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송 심희수와 일타홍의 사랑 이야기
아들아, 옛 선인들의 사랑얘기가 어떠하더냐.
지금과는 다른 시대상에서 다른 가치관으로 살았던 우리 조상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랑했던 이야기가 무조건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옳은 것이다 할 순 없겠지만 지금은
느끼기 힘든 인간적인 멋 있고, 아름다운 사연이 많은 것 같아.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마도 다른 분보다 더 친근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우리 조상 할아버지 중 나름 유명할 수 있는 분인데..문정공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란다.
일송 심희수(文貞公 一松 沈喜壽, 1548~1622)할아버지는 조선 중기 선조와 광해군
시절에 활약했던 문신으로 좌의정까지 역임하셨단다.
나라의 신료들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까지 오른 대단한 분이셨지.
또 지체장애를 극복하여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자리에 오른 전설을 쓴 분이면서
미스터 쓴소리..옳은 말을 잘하여 고초도 여러번 겪은 소신있는 관료, 청렴결백하여
청백리(淸白吏)에 오른 훌륭한 분이기도 해.
그런데..이 할아버지에겐 요즘말로 방황하던 시절, 흑역사가 있었단다.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는 뭐랄까..한마디로 조선판 온달(溫達) 장군이라 해야 할까?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도 아내를 잘 만나서 방황하던 시절을 접고 크게 된 대표적인
인물이란다. 그것도 다..사랑의 힘이었지.
고구려 온달 장군에게 평강공주가 있었다면,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에겐 일타홍이란
여인이 있었단다.
일송 심희수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고 해.
일송 심희수는 명문가의 후예이지만, 도통 마음을 잡지 못하고 학업엔 뜻을 두지 않고
술과 여자에 빠져 살고, 또 예의없이 행패부리고 다녔지.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난봉꾼이었다고 해.
일송 심희수가 나이 열 다섯에 우연히 한 고관대작 집의 잔치에 술 한잔 얻어 먹으러
갔는데, 당연히 유명한 난봉꾼이니 불청객이라..다들 무시했지.
그런데 왠걸..그 잔치집에 불려온 기녀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이쁜 여인이 그에게
다가와 다들 무시하던 그에게 술상을 받아주고 대접하더래. 다들 놀랬지.
그 도도하고 빼어난 기녀 일타홍이 왠 저런 난봉꾼에게 극진하게 대접하는 것일까하고.
일타홍, 그녀는 소년 심희수에게 집이 어딘지 묻고, 곧 찾아가겠다 했어.
얼마후에 과연 일타홍(一朶紅) 그녀가 소년 심희수의 집을 찾아왔지.
그리고 소년 심희수의 어머니에게 우연히 잔치집에서 공자를 만났는데 보니 참으로
귀한 상으로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했어. 하지만 지금의 모습으로는 귀한 상의 기운이
빛을 발하지 못하니 그녀가 옆에서 공자를 도와 큰 인물로 만들어 보겠다고 했지.
그녀가 어찌 정욕을 품고 이런 말을 하며 가난한 과부집의 어린 아들을 취하겠는가
했단다.
소년 심희수의 어머니는 그런 일타홍의 진심을 느꼈음인지, 그뜻을 고맙게 받아들였어.
일타홍은 그날부터 기녀 생활을 청산하고 심희수의 집으로 들어와 난봉꾼 심희수의
사람 만들기에 돌입했지.
매일 학업에 정진하도록 했고, 과제를 내어 태만하면 정인이자 낭군인 그대와 연을
끊겠다 하니..일타홍을 정말 사랑하는 심희수 할아버지는 열심히 공부하는 수 밖에
없었단다.
일송 심희수도 오래 참았음인지..매양 일타홍의 옆에서 떨어질 생각은 안하고
학업을 게을리하기 시작했어. 그러자 일타홍은 또 심희수의 어머니에게 낭군이 학업을
게을리하니 그의 학업에 방해되지 않고자 하직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히고 집을 그대로
나가버렸지.
한때 나태해졌던 일송 심희수는 그제야 또 정신이 번쩍 들었어.
자신의 학행이 미진하고, 스스로 뜻이 굳세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다시 열심히 학업에
정진했단다. 그렇게 열심히 정진한 덕에 1574년 드디어 대과에 급제하였고, 그후에
다시 일타홍과 재회하고 함께 살게 되었지.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는 명문가의 후예, 양반이지만..
일타홍은 기녀출신, 엄연히 신분차이가 있었어.
먼저 결혼했고, 사랑한다 할지라도 그 엄격한 신분차이 때문에 그녀는 정실부인이
될 수 없었어. 일타홍은 그런 현실을 받아 들이고,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의 스승이자
정승이었던 노수신의 조카와 결혼을 주선하고, 그는 스스로 첩실이 되었단다.
그때는 지체높은 양반들의 경우 부인을 여럿 두는게 보통이었고, 그게 큰 흠이 되진
않았단다. 오히려 그게 당연한 것이었지.
그리고 신분이 낮은 여자는 정부인이 아니라 첩실이 되어야 했단다.
첩실의 경우..그녀의 아들 서자도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온전한 대우를 받지 못했어.
지금으로 보면 부당한 것들이 그때는 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단다.
그런데..또 심희수 할아버지는 정부인이 아니라 일타홍을 사랑했던지라..
정부인 노씨부인을 찾지 않고 매양 일타홍만 찾는 거야.
그러자 일타홍은 또 단호한 결정을 내려. 노씨 부인에게 4일, 자신에겐 1일 머물기.
그리고 그녀는 노씨부인을 정부인으로서 예를 다하여, 서로 의를 상하지 않도록
각별히 처신했단다.
자신이 먼저 결혼하였음에도 첩실로 만족하고, 또 사랑을 독점하지 않고 나눔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 그녀의 현명함과 그 심성이 느껴지는 대목이지.
이것도..일타홍이 사랑하는 낭군 심희수의 앞길을 열어주고자 스스로 희생한 것이라
할 것이야. 일타홍의 사랑은..낭군을 위한 희생과 절제가 아니었을까.
일타홍-한떨기 붉은 꽃이란 뜻이다.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는 일타홍을 정말 사랑했었지. 고향의 부모님을 모실수 있도록
충청도 금산의 고을수령으로 지원해 달라는 일타홍의 청을 받아들여 금산군수가 되어
금산(錦山)으로 내려가 그녀의 부모를 위해 크게 잔치도 베풀었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타홍은 그만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고 낭군인 일송 심희수의
손을 잡고..
삶이 짧고 긴 것이 뭐가 다르겠는가. 군자의 은혜와 사랑을 받았으니 여한은 없지만
다만..죽은 후 낭군의 옆에 묻히는 것이 소원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단다.
일타홍으로선 아마도..살아선 신분의 굴레 때문에 정식 아내가 될 수 없었지만,
죽어서..내세에서는 정실아내이고 싶었지 않았을까.
심희수 할아버지는 먼저간 아내, 일타홍을 위해 손수 시신을 염했고 일타홍을 고향의
선영에 장사지냈다고 하는구나.
일타홍은 죽기 전에 상월(賞月)이란 시를 남겼지.
亭亭新月最分明 (정정신월최분명)
우뚝 솟은 초승달 오늘 따라 저리 밝고
一片金光萬古情 (일편금광만고정)
한조각 고운 달빛 만고에 정다워라.
無限世間今夜望 (무한세간금야망)
오늘밤 끝없는 세상을 바라보니
百年憂樂幾人情 (백년우락기인정)
백년의 근심과 즐거움을 느끼는 이 몇일까.
일타홍의 유언이자 절명시란다.
일타홍을 장사지내며 그녀의 시신을 실은 꽃상여가
그녀의 고향 금산의 금강가를 지나는데 가을비가 내려 꽃상여를 적시는거야.
그걸보고 또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가 비통해 하며 시 한수를 남겼는데 제목이
유도(有悼)라 전해. 일타홍 그녀의 죽음을 애통해 한다는 뜻이지.
一朶芙蓉載柳車 (일타부용재류거)
한떨기 부용꽃이 버들수레에 실려가네.
香魂何處去躊躇 (향혼하처거주저)
향기로운 혼백이여 어디를 주저하며 가는가.
錦江春雨丹旌濕 (금강춘우단정습)
금강에 봄비내려 붉은 명정 젖어드니
應是佳人別淚餘 (응시가인별루여)
아마도 고운 님이 흘린 이별의 눈물이런가.
아마도,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는 일타홍이란 여인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지 않았다면,
또 그녀의 헌신이 없었다면..어쩌면 한양의 유명한 난봉꾼으로 남았을지도 모르지.
그녀의 헌신으로 그 난봉꾼이 사람이 되고 또 입신해서 좌의정이란 정승, 청백리에
녹선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야.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도 훌륭했어. 어쟀든..신분이 한참이나 낮은 일타홍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존중했어. 또 그녀의 헌신을 받아 스스로 변하고, 노력해서 그 높은 위치에
이르렀으니 그 자체로도 대단하셨지.
아빠가 그래서 그렇게 말한거란다.
고구려에 온달과 평강공주가 있었다면 조선에는 일송 심희수와 일타홍이 있었다고.
일타홍 금산이씨 지단
지금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에 가면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단다.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의 묘 바로 옆엔..정경부인 노씨의 묘가 있어.
당시의 관습과 신분상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단다.
하지만 그 묘소 발치에 일타홍 금산이씨지단(一朶紅 錦山李氏之壇)이라 하여 묘비와
제단이 놓여있단다.
당시 그 엄연한 신분질서와 양반사대부의 체면이 엄연한데 첩실의 시신을 손수 염하고,
또 그녀의 상여를 따라가..그녀의 유언대로 선영에 모셨다..
신분이 낮은 첩실을 선영에 모시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힘든일이야..
하지만 심희수 할아버지에 대한 일타홍의 헌신과 사랑이..
그런 금기, 그 엄한 예법을 뛰어넘게 만든것이지.
그리고 죽어서 가까이에 묻혀 또 그녀의 유언을 지켜주었어.
이것은..아마도 아니..분명 일송 심희수 할아버지의 아내인 일타홍을 향한
사랑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 아닐까한다.
그렇게 한그루 소나무(一松)과 한떨기 붉은 꽃(一朶紅)의 사랑은 오래도록 남아
전해지고 있단다.
------ 작성자: 방랑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