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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삼텐 스님
왕의 스승(王師)되는 가르첸 왕포(Garchen Wangpo)대사는 궁정에 매일 출입한다.
그를 모시고 다니는 젊은 스님이 삼텐 갸쵸(Samten Gyatso)이다. 삼텐 갸초와 친해지게 되었다. 삼텐은 승려 생활에 염증을 느낀다. 권태롭다, 자유가 없다. 외부세계로 나가고 싶다. 나를 따라 순례에 동참하고 싶다고 한다.
글쎄, 그게 허락될까. 아무래도 내 갈 길에 장애가 될 것 같이 느껴진다.
삼텐에게서 옴마니뻬메훔(Om Mani Peme Hum)에 대해 가르침을 받다. 만트라(Mantra)를 관상하는 것이다.
심장에 연꽃이 피어나서, 다섯 가지 색깔의 다섯 꽃잎 하나마다 글자가 새겨진다. 만트라를 암송함에 따라 글자에서 빛이 나온다. 오색 빛이 주위로 퍼져나간다.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의 끝까지 퍼져나가 허공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육도윤회에 빠진 중생을 치유해준다. 혼자 연습하다. 따뜻한 빛으로 가득 찬 공간 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가는 것처럼 아늑하고 기분이 좋다. 평화롭다. 삼텐에겐 이별을 알리지 말아야지. 그처럼 청순한 스님을 속세로 데려나가고 싶지 않아. 승려를 속퇴시킬 순 없지.
17. 아련한 구게의 풍경
타시 공주에게 이끌려 짜다에서 조금 떨어진 짜파랑(Tsaparang)에 오다. 황토로 지어진 성채.
한 낮의 태양열과 빛을 받은 성채는 신기루 같다. 성채의 내부 통로는 좁고도 길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가기엔 좁아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수 있다.
타시 공주는 내 손을 잡아끌면서 성안 곳곳을 안내한다. 공주는 신이 났다. 발랄한 십대 소녀의 끼를 발산한다.
라캉(신들의 방/법당)에 들어오다. 순례자는 자기도 몰래 가만히 앉아 명상에 든다. 오후의 뜨거운 햇살 한 줄기가 토벽의 틈새로 들어와 부서진 불상의 왼쪽 팔뚝위로 비쳐든다. 우아하게 뻗은 붓다의 팔뚝에서 날아온 먼지 알갱이 하나가 내 콧속으로 들어온다. 들숨 날숨을 알아차리면서 맑게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안광이 밝아지고 몸에서 빛이 퍼져 나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다시 벽을 뚫고 나아가 공간을 포옹한다. 관조의 빛이 우주를 감싸 안으니 이 방안에서 일어났던 인간 세상의 영고성쇠는 부드럽고도 서늘한 빛 속에서 위안을 받고 영원의 휴식을 취한다.
‘이곳엔 우리 왕족만 아는 비밀통로가 있어요. 궁금하죠? 제가 안내할 게요.’
‘비밀통로라, 나는 외부인이니 나한테는 가르쳐주면 안 될 텐데...’
‘아이, 선생님은 우리 가족이예요. 그러니 가르쳐 줘도 괜찮아요.’
비밀통로는 성채의 제일 하단부에서 시작되는데 그 입구는 은밀하게 은폐되어 있어 아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다.
비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사람이 허리를 펴고 걸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죽 이어져 있다. 외부 광선이 차단된 통로는 어두침침하다. 가끔가다 환기창이 있어 한 줄기 시원한 공기와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몽환적인 분위기.
공주는 마치 나와 데이트라도 하듯이 들뜬 감정이다. 손을 잡고 한 1키로나 걸었을까 싶더니 앞이 툭 트이면서 바로 아래 강변 풍경이 펼쳐진다. 아, 여기가 통로의 끝이구나. 대합실처럼 의자와 쉴 곳이 마련된 방이다. 강 쪽을 향해 뚫어진 베란다에는 밧줄로 만든 사다리가 말려져 놓여있다. 여차하면 이 사다리를 강 쪽으로 늘어뜨려 타고 내려가게끔 해놓았군.
베란다 아래에는 목선이 한 척 뒤집힌 채 보관되어 있다. 이 목선을 타고 강을 건너면 적들을 따돌릴 수 있겠군. 성채가 포위됐거나 함락되었을 때를 대비한 방책이구나. 공주와 사막의 아들은 벤치에 앉아 베란다 밖으로 펼쳐진 강 풍경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눈다.
‘선생님, 여기 언제까지 머무를 수 있나요?’
‘순례자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어요. 떠나는 날이 바로 그 날이죠. 순례자의 영혼은 새처럼 가볍거든요.
공주님’
‘그치만 매정하게 들려요. 제게 그리 몰인정하게 말하지 마세요. 하루를 영원이듯이 살라고 선생님이 그랬잖아요.’
‘그런데 선생님, 제 이름이 타시인데, 이건 너무 평범해요. 인도식으로 멋진 이름 하나 지어 주세요.’
‘음, 그렇죠. 타시는 길거리에서도 들리는 평범한 이름이죠. 인도 공주라면 음, 멜리싸(Melissa). 멜리싸 공주.
멜리싸 어때요?’
‘멜리싸 공주, 아, 좋은데요.’
‘그러면 이제부터 멜리싸 공주라고 불러줘요. 예쁜 이름 고마워요.’
그러는 사이 저녁놀이 수트레지 강위로 내린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비밀통로를 되돌아 나와야 하기에 서둘렀다.
공주와 보낸 즐거운 하루였다.
<수트레지江>
18. 구게왕께 이별을 고하다
더 지체하면 나를 향한 공주의 정이 짙어져 떠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감이 온다. 지금이 그 때이다. 떠나자. 작심하고 고하러 가다. 왕은 놀랜다. 왕비는 눈물을 글썽인다. ‘공주에게는 뭐라고 하지, 너무 슬퍼할 텐데, 이 외진 곳에서 친구 하나 없이 지내다가 당신이 좋은 친구요 선생님이 되어주었는데...’
‘이 왕국은 작고 백성들도 많지 않아 다스리기는 어렵지 않지. 왕의 업무도 번잡하지도 않고 범죄도 없고 군대는 겨우 수비할 정도만 있으면 되거든. 부족한 게 있다면 외부세계와 격리된 데서 오는 고립감과 답답함이지.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
새로운 문물과 문화가 궁금하지. 여자들은 새로운 장식품, 새로운 옷과 장신구 등등 사치품에 대한 동경이 크지.
그게 삶이라는 거야’ 왕이 친구에게 말하듯이 순례자에게 말한다.
‘허나 길손이여, 고마우이,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은 깨소금처럼 고소하고 유익하였소. 노잣돈으로 황금을 삼십 냥을 준비했으니 잘 쓰시게.’
오체투지로 삼배를 드리고 궁을 나서다.
그때 뒤 늦게 안 공주가 뛰어나오면서 운다. 선생님, 가지마세요. 저와 같이 살아요. 공주님, 저는 순례자입니다,
길을 가야해요,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 길 위에서 사는 것이 저의 운명이에요. 당신은 공주로서 왕궁을 지키는 것이 운명이듯. 저는 길 위에서 살고, 나의 길을 가야 해요. 공주를 안아 이마에 키스해주고 돌아섰다.
‘멜리싸 공주님. 이별은 왕족답게 의연하게 하셔야죠. 그래야 선생님이 성숙해진 공주님이 보고 싶어 다시 올 수도 있잖아요.’ 나는 표연히 떠났다.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보면 못 간다, 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되리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삼키면서 간다. 길을 간다. 무한으로 펼쳐진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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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구게왕국의 역사의 무대 위에서 어떻게 사라졌을까 ?
그 당시 푸랑(Purang, 카일라스와 인도 국경 사이에 있는 중개 무역지)과 라다크(Ladakh), 잔스카르(Zanskar)에도 불교국가가 건설되어져 있었는데, 이 네 개의 왕국(푸랑, 라다크, 잔스카르와 구게)이 때로는 합치거나 분열하면서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다. 1624년에 제수이트 교단의 선교사 안토니오 데 안드라데(Antonio de Andrade)가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구게 왕국까지 흘러들어왔는데 왕실에서 호의적으로 대접하여 오랫동안 머물 수 있게 편의를 제공하였다. 제수이트(Jesuit)교단은 루터의 종교개혁이후 유럽에서 많은 수의 신도를 잃은 바티칸(교황)세력이 위기감을 느껴 이미 식민지화가 시작된 아시아나 북미와 남미, 태평양의 섬으로 선교사를 보내 선교를 행하며 세력 확장을 꾀한다. 그들이 성경책과 거울과 시계 등 신기해 보이는 몇 가지를 원주민에게 보여주고 환심을 사면 뒤이어 총칼을 든 제국주의자들의 침탈이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제 3세계의 식민화 과정이다. 구게왕이 선교사에게 생활의 편의와 선교를 허용하는 관용을 베푼 것은 고난에 빠진 형제는 도와주어야한다는 불교도의 덕목을 실천한 것뿐이었는데, 주변의 푸랑과 라다크에서는 이를 의심하였다. 구게왕국이 서양에서 들어온 이교도를 끌어와 서양세력과 결탁하여 이 지역에서 패권을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혐의를 받는다. 그래서 라다크에서 몇 차례 사신이 와서 항의를 하였으나, 구게의 왕은 개의치 않았다. 한편 불교왕국의 한 복판에 교회를 짓고 주민들에게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도록 허용한 왕의 처사에 불안해하고 불만을 느끼는 세력도 생겨났다. 그 중에서 군 지도자급 몇몇과 왕의 동생이었던 최고위직 승려가 모의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세력은 라다크 세력을 끌어들였다. 한편 라다크는 파키스탄이나 카쉬미르까지 진출해있던 이슬람세력과 접촉하여, 이슬람 용병을 고용하였다. 그들은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모든 것을 살육하고 파괴하고야마는 무자비함으로 악명이 높았다. 라다크는 이슬람 용병을 고용하여 구게를 침공하였다. 충분한 무력이 없었던 구게는 순식간에 포위를 당하였고, 수성(守城)태세에 들어갔다. 포위당한 구게는 물과 식량이 모자라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더구나 용병대장은 매일 구게의 백성 1000명을 구게의 왕이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서 처형했다. 이는 불심이 깊은 왕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왕을 배신한 최고위직 승려는 항복하여 라다크의 속국이 되면 왕국의 명운을 보존할 수 있다고 왕에게 진언했다. 왕은 신하들과 왕족들과 상의하여 항복하기로 결정했다. 무조건 항복할 테니 백성을 더 이상 죽이지 말 것과 왕족의 안위를 보장해달라고 하였다. 구게의 왕 자신은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멀리 유랑의 길을 떠날 것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하고 성문을 열었을 때 이슬람 용병대장은 구게의 왕 뿐만 아니라 왕족과 신하, 백성들을 모두 살육했다. 겨우 200명가량이 도망갈 수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건조한 바람에 바싹 마른 목 없는 시체와 두개골이 강 언저리 진흙 밭에서 발굴된다고 한다. 인간이 어찌 이리도 잔혹할 수가 있을까? 모든 인간에게는 불성이 있는 반면 마성(魔性,악마의 성질)도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 ?
인간의 잔혹성 앞에는 불교도 이슬람교도 무력하기는 마찬가지. 인간의 잔혹사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2.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1933년 소설>
구게왕국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안토니오 드 안드라데는 구게왕국 기행문을 쓰서 리스본에서 출판하여 전 유럽으로 퍼졌는데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티벳의 신비에 대하여 환상을 품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처형된 것 같다. 아무튼 그 이후로도 계속 선교사들이 모종의 환상을 찾아서 아시아의 심장부 깊숙이 들어온다. 그들의 보고서와 기행문이 외부로 퍼지면서 환상은 더욱 부풀려지게 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공전의 베스트셀러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이다. 작가는 제임스 힐턴(James Hilton, 1900~1954).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불시착한 사람들이 찾아간 곳이 샹그릴라(Shangri La). 해발 8500미터의 카라칼(Karakal)산 밑에 있는 이상향인데 그곳은 관개시설, 수도, 중앙난방식 온열시스템이 갖추어진 문명화된 마을이다. 이런 시설은 18세기 초 룩셈부르그에서 온 선교사 뻬롤(Perrault)이라고 하는 사람이 설계한 것이라 말하는 이 마을의 고위 라마(High Lama). 이 말을 하는 그 사람이 바로 뻬롤이다. 현재 나이는 300세라고. 한 사람은 이곳에서 탈출하여 설산을 벗어나자마자 급격한 노화현상을 일으킨다. 그 곳은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곳이었던 것이다. 중국 운남성에 있는 쫑디엔(中甸)이 샹그릴라의 배경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중국정부는 쫑디엔을 지금 샹그릴라라고 개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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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오아시스 마을 아리를 지나다
<아리>
말을 타고 쏜살 같이 달린다. 길은 외줄기. 국경도시인 아리(Ngari, 중국인들은 시천허(獅泉河)라고 한다)는 하룻길이다. 이곳이 티벳의 서쪽 끝이다. 여기부터는 길이 없다. 사방 무인지경의 사막이 펼쳐져 있을 뿐. 이 변경 지대에서 길손을 맞아주는 곳은 여관과 주막집뿐이다. 피곤해진 팔다리를 여관방에 눕힌다. 순례 도중에 경험한 숙박 시설 중에서 최악의 조건이었다. 여덟 명의 길손들이 한 방에서 새우처럼 구부리고 밤을 지샌다. 마실 물도 부족하다. 잠의 여신에게 기도한다.
모든 시름 잊고 쉴 수 있는 잠시 동안의 안식을 달라고. 굿나잇.
다른 길손들에게 앞으로의 여정을 묻다.
앞길은 험난! 험난 중의 험난이라. 곤륜산이란 엄청난 산이 앞에 버티고 선 데다 추운 날씨라. 정상부근에서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그리고 사막을 지나는 도중은 무인지경이라 생존의 위협에 직면할지도. 야생 늑대와 여우 그리고 도적떼가 무섭다.
시장에서 낙타 세 마리를 산다. 한 마리는 자기가 타고 두 마리에는 식량을 싣고. 육포, 건포도, 포도주를 사고 식수는 넉넉히 열 개의 가죽부대에 가득히 담고, 모포와 가죽옷, 털옷을 사서. 본격적으로 곤륜산을 넘을 준비를 하다. 털모자, 털장갑, 털 장화에 내의. 긴 칼 한 자루와 단도는 여러 개, 활과 화살을 넉넉히 사다.
사막의 아들은 칼과 활을 쓸 줄 안다. 라자스탄(Rajasthan)의 무예가에게서 십년을 훈련받았던 것. 그래서 칼, 활, 격투기에 능하다. 사막에서 생존법은 순례자에게 필수이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살아남는 생존비결이 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라(Size up the situation).
자기가 현재 있는 지점을 기억해두라(Remember where you are).
서두르면 손해다(Undue haste makes waste).
두렵고 무섭다는 생각을 버려라(Vanquish fear and panic).
창조성을 발휘하라(Improve).
목숨을 소중히 여겨라(Value Living).
그 고장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라(Act like the natives).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라(Size up the situation).
기본적인 기술을 익혀라(Learn basic skills).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꼭 살아야겠다는 일념, 살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사람은 죽을 수 없다.
죽을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한 사람은 기필코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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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서바이벌 매뉴얼>-찰스 앨런 케이 이니쓰 테일러 저, 한국 등산 연구소 번역을 참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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