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가 너무 길어져서 독자들에게 부담이 될까 염려된다.
여행자 역시 메모를 뒤지고, 참고자료를 들여다보며 쓰는데 시간이 꽤 소요된다.
앞으로는 가급적 나열식 진행에서 벗어나 현장의 인상과 감상 위주로 간략히 서술해야겠다.
오늘은 중국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중국 측의 입출경 심사는 타시쿠르간 시내에 있는 쿤제랍 포구안(红其拉 甫口岸, Khunjerab port)에서 한다.
그러니 심사장은 국경인 쿤제랍 패스에서 12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국경이 연중 상시 개방된 때가 2024년 12월이니 불과 1년 남짓 지난 시점이다.
일단 출국심사를 마치면 45인승 지정된 호송 차량을 타고
파키스탄 입국 심사장인 소스트(sost)까지 무정차 직행한다고 한다.
통독 전 서 베를린과 서독을 잇는 연결로와 같은 개념이다.
냉전체제에서 미영프랑스와 소련의 관계 변화에 따라서 공중회랑은 성감대처럼 민감한 육로였다.
나는 일론 머스크가 구상하고 있는 땅속 튜브 도로가 생각났다.
9시 반 영빈관 호텔을 떠나 10분 거리에 있는 출국 심사장 마당에 도착했다.
업무는 11시에 시작되지만 경험 많은 가이드가 앞 순서를 차지하기 위해 서둘렀기 때문이다.
10시가 넘자 관리들이 출근하는 모습이 보인다.
기다림에 지친 일행들이 기뻐하며 박수를 쳐댄다.
국경심사는 어디가 되었든 살짝 긴장감이 도는데,
특히 이곳의 분위기는 어쩐지 싸늘하기만 하다.
날이 그다지 추운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가이드가 말없이 앞장서서 요령을 보여주었다.
검역대를 지나 엑스레이 짐 검사와 신체검사를 통과하고,
이민국 심사 줄에 섰다.
나는 민첩하게 짧은 줄로 가 붙었다.
나는 이민국 젊은 관리 앞으로 다가서며 여권을 내밀었다.
그가 여권을 앞에 놓고, 중국말로 지시를 한다.
나는 알아먹지 못했지만, 중국에 오면 하던 대로 안면인식 카메라의 각도에 얼굴을 맞춰댔다.
그러자 그가 꽥 소리를 쳤다.
응? 당황한 내가 그를 쳐다보니까 다시 중국말로 지껄인다.
뭔 말을 하는지 모르는 내가 지시에 따르지 못하자
그가 벌떡 일어서더니 아주 고압적인 태도로 손짓몸짓을 한다.
고개를 들어 올리라는 뜻이었다.
우선 여권사진과 대조하려는데 카메라만 보고 있는 나를 책망하는 것이다.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나는 부아가 끓어올랐다.
철딱서니 없는 애송이가 중국 국경을 다 지키고 있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여러 나라의 국경을 통과해 보았지만 이런 놈은 처음이다.
친절한 태도는 네 놈 따위에게는 바라지도 않는다.
무례한 처사다.
입국도 아닌 출국심사에 이토록 진심이어야 할까?
욕이 나왔지만 어쩔 것인가?
말도 통하지 않는데 내가 너와 어떻게 싸우겠는가?
참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검역과 통관과 이민국 출국심사를 다 마치고 건물의 뒷마당으로 나왔다.
출국심사를 마쳤으니 화장실에 갈 때도 총을 맨 군인에게 허락을 받고 여권을 맡기고 다녀와야 한다.
나는 봉변을 당해 상했던 마음을 털어버리고, 눈앞에 펼쳐진 설산 풍경에 몰입했다.
설산 위의 하늘은 그야말로 푸른빛이다.
구름 하나 티 하나 없는 서늘하게 물든 푸른 하늘이었다.
나는 마당에 서서 투명한 햇살과 산에 쌓인 눈에서 시작한 상쾌한 바람을 느끼고 있다.
그들이 우리를 버스에 태우기까지 나는 출경 마당에서 대기하는 2시간을 즐겼다.
총을 맨 군인이 올라와 여권검사와 머릿수를 확인한다.
1240분 출발 준비를 마친 버스들이 차례로 출발한다.
버스 전면 유리창마다 ‘국제도로여객 반차(班车) 중국 카스 ~ 파키스탄 소스트’ 스티커가 붙어있다.
나는 실크로드의 낙타 행렬을 연상하며 혼자 속으로 웃었다.
가이드가 기저귀 말을 꺼냈지만 누구도 반응하지 않는다. 이제 쿤제랍 패스로 간다.
4,673미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
‘피의 계곡’이라는 뜻의 이름은 이곳 실크로드를 지나던 상인들의 희생이 컸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혜초 스님이 사람 뼈를 이정표 삼아 넘었다는 고개.
눈과 얼음과 바람과 눈물의 계곡. 그는 분명 일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라면 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카라코람 산맥을 왼편에 두고 달리는 길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오른쪽에도 산맥이다.
길은 산맥 사이의 너른 계곡을 따라 나있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계곡이라고 했지만 그 폭이 한없이 넓은 평원이다.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길을 따라 전봇대가 서있다. 척박한 땅에도 사람들이 산다.
여름이 되면 흰 눈이 녹아 초원으로 변할 것이다.
야크와 양떼들이 눈이 녹아 군데군데 드러난 땅을 헤집고 있다.
현대식 가옥들이 게르에 섞여들어 서있다.
무논도 보인다.
나무들도 살고 있다.
나무 이름을 알아내려고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고도가 높아지는지 호흡이 의식된다.
3천 미터 이상이 되면 고산병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하였으나 아직 증상은 없다.
일행들 중 어느 누구도 증상을 말하는 사람은 아직 없다.
고산병은 나이 불문, 건강 불문하고 누구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하니 자꾸 의식이 되기는 된다.
버스는 알게 모르게 출발점 기준 천오백 미터 이상 올라와 있을 것이다.
국경이 가까워졌나 보다.
요새처럼 강력하고 거대한 건물의 변경검문소가 좁은 길을 막고 섰다.
건물 이마에 간판이 붙어있다.
“쿤제랍포 출입경변방검사첨전초반”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먹겠지만,
풀이해 보면 ‘쿤제랍 항만 출입국 사무소의 전진기지’라는 뜻이다.
여기서 발견되는 특이한 점은 동양의 문호개방이 항만에서 시작된 탓인지
내륙의 국경 세관 역시 ‘항만(甫, port)‘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검문 순서를 기다리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 차례가 왔나 보다.
젊은 병사 하나가 가슴에 기관총을 안고 올라왔다.
또 다시 되풀이되는 여권검사와 인원수 확인.
헬멧에 완전군장을 갖춘 병사가 방아쇠에 손을 얹고 통로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발사한다.
지금 총 앞이라 해도 출국 스탬프를 받은 나는 쫄 이유가 없다.
고교시절 시외버스를 타기만 하면 총 들고 버스에 올라왔던 군인들이 생각난다.
버스가 국경지대에 진입했다.
멀리 중국식 성문 형태의 구조물이 보인다.
또 총을 맨 군인이 올라와 여권검사를 한다.
그런데 아뿔싸.
여권을 확인하던 군인이 맨 뒷좌석에 앉아있던 나를 보고도 그냥 돌아서 간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헬로”하면서 그를 불러 세웠다.
그가 돌아서더니 무안을 감추려는 듯 “쏘리” 한다.
이런 일도 가끔 벌어지긴 하는가보다.
그와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내 여권을 건네받고 나서 보는 둥 마는 둥 돌려준다.
중국은 이번까지 세 번째 여권 검사를 했다. 아니다. 이민국까지 세면 네 번째다.
버스가 국경선을 넘기 위해 서서히 성문으로 다가간다.
국경 직전 오른편 큰 건물 안에 얼핏 시장이 보인다.
양 국민들이 국제교역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현대식 건물 안에 들어있는 현대식 시장에서 거래하는 품목들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버스가 성문을 통과했다.
오십여 미터의 공간을 지나니 파키스탄 국기가 반긴다.
버스가 파키스탄 국경을 넘는다.
패스(pass)라고 해서 고갯마루는 아니다.
넓고 평평한 공간에 낮은 철책을 둘러쳐서 국경을 구획하고 있다.
중국과 파키스탄 양국의 사람들이 자기네 땅 안에서 관광을 즐기는 모습이 이채롭다.
인원은 역시 중국 측이 월등히 많아 보인다. 국경을 넘은 버스가 내리막길에 들어서 속도를 낸다.
국경에서 파키스탄 출입국 심사장이 있는 소스트까지는 80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소스트까지 내려가는 길은 중국의 회랑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온통 험준한 산악 지형이다.
버스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도로에 토사물이 흘러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바위가 도로 한가운데 떨어져 있다.
해빙기에 들어서니 깎아낸 절벽이 약해져 부분적으로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공사를 안 하는지 못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주요 이용 차량인 대형 물류트럭들의 곡예운전을 보면 아슬아슬하다.
소스트까지 가는 길에 안 그래도 트럭 한 대가 배를 내놓고 자빠져 있었다.
구불구불 내장처럼 세 겹 네 겹 겹쳐진 도로를 내려다보며 간다.
토사물이 길을 막고 있으면 2차선이 1차선으로 변하기 때문에 교행이 불가능하다.
차량이 마주치면 올라오는 차량이 멈추어 서서 길을 비켜준다.
야생 양 몇 마리가 눈 녹은 산비탈면을 걷고 있다.
양을 보니 가끔 출몰한다는 눈표범과 마르코 폴로 양과 히말라야 마멋들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14:50분 소스트에 도착했다.
신장 시간은 16:50분이다.
파키스탄에 도착해서 신장에서 묵살 당한 2시간을 회복했다.
그러니 결국 타시쿠르간에서 소스트까지 200킬로미터 거리를 4시간 걸려 넘어온 셈이다. 소스트의 입국심사는 의외로 시원시원했다.
어찌나 친절하던지 과공비례(過恭非禮)가 생각났다.
무슬림들이 친절하다더니 정말이구나.
한순간 친절을 의심했던 내가 미안하다.
중국 그 녀석 때문이다.
관리들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있다.
안면인식 카메라를 돌리면서도 스탬프를 쾅쾅 찍어댔다.
10초? 20초? 그 정도였던 것 같다.
중국과의 차별화 전략인가?
아니다. 순수한 친절이다.
그런데 세관 검사는 전수 검사에 가방을 모두 열었다.
주류 반입을 엄격히 금지했지만
우리 버스에는 생수병에 옮겨 담은 백주가 생수 한 박스로 위장된 채 실려 있다.
나는 물론 관심 밖이지만 주당 시절을 떠올리며 무사하기를 바랐다. 소스트는 아주 조그마한 국경도시다.
도로 양편에 형성된 상업 구역은 등산용품점 식료품점 기념품점 음식점 민박과 호텔이 거의 다였다.
세관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8시간만의 식사여서 그런지 음식 맛이 뛰어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는 파키스탄 음식이 입에 잘 맞았다. 오늘의 일정은 훈자에 도착해야 끝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런데 훈자까지 가는 길이 심상치 않고,
또 훈자의 첫 인상이 만만치 않아 쓸거리가 많다.
줄인다고는 했지만 또 길어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 여행기는 일단 여기서 멈추고 내일 이어서 달리도록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