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피로 물든 휴머니즘
1994년 6월6일. 2차대전의 전세를 뒤바꿔놓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감행된다. 오마하 해변을 맡은 밀러대위(톰 행크스)는 많은 부하를 잃고 천신만고 끝에 상륙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다음 작전은 황당하게도 적진에 투하돼 행방이 파악되지 않는 라이언 일병(멧 데이먼)을 찾아내 미국으로 귀환시키라는 것. 라이언의 형3명이 모두 전사하자 그들의 어머니를 위해 라이언만이라도 귀향 시키기로 상부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밀러를 포함한 8명의 대원은 자신들 모두의 생명보다 그의 생명이 더 중요한지 의구심을 품고 라이언을 찾아 나선다. 밀러 일행은 악전고투 끝에 라이언을 찾아내지만, 그는 귀환을 거부하고 다리를 사수중인 자신의 부대와 운명을 같이 하겠다고 버틴다. 밀러 대위는 라이언의 부대에 합류해 마지막 작전을 치른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2차재전을 승리의 전쟁, 정의의 전쟁이 아니라 고난과 참상으로 그린다. 영광스런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실로 구토를 참기 힘든 지옥이다. 전령사령부는 그 아수라장을 천운으로 통과한 미국 병사들에게 라이언 일병을 찾아내 후송하라는 기막힌 명령을 내린다. 아들 셋을 이미 잃은 어머니의 마지막 자식을 되돌려보내기 위해 몇명의 희생자가 더 필요한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카메라는 한심한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소대의 지루한 여정과 끔찍한 전투를 쫓는다.
총제작비 6500만달러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대한 미국 내 반응은 유난스럽다. 관객의 반응부터 극성스러워 개봉 4주 동안 흥행성적 1위를 지켰다. 언론과 평단은 더 난리다. 거의가 경탄과 찬사 일변도이다. (버라이어티)는 웅변적인 어조로 "참혹한 전투가 마치 눈앞의 현실인 것처럼 당신 앞에 펼쳐질 때, 더이상의 어떤 논평도 불필요하다"고 단정지으며 "선명하고 사실적이며 처절한 전투 묘사에서 둘도 없는 영화"라고 극찬했다. (타임)도 "가장 위대한 전투 시퀀스"에 경의를 표했고, (뉴욕타임스)스 "정교하기 때문이 아니라 끔찍할 정도로 정직하기 때문에 보기에 고통스럽다"며 "우리 시대 최고의 전쟁영화"라고 치켜세웠다.
(뉴스위크)기사에 따르면 요즘 미국사람들에게 2차대전이 갑작스럽게 화제가 되고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말고도 2차대전 관련영화가 6편이나 제작되고 있으며, 이중에는 테렌스 멜릭 감독, 존 드래볼타 주연의 (신 게드 라인)도 들어 있다. 2차대전에 관한 스티븐 E.앰브로스의 최신 저선 2권(D데이:2차대전 절정의 신화)와 (시민군)은 합쳐서 1만부나 팔렸다고 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2차 대전 신드롬을 등에 업고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대대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다큐멘터리적 기법이 대거 동원된 초반 20여분의 전투장면은 의문의 여지없는 압권이다. 상륙보트의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지는 독일군의 기관총 세례로 미군들은 벌레처럼 죽어버린다. 몸도 움직이기 전에 철모를 관통한 총알에 고꾸라지는 병사, 가까스로 물 속에 몸을 숨겼으나 물 속을 파고든 총알에 비명도 없이 숨을 거두는 병사, 쏟아진 창자를 어루만지면서 괴성을 질러대는 병사, 머리의 반이 날아가 쓰러진 병사, 찢겨나간 팔을 들고 서성이는 병사들이 전혀 주목받지 못한 채 오마하 해변의 생지옥에 끝없이 진열된다.
20여분간의 끔찍한 상륙작전이 끝난 뒤부터는 보통의 극영화로 돌아간다. 여기서 스필버그는 두가지 장치를 마련한다. 첫째는 밀러 대위의 정체성을 감추는 것. 가장 중심적이며 주도적인 이 인물은 정체의 모호성으로 인해 관객에게 감상적 동일시를 허용하지 않는다. 밀러는 거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학교 교사임을 밝힌다. 전쟁은 착실한 미국시민의 전형이며 가장 헌신적인 밀러에게조차 자신의 내면이 가담할 수 없는 악몽이었던 것이다.
둘째는 통역병으로 차출된 전투 무경험자 업햄의 개입. 이 겁많고 유약한 인간은 동료들이 탄약이 떨어져 죽어가는데도 총탄 전달조차 못한 채 겁에 질려 운다. 그의 존재는 관객에게 분노를 살 만하지만, 오히려 스필버그는 "업햄은 나였고, 내가 살아왔던 인간 그 자체였다"고 말한다. 전투 체험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대부분의 관객에게 유일한 전투 비전문가인 업햄의 행태에서 자신을 발견토록 하는 것이 스필버그의 의도이다.
고뇌하는 리얼리스트의 태도를 견지해온 카메라의 시선은 마지막 장면에서 허물어진다. 다시 오늘의 군인 묘지로 돌아온 카메라는 슬픔과 존경에 찬 눈으로 밀러의 묘비를 바라보던 늙은 라이언이 가족을 뒤로 두고 경례를 하는 것으로 끝나고 스크린엔 첫 장면처럼 성조기가 떠오른다. 영화는 전쟁의 리얼리즘으로부터 벗어나 또하나의 영웅담으로 돌아온 것이다. 밀러 같은 영웅의 희생으로 오늘의 평온한 미국이 존재한다는 진술을 담은 이 마지막 장면은 변함없는 스필버그식 결말이다.
미국인들은(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전쟁의 진실을 말해서가 아니라 2차대전의 진실을 말해서 불편해 하거나 감동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아닌 사람들에겐 2차 대전도 하나의 전쟁이란 건 평이한 진실이다. 파시스트 응징이란 명분이 있다해도 연합군의 2차대전에 참여 동기가 정의가 아니라 국익이란 건 두말할 필요없는 상식이다. 국익조차도 종종 기득권자들의 이해관계나 치졸한 정치선전과 뒤섞이며, 전장의 소모품인 병사들에겐 생존과 귀환만이 지고지선의 희망이라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베트남전쟁이란 지울 수 없는 악몽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영화들이 나올 때, 순진한 동심찬미와 저열한 제국주의적 태도가 뒤섞인 상업영화에 몰두하던 스필버그가 자신의 영화적 이력에 대한 아무 성찰없이 인간과 전쟁의 본질 운운하며 2차대전 영화를 내놓고, 논평가들이 그에 대한 찬사 일색으로 지면을 뒤덮는 미국영화계의 모습은 아무래도 꼴불견이다. 그의 휴머니즘은 역사적 성찰을 결여하고 있어, 늘 자기도취적 감상성의 껍질을 벗지 못한다.
그의 몰역사적 휴머니즘은 (태양의 제국)에서 이미 명료하게 드러난 바 있다. 제국주의국가들이 남의 나라에서 벌이는 식민지 침탈 전쟁을 그리면서도 영국 소년의 고난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설득하려는 어이없는 태도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상투적 인간주의와 별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무기에 의해 육신이 처참하게 파열되는 과정을 어느 영화보다 적나라하게 담아내는 그의 뛰어난 테크닉은 오히려 전쟁의 스펙터클이 지닌 가능성을 재확인하고 확대하는 상업적 전략으로 주목할 만하다. 스필버그의 경우엔 이를 진지한 작가의식으로 포장해내는 상술까지 겸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상업영화 감독들보다 훨씬 교활한 셈이다.
허문영(씨네21)기자 / 한겨례 리빙 1998년
개봉 / 9월 12일. 상영관/ 단성상, 시네코아,명보,동아,씨네하우스 ,CGV강변11
Saving Private Ryan 제공/ 드림윅스. 제작/스티븐 스필버그 외. 감독/스티븐 스필버그. 음악/존 윌리엄스. 의상/조안나 존스턴
편집/마이클 칸. 미술/톰 샌더스. 촬영/톰 행크스,맷 데이면, 톰 시즈모어. 제작연도/1998년. 상영시간/169분. 등급/15세 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