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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곡고개~기룡산갈림봉~문필봉~갈라산~낙동강/반변천합수점
산행 계획이 잡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달콤한 새벽잠을 포기하고 꼭두새벽 집을 나서야
하기에 잠은 늘 부족하고 아침식사는 으레 느긋하지 못하다.그런 까닭으로 버스나 전철을 오르
면 늘상 꾸벅이가 되곤 한다.깊이 잠들지도 못하면서 자주 깨기도 하는 괭이잠 같은 겉잠으로
어느 때는 내려야 할 곳을 모른 체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그런 상황을 여러 차례 겪다보면
자연스레 묘리가 터득이 되기 마련인데 그것은 여유로움을 갖는 일이다.그러한 여유의 틈은
나의 경우에는 10분 정도면 충분하다.그것은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여유공간을 마련하기
로 한 거다.그 공간은 환승역내의 커피자판기 앞의 벤치가 아니면 전철역 앞의 친절한 아낙이
지키고 있는 공간이 전부인데 그곳에서 부어주는 따끈한 커피 한 잔이면 늘 여유롭고 행복하다.
-창밖의 기온이 섭씨36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의 날씨인지는 몰라도 냉방버스 안에서의 창밖
풍경은 시원스럽고 아름답기만 하다.하늘은 코발트빛으로 그지없고 난바다 같은 산의 파고는
초록의 주단을 펼쳐 놓은 듯 휘황스럽고 가이없다.지친 기색도 없이 서너 시간을 달려온 버스가
오늘의 들머리 점곡고개에 닿은 시각은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다(10시15분).임도까지
머릿수를 보태면 다섯 개의 길이 서로 등을 대고 뚫려 있으며,안동시와 의성군을 무자르듯이
갈라놓은 고개가 오늘의 들머리 점곡고개인 거다.그러한 오통(五通)의 갈림고개에서 이어지는
지맥의 방향은 고갯마루에서 서북 쪽으로 닦여 있는 임도 어귀의 우측 가파른 절개지 오르막
이다.
초록의 산해(山海)
다섯 방향으로 뚫려 있는 길 덕분인지 점곡의 고갯마루에는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 온다.
가파른 비탈을 거북이처럼 기어 오르면 잡풀더미 같은 묵묘가 기다리고, 다갈색의 가랑잎이
수북한 산길은 완만한 오르막이다.신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들의 숲은 이내 꺽다리 소나무들
의 숲으로 바뀌며 숲길은 꼬리를 잇는다.이게 웬떡이냐싶게 건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온다.
아름드리 굴참나무 두엇이 초병처럼 지키고 있는 둥긋한 멧부리에서 지맥의 방향은 좌측의
9시 방향으로 급선회를 하며 꼬리를 잇는다.그리고 멧부리에서 맞은 쪽의 산길은 지맥에서
800미터쯤 떨어져 솟구쳐 있는 해발555m의 기룡산으로의 산길이다.
부드럽고 밋밋한 산길은 꺽다리 참나무들의 숲길이다.섭씨36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의 숲은
일렁이는 바람으로 다소 시원한 감은 있지만 폭염의 날씨를 극복하기에는 아직은 힘에 겨운
기색이다.팥죽땀이 연신 온몸을 적셔댄다.산길은 여느 지맥의 산길에 비하면 가지런하고
잡목이나 잡풀의 저항을 느낄 수 없이 번듯하다.둥긋한 멧부리를 가뿐 숨을 몰아쉬고 올려
치면 두 갈래의 산길이 나 있는 갈림봉인데 좌측의 10시 방향의 산길이 좀 더 뚜렷하다.그러나
이곳에서는 우측의 2시 방향의 약간 희미한 산길이 지맥의 방향이다.내리받잇길이 가파르게
꼬리를 잇는다.다갈색의 가랑잎이 수북한 가파른 내리받잇길을 구르듯이 내려서면 잡풀더미
같은 묵묘 두어 기를 가로지르게 되고, 말안장 같은 안부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안동시 남선면 신흥리(우측) 쪽과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좌측) 방면 사이를 잇는 등하행 산길
이 나 있는 백고개다.백고개를 뒤로하고 비탈을 한 차례 올려치면 해발522m봉이다.정수리
한복판에는 납작해진 잡풀더미 같은 묵묘가 차지하고 있다.522m봉에서 지맥은 우측의 3시
방향으로 이어진다.꺽다리 소나무들이 그들먹한 붕긋한 멧부리에 올라서니 의성군 산림과
명의의 현수막 하나가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다.소나무 재선충병의 예방을 위한 수간주사를
실시하였으니 솔잎 등의 채취를 삼가해 달라는 부탁이 담긴 현수막이다.꼬리를 잇는 산길은
헬기장처럼 널찍한 곳으로 산객을 안내하는 네,이곳은 경주김가들의 묵묘 대여섯 기가 자리
하고 있는 묘역이다.
잡풀더미 같은 묵묘의 차지가 된 붕긋한 멧부리를 하나 더 넘어서고 아름드리 노송 대여섯
그루가 지키고 있는 베개처럼 기름한 멧부리를 차례로 넘어서면 오르게 되는 봉우리가 해발
460m봉이다.꺽다리 소나무들이 줄을 잇는 산길이 기다린다.한 아름이 넘어뵈는 노송들도
군데군데 보이고 그들의 틈새에서 우쭐거리는 신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들의 기세도 대단
하다.그리고 지맥의 주능선을 따르며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는 묵묘들은 한결 같이 잡풀더미
행색에 묘비조차 갖추지 않은 허름한 몰골이다.지맥의 산길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것처럼
가지런하고 말끔해졌다.갈라산 산림욕장의 경계로 접어든 것이다.
문필봉까지의 거리가 1.5km라고 알리고 있는 흑갈색 바탕의 등산안내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쉼터용의 긴 의자가 마련이 되어 있는,입산객들을 기다리는 쉼터에는 정방형의 평상까지
마련이 되어 있다.산길은 수많은 입산객들의 흔적으로 해반주그레하다.우측으로 무주무(남선)
쪽으로의 산길이 나 있는 갈림길,맞은 쪽의 문필봉 정상으로의 산길이 지맥의 방향이다.산림
욕장에서 세워놓은 산림에 대한 입산객들의 이해를 돕기위한 다양한 상식이 담겨 있는 입간판
이 산길을 따라 띄엄띄엄 세워져 있다. 산길을 따라 잇대어 자리하고 있는 잡풀더미 같은 묵묘
를 차례로 지나면 제1,제2,제3욕장 등의 세 갈래의 갈림길이 나 있는 곳을 지나게 된다.이 갈림
길에서는 맞은 쪽의 제2산림욕장 쪽으로의 산길을 따라야 한다.
산길은 이제 수렛길처럼 널찍하고 울퉁불퉁한 굴곡이 느껴지지 않는 민틋하면서 부드럽게
이어지는 숲길이며 꺽다리 소나무들과 신갈나무를 비롯한 신록의 참나무들이 그들먹한
숲길이다.숲길가의 그늘에는 입산객들이 알아두어야 할만한 상식이 담겨 있는 입간판이
띄엄띄엄 세워져 있으며,간단한 종류의 운동기구와 쉼터용의 긴 의자 그리고 평산 등이 입산
객들을 기다리고 있다.수렛길처럼 널찍하고 민틋한 숲길은 마냥 평화스럽고 한가롭기만 하다.
그러한 행색의 숲길은 해가 저무는 쪽인 서쪽 방면의 벼랑을 이루는 절벽 모서리에 구축한
데크전망대로 산객을 안내한다.가이없는 초록의 난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한동안 머무르고 싶은 데크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는 베개처럼 기름하고 밋밋한 멧부리가
해발596.7m의 문필봉(文筆峰) 정상이다.신라 시대의 유명한 명필 김생(金生)이 이곳 주변에서
글씨 공부를 했다하여 붙여진 문필봉의 정상 빗돌이 세워져 있는 곳 옆에는 30센티미터 높이
의 사각기둥 행색의 삼각점도 자리하고 있다.문필봉 전망대에서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면
크고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돌무더기가 산객의 발목을 다시 붙잡는다.수많은 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기원이 담겨 있는 돌무더기탑을 지나면 머지않아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우측의 2시 방향으로 '무주무(남선)'쪽으로 등하행 산길이 나 있는 갈림길이다.
갈라산 정상은 이 갈림길에서 맞은 쪽으로 300m쯤이다.
이윽고 오르게 되는 붕긋한 멧부리가 해발545m의 갈라산 정상이다.정수리 한복판에는 2004년
에 복구된 삼각점(의성11)이 의젓하게 자리하고 있다.그런데 갈라산의 높이가 제각각이다.
이곳에 세워놓은 정상 빗돌에는 569m라고 새겨놓았으며, 삼각점 안내문이 담겨있는 입간판
에는 545m라고 적어 놓았고,안동시 웅부산악회에서 매달아 놓은 '안동시 경계'를 표시하는
표시판에는 547m라고 적바림 되어 있는 게 아닌가.이렇게 제각각이니 여기에서는 건교부
국토지리정보원 명의의 삼각점 안내문에 적혀 있는 해발545m를 수긋하게 따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갈라산 정상에도 문필봉에서처럼 해가 저무는 쪽으로 데크전망대가 마련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의 전망대는 문필봉과는 견줄 수가 없겠다.첫째는 우선 시원한 바람이 없으니
찌는 불볕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게 원인이겠으며 조망도 일정부분을 주변의 수목들이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갈라산 정상에서 지맥의 방향은 정수리를 곧바로 가로질러도 되고 정상에서 직전의 삼거리로
되돌아와 '무주무(남선)'방면의 뚜렷하고 가지런한 산길을 따라도 된다. 두 길은 곧바로 한데
합쳐지기 때문이다.산길은 산림욕장의 산책로 코스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쉼터용의 긴 의자가
마련이 되어 있는 쉼터를 거치면 사거리 갈림길을 맞닥드리게 된다.좌측의 등하행 산길은 현
내리(7.7km) 쪽이고 우측은 산림욕장의 주차장 방면이며,지맥은 맞은 쪽이 된다.
지맥의 산길은 여기서부터 이전의 산림욕장의 산길보다는 가지런하지 못하다.이제부터의
산길은 산림욕장의 영역을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여겨야 할 듯하다.키작은 소나무들의 숲길이
이어지고 그러한 행색의 신록의 숲길은 허리를 굽혀가며 발걸음을 해야하고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가며 산길을 따르는 수고를 보태야 한다.
그러한 행색의 우묵한 접시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붕긋한,키작은 소나무들만의 멧부리에서
지맥은 좌측의 10시 방향으로 이어지는데,우측의 2시 방향으로 자꾸 발걸음을 하려 한다.
이곳에서 지맥을 벗어나 1km쯤 떨어져 있는 해발315m의 삼각점봉을 올랐다가 되돌아 올
심산인 게다.함께하고 있는 서넛의 동료들이 리딩가이드 박봉규 대장을 구슬려 315m봉으로
의 발걸음을 무산시키게 된다.섭씨36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가능하면 산행시간을 줄여야
할 처지에 지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무명의 봉우리까지 오를 필요성을 닳고 닳은 산객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다.여느 때라면 한 두 번의 짧고 짧은 휴식시간 밖에 없는 강행군의 산행
이었는데 오늘은 그 곱절의 휴식시간을 들였는데도 불구하고 갈증은 더 심하고 전신을가리지
않고 흐르는 땀은 온몸을 뒤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합수점 근처의 430세의 은행나무
산길은 머지않아 잡풀이 무성한 수렛길로 접어들게 되고 한동안 꼬리를 물던 수렛길은 지맥을
가로지르는 왕복2차선의 차도로 슬그머니 꼬리를 드리운다.이 차도는 안동시 남후면 현내리
(좌측)와 안동시 남선면(우측) 사이를 잇는 지방도이다.이 도로부터 지맥의 나지막하게 사위
어진 산줄기는 오늘의 날머리이자 갈라지맥의 종착지인 안동시 정하동과 안동시 남선면 구미
리를 잇는 왕복2차선의 35번 구(舊)도로와 궤적을 함께 한다.숲을 빠져나와 차도로 들어서니
차도는 불에 달궈진 가마솥이나 다를 게 없다.날계란을 깨어 아스팔트 도로에 떨어뜨리면
금방이라도 계란후라이가 되고도 남을 만큼 지글거린다.
버스의 도움으로 35번 지방도로를 거쳐 갈라지맥의 합수지점인,반변천으로 덩치를 좀 더 불린
낙동강에 걸쳐있는, 영가대교 어름의 귀래정이 자리하고 있는,수령430년을 웃도는 늙은 은행
나무가 우뚝한 반변천변의 시민공원주변에서 피날레를 장식한다.귀래정 옆의 시민공원 한복판
에는 '원이엄마의 애절한 글'이라는 제목의 내용이 장방형의 대리석에 원작자의 필치를 그대로
모방하여 새겨놓은 글이 산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편지를 쓴 당사자의 이름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텐데 이름은 쓰지 않았고 원이 엄마라고만 밝히고 있다.족보에도 여성들은 성씨까지만
등재되고 있을 정도이니 함자를 들먹이기에는 녹록치 않은 당시의 풍속도가 아니겠는가.이름을
중히 여기던 시절이라서 남성의 이름조차 감히 부르지도 못하는 시절이다.성인의 관례를 거친
사내의 이름은 임금이나 부친 그리고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그래서 대신
호칭으로 삼은 게 본인이 지은 자(字)가 그것이고, 주위의 다른 사람이 자연스레 호칭하게 되는
게 호(號)이다.그렇게 이름을 소중하게 여기던 시절이 예전에는 있었다고 전한다.
'원이엄마'의 편지
'원이 엄마의 애절한 글'에 대한 대강의 내용과 유래가 담겨있는 안내문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 돌에 새겨진 편지글은 고성이씨 이응태(1556~1586)의 부인(원이엄마)이 31세의 젊은 나이
로 숨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로 적어 관 속에 함께 넣어 둔 것으로 1998년 정하동 택지
개발시 현 위치에서 약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이 편지는 원이엄마가 병환중인
남편(이응태)을 낫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대마)줄기로 신발을 삼는 등 온갖 정
성을 다하였으나 끝내 어린 아들과 유복자를 두고 세상을 떠나자 그 안타까운 마음과 사모하
는 정을 표현하고 있다.가로58.5cm,세로34cm 크기의 이 편지는 한지에 한글 고어체로 쓰여진
것으로 형의 만시 미투리,의복 등 다른 출토물과 함께 안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무덤은
안동시 풍천면 어담리로 이장하였다."
'원이엄마의 애절한 글'을 새겨놓은 빗돌이 세워져 있는 곳의 뒤쪽에는 귀래정(歸來亭)이 자리
잡고 있다.두 아름은 실히 되보이는 해묵은 은행나무가 바깥마당 한켠에 수문장처럼 서 있고
그 뒤쪽에는 비각이 한 채 자리하고 있는데 가천대부 이굉의 신도비가 모셔져 있는 비각이다.
비각 뒤쪽으로 귀래정의 본채가 자리하고 있다.기와를 얹은 토석담으로 주위와 경계를 삼았
으며, 토석담의 동편과 북쪽으로는 샛문처럼 아담한 출입문을 달았다.정자의 본채는 정면이
3칸에 측면은 2칸이고 배면은 4칸의 'T'자형의 팔작지붕으로 앞면에는 대청을,그리고 뒷면에
는 온돌방을 꾸몄으며 마루주위에만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을 뿐 그 외에는 모두 사각기둥을
사용한 게 특징이다. 접시꽃과 능소화가 흐드러진 귀래정을 울 밖에서 빙 둘러보고 귀래정을
뒤로한다(15시).
-섭씨36도를 훨씬 웃돌 것 같은 뙤약볕이 쏟아져 내리는,낙동강과 반변천이 한데 합쳐지는
영가대교 어름의 시민공원에서 우리의 냉방버스는 안동의 중앙시장 쪽으로 산객들을 안내
한다.오늘은 지맥 162개를 완주한 김성미 산우께서 동료들에게 한턱 쏜다는 날이다.젊지 않은
초로의 나이에 그것도 여성이 이룬 성과는 칭찬을 받고도 남는 일이다.찬사의 덕담이 쏟아
지고 감사패와 꽃다발이 등장하고 나더니 건배가 뒤를 잇는다.
인내심과 지구력이 절대적인 완주로 인한 성취감은 자신에게 뿌듯함을 안겨주는 대신 허탈함
도 동시에 안겨주게 마련이다.이러한 찬사의 추임새는 때로는 사회의 결속력을 더욱 돈독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거개의 유형이 아닌 무형의 자랑이란 찬사의 추임새가 있어야 더욱 빛을
발하게 마련이다.손주자랑,자식자랑,어디어디의 여행자랑,배우자 자랑까지를 끄집어 낼 때마다
추임새를 좋이 기다린다면 역시 코밑의 진상이 으뜸이다. (2018,7/14)
(아래)갈라지맥 지도3 성황고개-갈라산(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아래)갈라지맥 지도4 77번 갈라산-반변천(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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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행기를 읽다보니 갈라지맥 3구간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