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짜: 17년 11월 9일
참여자: 강현미, 송기윤, 임예하, 신지은, 허창운, 김동민, 진나은, 윤지성, 김소혜
장소: 동양대 다산관
선생님은 페미니스트 2부를 보고
1. 내 아이의 담임이 페미니스트라면?
교사가 페미니스트인 것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대한 원론적인 의문이 생긴다. 일단 교사의 사유는 자유이므로. 그러나, 되도록이면 페미니스트이면 좋겠다.
2. 교사가 페미니즘 교육을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 가?
실은 성평등 교육이 곧 페미니즘 교육이지 않겠나. 여성의 권익을 찾기 위한 페미니즘 운동은 곧 남성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다. 계속하여 생각한 것은, 여성주의에서의 약자, 즉 여성의 권익이 존중되는 사회는 남성에게 또한 건강한 사회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기울기를 편편하게 만드는 것은 곧 여성, 남성 모두에게 이익이다. 남성 또한 강자라는 원하지 않는 옷을 엉겁결에 태어나자 입어, 사회에서 무게를 느끼고, 잠재적 가해자라는 등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곧 성평등 교육이 페미니즘 교육이고, 페미니즘 교육이 곧 성평등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강자라는 옷을 입기를 원하고 편해하는 사람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약자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그들을 위해 자신의 엉겁결의 권리를 내려놓고 함께하려는 것에 인간 존엄이 있다고 본다.
3. 페미니즘 교육에서 혐오를 말하여야 하는가?
그렇다, 혐오를 말하여야 한다. 이러한 부분에서 성차별을 받고 있다, 저러한 부분에서 성차별을 받고 있다, 라는 것은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 성차별이 혐오를 말하는 기본 재료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혐오’를 말하였을 때, 너무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말하여 거부감이 들 수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현미씨가 말하였던 것처럼, 혐오를 말하지 않고서는 현재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성혐오’의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 그건 차별이야, 수준으로는 현재의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여성혐오’는 말해져야 한다. 다만, 여성혐오라는 대신 그걸 풀어서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결코 극단적인 페미니즘 교육이 아니며 현실이 극단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혐오발언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는 교실 상황에서도 설명되고 있다.
‘아이들은 그게 혐오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혐오라는 이야기를 꺼내서 거부감을 느끼게 하나’라고 묻는다면, 그렇기 때문에 꺼내야 한다고 답하겠다. 우리가 알지 못하며 저지르는 폭력에 대하여, 그러한 폭력을 행하는 자신을 거부!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4. 페미니즘 운동의 한 방향으로서 미러링은 용인되어야 하는가?
사실 나는 미러링에 대해 잘 몰랐다. 메르스 갤러리가 처음 나왔을 때,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종종 글을 읽은 적이 있었고, 그 때 나는 어렴풋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접했다. 그때, 생리대 파동이라던 지, 생리컵 상용화 문제라던지 하는, 여성 권익에 대해 고민해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본 적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갓건배 등이 가지는 무조건 적인 남성 혐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갓건배 등이 보이는 미러링의 방식은 가해자들의 반성을 이끌어 낼까? 초기 미러링의 모습에서 반성을 보이지 않아 극단으로 흘러가야 했고, 그러자 갓건배 저격이라는 유투브 검색어를 생각해보면, 결국 그들은 반성하지 않았다.
폭력에 대한 폭력, 그 끝이 정말 여성주의가 말하는 것인가? 하면 거기에, 아니 라고 답하고 싶다. 메갈, 쭉빵, 갓건배에서 쇼린이, 주혁이 운전됐다, 남혐은 스포츠다, 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충격적이었다. 불특정다수에게 미러링으로 혐오를 돌려준다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공감했다. ‘이건 게임도 아니고 실험도 아니기에. 한 개인을 짓밟는 행위가 될 수 있기에.(진나은 발언 참고)’ 이러한 방법으로는 가해자를 벌줄 수 없다. 그들은 그것을 오히려 즐기는 형태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목소리를 내어야 하나? 교양있어야 하니까 닥치고 있어야 하나? 그러나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형식에 가해자가 이런 건 별로다, 저런 건 괜찮다, 왈가왈부하면 그것 또한 폭력이 되는데. 그러니까, 사회의 상식선, 즉 법망에서 이러한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여성을 혐오의 자리로 부르는 BJ들은 크게 벌 받아야 한다. 그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은 더욱 상처받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이 가장 크게 벌 받는 것은 그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미러링의 방식으로, 그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 같다. 처음에는 그것이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위에서 말한 예대로 저런 식으로라면 더더욱 그들은 이 상황을 즐길 것 같다. 미러링이 필요하다면 아주 세련되게, 위트있게 그들을 비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감정이 해소된다면 세련된 미러링은 필요하다고 본다. 세련된 미러링은 어떻게 하는 걸까, 에 대해서는 아직 나에게는 어렵다.
5. 갓건배와 연대하여야 하나?
그렇다. 연대해야 한다. 내가 미러링을 싫어하면서도 연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운동은 비단 여성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소수자의 투쟁과 여성주의 운동은 연결되어 있다.
결국 이 세상 그 누구도 소수자다. 신태일과 연대하는 방법은, 신태일에게 응당한 처벌과 교육을 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그를 버리지 않고 함께 가는 방법이며, 그것이 그의 인간성을 존중해주는 방식이다. 그가 그렇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다. 갓건배와 연대하는 방법은, 그 방법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한 방식으로는 당신이 치유될 수 없다, 그러니 우리와 함께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두가지 방법 모두에서 인간의 운동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만약 페미니즘 운동이 기계가 하는 것이었다면, 극단의 것들은 쳐 내면 된다. 그렇지만, 이것은 인간의 운동이기에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슬퍼하며 함께해야 한다. 잘못을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갓건배, 신태일 현상에 대해 함께 슬퍼하는 것, 사회의 아픔에 대해 함께 말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미러링이라는 감정의 호소는 함께하는 슬픔이라는 감정의 호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토론 자리에서 희망을 봤다. 눈빛이 살아있었다. 이건 아니다, 이건 진짜 슬픈 일이다 하는. 3회의 토론을 거치면서 내가 그렇게 되었다.
6. 연대의 힘은 어떻게 얻어야 할 것인가?
남성과 여성이 연대하는 것, 그리고 각각의 내부에서 극단이 연대하는 것을 위해서는 본질의 문제에 대해 함께 말하여야 한다. 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삶이다. 여성문제, 남성문제 안으로 우리를 갇히게 하는 권력자들의 행태. 이 본질에 분노하는 방식으로 연대하여야 한다. 권력자들은 왜 세상에서 모두가 누려야 할 것들을 다 가져가고 남은 쪼가리들로 우리가 싸우게 만드는가. 그러지 말라. 감시하고 계속하여 이야기하여야 한다.
7. 끝으로
토론의 자리에 계속 나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 또 점점 가면서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이야기에 행복했다. 끝으로 여성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소수자의 입장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어 나로서 참 의미 있다. 갓건배는 내 친구이기도 하고 내 학생들이기도 하다.
우리의 최선은 “타인의 어려움을 알 수 없다는 ‘좌절’을 인정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존중한다.” 정도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계의 긴장과 고난의 여정에서 새로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상품 개발,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새로움을 향한 노력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 새로움은 과거를 밟고 전진하는 수식적인 새로움이기에 인간과 자연에 주는 혜택이 적다.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동시에 내 안의 주변성을 탐색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대립시키고 위계화하지 않는다. 이때 일상은 깨달음이 주는 아름다움의 연속이 되고 인생과 예술의 길이는 같아질 것이다.
정희진, 낯선시선 중
첫댓글 1."극단적이라는 형태"라고 규정된 것의 거부감을 걱정해야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2.신태일마저도 존중하는 사회... 그게 우리가 혐오하는 대상을 따라가지 않는 방법이겠죠
1. 극단적인 모습은 사람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기 쉬운 것 같아요. 근데 거부감 그 내면의 원인을 탐구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그 거부감도 자기 이해의, 그리고 타인 이해의 원천이 되겠죠.
2. 예 어렵겠지만 그래야겠죠. 그러나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 건가 그것도 논란이 될 수 있겠어요.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것도 훗날 토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희진의 낯선 시선 닳도록 얘기했는데 드디어 등장한건 어때요 ㅋㅋㅋ 넘 좋지 않나요. 이제 빨리 이거 떼고 페도 읽어야하는데.. 읽을거리 많아서 행복한 세상이네요
@김소혜 어쩐지 막글이 명언스럽더라니했어요
제대로 안읽었구만. 출처가 있는데!!!
@김소혜 아뇨 ㅋㅋㅋ 마지막에 출처보고 아하했어요 ㅋㅋㅋ
저렇게 글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이갈리아의 딸들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