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단계 하느님의 뜻 영성교육(제5강의)
제1장 고통의 신비 - 예수님과 우리의 고통
5. 예수님의 고통, 내적 고통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이사 53,5-6)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로마 3,25)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1요한 2,2)
아기로 오신 이유
8-58,3 딸아, 나의 사업들은 완전하다. 내가 젖먹이 아기로 오기를 원한 것은 유아기의 모든 희생과 작은 행위들을 전부 신성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아이가 죄를 짓기 시작하기 전에는 모든 것이 나의 유아기 안에 흡수된 상태로 있다.
사랑에 의한 고난
9-25,2 딸아, 영원한 사랑은 나의 내면 전체에 작용한 반면, 인간은 다만 내 인성의 외피에만 영향을 끼쳤을 뿐이다. 그러므로 내 고뇌의 시간 동안 - 인간이 아니라 - 영원한 사랑이, 무한한 사랑,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숨어 있는 사랑이 불타는 못으로 나를 꿰뚫고, 불타는 가시관을 내 머리에 씌우고, 들끓는 쓸개즙을 마시게 하였다. 그리하여 내 인성은 그 숱한 종류의 순교적 고통을 동시에 다 견딜 수 없어졌으므로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 내었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이렇게 부르짖을 정도가 되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마르14,36)
3 이 말은 그러나 이후의 수난 과정 속에서 다시는 나온 적이 없었거니와, 수난 과정 전체에 걸쳐 겪었던 모든 것을 나는 동산의 고뇌 속에서 전부 겪었고, 그것도 더욱 격렬하고 더욱 고통스럽고 더욱 내밀한 방식으로 겪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내 뼛속까지 깊이, 내 마음속 가장 깊은 데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여기까지 들어올 수 없었지만 사랑은 모든 것에 도달할 수 있고 그 무엇도 사랑에는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의 일차적인 사형 집행자는 사랑이었다.
4. 이런 연유로 해서, 내 수난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사형 집행자로서 행동하고 있는 이들에게 한 번도 비난의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그들보다 더 잔인하고 더 극성스러운 사형 집행자, 사랑이라는 집행자가 내 안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외적인 집행자가 도달할 수 없는 곳, 즉 그들 손이 미치지 못하는 내 존재의 작은 부분에까지 사랑은 그 작용을 계속하면서 나의 어떤 것도 봐주지 않았던 것이다.
5 이는 모든 영혼들 안에도 일어나는 현상이니, 일차적인 작용은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사랑이 작용하여 영혼을 사랑 자신으로 채우고 나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다만 사랑이 영혼 내부에서 행한 작업의 분출에 불과할 따름이다.
예수님의 인성이 잠의 나약함의 지배를 받은 까닭
11-139,4 이제 내 인성이 잠의 나약함의 지배를 받은 까닭이 무엇인지 말해 주마.
10 내가 잠을 자기를 원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이는 피조물이 아버지 안에서 안식을 누리기를 거부한 데 대하여 그 모두를 대신해서 아버지께 보속하기 위함이었다.
수난의 시간들 날인
12-10,3 그 뒤 나는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었다. 연옥 영혼들과 성인들로 보이는 많은 영혼들 가운데 있었는데 그들은 내게 말을 걸면서 얼마 전에 죽은, 내가 아는 한 사람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4 "그는 이 '수난의 시간들'의 날인을 지니지 않고 연옥에 들어오는 영혼이 하나도 없음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혼들이 이 '시간들'의 호위와 도움을 받으며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요.
5 또한 이 '수난의 시간들'의 동반을 받지 않고 천국으로 날아드는 영혼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이 '시간들'은 천국에서 땅으로 또 연옥과 하늘에까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이슬이랍니다.
신성에 의한 예수님의 고난
13-24,2 딸아, 내가 얼마나 넘치는 사랑으로 피조물을 사랑했느지 보이느냐? 나의 신성은 피조물에게 인류 구속의 사명을 맡기기에는 너무나 철저히 마음을 쓰고 있었으므로 나 자신으로 하여금 수난을 겪게하였다.
4 피조물은, 창조의 빛 속에서 태어났고 또 태어날 모든 피조물의 수만큼 많은 죽음들 및 그들이 실총(失寵)의 결과를 낳으며 저지르는 사죄(赦罪)들의 수만큼 많은 죽음들을 나로 하여금 치르게 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하느님다운 신성은 피조물 개개의 생명에 대해서 생명을, 죽어 마땅한 죄를 통해 그들이 자초하는 개개의 죽음에 대해서 생명을 요구했던 것이다.
5 나 자신의 신성이 아니었다면, 누가 나에게 그토록 많은 죽음을 줄 정도로 강력할 수 있었겠느냐? 나 자신의 신성이 아니었다면 누가 그토록 수도 없이 죽어 가는 나를 지켜볼 힘과 사랑과 항구함이 있었겠느냐? 피조물이었다면 지쳐 떨어져서 지레 포기해 버리지 않았겠느냐?
6 게다가 내 신성이 행한 이 일은 나중에 가서야 시작되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어머니 태중에 잉태되자마자 시작된 일이었다. 그러기에 내 엄마는 내가 당신 태중에 있는 동안에도 번번이 나의 고통을 알고 계셨고 나와 함께 죽음을 통감하며 고난을 겪으셨다.
7 그러므로 어머니의 태중에 있었을 때부터 나의 신성은 사랑 깊은 사형 집행자의 역할을 떠맡고 있었다. 사랑 깊은 집행자였기 때문에 요구가 더욱 많고 추호의 가차도 없었다. 어찌나 그러한지 내 신음하는 인성에 가시 하나, 못 하나도 면해 주지 않았다.
8 한데 그것은 수난 동안 인간이 내게 가한 가시나 못, 채찍의 타격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나를 괴롭힌 수만큼 고정되어 있었지만, 내 신성이 내게 준 것들은 개개의 죄에 따라 그 수가 오히려 불어나고 있었다.
9 인간의 악한 생각들의 수만큼 가시의 수가 불어났고, 부당한 일들의 수만큼 못이, 쾌락에 떨어지는 수만큼 채찍질이, 여러 종류의 숱한 죄들의 수만큼 고통이 증가되고 있었다. 고통의 바다, 가시와 못과 셀 수 없이 많은 매질의 바다였다.
10 내 신성이 나에게 가한 그 수난에 비하면 인간이 내 생애의 막바지에 끼친 수난은 내 신성이 나의 전 생애에 걸쳐 겪게 한 것의 그림자요, 표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12-94,2 와서 내 작은 인성이 잉태되는 동안 내 신성으로부터 받은 최초의 죽음과 고통에 참여하여라. 나는 잉태되면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모든 영혼들을 나와 함께 나 자신의 생명으로 잉태하였고, 또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겪어야 할 고통과 죽음도 잉태하였다.
3 이처럼 모든 것을, 곧 영혼들과 그들 각자가 치러야 할 고통과 죽음도 내 안에 전부 통합해 넣었으니, 그것은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리기 위해서였다. '아버지, 피조물을 보시지 말고 오직 저만 보십시오.
4 제 안에 모든 사람이 보이실 것입니다. 제가 그 모두를 위해 보속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만큼 많은 고통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각 사람을 위해 죽기를 원하십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시기만 한다면 저는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5 그러므로 나에게 그토록 많은 죽음과 고통을 주려면 하느님의 능력과 뜻이 필요했고, 내가 그것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도 이 능력과 뜻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의 뜻 안에서는 모든 영혼과 모든 것이 현행 중에 있다.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추상적이거나 지향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6 실제로 내가 그들 모두를 나와 하나가 되게 했고, 그들이 나와 함께 바로 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 실제로 내가 그들 모두를 위해서 죽었고 각자의 고통을 다 겪었던 것이다.
7 사실 그것은 내 전능의 기적과 내 무한한 뜻의 놀라운 일을 요하는 일이었다. 내 뜻이 없었다면 나의 인성이 모든 영혼들을 찾아내어 다 싸안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토록 자주 죽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8 그러므로 나의 작은 인성은 잉태된 순간부터 고통과 죽음을 번갈아 겪기 시작하였다. 모든 영혼들이 끝없는 바다에 잠기듯 내 안에 잠겨, 내 지체들의 지체들, 내 피의 피, 내 심장의 심장을 이루고 있었다.
9 내 인성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신 내 엄마께서 얼마나 여러 번 나의 고통과 죽음을 느끼시며 나와 함께 죽곤 하셨는지! 내 엄마의 사랑에서 내 사랑의 메아리를 느끼는 것이 내게는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는지!
10 이는 심오한 신비들이니, 인간의 지성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이 신비들 안에서 길을 잃은 모습이 된다. 그러니 너는 내 뜻 안으로 들어오너라, 와서 잉태의 순간부터 내가 겪었던 죽음과 고통에 참여하여라. 그래야 내가 지금 하는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2-101,3 내 고통의 딸아, (앞에서도 말했지만) 너는 알아야 한다. 유다인들이 내게 준 고통은 내 신성이 내게 준 고통의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는 지당한 조처였으니, 신성이 완전한 보속을 받기 위함이었다.
5 죄는 따라서 인간의 내면에 먼저 형성된 다음 외면으로 표출된다. 더군다나 많은 경우 외면으로 나타나는 것은 최소한의 것인 반면 대부분은 내면에 남아있다.
6 그런데 피조물은 나의 내면에 들어올 능력이 없었고, 그들이 그리도 숱하게 범한 내적인 죄들로 아버지께 거부한 영광을 나로 하여금 고통으로 보속하게 할 능력이 없었다.
7 이 죄들은 더욱이 피조물의 가장 고상한 부분, 곧 하느님의 모상이 각인된 부분인 지성과 기억과 의지에 손상을 입혔고, 이로 인해 피조물은 무능해지고 말았으니, 누가 이 일을 떠맡아야 했겠느냐?
8 그러므로 신성이 몸소 일을 떠맡고, 나의 사랑 깊은 - 사랑이 깊은 만큼 더욱 요구가 많은 - 사형 집행자가 되는 것이 거의 불가피한 일이었으니, 인간의 내면에서 저질러지는 모든 죄에 대한 완전한 보속을 받기 위함이었다.
9 신성은 그처럼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완전한 일을, 피조물에 대한 완전한 보속을 원하였다. 그러기에 유다인들이 내게 끼친 수난으로 나는 피조물이 앗아간 아버지의 외적 영광을 보속하였고, 또 내 신성이 나의 지상 생활 전반에 걸쳐 내게 끼친 수난으로 인간 내면의 모든 죄에 대해 아버지께 보속을 바쳤다.
10 네가 이를 보면, 신성의 손에서 내가 받은 고통이 피조물에게서 받은 고통을 월등 능가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능가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인간 정신으로는 그만큼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11 인간의 내면과 외면에 큰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이, 내 신성이 내게 가한 고통과 피조물이 내 생애 막바지에 가한 고통 사이에는 한층 더 큰 차이가 있다.
12 앞의 것은 잔혹하고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인 찢어발림으로 나를 죽일 수 있었고, 영혼 육신 가릴 것 없이 내 가장 내밀한 부위에 거듭되는 죽음을 안길 수 있었으니, 신경 한 가닥도 그냥 두지 않았다. 뒤의 것 역시 혹독한 고통이었지만 그 각각의 고통이 나를 죽일 수 있을 만큼 찢어발긴 것은 아니었다. 신성은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3 아아, 인간이 내게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 하지만 인간은 배은망덕하게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내가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인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피조물이 내게 끼친 수난 동안 내가 겪었던 것마저 이해하기에 이르지 못했다.
14 그들을 위해 겪은 나의 고통들 중 보다 작은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더욱 큰 고통이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 내가 그들로 인해 신성으로부터 받은 그 전대미문의 무수한 고통들에 대해 알릴 시기를 늦추어 온 것은 이 때문이다.
15 그러나 나의 사랑은 스스로를 쏟아 내기를, 그 보답으로 사랑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너를 내 뜻의 무한성과 그 이상일 수 없는 높이 안으로 부른 것이니, 이 뜻 안에는 저 모든 고통들이 현행 중이기 때문이다.
16 너는 이 고통에 참여할 뿐더러, 온 인류 가족의 이름으로 경의와 사랑을 보내며 보답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와 함께 피조물이 빚져 있는 모든 것을 대신 갚고 있다.
17 하지만, 나에게는 그지없는 괴로움이고 피조물에게는 막대한 손실인데도,그들은 그것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12-106,2 "딸아, 신성이 내게 가한 고통이, 그 힘과 강도에 있어서나 그 많은 수와 지속된 시간의 길이에 있어서나, 피조물이 가한 고통을 월등 능가하였다.
3 하지만 여기에는 불의나 증오가 없었다. 더없이 높은 사랑과 우리 성삼위의 이중적인 일치가 있었으니, 곧 내가 창조의 빛에서 나온 모든 피조물의 수만큼 많은 죽음을 겪는 대가로 영혼들을 구원하려고 몸소 떠맡은 일에 대하여 의견을 같이하였고, 아버지께서 지고하신 사랑으로 이 일을 내게 허락하셨던 것이다.
4 사실 불의와 증오는 신성 안에 없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신성은 그런 고통을 내게 겪게 할 수 없었는데, 인간은 더없이 고약한 불의와 증오로 죄를 지을 수 있으니, 나는 아버지께 완전한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 불의와 증오와 조롱 따위를 겪어야했다.
5 내가 지상 생활 마지막에 인간 편에서 오는 수난을 치른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수난에서는 그들이 내게 불의와 증오와 조롱과 복수심을 십분 발휘하여 얼마나 많은 치욕을 안겨 주었는지 나의 가련한 인성은 모든 이의 수치가 되었고, 도무지 사람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6 그토록 흉하게 손상시켰으므로 그들 자신도 나를 보며 소름을 칠 지경이었으니, 나는 누구보다도 지긋지긋하고 하찮은 인간 폐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수난과 저 수난은 서로 구분되는 두 가지 다른 수난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7 인간은 나에게, 피조물의 수와 그들이 범하는 죄의 수만큼 많은 죽음을 줄 수 없었다.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러므로 신성이 지고한 사랑과 상호 일치하에 이 일을 맡았다. 하지만 신성은 불의 등을 저지를 수 없기에 그런 것은 인간이 맡았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면에서 구원 사업을 완성하였다.
12-133,7 나의 가련한 인성이, 악습에 빠진 인류가 죄로 초래하는 징벌과 그 떨어져 나감의 고통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인류를 하느님의 신성에 결합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분리로 인한 모든 고통을 치러야 했는데, 그 분리의 매 순간이 나에게는 가혹한 죽음이었다.
14-48,6 더욱이 내 신성은 엄한 재판관이어서 모든 피조물의 모든 고통을 형량으로 치르도록 요구하였다. 오, 내 인성이 얼마나 떨렸는지! 나는 모든 사람의 죄로 뒤덮이고 그 각 사람이 받아 마땅한 고통과 죽음으로 뒤덮인 나 자신을 보면서, 그 지고하신 빛과 엄위 앞에서 온통 으스러진 상태로 있었다.
7 이것이 내 생애 최대의 고통이었으니, 신성과 하나이며 갈라질 수 없는 내가 마치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고통 중에 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12-116,5 오, 내 인성이 얼마나 자주 이 억압적인 처지에 있곤 했던지! 내 인성은 내 신성에 동화되어 있었다. 아니 내 신성과 온전히 하나였다. 하지만 신성은 전권을 쥐고 온 인류 가족을 위한 속죄를 요구했으니, 나로 하여금 인성 전체가 받을 만한 거절과 잊힘과 엄중함과 분리를 절감하게 하였다.
6 이런 것이 내게는 가장 쓰디쓴 고통이었다. 즉, 신성에 동화될수록, 하나로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분리를 느끼는 것이 그만큼 더 고통스러웠고, 사랑받고 있으면서도 잊혀 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 존중을 받고 있으면서도 거절을 체험하는 것,거룩하면서도 온갖 죄를 뒤집어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7 얼마나 현저한 대조였는지! 얼마나 혹심한 고통이었는지! 그러므로 이를 견디기 위해 내 전능의 기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잉태와 함께 시작된 예수님의 고난
13-24,2 딸아, 크나큰 기적인 성(聖) 육신의 광경을 바라보아라. 잉태와 더불어 나의 인성이 형성되자 나는 모든 피조물을 내 안에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
3 피조물이 내 인성 안에 다시 태어나고 있었기에 나는 그들의 행위 하나하나를 뚜렷이 느낄 수 있었고, 내 머리 속에는 그들의 모든 생각들이, 착한 것이건 악한 것이건 고스란히 다 들어 있었다.
5 악한 생각들에 대해서는 보상하고 속죄하며 내 생각들의 수를 무한히 불어나게 하였다. 이는 피조물의 각 생각이 아버지께 마땅히 드려할 영광을 대신 드리기 위함이었다. 또 나의 눈길과 말과 손발과 마음 안에도 각 사람의 눈길과 말과 손발과 마음을 담고 있었다.
6 그렇게 모든 것이 내 안에 다시 태어났기에 내 인성의 거룩함으로 굳건하게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을 보상하였고, 하나하나의 죄에 대해서는 각각으로 특별한 고통을 치렀다. 이와 같이 그들 모두를 내 안에 다시 태어나게 한 다음, 지상 생활 전 과정에 걸쳐 내 안에 품고 다녔다.
7 그러면 내가 언제 그들을 낳았겠느냐?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내 쓰디쓴 고통의 그 침상에서, 온몸이 뒤틀리는 참혹한 경련 가운데 내 삶의 마지막 숨을 거둘 때였다.
8 나의 죽음으로 그들은 새로운 삶에 태어났고, 모두가 내 인성의 모든 업적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는 내가 새로운 탄생을 준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사람에게 내 업적도 전부 내주어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9 너는 이제 사람이 지닌 거룩함이 어떤 것인지 알겠느냐?그것은 나와 닮지 않은 부당한 자녀들을 낳을 줄 모르는 내 인성의 거룩함이다. 내가 사람을 너무나 끔찍이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10 하지만 사람은 늘 배은망덕해서, 그리도 엄청난 사랑과 고통으로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를 알아보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사랑으로 서로 죽고 산 예수님의 삶
14-5,2 딸아, 피조물에 대한 내 사랑이 순간마다 나를 죽이곤 하였다. 사랑의 참된 본성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끊임없이 죽고 또 사는 것에 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하기에 (그의 부재는)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을 통감하게 하고, 어쩌면 가장 고통스럽고 오래 끄는 순교를 겪게 하기도 한다.
3 하지만 사랑은 죽음보다 강해서 사람이 죽어 가는 바로 그 순간마다 하나의 생명을 주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서이겠느냐?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어 그와 한 생명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 불꽃은 하나의 생명을 소진시켜 상대방의 생명 안에 녹아들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4 내 사랑의 능력은 이러하다. 즉, 사랑은 나를 죽게 하고, 나의 그 소진으로부터 수많은 씨앗이 생겨나게 하여 이를 모든 피조물의 마음 안에 뿌린다. 나를 다시 일으켜 그들과 하나의 생명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5 너도 그런 죽음을 죽을 수 있다. 나에 대한 사랑으로.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아니 순간마다 죽을 수 있다. 네가 나를 보기를 원하면서도 보지 못하면, 그때에는 나의 부재로 인한 죽음을 통감할 터인데, 그것은 실재로 죽음이다. 네가 나를 못 보면, 네 의지가 생명을 찾고 있다가 찾아내지 못한 것이고, 그러니 죽기 때문이다.
6 그러나 그렇게 네 의지가 소진되고 나면, 내가 네 안에 다시 태어나고 너도 내 안에 다시 태어난다. 그리하여 너는 원하던 생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내 안에서 살기 위하여 또다시 죽는다.
7 마찬가지로, 네가 나를 갈망하면, 너의 충족되지 않은 갈망이 죽음을 통감한다. 그럴 때 내가 나타나면 네 갈망이 생명을 얻는다. 그러므로 너의 사랑과 지성과 마음이 나를 위해 끊임없이 죽고 사는 행위 속에 있는 것이다.
8 내가 너를 위해 그렇게 했다면, 너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해야 공평하지 않겠느냐?
주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주님을 모욕하는 것
14-29,3 너는 내가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로 나를 모욕하였다. 이 점을 명심하여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내게 더없이 큰 모욕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의 자비보다, 정의를 생각하는 잘못
14-34,15 그러고 나서 그분은 다시 오셨는데, 몹시 괴로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나를 엄하다고, 자비보다는 정의를 더 많이 쓴다고 생각할 때 나는 슬픔을 느낀다. 그들은 내가 틈만 나면 자기들을 내려치는 존재인 것처럼 대한다. 오, 이런 이들을 보면 얼마나 욕을 당한 기분인지!
16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내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데, 그렇게 일찌감치 떨어져 있으니 내 사랑이 빚어내는 모든 것을 받을 수 없다. 자기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그렇게 대면대면하게 굴면서도, 나를 엄하다고. 거의 공포를 불어넣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17 그들은 (복음서를 통해) 내 생애를 얼핏 볼 때에도 내가 오직 한 번 행한 정의의 행위만을 주목한다. 그것은 내가 내 아버지의 집을 지키기 위하여 끈으로 만든 채찍으로 좌우를 후려치며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을 쫓아낸 대목이다.
18 그러나 그 나머지는 다 내 자비를 행위였을 뿐이다. 내가 잉태되고 태어난 일, 내 말과 행위와 발걸음, 내가 흘린 피와 그 고통들, 그 모든 것이 자비로운 사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무서워한다. 나를 무서워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들 자신을 무서워해야 하련마는!"
예수님의 내적 고통
14-52,2 딸아,나의 고통은 인간 본성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 내적 고통에 비하면 내 수난의 고통은 내적 고통의 그림자내지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
3 내 내적 고통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어서 힘줄 한 가닥도 그분의 타격을 비켜갈 수 없는 것이었지만,내 수난 고통은 전능하지도 전지하지도 않은 인간이 끼친 고통이어서 그들이 원한 대로 내 힘줄 하나하나까지 사무칠 수는 없는 것이었다.
4 내 내적 고통은 내 인성 안에 육화되었다. 그러므로 내 인성 자체가 못과 가시와 채찍과 상처로, 순교적 고통으로 변화되었다. 너무나 잔혹한 고통이어서 이것이 내게 계속적인 죽음들을 주면서 나와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내 생명이 되었다.
5 반면에 내 수난 고통은 외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가시며 못이 내부로 파고들었지만 결국은 뽑혀 나갈 수도 있는 것이어서, 그 아픔이 제거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만 해도 위안이 되는 것이었다.
6 하지만 내적 고통은 바로 나 자신의 살이 되어 있었으므로, 뽑혀 나간다거나 가시와 못이 꿰찌르는 격통이 제거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마저 없는 것이었다.
7 내 내적 고통은 그토록 크고 종류도 가지가지였기 때문에, 정작 수난 고통은 이 내적 고통에 주어지는 위안이요 입맞춤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두 가지 고통이 한데 뭉쳐, 영혼들을 구원하려는 내 크고 넘치는 사랑의 최종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8 내 외적 고통은 따라서 내적 고통의 바다 속으로 들어오도록 모든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구원을 위해 내가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렀는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께 맞는 고통을 지어내신 아버지
15-32,2 딸아, 내 인성 안에 고통을 맨 먼저 만들어내기 시작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셨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고통을 지어내어 인간이 지은 죄의 빚을 보상하는 데에 필요한 수만큼 단계별로 배치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3 이 일에서 인간은 버금가는 존재에 불과하였다. 인간은 나를 누를 힘이 없었을 뿐더러, 원하는 만큼 강도 높은 고통을 만들어 낼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9 당신 자신의 손으로 인간 안에 모든 생복과 조화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이와 마찬가지로, 있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내 안에 창조하셨다. 이는 인간의 배은망덕을 기워 갚기 위함이요. 인간이 잃어버린 행복을 내 고통의 바다에서 나오게 하기 위함이요. 인간이 뒤덮은 조화를 바로잡기 위함이었다.
10 이러한 일이 모든 인간에게도 일어난다. 내가 그들을 어떤 독특한 성덕이나 나의 특별한 계획을 위해 선택할 경우, 그 영혼 안에서 일하는 것은 나 자신의 손이다. 내가 때로는 고통을, 때로는 사랑을, 때로는 천상적인 진리에 대한 지식을 그 안에 창조하는 것이다.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마태 26,39)
16-33,2 딸아, 내가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한 것이 내 수난의 잔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뜻 이라는 잔 때문이었다. 고약한 악덕이 어찌나 넘치도록 가득 찬 잔인지 하느님의 뜻과 일치해 있었던 나의 인간적인 뜻이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을 정도로 큰 역겨움과 공포와 경악을 느꼈던 것이다.
3 하느님의 뜻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의 뜻은 추악하기 그지없다. 하느님의 뜻은 그러나 거의 잔 속에 있는 것처럼 개개의 피조물 안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사악치고 그의 뜻이 그것의 기원이고 씨앗이며 샘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내 뜻의 거룩함 앞에서 인간의 뜻이 낳은 그 모든 사악한 것들로 뒤덮여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는 죽어 가고 있음을 여실히 느꼈다. 신성이 나를 지탱해 주지 않았다면 실제로 죽었을 것이다.
4 그런데 내가 왜 세 번이나 'Non mea voluntas, sed Tus fiat'(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하고 말했는지 아느냐? 나는 피조물의 모든 뜻이 결탁하여, 그리고 그들의 모든 악이 한꺼번에 나를 덮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아버지께 그 모두를 대신하여 '더 이상은 땅에서 인간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인간의 뜻은 사라지고, 아버지의 뜻이 다스리소서!'하고 부르짖었다.
5 그때, 곧 내 수난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나 자신이 모두를 대신하여 'Non mea voluntas, sed Tus fiat'이라고 말하기를 원한 것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Fiat Voluntas Tus'(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를 부르는 일이 나의 가장 중요하고도 중요한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나는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 'Fiat Voluntas Tus'시대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6 그것도 세 번이나 거듭 말함으로써 첫 번째는 아버지의 뜻을 간청하고, 두 번째는 그 뜻을 내려오게 하고, 세 번째는 그 뜻을 통치자며 지배자로 정하였다. 그리고 'Non mea voluntas, sed Tus fiat'이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뜻을 비우고 하느님의 뜻으로 채우고자 하였다
옷 벗김을 당하신 이유
16-34,2 딸아, 내가 매질을 당하기 전에 왜 옷 벗김을 당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으냐? 내 수난의 각 신비마다 내가 가장 먼저 행한 것은 인간의 뜻과 하느님의 뜻 사이의 갈라진 틈을 다시 붙이는 일이었고, 그 다음에는 이 단점이 초래한 죗값을 갚는 일이었다.
9 딸아, 그런 이유로 나는 기둥에 묶여 매질을 당하기 전에 옷 벗김부터 당하기를 원하였다. 사람이 스스로 내 뜻의 왕다운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된 것을 겪으며 보속하기 위함이었다. 나를 조롱하는 원수들 가운데에서 발가벗겨진 나 자신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너무나 큰 수치와 고통을 느낀 나머지 사람의 알몸을 두고 탄식하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나의 알몸을 바쳤다. 사람이 다시금 내 뜻의 왕다운 옷을 입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10 그리고 나의 이 간청이 거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속전으로 내 피를, 갈기갈기 찢어진 살을 바치기도 하였다. 내 옷뿐 아니라 살갗도 벗김을 당하게 하여, 사람이 스스로 알몸이 된 그 죗값을 치르며 보속했던 것이다.
11 그런데 나는 이 신비에서 다른 어디에서보다 더 많은 피를 쏟았다. 그것은 사람을 또 하나의 옷인 피 옷으로 덮어 싸기에 넉넉한 양이었다. 이 옷으로 그를 감싸 따뜻하게 하고 깨끗이 씻어 주면서 내 뜻의 왕다운 옷을 받아 입을 준비를 시키기 위함이었다.
예수 성심의 고통과 기쁨
16-41,1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마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오! 그분의 고통에 비하면 나의 고통이라는 것은 흔적도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때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2 "딸아, 내 마음의 고통은 형언할 수도 사람이 이해할 수도 없을 정도로 크다. 우선 이것을 알아 두어라. 내 심장이 뛸 때마다 그 각각의 고동이 저마다 구분되는 고통이다. 각각의 고통이 새로운 고통을,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고통을 내게 가져오는 것이다.
3 인간의 생명은 심장 박동의 연속이다. 이 박동이 멎으면 생명이 끝난다. 그렇다면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내 심장 박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엄청난 고통을 내게 끼쳤겠는지 상상해 보아라. 잉태된 순간부터 마지막 박동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그 새로운 아픔과 모진 고통을 내게 가져오지 않는 것이 없었다.
4 하지만 이것도 알아 두어라. 나와 갈라질 수 없는 신성이 내 심장을 지켜보면서 그 박동마다 새로운 고통이 들어오게 하는 한편,새로운 기쁨, 새로운 만족, 새로운 조화와 천상적 신비도 들어오게 하였다. 심장 안에 끝없는 고통의 바다를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는 고통이 그만큼 많았지만, 또한 행복과 무한한 기쁨과 비할 데 없는 감미로움도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5 그러니 내 마음을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한 신성이 만약 각각의 심장 박동마다 고통과 기쁨, 쓰디씀과 감미로움, 슬픔과 만족, 죽음과 삶, 수치와 영광,인간의 저버림과 하느님의 위로라는 두 가지 판이한 고동 소리를 이 마음 안에 울려 퍼지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고통의 첫 고동 소리가 들리는 순간에 죽고 말았을 것이다.
6 오! 네가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여기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상 가능한 모든 고통과 내 마음 안에 수많은 바다들처럼 흘러드는 모든 만족과 신적인 풍요 말이다. 이 고통에서 사람들은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고, 이 만족과 풍요를 내가 온 인류 가족의 선익을 위하여 널리 퍼뜨리는 것이다.
7 그러나 내 마음의 이 무한한 보화를 더 많이 나누어 가지는 사람은 누구이겠느냐? 더 많은 고통을 받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고통이나 슬픔에 특유한 기쁨이 내 마음 안에 있고, 이것이 그 고통이나 슬픔을 겪는 사람에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고통이 그 사람을 더욱 고결하고 더욱 사랑스럽고 더욱 소중한 사람으로. 더 큰 호의를 받을 만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8 내 마음이 고통에 의하여 하느님의 모든 호의를 스스로 위에 끌어당겼던 것과 한가지로, 나는 사람이 내 마음의 특징인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사랑을 다하여 그 고통을 지켜보면서 내 마음이 지닌 기쁨과 만족을 그 위에 쏟아붓는다.
9 하지만 더없이 유감스럽게도, 내 마음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보낸 다음 기쁨이 그 뒤를 따라가게 하기를 원하지만, 내 마음처럼 고통에 대한 사랑과 참된 감수(甘受)가 그들 안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기쁨이 고통을 따라가 보아도 그 고통이 사랑과 영예와 지고한 순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음을 보기에 그 고통스러워하는 마음 안으로 들어갈 길을 찾아내지 못한 채, 슬퍼하며 내 마음 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10 그러므로 고통을 감수하며 사랑하는 영혼을 만나면, 나는 그가 내 마음 안에 다시 살아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 고통과 기쁨이 쓰디씀과 감미로움이 얼마나 서로 번갈아들곤 하는지! 내가 아무것도 보류하지 않고 모든 재화를 그 사람 안에 쏟아 부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억이 모든 선의 시작과 근원
16-59,5 딸아, 나를 기억하는 것이 - 내가 세상에 사는 동안 행하고 겪고 말했던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영혼에게 얼마나 큰 선익을 대어 주는지 모른다! 영혼이 따뜻한 연민의 정으로 나를 대하고 나의 지향을 자기 것으로 삼으면서 나의 고통과 활동과 말을 하나하나 기억하면, 내가 행하고 겪으며 말했던 것의 열매를 따러 온 것처럼 그것들을 자기 영혼 안에 불러들여 가지런히 정돈하는 것이 된다.
9 기억이 모든 선의 시작이다. 기억이 많은 수분을 형성하며 영혼에게 생명을 준다. 잊혀 버린 선 내지 사실들은 영혼에게 생명 유지에 필요한 힘이 되지 못하고, 그 매력과 감사 및 일치와 존경과 사랑과 가치를 잃고 만다.
10 그리고 이 기억은 살아생전의 모든 선의 근원이 될뿐더러, 죽은 뒤에도 모든 영광의 근원이 된다.
11 그러므로 영혼이 내게 속한 것들과 내 은총 및 내게서 받은 가르침들을 기억하면 할수록 내 선들의 샘이 그의 내면에서 더욱더 성장하게 된다. 마침내 그 선들을 다 품고 있을 수 없어서 다른 이들의 선익을 위해 넘쳐흐르게 되는 것이다.
고통의 극한 속에서도 변함이 없으셨던 예수님
18-3,4 딸아, 그 모든 고통을 겪으면서도 나는 언제나 똑같았다.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내 눈길을 늘 다정하였고, 내 얼굴은 늘 평온했으며, 내 말은 늘 차분하고 위엄이 있었다.
5 나의 인성 전체가 그토록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그들이 나를 구세주로 인정하기를 원했다면, 모든 것 속에서 모든 것에 대하여 언제나 한결같은 내 태도만 보아도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6 나의 숱한 고통이 같은 수의 구름장처럼 나를 둘러싸서 내 모습을 흐리게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태도가 변했던 것은 아니다. 고통의 극점을 통과하고 나면, 내가 다시 장업한 태양처럼 언제나 변함없는 평온함과 한결같은 태도로 적대자들 한가운데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7 언제나 한결같은 것은 오직 하느님의, 그리고 하느님의 참된 자녀들의 속성이다. 언제나 한결같은 태도는 영혼 안에 하느님의 특성을 박아 넣고, 인간의 활동을 순수하고 거룩한 것으로 드러낸다.
8 반면에 변덕스러운 성질은 피조물의 속성이다. 이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으르렁거리며 그 마음을 포악하게 지배하는 격정의 표징이니, 밖으로도 그 거친 양상을 드러내어 모든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성정(性情)이다.
9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나와 너 자신과 모든 사람들을 한결같이 대하여라. 고통 중에서건 바로 나의 부재 속에서건 언제나 한결같아야 한다. 이 변함없는 성격이 네 영혼 안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하여라. 그러면 설령 나의 부재가 너를 때려눕히고 너의 안팎에 비통의 구름이 끼게 하더라도, 너의 변할 줄 모르는 태도가 그 구름을 흩어 버리는 빛이 될 것이고, 내가 비록 숨어 있지만 네 안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예수님 인성의 중심 안에 있다
18-4,6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은 내 인성의 중심 안에 있으니, 내가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이 그 영혼을 에워싸고 도움을 준다. 그가 허약하면 나의 힘을 주고, 우중충한 모습이면 내 피로 씻어 아름답게 해 주고, 내 기도로 떠받쳐 주고, 내 팔로 껴안고 내 업적들로 덮어 준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그를 보호하며 돕기 위해 있는 것이다.
7 내 고통을 생각하는 것이 너에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네가 내 뜻 안에서 살고 있으니까 그모든 것이 빛과 은총의 수많은 구름들처럼 너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9 그런데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내 인성의 중심 안에서 살기에, 내가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의 모든 열매를 받아 가지고 창조 사업의 질서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내 뜻이 그 사람이 창조된 목적을 그 사람 안에 완전히 달성한다. 내 뜻 안에서 살고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구원을 위한 수단은 얻지만, 창조와 구원 사업의 모든 열매를 누리지는 못한다
예수님의 눈물
18-17,3 딸아, 나의 눈물은 내가 내 천상 엄마의 태 안에 잉태된 첫 순간부터 시작되어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내게 눈물의 사명도 맡기셨으니, 모든 사람이 흘릴 눈물을 합한 것과 같은 양의 눈물이 내 눈에서 쏟아지게 되어 있었다. 내 안에 그들의 영혼을 전부 잉태했던 것과 똑같이, 내 눈으로 그들의 모든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이다.
4 보아라. 그러니 내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 내었겠느냐! 사람들이 정욕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 그 정욕의 불길을 끄기 위해 나도 그만큼 많은 눈물을 쏟아야 했고, 그들이 죄를 지은 후에 흘릴 필요가 있는 눈물을, 곧 나를 모욕한 데 대한 비통과 저지른 악행을 뉘우치는 통회의 눈물을 내 눈으로 흘려야 했고, 그렇게 내 눈물로 다시는 나를 모욕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기도 했던 것이다.
5 나는 또 영혼들로 하여금 연민의 정으로 내 수난의 고통을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도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사랑의 눈물을 넘치도록 쏟아내기도 해야 했으니, 그것은 그들이 나를 사랑하도록 분발시키기 위함이었고, 그들의 호의와 마음을 온전히 내게로 끌어당기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사람의 눈에서 솟는 눈물치고 내 눈으로 흘리지 않은 눈물은 한 방울도 없었다고 너에게 말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6 내가 숨어서 남몰래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어린 아기였을 때에도 자주 땅에서 하늘로 들어가, 천상 아버지의 무릎에 내 작은 얼굴을 갖다 대고, 얼마나 울고 또 울고 흐느끼며 이렇게 말씀드리곤 했는지를!
7 '아버지, 보시다시피 저는 이 세상에 - 눈물과 고통에 태어났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태어나 눈물 속에서 죽는 저의 형제들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형제들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들의 모든 눈물을 제 눈으로 흘리기를 원합니다. 단 한 방울도 제게서 빠져나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들의 눈물에, 사랑과 고통과 승리와 성화와 신화(神化)의 눈물을 넣어 주기 위함입니다.'
8 내 사랑하올 엄마도 얼마나 자주 미어지는 가슴으로 눈물에 흠뻑 젖어 있는 나를 보곤 하셨는지! 내가 우는 것을 보시는 고통으로 인한 그분의 눈물이 나의 눈물과 합해졌고,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울었다.
9 나는 그러나 눈물을 쏟아 내기 위해서 어떤 때에는 나 자신을 숨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의 모성적이고 무구한 마음을 줄곧 꿰찌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때에는 내 천상 엄마께서 집안일을 하셔야 하는 순간을 기다리곤 하였다. 모든 사람들의 눈물방울의 수를 다 채울 만한 눈물을 내가 쏟아 내기 위해서였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소리들과 같은 수의 죽음을 통감하신 예수님
19-28,3 "딸아, 빌라도가 '자, 이 사람이오.'(Ecco H0mo)하자 모든 이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없애 버리시오!' 하고 외쳤다. 바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도, 나와 불가분적이며 (고통으로 영혼이) 꿰찔리신 내 엄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없었던 사람들도, 과거와 미래의 모든 세대들도 내가 죽기를 원하고 있었다.
4 입으로 표현하지 않은 사람은 실제 행동으로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살아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으니,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다른 이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확실한 동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5 그처럼 모두가 외치는 그 죽이라는 소리가 내게 여간 큰 고통이 아니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하고 외치는 소리들과 같은 수의 죽음을 통감했으니,흡사 고통과 죽음의 바다에 빠져 익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를 더욱더 사무치게 느낀 것은, 나의 각 죽음이 각 사람 모두에게 생명을 가져오지는 않으리라는 점과 내 죽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은 사람도 내 수난과 죽음의 완전한 열매를 받지는 못하리라는 점을 내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6 비탄에 잠긴 나의 인성은 너무나 큰 고통으로 인해 바야흐로 마지막 숨을거두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내가 죽어 가고 있는 동안 나의 지고한 뜻이 그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사람들을 내 눈앞에 보여 주었는데, 그들은 다 하느님의 영원하신 의지가 절대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자기들 안에서 다스리도록 할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내 수난과 죽음의 완전한 열매도 먹게 될 사람들이었다.
7 그들 가운데에 내 사랑하올 어머니가 보였는데, 바로 그들의 머리이셨다. 그분은 나의 삶과 수난과 죽음에 담겨 있는 모든 재보(財寶)와 열매들을 맡아 가지고 계셨다. 나의 숨결 하나도 허비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그 고귀한 열매를 소중히 간직하는 일을 게을리 하신 적도 없었다.
8 그 (모든) 것이 내 어머니에게서 '내 뜻의 조그만 갓난이'에게, 또 하느님의 지고하신 의지로 하여금 자기 안에 그 의지 자신의 생명과 나라를 가지게 해 드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9 (생명의 불이) 꺼져 가고 있었던 내 인성은 내 생애와 수난과 죽음의 완전한 열매가 (그토록) 안전하고 든든하게 세워지며 수호되는 것을 보자, 그 고통스러운 수난의 길을 다시 계속 갈 수 있었다.
수난 중이신 예수님의 한 탄식; 그들이 내 옷을 나누어 가지고 내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뽑기를 한다.
20-36,1 딸아, 수난 중인 나의 괴로운 마음 저 깊은 데서 한없는 슬픔과 함께 터져 나온 탄식이 있었다. '그들이 제 옷을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습니다.'
2 바로 나의 처형자들이 내 옷을 나누어 가지고 내 속옷을 놓고는 제비뽑기를 하는 것이 보기에 얼마나 가슴 아프던지! 그 옷은 비탄에 잠기신 내 엄마가 가득한 사랑으로 내게 만들어 주신 내 유일한 소유물이었는데, 그들은 내게서 그것을 벗겼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노름도 한 것이다.
3 그러나 너는 누가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찔렀는지 아느냐? 그 옷들을 통하여 내 지고한 뜻의 무죄의 옷을 입고,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속옷을 입은 아담의 모습이 보였다. 창조되지 않은 지혜가 그를 창조하면서 사랑에 찬 어머니보다 더 자애롭게 속옷을 능가하는 옷을. 곧 내 뜻의 끝없는 빛을 그에게 입혔던 것이다. 그것은 흐트러지거나 나누어지거나 타서 없어지거나 하는 일이 없는 옷이었다.
4 그 옷은 또한 인간이 자기 창조주의 모상과 그분에게서 받은 선물을 보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함으로써 인간을 만물 가운데에서 칭송받을 거룩한 존재가 되게 하는 옷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 뜻은 그를 무죄의 겉옷으로 덮어 주기도 하였다. 아담은 그러나 그의 정욕으로 이 무죄의 겉옷을 여러 가닥으로 갈라지게 하였고 내 뜻의 속옷을 노름으로 날리기도 하였다. 그 비할 데 없이 찬란한 빛의 옷을!
5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했던 그 일이 '해골산'이라고 하는 산에서도 내 눈 앞에 재연되고 있었다. 나는 내 옷이 나누어지고, 내 속옷이 - 인간에게 주어진 왕의 옷의 상징인 내 속옷이 - 노름에 붙여지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슬픈 나머지 저 탄식이 터졌던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뜻을 행하면서 내 뜻을 노름으로 날릴 때, 그리고 흔히 그들의 정욕으로 무죄의 옷을 여러 가닥으로 갈라지게 할 때 내게 생생해지는 탄식이다.
6 하느님 뜻의 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옷의 힘에 의하여 인간 안에 모든 선이 담겨지게 되었거니와, 이 옷을 노름으로 날려 버리자 그들은 알몸이 되었고 모든 선을 잃었다. 모든 선을 제 안에 넣어두었던 옷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간이 자기 뜻을 행함으로써 저지르게 되는 수많은 악행들속에, 내 뜻의 왕다운 옷을 - 다른 어떤 옷으로도 대치할 수 없은 옷을 - 노름으로 날려 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악행을 덧붙인 것이다.
모태 안에서 겪으신 예수님의 고통
20-40,7 딸아,어머니의 태 안에서 나는 몹시 괴로운 상태로 있었다. 내 작은 인성은 이성과 무한한 지혜를 완전히 구사할 수 있었으므로 잉태된 첫 순간부터 나의 비통한 처지와 모태라는 감옥의 어둠을 알았다. 그것은 희미한 빛 한 줄기도 없는, 아홉 달의 기나긴 밤이었다.
8 공간이 협소해서 나는 완전한 부동 상태로 있지 않을 수 없었고, 늘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또 고통을 쏟아내려고 울부짖거나 흐느껴 울수도 없었다. 내 엄마의 태라는 그 지성소에서 옴짝도 하지 않은 채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켰던지!
9 그러나 그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내 작은 인성은 하느님의 정의에 보상을 바치기 위하여, 피조물이 그들 안의 하느님 뜻을 죽이고 인간적인 뜻에 생명을 주는 큰 죄를 범할 때마다, 그들이 그렇게 그들 안의 하느님 뜻을 죽이는 것과 같은 횟수로 죽음을 치를 책임을 지고 있었다. 오, 그 죽음들이 내게 얼마나 큰 희생을 무릅쓰게 했는지! 죽으면서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그 상태야말로 더없이 비참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10 나의 신성은 나와 하나여서 나와 분리될 수 없지만, 나에게서 이 보상을 받을 때에는 정의의 무서운 태도를 취하곤 했기 때문에 더욱더 그런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 인성은 비록 거룩하고 순수해도 내 신성의 무한한 태양 앞에서는 작은 등불에 지나지 않았다.
11 그런데 나는 이 거룩한 태양에 바쳐야 할 보상의 모든 무게와 또 나의 그 숱한 죽음의 대가로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날, 타락한 인류의 고통도 느끼고 있었다. 타락한 인류를 파멸로 이끈 것은 인간 자신의 뜻에 생명을 주는 행위로 하느님의 뜻을 배척한 것이었으니만치, 나는 나의 인성과 인간적인 뜻을 계속적인 죽음 상태에 있게 하여,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 계속 살아 있으면서 그 뜻의 나라를 확장하게 했던 것이다.
12 나는 잉태된 순간부터 나의 인간적인 뜻에 아무런 생명도 주지 않는 것을 희생으로 바치면서,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나 자신 안에 확장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였고 그 일에만 전념하였다. 그것은 타락한 인류를 다시 살아나게 하기 위해서였으니, 일단 내 안에 그 나라가 세워지면,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리고 그들 가운데서도 볼 수 있게 하는 데에 필요한 은총과 요긴한 것들, 고통과 보상을 내가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13 그러니 네가 행하는 모든 것, 내가 이 나라를 위하여 네 안에서 행하는 것은 곧 내가 내 엄마의 태 안에 잉태된 순간부터 행했던 것의 연속이다. 따라서 내가 '영원한 피앗의 나라'를 네 안에 실현하는 것이 너의 원이라면, 내가 마음대로 활동하게 해 주고 너의 뜻에는 결코 생명을 주지 말 일이다.“
[출처]
제2단계 하느님의 뜻
영성 교육 (제5강의)|작성자
도미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