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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말씀을 사모하시는 심령으로 주님 앞에 이르신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말씀의 은혜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충만하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함께 교독한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우리가 읽은 말씀은 무슨 내용인지 잘 압니다.
혹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까 해서요 제가 간단하게 이야기 식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라고 하는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저 이웃 나라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40일 후에는 멸망하리라는 말씀을 덫 부치십니다.
그런데 요나는 북쪽에 있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요 반대 방향인 남쪽 먼 나라인 욥바로 가려고 배 삯을 주고 배를 탑니다.
그리고 배 밑층으로 내려 가서 잠을 잡니다.
이어 풍랑이 일어나고요.
어떻게 하여도 멈추지 않는 바람을 보고 이것은 보통 바람이 아니다 하나님이든지 용왕이든지 노여워 하여서 일어나게 한 풍랑이라고 결정지은 선장은 모든 사람 들에게 자기가 섬기는 신들에게 기도하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배 밑창으로 내려간 선장은 그곳에서 잠자고 있는 요나를 보고 깨웁니다.
그리고 배에 탄 사람들이 이 풍랑이 누구 때문에 일어 나고 있는 풍랑인지 재비를 뽑아서 그 원인을 알아보자 하고 재비 뽑기를 합니다.
그러니 누구에게 걸렸다고 했습니까?
성경은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배에 탄 사람들이 요나에게 질문 공세를 퍼 붙습니다.
욘 1: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그렇게 물을 때 요나가 대답한 말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욘 1: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누구라고 합니까?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합니다.
바다를 지으신 분이라는 말씀 가운데 오늘 일어난 풍랑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같습니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지금 남쪽으로 도망하고 있다고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말합니다.
그러니 함께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합니까?
욘 1:10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가고 있다는 말을 하였음으로 무리가 어떻게 하였다고요?
심히 두려워 하여 라고 합니다.
두렵겠습니까?
저는 코로나가 한창 전파속도를 낼 때 우리 교단 차원에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를 원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코로나는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전염병이라고 인정 하면서 우리라도 회개의 기도를 드리자고 설교 시간에 한 번 말씀 드린 일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교단 차원에서 우리가 회개하지 않았고 하여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깨우기 위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바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하자는 그러한 기도의 운동이 일어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코로나의 종식을 위한 기도는 하자고 하면서 회개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피하여 도망가는 도망자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인정하면 자신이 죽음의 위기에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그는 인정하였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함께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합니까?
욘 1: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잔잔 하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니 요나가 무슨 말을 합니까? 12절입니다.
욘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나를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잔잔하리라
그러면서 이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였다고 합니까? 13절이죠?
욘 1: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그러나 그 사람들이 어떻게 했다고요?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무슨 말입니까?
요나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지금 배를 뒤 집을 듯한 풍랑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도망가는 요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요나의 고백과 같은 말을 믿었습니까?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요나의 말처럼 요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면 될 텐데 사공들이 왜 그렇게 하지 못하였을까요?
하나님이 두려워 비록 불순종하고 도망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을 들어서 바다에 던지는 것은 상상 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한 사람을 바다에 던지면 바다는 잔잔할 것이라고 하였으면 그중 한 사람을 희생 시키려고 하였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데 그가 또 자신을 들어 바다에 던지면 잔잔할 것이라고 하였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하기를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배를 육지에 댈 수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나의 입에서 나온 말처럼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도를 생전 처음 하나님께 드립니다.
욘 1: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그렇게 기도하고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15절입니다.
욘 1: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무엇이 그친지라 합니까? “바다의 뛰노는 것이 그친지라”
그러니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였다고 했습니까?
욘 1: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였다고요? “크게 두려워 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무슨 서원을 하였을까요?
저희들이 울진 후포에 있을 때 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다니다가 만나고 교회에 나오시는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큰 배를 타는 항해사 아들이 있었습니다.
혹 한 번씩 만날 때에 예수 믿으라고 교회 나오라고 했지만 무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교회를 다니면서 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특별한 경험이 있었구나 짐작을 하면서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관련된 어떤 경험이 있으셨군요? 하니까 그 청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큰 어선을 타고 한번 나가면 몇 개월씩 나가서 바다에서 생활 한 답니다.
그날도 고깃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중 냉동 창고에 가서 살펴 볼 것이 있어서 내려 갔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냉동 창고의 문을 열어 놓고 들어가서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파도를 만나서 조금 요동하는가 했는데 그 배의 움직임 때문에 열어 놓았던 냉동실 문이 꽝하고 닫혀 버렸습니다.
참고로 냉동실 문은 밖에서는 열고 닫을 수 있고 잠글 수도 있는데 안에서는 열 수 있는 기능이 없다고 합니다.
문이 닫히면서 잠궈 버렸고요. 이 어선을 많이 타는 사람으로서 냉동실 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온 몸이 얼어 오는 듯 함을 느꼈고요.
그때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난생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답니다.
하나님 저는 기도할 줄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 저를 구해 주소서
저 이곳에서 나가게만 해 주신다면 평생 하나님 믿고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 저로 하여금 이곳에서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소서
기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몰라도 너무 간절하기에 그런 기도를 생전 처음으로 드렸답니다.
기도를 드리면 추위가 없어 질까요? 근데 이변이 생겼습니다.
마음에 들리는 소리가 있길 고기로 문을 때려랴 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자기 앞에 어린애 만한 고기 한 마리가 떨어져 있드랍니다.
언 고기가 아기 만 하니까 얼마나 무거울까요? 그래도 그 음성을 따라서 그 물고기를 들었답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하여서 문을 힘껏 내려 쳤다고 합니다.
그러니 내리친 물고기가 두 동강이 나면서 문이 뻥하고 뚫히면서 문이 확 열리드랍니다.
배 안에서는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없어져서 사람을 찾느라고 야단이 났고요.
그리고 냉동고 문을 열어보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찾고 있는데 갑자기 냉동고 문이 뚫히면서 안에서 사람이 뛰어 나오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서 살았답니다.
그리고 귀향을 하여서 어머니를 따라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을 떠난지 4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신앙을 하고 계시는 지는 몰라도 그날 그 순간을 잊지 않았다면 믿음을 결코 버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나를 바다에 던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들 형생 하나님 믿고 살았을 가능성이 큽니까?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경험을 이야기를 하였을까요?
헤쳐 나갈 수 없는 폭풍속에 제비를 뽑았는데 히브리 사람이 걸렸어 그래서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나는 바다와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그 일을 피하려고 지금 도망을 가고 있다고해서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이 바다가 잔잔해 지겠느냐고 하니까 뭐라고 했다고요.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러면 파도가 잔잔해 질 것이다 이 폭풍이 일어난 이유는 나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일을 하기도 두렵고 해서 폭풍을 피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우리는 그를 들어서 바다로 던졌어 그랬더니 언제 폭풍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바다가 바로 고요해 졌어.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거스리고 불순종하여 도망가는 요나를 사용하시어서 복음을 들을 수가 없었던 뱃사람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저는 이 말씀이 우리가 항상 시도 때도 가리지 말고 말씀을 전하라는 말씀으로도 이해를 하지만 또 좀 다르게도 이해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항상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이해가 됩니까?
요나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불순종하여 도망가는 길에 만났던 그 뱃 사람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는 것을 요나는 어떻게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을까요?
안식일 아침마다 저의 집사람이 모셔오는 이 옥임 자매님. 불과 몇 개월 전에만 하여도 우리 장유교회로 나오시게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여 그가 어떻게 될 줄 우리는 아무도 모르지만 구 집사님과 저를 만나게 하시어서 이 옥임 자매님을 하늘 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일에 성공한다면 저와 집사람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진교에서 섬김의 봉사를 통하여 나무나 친하게 지내는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따님이 이곳에 계십니다. 지금은 안증회에 다니고 있어서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게 여겨 지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도 구원받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배에 함게 하였던 사람들의 회심이 어디서 일어났습니까? 어디서 일어났다고 생각들 하십니까?
저는 그들의 회심의 시작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욘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제비뽑기를 하여 요나가 당하였지만 요나가 인정하지 않고 오리발을 내 밀 수도 있습니까?
나는 히브리 사람인데 욥바에 볼 일이 있어서 가는 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폭풍은 어제도 있었고 내일도 있을 수 있는 일을 이런 미신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구렁텅이로 모는 것은 바람직 한 것이 될 수가 없다는 논리를 펼 수도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했다 하드라도 결국은 파도는 잠잠 하고 선원들은 자기 길로 갔을 것이고 불순종의 사람은 욥바로 가서 결국은 버림 받은 선지자로 기록에 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불순종하여서 도망가는 길에 있었음에도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요나가 도망하는 것이 무엇 때문이었다고 들으셨습니까? 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나가 하나님을 알았습니까?
그가 나중에 다시 복음을 전하라는 명을 받고 복음을 전하고 앗수르가 멸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이 내려다 보이는 동산에 앉아 성을 보다가 멸망 당하지 아니하는 성을 보면서 하나님께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욘 4:1-2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이 말씀 중에 요나가 무엇 때문에 복음을 전하라는 명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하였는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어떤 분이신줄 알았기 때문이라고요?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이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내가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도망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니느웨가 멸망하지 못하도록 막으셨네요,
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망하는 것을 왜 막으십니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우리 주변에도 니느웨 백성들과 같은 사람들도 있고요 요나를 태우고 갔던 뱃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멸망의 길로 이끌어 가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인하여서 원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따라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죠.
오히려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하여 감사하길 바랍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지금도 이렇게 믿음을 가지려고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오늘날에도 요나처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는 그런 결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누가 누구를 들어서 바다에 던질 사람들이 없습니다.
자기가 원하였다고 하드래도 그렇게 하는 일들은 불법이라고 나라에서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적인 해석은 다른 해석을 할 수가 있지만 하나님게 드리는 헌신도 타의에 의하여서 이루어지는 것 보다 자신의 마음에서 울어나오는 헌신이 바른 헌신이고 결심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도님들 여러분들 자신을 바다에 던져 보실 마음들은 없으신가요?
요나를 던지기 위하여 사람들에 의하여 들려져 있을 때는 그래도 사람들이 마음대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서 벗어 났을 때는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요나가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누구 손에 달렸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저는 장유에 다시 올 때 교회에 대한 기대도 다 버렸습니다.
처음에 올 때는 상당히 많은 기대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5년 안에 200명이 넘는 교회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길 기대하면서 기도하였고 그렇게 활동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교회를 옮길 무렵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그때는 그렇게 될 줄 믿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모습도 그렇게 하나님의 손길에 의하여서 다듬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의 걸림돌에 의하여서 좌초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저희들이 왔을 때는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손길에 맡기자 하고 섬기면서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부흥케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예상밖에 일로 인하여 처음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입니다.
이제 제가 장유를 섬김에 있어서 세 번째입니다. 저도 참 바보죠.
세 번씩이나 미련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은 저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어집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 저 자신을 던집니다.
이미 장유에 다시 올 때 던져졌습니다.
내 의지로 무엇인가 하려는 것을 다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바다에 던져짐을 이런 의미로 이해를 합니다.
눅 17: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는 각오로 살면 살리라는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사랑의 사도 요한은 이렇게 해석하여 다시 말씀 주십니다.
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를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자는 잃어버림을 당할 것이요 주를 위하여 자신을 던지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하늘 나라에서도 영원토록 살리라고요.
그러한 것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릴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버리시되 십자가에서 자신이 물이 되어 녹아 없어지기 까지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는 자를 찾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들어내시려 합니다.
요나는 그 순간까지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뱃사람들의 손에 의하여서 공중에 들려질 때는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야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우리도 지금까지는 내 힘으로 내 의지로 살았지만 앞으로의 삶은 예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길 원하시는 심령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가능성 없었던 40일 후 멸망이 선포되었던 니느웨가 살아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던짐을 받은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장유와 김해가 살아나고 경남 부산이 살아나고 한국이 살아나고 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은혜를 함게 경험하게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시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풍랑을 일으켜서라도 그를 돌이키시려고 하셨던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요나처럼 말 잘 듣지 않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구원의 손길로 저희들을 붙잡아 주사 던져진바된 저희들을 그리스도의 도구들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릴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욘 1:11-15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