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열전 3-1
제3대 태종(방원)의 여자들
원경왕후 민씨!
남자로 태어났으면 한가락 했을 것이다.
태종 이방원이 왕이 된 것은 부인 민씨 덕이 크다.
태종이 영어를 했다면 아마 이랬을 것이다.
''I owe you"
"내 너한테 빚졌다''
원경왕후 민씨!
공민왕 14년(1365년) 7월 11일
개경에서 아버지 민제(본관 여흥)와
어머니 여산 송씨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민씨는 아빠엄마가 첫딸을 낳은 지 10여년 뒤에
둘째로 태어났으니 얼마나 귀여움을 받았겠는가?
게다가 총명하기가 예사롭지 않았고
지혜도 보통 사람보다 남달랐다고 한다.
보통 둘째가 당차고 투사적이며 열정이 강한편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다.
민씨 아버지 민제가 성균관 사성으로 있을 때
이방원이 과거에서 33명 중에
17등으로 합격하여 성균관으로 들어왔다.
*성균관 사성은 정삼품 당상관이다.
무인 집안에 신체 튼튼실실하고
머리까지 좋으니 민제가 방원은 가만 두겠는가?
사위로 점을 찍었다.
역시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람보는 눈이 남다르다.
내 친구도 고시를 패스하자
높으신 분 장인이 딱 찍어 사위로 삼았다.
방원이 민제의 사위가 되는 사연?
고시 패스한 수많은 분들을 접하면서
나름 대로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보았다.
날범과 범생이..
날범은 날아다니는 호랑이다.
머리도 샤프하고 리더십도 좋고 대인관계도
아주 잘하는 엘리트이며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기심이 생길 수 있지만 감히
그 카리스마에 도전장을 내밀 수 없는 존재다.
학교 다닐 때 모르는 수학문제가 있어
한번쯤 물어보면 흔쾌히 자상하게 알러준다.
이것은 체험이다.
청소도 앞장서서 잘하고 어려울 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며 의협심도 강하다.
남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띄지 않게 강하다.
우리 주위에 이런 날범은 얼마나 될까?
소수다. 정말로 적다.
내가 좀 못났지만 인정한다.
범생이!
날범과 같은 점은 머리가 좋다는 것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거의 개인적이면서 이기적이다.
안하무인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자칭 엘리트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독불장군인 경우도 많다.
결정적인 흠결은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안다는 것이다.
소통이 아니라 먹통을 한다.
주위를 잘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범생이들이 판을 치는지 볼 것이다.
우리는 날범을 원한다!
이방원,
성균관에서 날범이었다.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도 좋았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짱" 이었다.
이 날범을 유심히 주목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가 다름 아닌 성균관 사성, 민제였다.
과년한 딸을 둔 애비로서
사내놈들을 보는 눈이 예사롭겠는가?
현대의 사법 연수원이나 법률 연수원의
원장님들이 시집갈 따님을 두고 있다면
민제와 똑같은 입장일 것이다.
"어디 쓸만한 놈 없나~?"
"두리번.. 두리번..""
(고개 돌리는 소리다.)
그런데 군계일학이라고 메추리 새끼들
사이에서 학 한마리(오골계?)가 눈에 띄였다.
이.방.원. 연수생!
찍혔다. 그것도.. 자~알~~♡
민제의 친구 하륜이 관상을 잘 본다.
하륜이 어쩌다 이방원이 관상을 보고
"내가 이제까지 수많은 관상을 보았는데,
공의 둘째 사위와 같은 사람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소!" 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하륜은 방원의 심복이 된다.
일단 관상이 좋고 볼 일이다.
관상?
사주(四柱) 불여(不如) 관상이요,
관상 불여 눈치라"
잘 타고 난 팔자보다 얼굴 생김새가 낫고,
얼굴 잘 생긴 것보다
눈치 잘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하륜은 눈치가 빠른 게 아니었을까~?
''파도는 보았는데 바람은 보지 못했네!''
<관상> 영화의 대사다.
하륜은 파도도 보고 바람까지 본
진정한 관상쟁이 였던 것이다.
그래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갔다.
여차저차 하여 집안끼리 서로
알기도 해서 둘은 백년가약을 맺는다.
백.년.가.약!
이 말을 주목해야 한다.
'평생 너만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약속이다.
원경왕후 민씨!
남편이 봉급 가지고 친구들과 룸싸롱
아니 그때는 기생집이나 요정이었을 것이다.
어울려 다니면서 교우관계를 넓힐 때
친정 돈 뜯어 가지고 살림을 꾸려 나갔다.
애들도 친정에서 키웠다.
외삼촌댁에서 살아온 세자,
태종이 자신의 양아버지 같은 외삼촌들인 민무구, ᆞ민무질 형제를 죽일 때 양녕대군 마음은 어떠했을까?
왜 큰아들 양녕대군이 세자의 자리를 발로 찾겠는가?
씁쓸했을 것이다.
삶과 권력의 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경왕후 민씨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배신감... ㅠㅠ ㅠㅠ
원 위치로...
민씨는 낭랑 18세에 16살 이방원과 혼인했다.
슬하에 그 유명한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 성녕대군
네 아들과 정순공주 등 네 명의 공주를 낳았다.
도합 여덟이다.
처음 셋이 안 죽었으면 아마도
'원경 축구팀' 도 만들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많이 생산하셨다.
태조가 즉위하고
2년차까지는 정말 현모양처였다.
남편 출세도 시키고 자손들도
번창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어떤가?
그 계곡도 깊은 법이다.
기쁨이 크면 슬픔도 큰 법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총량불변의 법칙을 따른다.
지랄(GR)도 마찬가지다.
젊어서 GR을 떨면 늙어서 GR를 안 떠는 법이고,
젊어서 안 떨면 늙어서 반드시 GR을 떤다.
이것을 일명 <GR TOTAL AMOUNT LAW>
(지랄총량의 법칙)라고 한다.
원경왕후 민씨!
여자로서 할 도리를 다했다.
남편 출세시켜..
애들 많이 생산하여 종족보존시켜..
모범적인 부인상을 보였다.
그런데 이방원, 왕이 된 후 배신을 때린다.
원경왕후 민씨의 가슴에 칼을 박는다.
진짜 칼이 아니고 가슴을 찢어지게 한 것이다.
그게 뭐이겠는가?
여자다! 바로 여자문제다..
태종, 이방원! 그도 남자다.
이 말이 무신 말인지는 다 알 나이들일 것이다.
자고로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나는 남자다!"라고 떳떳하게
외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원경왕후 민씨 입장에서는
태종이 GR을 떠는 것이다..
내일 또 계속 이어집니당.. *♡*
첫댓글 계속 기다려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