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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2177.2023.1.29)
출17:8-16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전쟁하는 장면입니다. 가나안 땅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비딤에서 ‘에서’의 손자 아말렉의 후손(창36:12) 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싸움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스라엘이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동 중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을 위해 조직된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변변히 준비된 무기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평 불만이 넘쳤습니다. 떡(빵)과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했고, 물이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출16:3절‘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17:1-3절‘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했습니다. 아무리 잘 조직되고 훈련된 군인이라도 불평 불만이 많으면 적을 이길 수 없습니다. 투덜거리면서 기운을 다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말이 많으면 그 입으로 기운이 다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교회에서도 말 많은 사람이 일하는 것 보았습니까? 말하느라 지쳐서 일 못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하느라 바빠서 말할 틈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으면 말 없이 일을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너게 해주셨습니다. 여러 가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의 능력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 싸움에서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이기기 어려웠던 다른 이유는 기습공격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혀 전쟁을 예상치 못하였습니다. 아말렉은 사막을 이동하면서 ‘피곤에 지쳐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습니다. 신명기에 모세가 아말렉과의 싸움을 회상한 내용이 있는데 신25:17-18절‘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아말렉은 뒤에 쳐진 약한 자들부터 공격했습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범사에 강해야 합니다. 특별히 믿음의 행진에서도 뒤에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뒤에 떨어지면 뒤에 쳐지면 마귀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신앙이 뒤떨어지면 마귀가 공격을 합니다. 강해야 합니다. 담대해야 합니다.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뒤에 처진 약한 사람들을 아멜렉은 공격을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뒤로 물러서지 말고 뒤처지지 말고 올라가는 신앙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사자, 치타, 쿠가… 등이 뒤에 쳐진 동물, 약한 동물을 잡아 먹습니다. 영적인 행진에서도 앞장서야 합니다. 뒤에 쳐지면 공격 대상이 되고 맙니다. 갑작스런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탄탄대로로만 행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위험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위험을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위험을 만났을 때 어떤 태도를 갖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러 종류의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때 문제를, 위험을, 위기를, 도전으로 여기고 싸워 이길 것이냐 아니면 문제와 함께 쓰러져 망할 것이냐는 우리의 삶과 신앙의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교회생활 하면서 종종쓰는 말이 ‘승리하세요’합니다. 승리라는 말이 가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싸워서 이겨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범사의 삶에, 건강에, 경제에도, 믿음 생활에도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순종이 승리의 능력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을 찾아보면 여호수아와 같은 앞장서는 장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갑작스런 싸움이었지만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겼습니까? 그 이긴 원인을 모세의 명령과 여호수아의 순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싸움을 시작하는 모세의 명령은 간단했습니다. 출17:9절‘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했습니다. 모세는 ‘나가서 싸우라’고 명령했고, 여호수아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10절) 여호수아는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모세는 출17:9절‘사람을 택하라’고 했고 여호수아는 싸울만한 사람을 택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의 명령에 순종했고, 여호수아가 택하는 사람들도 순종했습니다. ‘왜 접니까? 왜 제가 해야 합니까?’항변하지 않았습니다. 순종하고 싸움터로 나갔습니다. 그 순종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역사의 선봉에는 항상 여호수아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의 실질적인 공로는 여호수아에게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택한 백성 중에 택한 자였습니다. 족장중의 족장이었습니다. 복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싸울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앞장서서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이었습니다. 전투에서 필요한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우러 나갈 줄 아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두려워 할 때 담대함으로 앞장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책임을 지고 앞장서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도 앞장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책임을 지고 앞에 서서 무리를 이끄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어떤 사람인가? 여호수아는 적극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적극적인 마음과 입을 가진 사람입니다. 남들이 두려워 할 때 담대함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전적으로 믿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에 대한 믿음이 사람을 담대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는 믿음이 사람을 담대하게 만듭니다.
모세의 명령에 절대 순종한 사람입니다. 모세의 말대로 행하는 사람, 지도자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지도자를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에 따랐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예수와 함께 죽으러 가자는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교회는 됩니다. 사실 여호수아 혼자 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이지만 한 사람이 앞장을 서야 전체가 움직입니다. 뒤에서 기도로, 영적으로 후원해 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여호수아와 같이 실제적으로 총대를 메고 앞장서서 싸우고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왜 나만 이렇게 위험한데서 해야 하느냐’고 했더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실천하는 성도들의 손, 싸우는 손, 순종하는 손, 봉사하는 손을 원하십니다. 이 손들은 복 받는 손입니다. 이 손은 명령에 따라 순종하며 말하지 않고 행하는 손입니다. 엔진에 불이 붙어야 차의 모든 부속품이 움직입니다. 엔진만 가지고 차를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엔진에 먼저 불이 붙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끌고 본을 보이며 앞장서는 자가 있어야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도 모두 여호수아가 됩시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살아야 하는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그러므로 ‘못합니다. 못갑니다. 할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못’자를 빼고 ‘합니다. 갑니다. 할 수 있습니다’해야 합니다. 아직도 ‘못’자를 빼지 못한 불신앙과 불순종의 사람들은 택함 받은 용사가 아닙니다. 택함을 거절한 사람들입니다. 택함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뽑으실 때,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아멘하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순종은 기적을 체험합니다.
2.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산꼭대기의 모세의 기도입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한 또 다른 비결은 모세에게 있었습니다. 전쟁을 앞둔 모세는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에게 출17:9절‘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산 위로 올라 간 것은 구경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체력 단련을 위해 간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응답받기 위해 갔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오늘 예배의 자리에 왜 오셨습니까? 누구를 만나기 위해 오셨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찬송하는 중에,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산꼭대기에 선 모세는 지팡이를 ‘잡고’ 하나님을 향해 손을 올렸습니다. 모세가 잡은 지팡이는 출7:10절‘뱀이 되었던 지팡이’입니다. 출14:16절에‘홍해를 갈랐던 지팡이’입니다. 출17:5절에‘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던 지팡이’입니다. 80넘은 모세가 빈 손을 들어도 힘들었을 텐데 모세는 그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간절히 하나님이 도와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11절에 보면 모세의 기도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출17:11절‘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전쟁의 승패는 기도하는 모세의 손에 달렸음을 보세요. 기도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기도의 손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이기고, 전쟁의 최전방은 몸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기도하는 모세가 서 있는 산 위가 최전방이었습니다. 거기서 손이 오르고 내리는데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었습니다.
아말렉의 큰 군대 앞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하여 모세의 손이 들려 있습니다. 미래에도 이스라엘 앞에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들고 있어야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주감리교회 성도들도 하나님의 종은 성도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종들임을 믿으시고 순종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손을 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손을 든 것은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합니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하나님,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우리는 이길 수 없습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여호와여, 우리로 승리케 하옵소서’ 아말렉을 쳐달라고 여호와께 전적 의지하는 신앙고백이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는 SOS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긴급SOS입니다.
하나님께 자기를 항복시키는 고백입니다. 전쟁에서 손을 든다는 것은 항복한다는 표시입니다. 더 이상 싸울 힘이 없다는 표시로 두 손을 듭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두 손을 든 것은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구급신호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항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자기를 항복시키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하나님께 항복시키지 못한 사람은 기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자기를 항복시킨 사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은 기도의 두 손을 듭니다.
하나님께 온전하게 복종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내 고집, 내 생각, 내 욕심, 내 힘 가지고 살아온 모든 삶을 포기하고 이제부터는 나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표식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즉각 응답하십니다. 또 그것은 충성의 서약을 의미합니다. ‘내 모든 삶을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기도의 손을 드는 것은 축복을 의미합니다. 모세의 손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축복의 손이었습니다. 예배마치는 시간, 목사가 손을 드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주의 종의 기도의 손은 축복의 손입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그 기도대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건 간절한 기도입니다. 팔을 들고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실험해 보면 압니다. 10분만 들고 있어도 팔이 저려옵니다. 한 시간만 지나면 팔에 마비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모세가 손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었는가? 본문에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목숨을 건 기도입니다. 간절한 기도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의 기도의 손이 높이 올라가는 신앙생활이 있기를 바랍니다.
왜 기도의 손을 들어야 합니까? 우리 인생살이에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모세는 그때마다 기도했습니다. 홍해가 가로막을 때에도 기도했고, 마라의 쓴 물을 만나서 백성들이 원망할 때도 기도했고,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마를 때도 기도했고 아말렉이 공격해온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도 기도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우리들도 남이 아는 문제가 있고, 남이 모르는 문제가 다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고 문제가 없는 사람은 천국에 있는 사람입니다. 문제가 많은 세상에 살기 때문에 우리도 여러 가지 문제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자기를 항복시키고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약하고 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신을 항복시키고 기도하면 강해지고 한계를 뛰어넘어 큰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약한 사람이 강해지는 비결이 기도에 있습니다. 무능한 사람이 능력의 사람이 되는 비결도 기도에 있습니다. 내 한계를 넘어서 더 넓고 더 높은 세계를 보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비결이 기도에 있습니다. 모든 악의 세력은 물러가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기도의 손을 들 때에 아말렉은 물러갔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걱정 근심 염려, 두려움은 물러갑니다. 기도하면 마귀는 물러갑니다. 시험과 문제는 물러갑니다. 기도하면 홍해도 갈라지고 여리고도 무너지고 쓴 물은 단물로 바꾸어집니다.
기도하면 은혜 받고 능력 받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무능한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 되고 무지한 사람이 지혜로와 지고 방황하던 사람이 새 비전을 갖게 되고 맡은 일을 잘못하던 사람이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됩니다. 기도의 분량만큼 그릇 만큼 하나님이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하나님께 투자하는 것입니다. 하늘 창고에 저축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저축이 많이 되어 있으면 때가 되면 찾아서 쓰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가 저축 해놓은 기도 덕분에 오늘 잘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떨어지고 나면 찾아 쓸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저축이 무엇입니까? 앞날을 위하여 오늘 쌓아두는 것입니다. 기도는 저축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저축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시28:2절‘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짓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여러분도, 기도의 손을 드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사랑하는 가족이 군대, 객지, 외국에 나가 있어도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공부하는 자리에 있어도, 삶의 싸움터에 있어도,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범사에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잘 들으세요.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이 땅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만나지만, 이 땅의 문제라고 해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이 땅의 방법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문제이지만 하늘에서 해결해 주셔야 완전한 해결입니다. 기도로 해결해야 완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지혜로, 돈으로, 힘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로 해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산지와 같이 험하고, 아말렉 같이 덤벼드는 수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향해 기도의 손을 들고 사십시오. 잠시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려움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결국은 이기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아론과 훌이 협조를 잘 했기 때문입니다.
아론과 훌의 협조하는 작은 손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를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고가 함께 있습니다. 가나안의 정복은 모든 이스라엘백성의 희생과 헌신의 결과입니다. 여호수아만의 공로가 아닙니다.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여호수아만이 땅을 받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수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승리하려면 군대의 모든 병사들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앞에서 싸우는 보병만이 아니라 포병도 있어야 합니다. 공군의 지원도 필요합니다. 보급 병의 지원도 여자들로 구성된 의료지원단도 중요합니다. 첩보원도 필요합니다. 모든 분과가 함께 움직일 때에 승리의 전쟁을 치를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는 모든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담대한 용사일지라도 함께 하는 사람이 없으면 공격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영적 전쟁에서 싸울 많은 성도들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의 손은 큰손입니다. 그러나 피곤이 올 때가 있는 별 것 아닌 인간의 손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손이 피곤하면 내려와 이스라엘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때에 아론과 훌의 손은 작은 손이었지만 모세의 손으로 해가 지기까지 들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고, 모세의 손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협력을 아끼지 아니했다는 점에서 아론과 훌의 손이 크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손입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요, 훌은 모세의 누이동생 미리암의 남편입니다. 출24:14절에 보면 훌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을 때, 모세의 대리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리 하였고, 출31:2절에 보면 거룩한 뜻으로 성막의 기구와 장식들을 만든 유대지파 브살렐의 조부이기도 합니다. 이 아론과 훌은 모세의 손에 비하면 모두 작은 손들입니다. 이 작은 손들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섬기는 손입니다. 위하는 손입니다. 돕는 손, 보조하는 손, 협조하는 손이라고 주석 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해서는 먼저 모세의 능력의 큰손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아론과 훌의 작은 손도 없어서는 결코 안 되는 손입니다. 이 작은 손들의 역할이야말로 아말렉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다 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손입니다.
모세가 산 위에서 기도할 때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돕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습니다. 아론과 훌입니다. 모세는 강한 지도자입니다. 모세 같은 지도자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신34:10절‘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지도자 모세인데도 그 옆에 아론과 훌이 함께 했습니다. 성경은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돕는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17:12절‘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모세는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모세에게도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했습니다.
모세도 도움이 필요했는데 사실 부족한 저는 얼마나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겠습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천국갈 때 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배신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약속을 했으면 손해가 되더라도 목사님을 위하여 기도로, 관심으로, 사랑으로, 섬김으로, 격려함으로 도와주시는 것이 마땅일입니다. 부족한 저를 통하여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 속마음은 여러분을 향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족한 저 때문에 신앙에 퇴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금도 우리 모든 성도들이 믿음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과 모든 일에 형통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하고, 그것을 마음 껏 누리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하는 일을 잘 감당하도록 모세에게도 아론과 훌이 필요했듯이 저는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족한 저를 훌륭한 목사가 되도록 열심히 기도해 주시고 뜨거운 사랑과 관심으로 기도로 협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부족해서 쩔쩔맬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지혜를 제공해주고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만해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거기다가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만이 있음을 느끼고 승리의 깃발을 꽂는 것입니다. 아론과 훌처럼 돕는 일꾼들이 있기에 목회 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교회일은 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교회 목회,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능력있는 목회를 하도록 붙들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아론과 훌같은 분들이 많이 계셔야 힘있게 목회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붙들어 주세요. 힘이 되어 주세요. 김 빼지 말고, 힘 빼지 말고, 김 빼는 말/ 힘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힘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상주감리교회도 우리 시대에 승리의 깃발을 날려봅시다.
오늘 말씀 보면 출17:12절‘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했습니다. 아론과 훌은 해가 지도록 전쟁이 끝나도록 끝까지 모세와 하나되어 있었습니다. 이왕이면 신앙이 변질되지 말고 부족한 저와 함께 신앙공동체를 잘 이루어 가시는데 상주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끝까지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집사되었을 때 잘하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처음 권사되었을 때 장로 되었을 때 잘하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끝까지 잘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끝까지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모세만 승리한 것이 아니라 아론과 훌이 승리했고 이스라엘 전체가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출17:15절‘여호와 닛시’라고 ‘여호와의 깃발’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출17:16절‘여호와 닛시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상을 하고 살아도 아말렉이 이스라엘의 뒤를 친 것처럼 황당하고 기막힌 어려운 일들이 찾아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의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승리할 수 있습니다. 손을 들어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구함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싸움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산아래서 싸우고 모세는 산 위에서 손들고 싸웠습니다. 그리고 아론과 훌은 모세의 손을 붙들어 주며 승리를 도왔습니다.
교회의 부흥의 비결은 주의 종 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주의 종의 영력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도 인간인지라 피곤해지고 약해질 때가옵니다. 그때 아론과 훌의 협조하는 손이 있어야 교회는 부흥되어지고 성도들은 영적으로 살게 됩니다. 약5:16절‘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손들이 의인의 손입니다. 이들이 모세를 받들고 합심기도를 드릴 때, 이스라엘 백성은 무기는 없었지만 아말렉 군사를 이길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식어질 때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말씀의 칼이 무뎌집니다. 엡6:17절에 보면 말씀은 칼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말씀의 칼을 무엇으로 갑니까? 기도로 갈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약해지면 말씀의 칼이 무디고 말씀의 칼이 무디면 아무리 적병을 쳐도 목이 잘라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 마귀의 가슴을 찔러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본문에 아말렉과 싸워 이겼을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사건을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역사적인 기록을 보고 교훈을 얻을 수 있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역사를 왜곡하면 안 됩니다. 기도는 ‘여호와 닛시’깃발을 꼽게 하는 비결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깃발은 이스라엘에게 힘을 주고 전쟁에서 승리를 준다는 의미에서의 깃발입니다. 모세가 쌓은 단은 감사의 제단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이 끝나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다는 고백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예배를 받으시고 하나님은 16절에서‘여호와께서 아말렉이 이스라엘과 싸울 때마다 이스라엘을 위해 대신 싸워 주셔서 이스라엘이 승리케 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이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그를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자에게 힘과 방패와 승리의 깃발이 되어주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결국엔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을 올리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닛시는 영적인 승리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기도의 승리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말씀의 승리입니다. 여호와 닛시가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는 말씀이 남에게 준 말씀이 아니라 내게 준 말씀으로 간직하고 세상에 살며 승리를 간증하며 살기를 바라고 범사에 승리 하여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믿음으로 순종으로 기도함으로, 서로 도움으로 승리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승리했습니다’라고 간증하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
여호와 닛시!!✌️
영원히 천국에서 함께 하는 은혜가 임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