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밑은 미세먼지가 유난히 기승을 부렸다. 옷을 벗은 자연은 그대로 산업화의 지독한 공해에 노출되어 있다. 이맘때쯤의 도시는 이른 시간에 잠을 깨긴 하지만 수런거리거나 부산스럽지가 않다. 가벼운 하현달이 새벽하늘을 흐르는지 모르겠다. 짙은 안개와 낮게 낀 구름으로 인해 별들은 자취도 없다.
아파트 화단에는 높은 산에 살아야 할 마가목이 생뚱맞게도 크리스마스 시즌의 별 전구 같은 붉은 열매를 지금껏 달고 서있다. 건물 주위에는 여러 나무와 풀들이 이곳의 삶을 알지도 못한 채 잡혀와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
이곳도 도심의 여타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들판을 내려다보는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한 아파트에는 값싼 중국산 침엽수, 모감주나무를 비롯한 각종 나무들이 대중없이 심어져 있고, 바람이 지나는 귀퉁이에는 전혀 이곳에 어울리지 않은 고욤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은 고욤나무는 처음 아파트로 이사 올 때만 하더라도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늦은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을 벗어던지고 오종종한 고욤을 매단 채 터를 잡고 서있지만 오월에는 수많은 작은 종 같은 연노랑 별꽃을 달고 열매를 준비한다. 도시인들은 꽃 같지도 않은 꽃을 단 나무가 감을 키워내는 감 종자나무인지 모른다.
한여름이 되고 온갖 나무들이 무성해지면 아파트 조경을 다듬는 사람들에 의하여 여지없이 가지치기를 당한다. 시골에서 자라는 나무는 몸통이 우람하고 많은 가지를 마음껏 내뻗어 튼실하다. 그곳의 고욤은 어치 같은 산새들과 어울려 여러 곳에 씨를 퍼뜨린다. 그러나 아파트 틈바구니에 궁색하게 서있는 고욤나무는 저 혼자 겨울을 맞아 봄이 올 때까지 고욤을 매단 채 지나가는 바람과 어울릴 뿐이다.
올해도 가지들이 잘린 채 고욤나무는 하늘로만 뻗어 올랐다. 감을 먹은 후 감 씨를 심으면 감나무가 아닌 고욤나무가 된다. 사람들에게 빼앗겼던 자기의 정체성을 죽은 후에라도 되찾는 것이다.
통째로 잘라져 껍질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다른 나무의 가지를 붙이고는 맛있고 탐스러운 감을 평생 키워내야 하지만, 그 화려한 더부살이의 열매 속에는 자기의 본 모습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불필요한 모든 것을 버리고 추운 겨울을 버티고 선 나무는 봄의 햇살을 기다린다.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그것이 아파트 귀퉁이에서 조용히 봄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고욤나무가 주는 교훈이다.<끝>
첫댓글 끝맺음이 아주 멋집니다. 감나무의 정체성과 우리네 삶의 조화가 오묘하게 읽힙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감나무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욤나무도 아닌
그저 산야에 버려져 있는 돌감나무 느낌입니다.
이 먼곳까지 찾아오셔서 댓글 남겨 주시고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