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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고난도 은혜이다(2235.2024.2.4)
고후12:1-10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고난이 없고 근심걱정이 없이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병든 것보다 건강한 것이 좋고, 가난한 것보다 부유한 것이 좋고, 자녀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고, 자녀가 말썽 안부리지 않고 잘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 살다가 보면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일도 있고 고난과 핍박도 있고 괴로움과 슬픔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한숨을 쉬며 사는 삶도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도 믿는 사람들은 이런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벌을 받은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자신을 돌아보며 잘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나에게 무엇인가 깨닫게 하시려고 이런 고난을 주시나 하고 이겨내는 성도가 있고, 어젯밤에 꿈자리가 사납더니 재수없다라고 여기는 성도도 있을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꼭 벌을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믿음생활 잘하고, 십일조 잘 하고, 주일성수 잘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도 질병과 고난이 찾아옵니다. 누구든지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상주감리교회를 섬긴지 25년째 되면서 우리 성도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성도들 가정이 누구보다도 평안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가정에 문제가 생겨서 어려움을 당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래서 오직 가정들이 평안하고 안전하고 건강한 가정이 되기를 바라고 가정속에 아픈 상처가 있던지 어디에 깊은 상처가 있던지 치료받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치료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는 혹시 남모르게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지를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나면서 그 누구도 상처를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상처를 받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를 치료받기를 원하고 그 상처가 빨리 아물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하라는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의 마음에 있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고 상처를 대신 당하셨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이 당하신 상처로 말미암아 우리의 상처는 오늘도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그리고 말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여러분 속을 다 들여다 보면 여러 가지 상처 투성이입니다. 가정생활의 어려움, 정신적인 고통, 영혼의 번민, 내면적 상처, 현대인들이 모르는 깊은 상처가 있는데 이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면 우리마음속에 있는 상처는 치료를 받습니다. 남모르게 눈물 흘리고 고민스러워 하는 것도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속죄은총으로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위로해주고 치유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치유의 사건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삼층천에 올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신비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자랑할 것은 오직 자신이 약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고백한 약함은 그의 몸에 있는 가시입니다. 찔리는 가시가 있어서 그의 마음은 평생토록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그의 약점과 상처를 부끄러워 하지않고 도리어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제 상주감리교회 성도로서 오늘말씀을 들으시고는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상처를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그 상처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다가 질병과 고난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인생을 살면서 인간은 누구나 다 가시에 찔리는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살면서 가시에 찔려보신 적이 있습니까? 행복하고 성공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찬 인생에게 가시는 모든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에게는 그렇게 원하지 않는 가시가 있게 마련인데 가시는 인생의 고난입니다. 가시는 나를 찌르고 가시는 분명히 나를 아프게 합니다. 가시는 나를 피 흘리게 하고, 일단 가시에 찔리면 나의 평범한 삶이 마비되고 고통 속에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에게 육체를 찌르는 그런 가시보다도 훨씬 더 예리한 가시에 우리의 마음이 찔려 심리적 고통을 우리는 경험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바울 사도가 육체의 가시를 통해서 고통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게 된 것을 깨닫게 될 때 나의 육체의 가시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자기를 찌르는 육체의 가시를 갖게 되었을 때 이 가시를 어떻게 했느냐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가시를 고통으로만 생각하면 가시를 원망하고 자신의 생활을 불평하고 저주하며 살게 됩니다. 어차피 가지고 있는 가시라면 인정하고 함께 가면서 가시를 유익으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금 육체의 가시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님을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 더 귀한 하늘나라의 보물을 만들고자 하는 계획이 있음을 깨닫기를 바라고 오늘 내가 고통당하고 있는 가시를 인정하면서 가시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분명히 명품 인생으로 태어났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의 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영혼도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가시가 있는 법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져야할 십자가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상처가 있는데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시는 분이 예수그리스도인데 이분을 오늘도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모든 성도는 만나서 아픔을 치료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상처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상처도 없고 고통도 없는 곳이 한군데 있는데 공동묘지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번민이나 상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신앙으로 살려고 하면 더 고통과 시련이 있기 마련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로 인도합니다. 우리의 상처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의 사건이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기를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가 할 때가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맘시다. 왜냐하면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회를 통하여 다시금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게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기회입니다. 오늘 상주감리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도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자녀 때문에, 형제 때문에, 시부모 때문에, 며느리 때문에, 사위 등등으로 쓰라린 상처를 가지고 교회에 오신분이 있다면 이 시간에 잘 나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을 통하여 이 시간에 아픈 상처를 사매주시고 낫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147:3절‘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했습니다. 할렐루야!
2.상처에 대한 반응에 따라서 상처는 달라질 것입니다.
아이들이 놀다가 넘어져서 어디가 깨지면 부모님들을 걱정합니다. 덧나지는 않을까? 잘 치료가 될까? 하면서 좋은 연고를 다 찾아서 발라주는 부모도 있고, 괜찮아 하면서 놔두면 다 낳는 것이야 하는 부모도 있고, 조금만 이상 있으면 병원으로 들처없고 뛰는 부모도 있고, 내버려두는 부모도 있습니다. 어린들의 상처에 대한 반응은 다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영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봅니다.
이제 상처에 대한 반응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 반응에 따라서 치료가 되고 안될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상처의 반응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이 있습니다. 상처를 받고 난후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고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우울증과 자살의 위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상처의 책임을 남에게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처를 받은 다음에 이 상처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원망을 합니다. 이 사람은 자기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태도가 있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적극적인 반응을 나타내서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산에 사는 동물들을 보면 어쩌다가 자기 몸에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를 햇빛에 노출시키고 자신의 혀로 자꾸만 핥은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상처를 움켜쥐고 그늘속에 숨어서 신음하는 것이 아니라 햇빛을 쬐면서 혀로 핥은 중에 그 상처는 아물게 되는 것입니다. 잠4:23절‘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사30:15절‘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했습니다. 깊은 상처를 우리는 어떻게 대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상처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상처를 이겨내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가시가 없으면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고후12:7절‘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려 하심이니라’했습니다. 바울은 학문적으로 깊이와 영적능력과 체험이 컷기에 교만해질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핍박했던 것도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이 최고로 여겼기에 다른 진리를 전하는 자를 용반할 수 없었던 교만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을 사랑하신 주님은 바울이 교만해지려고 하면 가시로 찔러서 머리를 숙이게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오히려 감사했던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서도 ‘나다, 내가 최고다’하는 교만한 병에 걸리면 하나님이 그냥 두시지를 않습니다.
바울은 이 가시를 뽑아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이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하고는 안고쳐 주었습니다. 바울의 기도는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고쳐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잘하겠다고 고쳐달라는 기도도 아닙니다. 오직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니 고쳐달라는 것인데도 주님은 안 고쳐주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바울은 크게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고난이 있기에 더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난이 오고 아픈 상처가 있으면 내게 어찌하여 이런 일이 생기는가 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깨닫고 나면 회개하시고 오히려 감사를 드리는 신앙으로 성숙되기를 바랍니다.
3.상처를 통하여 위대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고난을 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가시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고난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가시의 목적으로 인하여 기쁨으로 그 가시에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서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그래서 육체의 가시 때문에 주님 앞에 늘 기도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고, 겸손한 인생으로 살도록, 내가 하나님이 아니고 나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다는 겸손을 위해서 이것을 허용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 가시에 대해서 아프지만 이 가시를 기쁨으로 수용할 수가 있는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상처로 인하여 남이 알지 못하는 고통을 겪는 사람이 위대하게 될 수 있습니다. 고후12:9절‘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했습니다. 이 말씀에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가시를 기뻐해야 하는가요? 10절‘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10절에서 ‘기뻐하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통은 아픔입니다. 가시는 우리를 찌르는 것입니다. 바울이 엎드려 깊이 기도하면서 드디어 하나님의 목적을 붙잡았습니다. 나를 겸손하게 하시려고, 또 이 가시 때문에 하나님을 의존하게 하시려고 이 가시를 주셨구나! 주님께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육신적으로는 아프지만, 괴로웠지만 기도 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나와 함께 있고, 나는 여전히 복음전할 수가 있었고, 육체의 가시가 하나님의 능력을 더 의지하게 하신 일을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가시가 있지만 사탄의 사자가 있지만 바울은 여전히 기도했고 여전히 주님의 임재를 체험했고, 여전히 함께하시는 주의 거룩한 능력을 경험했고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서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의 사역을 당당하게 내가 감당 할 수 있었다면 바울은 이 고통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는 이 고통을 자랑할 수가 있고 내 약함을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약함 때문에 나를 무릎 꿇게 했고, 내 이 약함 때문에 전능하신 주님의 도우심을 구했더니 주의 임재가 주의 도우심이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면 나는 기뻐해야 해, 이것이 바울 사도의 고난에 대한 결론이었습니다.
고통이 오면 더 간절히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는 중에 ‘내가 네 눈물을 보았느니라’하는 음성을 듣고는 은혜를 체험하고 믿음이 굳건하게 되고 신앙이 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감각이 없는 사람은 이래도 저래도 깨닫지를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난중에는 듣는 신앙에서 보는 신앙으로 바꾸어집니다. 고난중의 기도는 더 능력을 받습니다. 저는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식물들이 자라나게 하는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과 단비같은 믿음생활도 하시고, 때로는 숲속에 있는 사자와 같은 믿음으로 악한 영들과는 분명하게 싸워 이기시는 믿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몸에 있는 찌르는 가시는 바울을 위대한 신앙의 인물로 변화하게 했습니다. 육체가 연약하고 세상조건들이 빈약할 때 내 믿음과 신앙의 영적인 상태가 강하여 집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진정으로 깨닫는 사람은 믿음이 강해집니다. 바울이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가시의 깊은 상처 때문이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훌륭한 가문이고 공부도 많이했고 건강한 체격과 건장한 몸을 가졌다면 ‘나를 따르라’하고는 이단이 하나 생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기질을 아신 하나님은 그의 몸에 가시를 주어서 고통속에서 믿음을 갖게 하시고 이방인과 왕들을 위하여 귀하게 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을 자처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고통을 제게도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생동안 상처를 받지 않고 산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건강하고 실패없는 삶을 영위하시고 감당키 어려운 환란과 고통과 슬픔이 와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환란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믿음을 가지신다면 위대한 사람이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상처가 있습니까?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흔적을 가진 것입니다. 이제 그 아픈 상처를 통하여 큰 능력을 받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가가와도요히코’는 일본의 바울이라는 추앙을 받는 신앙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기생신분의 첩의 몸에서 출생한 서자입니다. 첩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지울 수 없는 상처 대문에 그는 항상 수치와 멸시를 받고 자라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꾸준이 노력하여 메이지대학 신학부에 입학하여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폐결핵에 걸려서 시련을 당하엿고 공부를 중단했습니다. 그 때문에 빈민굴에서 빈민들과 14년간을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결핵, 안질, 치질, 축농증, 심장병, 간질, 척수병등등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기생들과 걸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사랑과 가모하를 주었고 그로인해서 공장직공 ‘지루하라’는 여인이 좋아하게 되었고 결혼을 하고는 빈민굴 사람들에게 자기아내를 소개할 때에 ‘여러분의 빈민굴속에서 일하는 식모’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자기의 사상을 가르켜서 ‘밑닦기의 신학’이라고 합니다. 즉 일본 사회의 더러운 곳을 정화시킨다는 뜻입니다. 비록 겉으로는 상처투성이의 일생을 살았지만 그는 상처 때문에 누구보다도 위대하게 살았고 신앙적인 유산을 남겨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상처받은 영혼을 그냥두지를 않습니다. 성도들의 아픈 상처를 치료하시고 위대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히12:12절‘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상주감리교회는 코로나 이후로 침체상태에 빠져서 부흥이 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열심을 가지고 다시한번 노력해보아야 합니다. 뜨거운 신앙심을 가지고 모든 교우들이 새벽기도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시작할 때부터 어려움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다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살아납니다. 우리가 기도만 시작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만 시작한다면 이 침체를 통하여 놀랍게 부흥이 되는 사건이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혼구원을 위하여 전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혼을 만나게 할 것입니다. 금년에는 영혼구원을 반드시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시28:7절‘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렘31:13절‘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깊은 가시의 상처를 통하여 능력을 받고는 오직 내가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하시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도 결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게 주신 이 깊은 상처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되어서 주의 일을 해야 되겠다고 결심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심과 고집은 다른 것입니다. 고집은 처음에 옳은 것 같아서 주장을 하다가 나중에 보니까 잘못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억지를 피우는 것이 고집입니다. 결심은 옳은 것은 옳다라고 끝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 결심입니다.
바울은 이제 이 결심으로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밖아 버렸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제 사도바울과 같이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 깊은 상처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시고 치료해 주시면 감사하고 안 치료해주시면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해서 더 능력있는 성도가 되어 보십시다. 오늘부터 새롭게 십자가만을 자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밖아 버립시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꼭 만나십시다. 새 사람이 되어 눈물을 흘려 보십시다. 새 사람으로 거듭나 주님을 위하여 땀을 흘려 보십시다. 새 사람이 되어서 교회부흥을 위한 봉사자가 되어 보십시다. 교회를 위하여 자기자신을 죽이는 제물이 되어 보십시다. 이 은혜를 받으면 옛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서 영광의 영혼들이 살아나는 역사를 일으켜 보십시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것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를 모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고 망산당하다가, 죄를 범하고 고생하시다가, 죄를 범하고 가슴에 지옥불이 붙어서, 죄를 범하고 다른 성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지옥불을 붙이려다가 영혼이 지옥으로 끌려가는 일이 없도록 하시고, 지금까지 범한 죄를 가슴을 치며 통회하며 회개의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내혈기, 내욕심, 내정욕을 다 십자가에 못밖고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누구나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상처에 대한 반응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로 나누어질 것이며 상처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마 약속하시니 이 약속 붙잡고 아픈 상처를 씻으시고 용기와 힘을 내셔서 오직 예수십자가만을 자랑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십자가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찔리기 위해서, 이 가시에 그가 부딪혀 찔려 피를 흘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앞으로 부를 노래를 위해서, 십자가의 마지막순간에 그가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시고 마지막 한 순간에 그가 외치셨던 말 ‘다 이루었다’ 이 한마디의 노래를 위해서 우리의 죄 사함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안에 있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원하십니까? 열등감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도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만날 수있을까요?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에 없는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지 마세요.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연약함이 벗어집니다. 기도하면 도리어 우리의 약함을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약함을 인하여 크게 기뻐하고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고 합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숨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님 안에서 나의 여러 약함을 자랑합니다. 아니 도리어 크게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약함이 곧 강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앞에 옵니다---
주님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주님을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주신 가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코 가시는 아픔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가시를 미워하지 마십시오. 원망하지 마세요. 오히려 감사하세요. 귀하게 여기세요. 그렇게 생각하고 가시를 보면 주님 앞에 귀한 보배를 만드는 재료입니다. 성도들에게 가시도 귀한 것으로 쓸 수 있다고 하면 믿는 성도들에게 있는 모든 것은 다 큰 축복입니다. 세상의 헛된 것을 바라보지 말고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가장 귀히 여겨 그것으로 큰 은혜와 축복을 받는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가시를 통해 바울 사도와 같은 은혜의 사람,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 사람,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