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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산책]『천수경』③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도와야 한다 『천수경』 강의를 법보신문에 연재했던 것은 내 나이 약관 삼십대 초반의 일이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없지 않다. 반드시 학문이 연륜과 정비례하는 것이 아닐지 몰라도 내 경우에는 세월이 흐르면서 이해가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 같다. 『천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하나의 예가 『천수경』을 『백화도량발원문(白華道場發願文)』과 심도 있게 연결시키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 종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관음신앙에 대한 문법을 깨뜨려 놓기에 충분한 것이 아닌가. 실제,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의하면, 무슨 소원이든지 관세음보살님의 이름을 일심으로 일컫는다면 모든 원이 다 이루어진다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관세음보살을 돕는다니…. 가히 혁명의 선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님은 어찌하여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중생들로부터 오는 SOS(구조요청)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며, 일손이 부족한 까닭에서이다. 생각해 보라. 관세음보살님은 얼마나 힘드실까! 그래서, 이제 “십원육향, 천수천안과 대자대비는 관세음보살님과 같아지기”를, 즉 관세음보살이 되고자 발원하는 천수행자들은 관세음보살님을 도와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비실천이야말로 바로 『화엄경』에서 말하는 보현행원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관음행원이 곧 보현행원이다.
그런데, 근래 나는 『백화도량발원문』을 지은 의상스님과 거기에 주해를 덧붙여 『백화도량발원문약해』를 저술한 체원(體元, 14세기)스님 이후에 정확히 관음신앙을 그와같이 이해하고 계신 선지식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광덕(光德) 스님이셨다.
그 분은 지금 여기서 말하는 바와 정확히 같은 의미에서 『천수경』의 관음행원과 『화엄경』의 보현행원을 일음(一音)으로 파악하고 계셨다. 「천수경 이해를 통해서 본 광덕의 회통불교」(『종교연구』29집, 2002)라는 내 논문은 그런 만남의 즐거움을 토로한 내 신앙고백이다. 김호성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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