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시 ‘치마’, 랭보시 ‘팬티’
누가 더 쎈가?-백작가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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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의 ‘치마’ 시와 임보의 ‘팬티’ 시, 누가 더 쎈가요?
詩는 왜 이토록 야하고 고귀한가를 백작가TV가 깊이 파헤쳐 봤습니다.
시인은 팬티도 벗긴다고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직업, 뭔지 아세요? 바로 시인입니다.
옆에서 속삭이듯 이렇게 한 마디 던져볼게요. 문정희의 ‘치마’가 치맛속에 신전을 감췄다면, 임보의 ‘팬티’는 그 열쇠를 고이 보관 중입니다. 이 두 시인, 칼을 들었을까요? 아니요, 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했지요.
“당신의 치마 속엔 신이 살고, 내 팬티 속엔 그 신을 여는 열쇠가 있소.”
치마파와 팬티파의 철학적 대결이 용쟁호투처럼 신선하고도 뜨거울 수도 있습니다.
도발적인 듯 우아하고, 유쾌한 듯 깊은 이 시인들의 시 전쟁이 흥미롭고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시금치’가 되어버릴 이 경계 위에서 우리는 오늘,
시가 가진 ‘무서운 투시력’과 그 뒤에 숨은 진짜 이야기들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시란, 참 재미있는 거구나, 한 줄 읊었을 뿐인데 이렇게 마음이 달아오르다니요.
치마가 열리고, 팬티가 벗겨지고, 그리고 마음이 맨살처럼 드러나 버리는 거예요.
자, 이젠 치마 시와 팬티 시 속으로 빨려 들어가 세 나라를 보겠습니다.
📌치마와 팬티 누가 더 쎈가? 첫 번째 나라입니다 ,치마 속엔 신이 삽니다.
문정희, 그리고 여성의 힘이 넘칩니다. 문정희 시인의 ‘치마’를 읽으면 어느누구도, 단 한 번도, 치마를 그렇게 바라본 적 없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정희 시인은 말합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그 속엔 “달”, “회오리”, “신의 신전”, “바다”, “조개” 심지어 “죽음을 품은 동굴”까지 들어 있어요. 그건 여자의 몸이자 마음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입니다.
🌊 여성이 감추고 있는 그 깊은 갯벌, 남자들은 그 앞에서 “영원한 관광객”이라고 표현하셨지요. 그 말 들으면 약간 억울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 고요하고 깊은 바다를 제대로 감당해본 사람, 얼마나 될까요?
🔹 실제로 78세 여성 이연실 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몸은 다 늙었는데, 마음은 아직도 40대 여자입니다.
근데 아무도 이 늙은 치맛속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하질 않더라고요.”
그 말 듣고 좀 울컥했어요. 그런데 문정희 시인이 ‘치마 속에도 세계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왠지 존엄이 회복되는 느낌입니다.
이 시는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여성의 몸은 신전이고, 그 속에 있는 생명력은 신의 유산이다.”
📌치마와 팬티 누가 더 쎈가? 두 번째 나라입니다. “팬티 속엔 열쇠가 있습니다”
임보, 그리고 남자의 항변이 곁불을 놓습니다, ‘신전’을 감탄하며 읽던 임보 시인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답시로 “팬티”를 꺼내 듭니다.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신전의 적막함을.” 맞습니다.
이건 단순히 성적 상징의 대결이 아니라 연결고리의 철학입니다.
📍 임보 시인은 팬티를 통해, 남자가 지닌 욕망, 갈망, 공포, 생명력 그리고 아주 오래된 숙명을 노래합니다.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이 얼마나 해학적인가요?
신전 앞에서 매일매일 목숨을 거는 연어 같은 남자의 슬픔을 그것도 팬티 한 장으로 날려버립니다.
🧓 82세 박호걸 할아버지는 이 시를 읽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시가 내 청춘보다 더 솔직하더라고요. 나는 아직도 팬티 속에 열쇠를 지니고 있소.”
이 말이 왜 웃기면서도 찡한지, 시를 읽으면 알게 됩니다.
“치마가 아무리 신비해도 열쇠가 없으면 그 신비는 열리지 않는다.”
여기서 팬티는 단순히 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관계의 연결고리로 등장합니다.
임보는 마지막 바둑돌을 집어 들고 합방수를 딱 놓습니다. “여성이 신이라면, 남성은 사제다. 우리는 같이 의식을 완성하는 존재다.”
📌치마와 팬티 누가 더 쎈가? 세 번째 나라입니다. “신전의 적막입니다”
노년의 시, 그리고 사랑의 복원 그리고 마지막, 이 시 전쟁의 종장을 쓰는 듯한 한 편의 시로 *이석희 시인의 ‘신전’*이 등장합니다.
“너무 늙어버린 신도에게는 경배하는 마음조차 사라졌는가”, 이 시는 노년의 사랑을 향한 시입니다. 사랑도, 욕망도, 경배도 늙는 걸까요?, 이 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신전 주위를 맴돌긴 해도 신의 눈에 띌세라 겁먹었는가.”
🔍 결국, 노년의 가장 큰 적은 욕망의 소멸이 아니라, 욕망의 부끄러움입니다.
“너무 늙어버린 신도”는, 욕망이 없는 게 아니라, 감히 입 밖에 꺼내지 못하는 거예요.
🧓 실제로 74세 박영애 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었을 땐 부끄러워 말못했고, 늙으니까 눈치보느라 못 해요, 근데 여전히 나는 사랑하고 싶어요.” 이 시들이 말해줍니다.
치마는 늙지 않고, 팬티도 늙지 않고, 욕망은 단지 그 껍데기를 바꿔갈 뿐이라고요.
“참배객이 끊긴 신전의 적막” 그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간이지요.
하지만, 그 신비를 여는 열쇠는 여전히 누군가의 팬티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우리 삶이 아직도 아름답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치마 시와 팬티 시는, 시와 삶의 은밀한 유쾌함을 우리에게 내밉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볼게요. 오늘 이야기는 시인의 눈으로 몸과 마음을, 남자와 여자를, 그리고 인생의 갈망을 바라본 이야기였습니다.
문정희의 ‘치마’는 여성이 가진 고귀한 신전의 상징이었고, 임보의 ‘팬티’는 그 신비한 문을 여는 남성의 열쇠였으며, 이석희의 ‘신전’은 노년의 사랑과 욕망을 다시 복원시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였습니다.
📚 장 자크 루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늙지 않는다. 늙는 것은 오직 용기 없는 마음뿐이다.”
시는, 그 용기를 대신 읊어주는 가장 은밀하고 아름다운 말의 형태입니다.
오늘 이 시들의 상상과 나래 속에서 감히 한마디 하고픈 생각이 불끈 솟아오릅니다. 나도 시인이 되고 싶다. 이상 🎙 백작가 TV였습니다.
치마든 팬티든, 시든 인생이든, 웃으며 함께 익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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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첫댓글 문정희의 ‘치마’는 여성이 가진 고귀한 신전의 상징이었고,
임보의 ‘팬티’는 그 신비한 문을 여는 남성의 열쇠였으며,
이석희의 ‘신전’은 노년의 사랑과 욕망을
다시 복원시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