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신 수필 원고 1]
누가 시골의 새 울음소리를 아름답다고 했는가?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새소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맑은 공기, 싱그러운 나뭇잎, 여기저기 피어나는 야생화들은 덤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전원생활을 상쾌하게 만든다.
6월은 체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예이츠의 이니스프리 호도의 꿈을 안고, 약 500평에 체리낭구 100여 주를 심은 지 10년이 넘었다. 나무가 거의 반 이상이 죽었고, 그나마도 올해는 냉해를 입어 전멸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내가 체리농사로 먹고 살기로 작정을 하였다면, 아마 난 벌써 요절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10여 년 동안 체리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다. 친구들은 말한다. 그럼 체리를 미련곰탱이처럼 왜 붙들고 있냐고……. 때려치든지 아니면 다른 농사로 바꾸든지 하라는 것이다. 그렇지않아도 때려칠려고 체리가 익어가는 작년 이 시기에 코카서스로 여행을 갔었다. 거기 가서 체리에 대한 한을 풀어보고자 시컷 사 먹었다. 17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우리밭 체리를 먹으니, 조지아의 체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 있었다. 다시 미련을 못 버리고, 거름도 주고 전정도 하고 새로운 묘목도 심었다. 그런데 꽃이 필 때 냉해를 입어 암술이 죽어버리고, 벚나무, 자두나무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꽃이 피는 바람에 벌이 체리밭에 오지를 안했다.
늦은 품종 서너 그루가 그나마 열리고, 몇 개 안 달린 조생종은 새들이 다 잡수셨다. 난 새들이 찍어놓은 것을 입으로 베어낸 후 씨만 핥아 먹었다.
오디가 익어 가면 새들이 체리밭에 덜 덤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해는 까치들이 계속 쳐들어온다. 5마리가 무더기로 덤빈다. 체리가 작살이 난다. 새가 덤비지 않게 각종 조류 퇴치기를 설치한다.
거울도 달고 각종 요란한 소리를 낸다. 약 이틀 정도 효과를 본다. 3일 째 되면 까치와 퇴치기가 같이 논다.
이번에는 새들이 싫어한다는 삐삐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퇴치기를 걸어놓는다. 시끄럽기만 하지 전혀 효과 불능이다.
6월이 되면 한낮에는 더워서 일하기가 엄청 힘이 든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오이 고추밭에 물을 주고 벌을 살펴본다. 벌 내검을 하면서 체리밭을 바라보면 전봇대 위에 까치 한 마리가 날 쳐다본다. 두 마리가 모이고 세 마리가 모인다. 그럼 난 돌을 주워들고 체리밭으로 가 '개새끼들'이라고 욕을 퍼부으면서 돌을 던진다. 아무리 힘껏 던져도 까치 있는 데까지 돌이 날아가지 않는다. 까치보고 개새끼라고 욕하는 내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돌을 던져도 이놈의 까치가 멀리 도망가질 않고 돌팔매가 닿지 않는 적당한 거리에서 짹짹거리고 있다. 약이 오른다. 멀리 내쫒기 위해 쫒아간다. 이제 멀리 갔으니 한참은 안 오겠지하고 체리밭에 와보면 어느새 까치가 체리밭에 와 놀고 있다. 환장 된장할 노릇이다. 한 시간 동안 5번은 반복한 것 같다. 이제 “개샹놈의 새끼들 잘 먹고 잘 살이라.”고 욕을 퍼붓고 체리 지키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나서 체리밭 밑바닥을 보니, 다시 화가 치민다. 덜 익은 체리가 땅바닥에 가득하다. 지 먹을 것만 따 먹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떨어 놓는다.
혹자는 말한다. 새가 먹고 남은 것을 내가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문제는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데 있다. 체리가 이 정도 익으려면 비도 오지 말아야 되고, 농약도 쳐야 하고, 적당한 거름도 줘야 한다. 이건 체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까치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아예 체리밭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을 요량이다. 사실은 오늘 서울에서 모임이 있는 날인데, 가질 못하고 있다. 까치가 사회생활까지 방해하고 있다. 조상님들의 까치 까치 설날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와, 농사 진짜 어렵다. 수익 없는 이 짓을 매년 반복하고 있다. 시지프스 신화다. 그래도 체리는 맛있다.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체리 따 먹는 재미는 이 모든 어리석음을 대체하고도 남는다.
까치, 니가 사나 내가 사나 오늘도 한 판 붙어보자.
[조충신 수필 원고 2]
잊지 못할 여인들
농사일을 접는다고해서, 꼭 무료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집사람과는 학교 근무 중에 만났다. 우리 나이로 33세 때다. 인연은 우연에서 나오는 것 같다. 여자고등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이쁜 여고생들한테 둘러싸여 웬만한 여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발령받으니 처녀 선생님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었다. 그 중 집사람이 가장 눈에 띄었다. 중학교 근무 2년 반 동안에 집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대학원도 졸업하고, 운전면허도 취득해 차도 샀다. 중학교 근무가 나한테는 인연의 시발점이었다.
남자들이 배우자를 찾을 땐,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외모를 제일 먼저 본다. 콩깍지가 씌우든 말든 말이다. 그런데 그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난 그런 인연을 참 많이 놓쳤다. 또한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다. 별일이 일어나지도, 만나지도 안했는데,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땐, 우리 반 부반장이었던 선생님의 딸을 좋아했다. 이쁘고 얼굴이 하얬으며 키가 컸다. 아마 당시에 고백했으면 발로 차였을 것이다. 근래에 와서 고백했더니, 전혀 몰랐단다. 그리고 내가 무섭게 굴었단다. 지금은 모임에서 친구들과 같이 가끔 만난다. 늙어가면서 설레임은 사라졌지만, 어렸을 적 친구로서 만나면 그냥 좋다.
고등학교 때다.
멀리 유학을 와 자취를 했다. 누님이 근처에 사셔, 주말이면 김치를 담가 주었다. 그걸 비닐봉투에 담아서 버스를 타면 묘하게 김치 냄새가 천하를 진동했다. 여름에는 더욱 심했다. 방금 전까지 열무와 고춧가루와 마늘이었는데 말이다.
어느날인가 버스 안에서 김치를 둘러싼 비닐봉투가 터져 버렸다. 울음이 나올 정도로 창피했고 어찌할 줄 모르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보자기로 김치를 다시 잘 싸 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말이다. 맨 뒤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여학생이 눈에 확 들어왔다. 넘 예뻤다. 내 얼굴이 고춧가루보다 더 붉어졌다. 얼굴이 폭발할 것 같았다.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다음 정류소에서 내려버렸다. 걸어서 집에까지 가느라 고생했다. 지금도 얼굴이 붉어질 때면, 그 여학생의 얼굴이 생각나곤 한다. 아마도 그때부터 이쁜 여자만 보면, 얼굴이 붉어지지 않았나하는 상상을 해 본다.
재수할 때다.
지금이야 버스에 사람이 의자수보다도 많지 않지만, 70년대 말만 해도 콩나무시루였다. 모처럼 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위가 뭉클했다.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묘한 쾌감이 몰려왔다. 얼굴을 들어 쳐다보니 무지 이뻤다. 여대생으로 보였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가 더욱 매력적이었다. 버스는 흔들리고 감각은 계속 전달 되었다. 내려야 할 곳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젊음이 불타오를 때다. 따라 내림을 기대하고 버스에서 내렸지만, 여대생은 내 자리를 차지하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가버렸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직도 그 묘한 눈빛과 감각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만원 버스가 그립다.
대학교 시절이다.
하숙집에서다. 밥을 먹고 있는 하숙집 따님의 친구가 다소곳하고 넘 이뻐 보였다. 하숙집 딸한테 몇 번을 졸라 만났다. 재수생이었고, 사격선수 출신으로 정말 이뻤다. 몸도 탄탄해 보였다. 자발적 의지로 데이트 신청한 첫번째이자 마지막 여인이었다. 두 번인가 만났는데, 결혼하면 맨날 얻어터질까봐 겁이 났다. 후에 교육청 장학사도하고 교장선생님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를 기억할지 조차도 모를 일이다.
예당와옥을 주말주택으로 이용할 때다. 동네 근처에는 내가 필요로하는 물건이 없어 읍내 철물점에 들렀다. 와, TV에서 보는 탤런트보다 더 예쁜 아줌마가 물건을 내준다. 너무 감동한 나머지 이후에도 몇 번인가 들렀지만 다시 볼 수 없었다.
집사람한테 얘기했더니, 거기 다시 가면 패 죽인단다. 맞아 죽기 싫어 다시는 못가고 있다.
난 희대의 난봉꾼인 돈 후안도 아니고, 바람둥이의 대명사인 카사노바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쁜 여자만 탐하는 변태성 남자는 더더욱 아니다. 평범한 필부필부일 뿐이다.
최재천 교수가 그랬던가? 모든 동물의 암컷은 우수한 유전자를 찾아다니고, 수컷은 곳곳에 씨앗을 뿌리고자하는 욕망이 짐재해 있다고...
이 세상에 일편단심 민들레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들레 홀씨는 가볍고 번식력이 강해, 바람에 이리저리 잘 날아다닌다. 다만, 약속과 신뢰와 도덕심이 바람끼를 잠재울 뿐이다.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는 욕망의 분출이 아니라, 약속과 신뢰의 산물일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언제 한 번 다시 읍내 철물점에 가보고 싶다.
[에필로그]
집사람 이 글을 읽고나서,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는다. 뜬금없는 얘기들만 나열했다는 것이다. 특별한 목적이 없이 문득 기억나는 내용을 반추해 보았다고 말하니,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단다. 글은 그리 쓰면 안 된단다. 내릴까하다가 그냥 올리기로 한다. 쓸데없는 내용도 어떤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마눌님, 국어교사 출신이다)
첫댓글 마지막 에필로그를 글제로 하여 수필 한편 올리세요.
누가 시골의 새소리를 아름답다고 했는가
이 수필 넘 재밌네요.
사무실에서
혼자
웃고 있네요.
조선생님! 수필
한 편 더 올려주세요.
(참고로 우리 마눌님, 국어교사 출신이다)
멋진 선생님~~!!
두 분의 주고 받는 온전한 이야기가 더욱 곱습니다
즐감하고 가네요~~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