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학술대회에는 많은 스님과 재가자들이 참석했다. |
이날 학술대회에서 여연스님이 밝힌 여러 가지 일화는 치열한 수행해 온 혜암스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여연스님은 “해인사 강당에 살 때 차비라도 받으려는 마음에 태백산 동암까지 혜암스님을 찾아갔다”며 “밥도 못 먹고 하루가 걸려 동암에 도착했더니 저녁도 안 주시고 바로 용맹정진을 시켰다”고 회상했다. 또 스님과 함께 법흥사로 가는 길에 중국집에 들렀던 얘기를 전하며 “자장면이라도 먹는 줄 알고 기대했는데 스님이 주방에 가서 국수발을 씻어오라고 시켜서 씻은 국수를 함께 나눠먹었다”고 전했다.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함께 정진할 당시 이야기는 후학들을 이끌며 수행하는 혜암스님의 면모가 잘 전해진다. 여연스님은 “처음엔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오후불식을 하자고 하고 한 달이 되니 일종식을 하자고 했다”며 “일종식을 하면서 너무 배가 고파 스님 몰래 숨어서 밥을 먹다가 들켰는데 그 때부터는 하루 먹을 분량의 양식만 정확하게 재서 창고에서 꺼내주고 문을 잠갔다”며 엄한 모습을 기억했다. 이어 “두 달 뒤에는 용맹정진을 시작했다. 1주일간 단식용맹정진을 했는데, 한 수좌가 다른 암자에 가서 밥을 훔쳐 먹고 장이 뒤틀렸다. 그 때 스님은 병원에 가는 대신 굶는 게 좋다며 다시 1주일간 단식 용맹정진을 했다”며 수행에 있어서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던 스님의 모습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혜암스님은 94년 종단개혁 당시 ‘개혁의 수장’으로 종단의 자주화 민주화 사회화를 이끌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혜암스님 생전의 모습이 방송됐다. |
여연스님은 특히 스님의 대중교화 사상을 높이 평가했다. 1981년 원당암에 선불당이라는 재가불자 선원을 개원해 함께 수행하며 지도한 것을 언급하며 “수행을 통한 사부대중 공동체 건설을 직접 실천했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평소대로 장좌불와와 철야정진을 하며 신도들과 함께 오전3시와 오후7시 죽비로 예불을 올렸고 오후에는 도량청소와 울력을 함께 했다”며 “대종사는 신도들과 함께 참선하는 것만큼 확실한 대중교화가 없다는 것을 직접 실천했다”고 말했다.
“가야산 정진불, 가야산 대쪽으로 불렸던 불퇴전의 수행력과 청빈한 계율을 바탕으로 한 대중교화의 길은 어느 누구도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것”이라며 “스님은 원융무애의 경지를 직접 실천했던 우리시대 인천의 사표였다”고 피력했다.
한편 혜암선사문화진흥회는 스님의 높고 깊은 뜻을 이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회장 성법스님(혜암대종사문도회장)은 “포교 교육 승가복지 사회복지 장학사업, 문화사업 효사상 실천과 다문화지원사업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혜암선사의 숭고한 정신과 얼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부회장 원각스님(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도 “은사 스님의 삶과 사상이 재조명되고 계승발전되어 후학들이나 신도들 삶에 큰 도움이 되고 많은 경책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