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공항(空港)에서 짐이 나오는 게 너무 늦어 한 밤이 돼서야 호텔에 도착(到着)했다.
호텔은 외진 곳에 있는 조금 허름한 곳이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곳이 좋다.
아침 일찍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산책한다.
호텔은 외관을 수리중인가보다.
호텔 옆의 넓은 空間은 마침 풀은 깍은 후라 걷기에 아주 좋았다.
찬 공기에 깍인 풀내음이 더욱 좋다.
아침을 부지런히 먹고 "여름궁전(宮殿)"(Peterhof Palace)을 일찍 먼저 가야 한단다.
오늘이 "여름 궁전"의 분수(噴水)를 올해 처음 시작(始作)하는 날이라 이걸 꼭 봐야 한단다.
"여름 궁전"은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에서 30여키로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여름궁전을 "페트로 드보레츠"(Petrodvorets)라고 부른단다.
이곳의 도로에는 "전차(電車)"와 "트롤리 카"가 같이 다닌다.
멀리 정교회(正敎會)의 아름다운 모습도 눈에 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발트해(海)의 핀란드 만(灣) 동쪽 끝 "네바"江(Neva River) 하구(河口)에 있는 러시아의 제 2의 도시(都市)다.
"세계적 관광도시"로 도시 전체(都市 全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으로 지정(指定)된 곳 이란다.
초창기 지어진 집들이 지금도 그대로 있는데, 단 한 집도 같은 모양이 없는 독특한 도시라고 한다.
이곳을 "북구(北歐)의 베네치아"라고 하는데 이는 "베네치아"처럼 도시 전체가 인공(人工)으로 만들어 졌고,
아름다운 "네바"江에 연결된 수많은 운하(運河)와 600여 개 다리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표트르" 대제(大帝)는 1701年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 핀란드 만(灣)과 네바강(江)이 만나는 늪지에 도시를 만들 것을 명(命)한다.
이 계획(計劃)을 발표(發表)하자 신하들은 물론이고 왕족(王族)과 측근(側近)들까지 크게 반대(反對)했다고 한다.
그곳은 북유럽에서 스웨덴과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있고 척박한 늪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트르" 대제(大帝)는 계획을 강행(强行)했는데 1703년 이곳에 방어 요새(防禦 要塞)를 만들기 시작함으로써 도시의 기반(基盤)을 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신 도시(新 都市)를 만들기에는 자연환경(自然環境)이 너무 나쁜 척박한 땅이였다.
일조량(日照量)과 기온(氣溫)은 매우 낮고 번번이 물에 잠기는 습지(濕地)이므로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우선은 지반(地盤)을 높여야 하므로 많은 돌을 쏟아 부어 습지(濕地)를 메워야 했다.
습지(濕地)를 메우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돌이 필요했다.
"표트르" 대제(大帝)는 돌을 충당하기 위해 묘안(妙案)을 생각해 낸다.
이 땅으로 들어오는 모든 선박(船舶)과 사람들에게 돌을 가져오라고 칙령(勅令)을 내린 것이다.
배의 크기에 따라 30kg 이상(以上)의 돌을 10~30개씩, 육지(陸路)로 올 경우에는 15kg이상(以上)의 돌을 세 개씩 가져 오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습지(濕地)를 메우는 동안 가혹한 자연(自然)과 고된 노동(勞動)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고 한다.
이때 죽은 사람들을 습지(濕地)로 던져 버렸기 때문에 "뼈 위에 세운 도시(都市)"라는 별명(別名)도 있다고 한다.
당시는 석조 건물(石造 建物)을 짓는 것도 금지(禁止)했고 모든 물건들에도 세금(稅金)을 붙였으며 교회(敎會)의 재산(財産)도 국유회(國有化) 하였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大帝)는 작은 오두막에서 생활하면서 모든 공사를 직접 지휘하고 점검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대도시(大都市)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가 탄생(誕生)한 것이다.
도시(都市)가 어느 정도 틀을 갖추기 시작한 1712년에는 수도(首都)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는 "聖스러운 페테르의 都市" 라는 뜻이란다.
"상트"(Saint)는 거룩하다는 "라틴어"이고,
"페테르"(표트르 : Peter)는 "베드로"의 러시아식 이름으로 "표트르" 대제(大帝)를 말함이다.
"부르크"(burg)는 도시(都市)라는 독일어(獨逸語)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도시의 이름마저 국제적이다.
도심을 벗어나자 한산한 고속도로(高速道路)를 시원하게 달려 "여름궁전"으로 간다.
"여름 宮殿" 진입로(進入路).
"여름궁전"이 있는 "페트로 드보레츠"(Petrodvorets)는 핀란드 만(灣) 해변가에 있어
러시아 황제(皇帝)와 귀족(貴族)들의 여름 휴양지(休養地)라고 한다.
"여름 庭園" 아래쪽 매표소(賣票所).
이 도시는 1709년에 건설되었는데, 1711년 "표트르" 대제(大帝)가 건립한 궁전(宮殿)과 정원(庭園)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므로,
이곳을 통 털어 1944년 이전까지는 "표트르의 궁전(宮殿)"이란 뜻의 "페테르고프"(Peterhpf)로 불렸다고 한다.
자료사진 (인터넷에서 발췌)
"여름궁전"의 정원은 크게 두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건물 뒤쪽에 있는 높은 곳에는 넓고 아름다운 정원(庭園)이 있고
건물 앞 아래쪽은 멋진 분수(噴水)가 많이 있는 "분수(噴水)의 정원(庭園)"이라고 한단다.
이곳을 반나절에 모두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보는 곳은 아래쪽의 "분수(噴水)의 정원(庭園)"만을 관람한단다.
내리막길로 된 진입로를 들어가면 좌측 방공호처럼 된 창고 끝이 화장실(化粧室)이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은 일단 들어가면 이곳밖에 여유있는 화장실(化粧室)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이곳의 일하는 사람들이 화초를 심느라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름 궁전.
이 건물은 검소했다고 전해지는 "표트르" 대제(大帝)가 건설한 건축물 가운데 유일하게 호화로운 건축물(建築物)이라고 한다.
여름궁전은 1709년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의 전쟁(戰爭)에서의 승리(勝利)를 기념(記念)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프랑스 "루이14世"가 만든 유럽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宮殿)을 의식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표트르 대제"가 죽은 후에 완공되어 그는 이 궁전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2차대전 때에 독일군(獨逸軍)에 의해 심각한 손실을 입어 1958년에야 지금처럼 복구(復舊)되었다고 한다.
넓이 3,025,000坪에 지형(地形)에 따라서 "위 공원"(公園)과 "아래 공원"(公園)으로 나누어 만들었다.
물의 낙차(落差)를 이용해서 분수(噴水)를 만들었는데, 모두 144개의 분수(噴水)와 7개의 소공원(小公園)들이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궁전 지붕에는 제정(帝政)러시아 "로마노프" 왕가(王家)의 문장(紋章)인 "쌍두 독수리"가 세워져 있다.
러시아가 "동로마제국"에 이어 모든 권력(勸力)을 통합(統合)한 황제(皇帝)라는 뜻이란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모스크바 공국(公國)"의 "이반 3世"가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皇帝) 조카딸과 결혼하여
"이반3世"가 그 후계자(後繼者)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어제 "크레믈린 궁"에서 본 문장(紋章)과 같아서 독수리 앞에는 용(龍)을 죽인 "聖 게오르그"가 그려져 있다.
한창 조경공사중인 정원.
중앙 연못에 설치된 "삼손"(Samson)의 분수(噴水).
이곳의 분수(噴水)는 모두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이 "삼손(Samson)의 분수(噴水)"라고 한다.
"삼손의 噴水"는 1802년 삼손(Samson)이 사자 입을 찢는 모양으로 제작된 것으로 높이 3.3m의 제일 거대한 분수(噴水)다.
"표트르" 大帝가 성서(聖書)속의 영웅(英雄)인 삼손(Samson)의 동상(銅像)을 제일 크게 설치한 것은
"스웨덴"과의 전쟁(戰爭)에서 "러시아"가 승리(勝利)한 날이 마침"성(聖) 삼손"의 기념일(記念日)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자(師子)는 "스웨덴"을, "삼손"(Samson)은 "표트르" 자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모든 분수에서 흐른 물은 이 큰 수로를 통해 "핀란드 만"으로 나간다.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에 있는 만(灣)인데 왜 "핀란드 만"이라고 부르는지,,,,,
여유가 있으면 저 끝까지 가서 바다를 구경도 해 보고프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것이 아쉽다.
수로(水路)에서 본 여름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