전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높고 평평한 지형이다. 선사시대에도 사람이 모여 집단 거주하기 좋았을 것이다. 이후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기반을 뒀던 페니키아(카르타고)와 로마 제국 시대를 거쳤다.
지금의 형태는 오스만투르크와 그에 대항했던 요한기사단의 작품이다. 1600년대 초에 지었다. 투르크(지금의 투르키예, 터키) 뿐만 아니라 당시 지중해에서 활약했던 바르바리 해적을 견제하기 위해서 지었다.
광장의 길 건너편 골목 끝에 시타델의 거대한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오르막 길을 따라 올라가면 거대한 시타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시타델로 들어가는 입구에 시타델의 모형이 있다. 옆에 기념비도 있다. 모형으로 먼저 구조롤 파악하고 들어가면 동선을 잡기에 편하다.
대부분의 성채 도시는 내부로 들어가는 주 출입구 하나와 성벽을 따라 보조 출입구가 몇 개 설치되어 있다. 빅토리아의 시타델도 마찬가지이다.
육중한 메인게이트로 들어가면, 외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광장이 나오고 광장 앞에는 성당이 있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유노(JUNO) 신전이 있던 자리에 지은 산타 마리아 성당(Cathedral of the Assumption성모)이다.
17세기 몰타의 건축가 로렌초 가파가 바로크 양식으로 지었다. 바로크 양식을 알아보는 방법은 쉽다. 외관의 장식이 화려하고, 건축물을 반으로 접는다고 가정했을 때 완벽한 좌우 대칭이 이뤄지면 대부분 바로크이다.
224대 교황 비오(Pius)4세, Gwanni Pawlu 2세 동상이 양 옆에 있다. 왼편에는 법원 건물이 있다. 성당이 있는 광장을 지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다.
골목길을 따라 이어지는 기념품 가게 벽에 걸어놓은 몰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발코니 창 모형과 작은 도마뱀들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길을 따라 계속 걸어 올라가다보면 시타델에서도 가장 높은 지점이 나온다.
360도 열린 기막힌 풍광을 볼 수 있다. 빅토리아의 시타델은 완전히 평평한 곳이 아니라 비스듬한 곳에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곳에서 보는 풍광은 정말 압도적이다.
가장 높은 곳에 지어졌기에 360도로 막힘이 없이 보인다. 멀리 지중해도 눈에 들어온다. 메마른 농지가 펼쳐져 있다. 큰 성당과 주택과 건물들이 보인다. 아내는 뜨거워 양산을 쓴다.
성벽위에서 보는 풍광은 먼 곳 뿐만 아니라 시타델 내부도 아름답다. 지중해의 섬은 사암(라임스톤limestone)으로 지은 건축물이 많다. 도시 전체가 누르스름한 연한 레몬 빛을 띤다.
유럽의 요새와 성채는 대부분 홑겹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짓는다. 1차 방어선이 뚫리면 2차, 3차에서 다시 방어할 수 있도록 지형을 이용해 겹겹이 두텁게 성벽을 세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오각형 육각형 모양이 많은 이유다. 유럽에서 가장 성채 요새를 잘 쌓은 곳은 동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던 베니스 공화국이었다.
그래서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지중해 일대 곳곳에서 베네시안 월(wall), 베네시안 포트리스(fortress)라는 안내문을 종종 만난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이 대표적이다.
베네시안 포트리스는 아시아에도 진출해, 청나라 말기에 대만 섬에 지은 것이 아직 남아 있다. 스리랑카에도 있다. 빅토리아의 시타델도 가장 높은 곳의 성벽에서 내려다보니 역시 그렇다.
비스듬한 지형을 이용해 여러 겹으로 돌출형 성벽을 쌓았다.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면 다시 시타델의 주 출입구로 돌아온다. 보존이 아니라 복원 유적 80% 이상이 복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산타마리아 교회와 깃발이 나부낀다. 자세히 보니 원래 있었던 성벽의 아래쪽과 위쪽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 아니구나.
안내판을 보면 유네스코 세계 유산 후보이지 세계 유산은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의 기준은 생각보다 깐깐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원형 보존이다. 박물관도 있다. 작은 카페도 있다.
죄수 형틀이 앞에 있는 옛 감옥(The old Prison)도 있다. 문이 닫혀있다. 성당이 있는 광장을 가로질러 가니 골목길이다. 작은 종루가 있는 옥상이 나온다. 넓은 옥상에는 대포 두 개가 예쁜 카페를 겨냥하고 있다.
옥상을 내려와 시타델 마을의 골목길로 들어가 본다. 기념품 가게와 카페등이 이어지는 골목길 초입은 유럽이 아니라 마치 인도나 중동 혹은 모로코나 튀니지 같은 북아프리카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암 건축물과 여러 문화가 섞인 몰타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리라. 골목길을 따라 깊숙이 걸어 들어가면 집집이 곳곳에 가톨릭의 성모상이나 성상으로 장식했다.
이제 시타델을 내려온다. 광장에는 붉은 파라솔이 가득하다. 광장 코너의 아이스크림 가게가 예쁘다.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한 컵을 입에 물었다.
맛있다. 고조섬의 명소를 그린 사진들이 또 예쁘다.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 방향으로 걸어가니 성 조지 성당(St George’s Basilica)이 나온다.
2개의 종탑이 좌우 대칭으로 세워져 있고 시계도 하나씩 보인다. 옥상 테라스를 갖고 있는 예쁜 카페도 있다. 마을 골목길이 정답다. 가장 큰 사거리의 구석에는 급수대와 오래된 십자가가 있다.
1881년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몰타 은행 건물에는 남자 신사의 동상(Gorg Tabone 1841~1916)붙어있다. 누구인지 모르겠다. 슈퍼에 들렀다. 제법 큰 수퍼다. 망고, 파파야, 수박 등 과일이 풍성하다.
주먹보다 큰 사과 9개에 3.75유로(5,625원)다 우리나라는 1개에 5천원이 넘는데, 여기는 참 저렴하다. 맛있다. 하나 먹으면 배가 부르다.
라면을 끓여서 저녁을 먹는다. 옆에 있는 공원에 저녁 산책을 나왔다. 빌라 런들 가든 (Villa Rundle Garden)이다. 빅토리아 (Victoria)의 리퍼블릭 스트리트 (Republic Street) 하단에 위치한 정원이다.
이 정원은 1915 년경 영국 장군 레슬리 런들 (Leslie Rundle)에 의해 심어지고 명명되었다. 무화과 나무 및 야자수와 같은 다양한 토착 및 수입 나무가 있다.
나무는 방문객들에게 태양으로부터 그늘을 제공한다. 분수대와 작은 공연장도 있다. 무대에서 학생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깨끗하고 단정한 공원이다.
뒷문으로 나오니 버스 터미널이다. 편의시설을 둘러본다,. 교통카드도 있는데 사용방법이 여러 가지다. 투어버스 정류장도 보인다. 피곤하다. 시차적응이 힘들게 느껴진다.
숙소로 돌아와 빨래하고 샤워하고 자리에 눕는다. 참 해가 길다.
*8월 25일 경비-버스비 20유로, 배값 15유로, 아이스크림 3유로, 사과 3.75유로, 숙박비 156,000원, 계218,625원. 누계383,575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