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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행복 개념과 인식 / 양정연(한림대)
- http://home.sogang.ac.kr/sites/sgriphil/testmenu1/PublishingImages/42집/양정연.pdf
【주제분류】불교, 동양철학
【주제어】행복, 열반, 보살, 보리심, 서원
【요약문】불교에서는 현상 세계를 괴로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인연 화합 에 따라 이뤄진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기 때문이다(一切皆苦). 행복을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규정하면, 불교적 해석에서는 괴로움으로 대변되는 이 윤회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행복이어야 하기 때문에, 현상 세계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 이상적 모델로 제시되는 보살의 경우는 열반을 통하여 윤회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위해 다시 윤회 세계에 머문다. 스스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誓願을 세우고 자비행을 실천한다. 그렇다면, 보살로 대표 되는 대승불교에서는 행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본 논문은 불교의 행복 개념에 대해 초기와 대승 보살의 경우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대승 보살의 특성인 보리심, 특히 서원과의 관련성에서 이 문제를 검토하고자 한다.
I. 논의제기
우리는 보통 행복을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 는 그러한 상태’1)로 설명한다. 이 내용을 어떤 욕구에 대한 충족이 이뤄진 상태라고 이해할 때, 보통 주관적인 관점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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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 7월 31일, 심사완료일: 8월 17일, 게재확정일: 8월 20일
* 이 논문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 된 연구임.(NRF-2014S1A5B8062069) 이 논문은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대학중 점연구사업단과 철학과 BK21+ 사업팀이 “치유의 행복학: 행복의 의미 - 충돌 을 넘어서 창조에로”라는 주제로 공동으로 주최한 학술대회(2015년 6월 20일) 에서 발표한 것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1) 표준국어대사전 http://stdweb2.korean.go.kr/search/View.jsp(2015.6.10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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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에서 보이는 공적 행복 개념을 보면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행복 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윤리뿐만 아니라 종교, 사회, 문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행복에 대한 정의와 가치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것도 행복에 대한 담론이 현대사회에서 보다 종합적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이다.
불교에서 즐거운 느낌이나 마음이 행복한 상태를 의미할 때 사용하는 단 어는 ‘sukha’이다. 기쁨, 기분 좋음, 축복, 행복 등으로 번역되는 sukha는 감 정이나 마음 작용과 관련되어서 자주 사용된다. 붓다의 초기 말씀을 전하고 있는 숫따니빠따 행복경 의 원어는 ‘Mahāmaṅgalasutta’로서, 여기에서 사용되는 ‘maṅgala’는 길조, 순탄, 행운, 행운, 축하 등을 뜻한다.2) 숫따니빠 따에서는 행복을 인간의 행복, 천상의 행복, 열반의 행복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행복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지만 법구경에서 ‘nibbānaṃ paramaṃ sukhaṃ’(열반이 가장 큰 행복이다.)로 표현되어 있듯이, ‘열반’은 궁극적인 행복으로서 불교도의 종교적 완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통 행복이라고 하면 고통이나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불교에서도 역시 고통이나 괴로움이 없는 것을 행복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정신이나 육체적인 고통, 괴로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불교에서는 현상 세계를 괴로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인연 화합에 따라 이뤄진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기 때문이다(一切皆苦). 그렇다면, 불교에서 궁극적인 행복은 괴로움으로 대변되는 이 윤회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야 하고, 현상 세계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 이상적 모델로 제시되는 보살의 경우는 열반을 통 하여 윤회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위해 다시 윤회 세계에 머문다. 스스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서원을 세우고 자비행을 실천한 다. 그렇다면, 보살로 대표되는 대승불교에서는 행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까? 중생에 대한 보살의 悲心이 궁극적인 행복, 즉 열반의 길로 제시된다는 연구가 이뤄지기도 했지만,3) 보살의 경우 열반과 행복의 관계를 정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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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PTS Dictionary, 570.
3) 안성두, 불교에서의 행복에 이르는 길-비심의 기능을 중심으로 , 동서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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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서는 중생 구제의 서원과 실천, 그리고 열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요 구된다.
본 논문은 행복에 대한 학제적 연구를 시도하는 서강대 철학연구소의 ‘치유의 행복학’ 연구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서, 불교의 관점에서 행복의 의미를 살펴본다는 기획의도에 따라 작성되었다. 불교 교리와 사상의 흐름에서 다양하고 세부적으로 검토되고 논의될 필요가 있지만, 본 논문에서는 불교의 행복 개념에 대해 초기와 대승 보살의 경우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대승 보살의 특성인 보리심, 특히 서원과의 관련성에서 이 문제를 검토하고자 한다.4)
II. 초기불교에서의 행복의 층위
長阿含經의 善生經 에는 인간의 행복과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남편과 아내, 친족 간, 주인과 하인, 수행자와 시주자의 여섯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의무와 역할을 제시한다.5)
① 부모-자식
-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의무: 부족함이 없도록 모심, 모든 일을 먼저 부모에 게 알림, 부모에게 순종함, 부모의 정당한 지 시에 따름, 부모의 바른 가업을 끊어지지 않게 함.
-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의무: 악한 행동을 따르지 않도록 제지함, 잘 배워야 할 것을 가르침, 사랑하는 자애의 마음이 깊이 새겨지도록 함, 좋은 짝을 구해줌, 때에 맞춰 필요한 것을 공급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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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집, 동서사상연구소, 2011 참조.
4) 보살의 보리심 내용은 양정연, 쫑카빠의 대승보살계사상 연구 -《菩薩正道》 (Byaṅ-chub gshuṅ-lam)를 중심으로, 동국대 박사학위논문, 2008와 일련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했음을 밝힌다.
5) 長阿含經, 대정장1, 71c~72a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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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스승-제자
- 스승에 대한 제자의 의무: 필요한 것을 드림, 예경과 공양, 존중과 우러러 봄, 가르침에 공손히 따르고 어긋나지 않게 함, 스승에게서 받은 가르침을 잘 지녀 잊지 않음.
- 제자에 대한 스승의 의무: 법에 따라 잘 교육시킴, 들어보지 못한 것을 가르침, 물음에 따라 그 의미를 잘 알도록 함, 좋은 벗을 소개함, 아는 바를 다 하여 가르치 는 데 인색하지 않음.
③ 남편-아내
-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 서로 예의로 대함, 위엄을 지킴, 제때에 의식을 준비함, 때에 따라 단정하게 함, 집안 일을 맡 김.
-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 먼저 일어남, 나중에 앉음, 말을 온화하게 함, 공경하고 순종함, 먼저 뜻을 알고서 따름.
④ 친족 간
- 친족에 대한 자신의 의무: 베풀어 줌, 선한 말, 이롭게 함, 이익을 함께 함, 속이지 않음
- 자신에 대한 친족의 의무: 제멋대로 하지 않음, 제멋대로 하여 재산을 잃 지 않도록 보호함, 두렵고 무서움에서 보호함, 완곡하게 서로 일깨워줌, 늘 서로 칭찬하고 찬 탄함.
⑤ 주인-하인
- 하인에 대한 주인의 의무: 능력에 따라 일을 시킴, 제때에 음식을 제공함, 제때에 노동에 대해 상을 줌, 병이 들면 의약 품을 제공함, 휴가를 줌.
- 주인에 대한 하인의 의무: 일찍 일어남, 일을 면밀하게 처리함, 주지 않은 것은 갖지 않음, 일을 순서에 따라 함, 주인의 이름을 떨치도록 함.
⑥ 수행자-시주
- 수행자에 대한 시주의 의무: 행동을 자애롭게 함, 말을 자애롭게 함, 마음 을 자애롭게 함, 때에 맞춰 시주함, 문을 막 지 않음
- 시주에 대한 수행자의 의무: 악을 짓지 않도록 보호함, 선한 것을 가르침, 선한 마음을 지니도록 가르침, 아직 듣지 못 한 것을 들려줌, 이미 들은 것은 잘 이해하 도록 함, 천상으로의 길을 알려 보여줌.
위 가르침은 가정과 사회에서 재가자가 행복을 누리기 위해 지켜야하는 의무와 역할에 대한 것이다. 마지막 수행자의 가르침에서는 천상 세계로의 길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에 관한 내용은 숫따니빠따의 행복경 에 잘 나타나 있다.
달라이라마는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을 부와 세속적인 만족, 영적인 성장, 깨달음의 4가지로 말한다.6) 이것은 행복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논의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종교적인 삶의 진리가 일상적인 삶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행복의 구분은 숫따니빠따에서 붓다가 행복에 대해 묻는 천신에 게 답한 내용에서도 나타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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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달라이라마/H. 커틀러, 달라이라마의 행복론, 류시화 옮김, 김영사, 2001, 27.
7) 숫따니빠따의 ‘Mahāmaṅgalasutta’에 대해서는 김재성 편, 행복, 채움으로 얻 는가 비움으로 얻는가, 운주사, 2010, 58~75에 수록된 미산스님, 최상의 행 복을 위하여 에서 자세한 분석을 하고 있다. 본 장에서는 이 내용을 참고하였 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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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천신들과 사람들은 최상의 행복을 바라면서 행복에 관해 생각합니다. 최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오."
붓다는 이 질문에 대해 38가지 덕목을 말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인 간의 행복(manussa-sukha), 천상의 행복(dibba-sukha), 열반의 행복 (nibbana-sukha)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8)
① 인간의 행복
어리석은 사람과 사귀지 않음, 현명한 사람과 가까이 함, 존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함, 분수에 맞는 곳에 삶, 전생에 공덕을 쌓음, 바른 서원을 세움(삶의 바른 방향 설정), 많 이 배움, 기술을 익힘, 절제하고 훈련(윤리적 규범 준수와 수련), 의미 있는 대화 나눔, 부모 섬김, 자녀 돌봄, 배우 자 돌봄, 일관성 있는 삶, 보시, 여법함(정의롭게 삶), 친지 보호, 비난받지 않는 행동, 악을 멀리함, 술을 절제함, 선 법과 덕행을 닦음에 방일하지 않음.
② 천상의 행복
공경함, 겸손함, 만족함, 감사함, 때에 맞춰 가르침을 들음, 인내함, 온화함, 수행자를 만남, 알맞은 때에 법에 대해 점 검함.
③ 열반의 행복
고행(감관을 수호함), 청정한 삶, 사성제 관조, 열반 성취, 세상사에 동요치 않음, 슬픔없이 안온함, 어디에서도 패배 하지 않음, 모든 곳에서 편안을 얻음.
위의 내용을 불교적 세계관에서 살펴볼 때, 천신과 인간이 최상의 행복 을 바란다는 것과 행복에 층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궁극적인 행복으로서 열반이 최종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교의 윤회관에서 천신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세계와 마찬가지로 윤회 세계를 전전하는 한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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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미산스님은 행복의 38가지 덕목을 이 세 가지 층위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김재성 편, 행복, 채움으로 얻는가 비움으로 얻는가,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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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다른 세계보다 크기는 하지만 그 복덕이 다하면 다른 세계로 유전하면서 여전히 윤회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천신이 인간뿐만 아니라 천신의 행복을 물은 것은 자신들이 향유하는 행복이 궁극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숫따니빠따에서는 인간의 행복, 천상의 행복 그리고 최종적으로 열반 의 행복을 순차적으로 설명하면서 각 게송의 말미에 “이것은 더 없는 행복 이다.”9)라고 말한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이뤄야하는 덕목들은 자신과 가정을 위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의무와 생활에서의 역할과 관련된 내용들로서, 현재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익함과 행복으로 제시되고 있 다.
천상의 행복을 위한 덕목들은 不殺生, 不偸盜, 不邪淫, 不妄語, 不綺語, 不兩舌, 不惡口, 不貪, 不嗔, 不痴의 十善法과 慈ㆍ悲ㆍ喜ㆍ捨의 四無量心의 수행을 통하여 삼매 수행을 성취하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서, 그 유익함과 행복은 내생의 행복과 관련된다.
열반의 행복은 사성제의 관조와 번뇌의 깊 은 뿌리를 뽑아내는 고통을 종식시키는 최상의 행복으로서 윤회에서 벗어 나는 해탈을 말한다.10)
초기경전에서 열반 개념은 탐진치의 영원한 소멸, 일체의 모든 번뇌가 다해서 소멸하는 상태11)를 의미하는 것에서 윤회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까 지 포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것은 현세에서 달성하는 종교적 목표로 제시되던 열반 개념이 붓다의 입멸을 계기로 깨달음을 얻은 자의 사후 인식과 함께 불교적 구원이 완성되는 결과인 無餘涅槃으로 확장된 것으 로 보인다.12)
담마빠다는 현상 세계와 비교해서 열반을 가장 큰 즐거움(sukham)인 행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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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전재성 역주, 쿳다까니까야 숫타니파타,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4, 192 이하. “etam maṅgalamuttamaṃ”
10) 관련 내용은 김재성 편, 행복, 채움으로 얻는가 비움으로 얻는가, 72~75.
11) 잡아함경, 대정장2, 126b. “涅槃者,貪欲永盡,瞋恚永盡,愚癡永盡,一切諸 煩惱永盡,是名涅槃.”
12) 황순일, 구원학적 측면에서 본 초기인도불교의 열반 , 남아시아연구, 제 16-1호, 남아시아연구소, 2010, 97; 최종남, 유가행파 문헌에 있어서 열반의 종류에 관한 연구 , 불교학연구, 제32호, 불교학연구회, 20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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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은 가장 큰 병이고
조건에 따른 것들은 가장 큰 괴로움이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고 나면 열반은 가장 큰 행복이다.13)
조건에 따른 것들을 모두 괴로움이라고 했을 때, 그것에서 벗어나는 열 반은 가장 큰 즐거움이자 궁극적인 것이 된다.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열반에 이르는 직접적인 길은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 즉 ‘여실하게 아는 지혜’(yathā-bhūta-ñāna)로 제시된다. 여실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은 ‘無 明’(avijjā)으로서 자신과 현상 세계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왜곡하여 인식하기 때문에 집착을 일으키고 내생을 가져오게 되는 번뇌와 업을 일으키 게 된다.
불교에서는 자신에 대해서는 色ㆍ受ㆍ想ㆍ行ㆍ識의 五蘊을 통해서, 그리 고 외적 대상에 대해서는 六入을 통해 존재적 측면에서 무상하다는 것을 체득하고 올바로 인식하도록 한다. 오온의 경우는 색온에서부터 시작하여 ‘我가 아닌 것’, ‘我와 다른 것이 아닌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을 올바 로 깨닫게 하고 식온까지 철저히 항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득하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염리심을 일으켜 집착을 여의도록 하고 끝내 해탈14)로 이끌어 가는 가르침을 제시한다. 외적인 대상을 받아들이는 眼ㆍ耳ㆍ鼻ㆍ舌 ㆍ身ㆍ意의 六入은 감수 과정에서 좋고 싫어하는 분별의 마음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붓다는 이러한 마음 과정을 올바로 파악하여 눈이 그 경계인 色을 보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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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김서리 역주, 담마빠다, 소평출판, 2013, 208. Dhammapada 203, “jighacchāparamā rogā, saṃkhārā paramā dukhā, etaṃ ñatvā yathābhūtaṃ nibbānaṃ paramaṃ sukhaṃ.”
14) 雜阿含經, 대정장2, 243b. “一切無常、苦、變易法。如是知已,緣彼色生諸漏 害、熾然、憂惱皆悉斷滅,斷滅已,無所著,無所著已,安樂住;安樂住已,得 般涅槃。受、想、行、識亦復如是.” 참조; 雜阿含經, 대정장2, 76c. “若沙門、 婆羅門眼見色,未離貪、未離欲、未離愛、未離渴、未離念,內心不寂靜,所行 非法,所行踈澁行. 耳、鼻、舌、身、意法亦復如是.”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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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심과 욕심, 애욕, 갈망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법에 맞지 않게 행한다는 점15)을 지적한다. 그리고 나머지 귀, 코 등에 대해서도 동일 하게 설명한다.
인연의 화합과 조건에 따라 이뤄진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는다. 이것을 올바로 인식하게 되면 탐착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기 때문에 염리심이 일게 되고 세간에 대한 애착은 종교적 완성을 위한 추동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16) 따라서 존재적인 측면의 오온과 육입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경우는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윤회를 하게 되고 이것을 올바로 인식하는 경우는 열반하게 되는 것이다.
III. 대승 보살의 서원과 행복의 관계
앞의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열반의 행복을 출세간의 도리로 연결짓는다 면, 인간의 행복과 천상의 행복은 세간의 도리로 연결지을 수 있다는 점에 서 가치적 측면의 차이가 있게 된다. 대승 보살은 윤회에서 벗어나는 수행과 그 능력을 구비하면서도 다시 중생 구제를 위해 윤회 세계로 들어온다. 이때 행복의 층위를 열반에 대해서만 최상의 행복이라고 부여한다면, 대승 보살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 보살은 공성과 자비 공덕을 통해 자리와 이타의 완성을 실현한다. 따라서 중생 구제의 비심(karuṇā)에 대해서 세간의 차원에서 검토되던 초기와 달리 대승 에서 행복이라는 궁극적인 깨달음과 직접 관련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17)이 나온 것도 이러한 맥락에 따른 것이다.
대승경전에 나타난 보살의 모습이 ‘붓다의 깨달음에 집착하는 자’에서 ‘붓다의 깨달음을 획득하도록 결정된 중생’으로 변화한 것18)이라고 할 때, 보살에게 전제가 되는 점은 중생 구제라는 이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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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雜阿含經, 대정장2, 76c, “若沙門、婆羅門眼見色,未離貪、未離欲、未離愛、 未離渴、未離念,內心不寂靜,所行非法,所行踈澁行.”
16) 양정연, 초기 경전에 나타난 善終의 의미 , 선문화연구, 제15집, 한국불교 선리연구원, 2013, 55. ‘여실한 관찰’에 대해서는 논문의 54~57 참조.
17) 안성두, 불교에서의 행복에 이르는 길 , 20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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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바로 붓다의 실천 수행을 따라 자신도 열반에 들지 않고 윤회 세계에 머무는 것을 목표 로 한다. 그런데 현상 세계를 지속적으로 부정하여 염리심을 일으키게 하고 이를 종교적인 수행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라고 정의되었을 때, 중생 구제를 위해 오히려 윤회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 으려는 보살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 것일까?
숫따니빠따에서 설명되는 인간의 행복, 내생의 행복을 말하는 천상의 행복, 그리고 궁극적인 행복인 열반의 행복의 내용과 층위를 보면, 순차적 으로 제시되고 있는 점이 三士道와 매우 유사한 체계를 보여준다.19)
삼사도는 수행의 실천이나 단계, 그 근기를 말하는 것으로서 下士, 中士, 上士로 구분된다. 하사는 생사윤회의 안락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추구하 는 자, 중사는 자신의 적정만을 추구하는 자, 상사는 다른 이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삼아서 그 고통을 멸진시키고자 하는 자를 말한다.20) 하사 는 현재의 안락만을 추구하지만 자신이 윤회 세계의 악취에서 고통받는 상 황을 생각하면서 좋은 세상에 태어나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중사의 경 우는 내세의 좋은 세계라도 항상하지 않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상사는 궁극적으로 모든 중생들에게까지 자비의 마음이 생겨나 구제하려는 보리심을 일으킨다. 삼사도의 체계는 하사와 중사가 반드시 상사의 전 단계 로 인정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사와 중사의 단계에서 느끼고 수행함으로 써 상사는 중생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삼을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전자 의 두 단계는 상사도와 공통된 것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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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안성두 편, 대승불교의 보살, 도서출판 씨아이알, 2008, 61.
19) 관련 내용은 양정연, 《菩提道燈》에 나타난 菩提心 연구, 동국대학교석사 학위논문, 2002, 17~23 참조.
20) Atisha, Byaṅ chub lam gyi sgron ma, D. No. 3947, Khi.238b1~3. /gang zhig thabs ni gang dag gis/ /'khor ba'i bde ba tsam dag la/ /rang nyid don du gnyer byed pa/ /de ni skyes bu tha mar shes/ /srid pa'i bde la rgyab phyogs shing/ /sdig pa'i las las ldog bdag nyid/ /gang zhig rang zhi tsam don gnyer/ /skyes bu de ni 'bring zhes bya/ /rang rgyud gtogs pa'i sdug bsngal gyis/ /gang zhig gzhan gyi sdug bsngal kun/ /yang dag zad par kun nas 'dod/ /skyes bu de ni mchog yin no/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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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도인 보살의 단계에서 필요로 하는 지혜와 보덕의 자량을 쌓는 토대로 작용하게 된다.21)
보살이 붓다의 깨달음을 따라서 성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중생 구제의 삶 을 실천하겠다는 의지와 다짐은 ‘誓願’을 통해 확인된다.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청정한 원을 세워야 하고 보살행을 닦아야 한다는 점22)에서 서원은 보살의 가장 큰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서원의 내용을 華嚴 經 十地品 에서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23)
①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림
② 모든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고 교화의 법을 따름
③ 시방삼세에 법을 굴리시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림
④ 모든 보살행과 바라밀을 행하여 마음을 증장시킴
⑤ 윤회 세계의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성숙시킴
⑥ 세간의 다양한 차별을 이해하는 지혜를 지님
⑦ 불국토를 장엄하게 하며 중생에게 보여줌
⑧ 모든 보살의 선하고 화합하는 마음과 신통, 불가사의한 지혜 를 갖고 보살행 행함
⑨ 대약왕과 같은 능력을 보이도록 보살도를 행함
⑩ 모든 세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
이상과 같이 모든 보살은 부처님에 대한 공경, 중생 제도를 위한 교화와 자비행을 위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보살도를 실천하겠다는 서원을 세 운다. 법장비구는 48가지의 원을 세우면서 자신의 불국토에 태어나는 중생 은 수명에 한량이 없을 것이며, 죽을 때 자신의 이름을 10번만 염송하면 자 신의 불국토에 태어날 수 있다24)고 하였고, 지장보살은 지옥세계가 텅 빌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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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관련 내용은 양정연, 람림(Lam rim)에서의 죽음 억념과 수행 , 한국선학, 제31집, 한국선학회, 2012, 300~302 참조.
22) 華嚴經, 대정장9, 442a. “一切世界中 發心求佛者 先立淸淨願 修習菩薩行.”
23) 華嚴經, 대정장9, 545b~546a 참조.
24) 佛說無量壽經, 대정장12, 268a. “設我得佛, 國中人天 壽命無能限量 [중략] 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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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열반에 이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서원이 보리심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대자심과 대비심의 수행이 요구된다.
모든 유정에 대해 우선 자심을 인발하고
삼악취에 태어나고 죽는 고통을 받는
모든 중생을 보고 괴로워하며,
고통과 고통의 원인으로부터 중생을 해탈시키려는 마음으로
불퇴전인 서원의 보리심을 일으켜야 한다.25)
위 내용을 보면, 대자심의 인발에서 대비심, 그리고 중생을 보고 괴로워 하며 해탈시키려는 마음인 증상의요와 보리심이 일어나게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보리심 가운데 “중생 구제의 짐을 내가 지겠다”고 하는 증상의요의 마음을 바탕으로 보살이 “내가 중생을 위해 부처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것이 바로 원심이다.
大乘莊嚴經論에는 보살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보살이 중생을 생각하는 것이
골수의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하니,
항상 이익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한 자식을 대하는 것처럼 하기 때문이다.26)
보살의 이러한 마음은 비둘기가 자신의 자식을 극진히 아껴 품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서 중생에 대한 悲心에서 나온다.27)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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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得佛, 十方眾生至心信樂, 欲生我國乃至十念, 若不生者不取正覺.”
25) Atisha, Byaṅ chub lam gyi sgron ma, D. No. 3947, Khi.238b5~6. /de nas sems can thams cad la/ /byams pa'i sems ni sngon 'gro bas/ /ngan song gsum du skye sogs dang/ /'chi 'pho sogs kyis sdug bsngal ba'i/ /'gro ba sa lus la bltas te/ /sdug bsngal gyis ni sdug bsngal ba/ /sdug bsngal sdug bsngal rgyu mtshan las/ /'gro ba thar par 'dod pa yis/ /ldog pa med par dam 'cha' ba'i/ /byang chub sems ni bskyed par bya/
26) 大乘莊嚴經論, 대정장31, 623a. “菩薩念眾生 愛之徹骨髓 恒時欲利益 猶如一 子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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慈ㆍ悲ㆍ喜ㆍ捨의 四無量心을 통해 설명되는 비심은 천상의 행복인 삼매 수행의 완성과 관련된 내용으로서 출세간이 아닌 세간의 도리에서 설명된다. 보살은 비심을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중생까지 모두 성숙시키고자 한다. 이 때 가장 요구되는 것이 공성 인식과 중생에 대한 무한한 연민이기 때문에 보살의 비심은 무상정등정각을 획득하는 데 동등한 구제론적 가치를 부여 받을 수 있게 된다.28)
대승 보살이 자신과 중생을 성숙하게 하여 그 완성을 통해 무상정등정각 을 추구한다면, 보살에게 행복에 대한 논의는 열반을 궁극적인 행복으로 제 시하고 있는 초기 불교의 인식과 다르게 전개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대 승 보살의 행복은 중생 구제를 위해 윤회 세계로 돌아오려는 서원을 세운 원심을 통해서 논의가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IV. 대승 보살과 행복
1. 이종보리심의 내용
대승경전에서 보리심은 보살의 본질적 측면에서 거론된다. 入中論에는 “대비심과 不二의 지혜, 보리심은 불자의 因”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중생 과 보살을 구분짓는 것이 바로 보리심의 생기 여부로 구분될 수 있기 때문 이다.29)
입보리행론의 주석서에는 보리심을 서원의 원보리심과 실천의 행보리심으로 나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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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大乘莊嚴經論, 대정장31, 623a “如鴿於自子 普覆生極愛 如是有悲人 於生愛 亦爾.”
28) 안성두, 불교에서의 행복에 이르는 길 , 74.
29) Byaṅ-chub sems-dpaḥi spyod-pa la ḥjug-pa, D. No.3871, La.2a5~b1: /byang chub sems skyes gyur na skad cig gis/ /'khor ba'i btson rar bsdams pa'i nyam thag rnams/ /bde gshegs rnams kyi sras zhes brjod bya zhing/ /'jig rten lha mir bcas pas phyag byar’gyu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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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이 설명한다.30)
보리를 서원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 혹은 그것에 대한 마음이다. 어떤 마음을 서원하는 것에서 생기한 것으로,
보시 등을 행하는 것이 없는 것, 그 것이 願菩提心이다. 즉, 이와 같이 “일체 중생을 구하기 위해 부처가 되겠 다”고
바로 처음에 서원한 마음과 같다. 출발하는 것에 대한 마음 혹은 출 발하는 바로 그 마음으로, 그 마음의 자성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마음이 실제로 가는 것을 어디에서부터 執持하는데 즉, 율의를 받은 자가 加行하는 자량을
행하는 것, 그것이 行菩提心이다.31)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보리심은 서원을 세운 마음과 그 실천행으로 구 분할 수 있다. 보살이 자신의 종교적 실천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실천 규범 이라고 할 수 있는 보살계를 수지하는 절차가 요구된다. 수행자에게 계는 자신을 단속하고 그 청정한 행위를 유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32)는 점에 서 교법의 실천을 위해 반드시 요구된다.
여래께서 戒를 제정한 데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성문이 자신을 제 도하기 위해 戒를 제정한 것이고, 둘째는
보살이 스스로 제도하고 남도 제 도하기 위해 戒를 제정한 것이다. 성문과 보살이 뜻을 세워 戒를 받는 것 도 역시
이와 같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이 지키고 범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 다. [중략] 戒의 종류가 다르다. 菩薩戒는 [身·口·意]
三業의 선행을 體로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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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종보리심의 내용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양정연, 쫑카빠의 대승보살계사상 연구, 117~122 참조.
31) Byaṅ-chub-sems-dpaḥi spyod-pa-la ḥug-paḥi dkaḥ-ḥrel, D. No.3872 La.51a3-5 /byang chub la smon pa yin te/ sems de nyid dam de la sems pa'o/ /sems gang smon pa las skyes par gyur pa sbyin pa la sogs pa la 'jug pa bral ba de ni smon pa byang chub kyi sems te/ 'di ltar 'gro ba thams cad bskyab pa'i phyir sangs rgyas su gyur cig ces dang po kho nar smon pa'i sems lta bu'o/ /'jug pa nyid la sems pa'am 'jug pa nyid kyi sems te/ sems de'i rang bzhin yin pa'i phyir ro/ /sems snga ma sngon du song ba nyid gang nas bzung ste sdom pa len pa sngon du 'gro ba'i tshogs rnams la rab tu 'jug pa de ni 'jug pa byang chub kyi sems so/
32) 四分律, 대정장22, 569c “世尊. 今正是時 唯願大聖 與諸比丘結戒說戒 使修梵 行法得久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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聲聞의 戒는 身·口의 선행만을 體로 한다.33)
소승의 수행자들은 열반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욕망을 단속하기 위한 별해탈계를 수지하게 되지만, 대승의 보살은 자신과 중생, 즉 자리와 이타 를 위한 삼취정계를 수지하게 된다.
이와 같이 위에서 말한 온갖 自性戒등의 아홉 가지 실라(Śīa)는 세 가지 깨 끗한 戒로 총섭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니,
律儀戒, 攝善法戒, 饒益有情戒이 다. 이러한 세 가지 보살의 깨끗한 戒는 보살로서 하는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니, 律儀戒는 그 마음을 편안히 머무르게 하며, 攝善法戒는 스스로 불법을 성숙하게 할 수 있으며, 饒益有情戒는
유정을 성숙하게 할 수 있다. 이처럼 보살이 지어야 하는 모든 일을 총섭하니, 말하자면 현재의 法樂에 머무르며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몸과 마음에 게으름이 없어서 불법을 성숙하게 하고 유정을 성숙하게 한다.34)
그런데 여기에서 율의계는 바로 소승의 별해탈계를 말하는 것으로서 섭선법계와 요익유정계를 수지하는 근본이 된다. 이것은 대승의 수행자라도 자신을 단속하고 악을 끊기 위한 수행을 먼저 이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승의 경우는 염리와 출리심을 중심으로 자신만의 해탈을 추구하지만, 대승의 경우는 자리이타를 목표로 하고 보리심을 증장시키고자 한다. 따라 서 별해탈계가 小乘意樂의 범주에 머무는 경우는 소승계가 되는 것이고, 이타행을 위해 먼저 자신을 조율하는 율의계의 성격이라면 대승계의 범주에 서 논의되는 것이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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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攝大乘論釋, 대정장31, 233a “如來制戒有二種意。一為聲聞自度故制戒。二為 菩薩自度度他故制戒。聲聞菩薩立意受戒亦復如是。故此二人持犯有異 [중략] 戒 類不同。菩薩戒以三業善行為體。聲聞戒以身口善行為體.”
34) 瑜伽師地論, 대정장30, 522c~523a. “如是如上所說一切自性戒等九種尸羅, 當知 三種淨戒所攝, 謂律儀戒攝善法戒饒益有情戒. 如是三種菩薩淨戒, 以要言之, 能 為菩薩三所作事, 謂律儀戒能安住其心, 攝善法戒能成熟自佛法, 饒益有情戒能成 熟有情. 如是總攝一切菩薩所應作事, 所謂欲令現法樂住安住其心, 身心無倦成熟 佛法成熟有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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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을 논의하면서 보살계를 살펴보는 이유는 바로 살인과 같은 죄를 범했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이타심에 따라 행한 보살의 경우는 종교적으로 용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 부분은 좀 의문이 드는군요//도연) 쫑카빠(Tsong kha pa, 1357~1419)는 이러한 性罪 에 대해, 율의를 지키지 않으면서 스스로 대승이라고 하는 자들의 경우는 悲心과 보리심을 인발한 것처럼 하더라도 용인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이 유는 대승계에서 허용되고 있는 이러한 내용들이 여법하게 보살율의를 수 지한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기 때문에, 보살학처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 자 와 진정으로 원심을 일으키지 않은 자에게는 보살율의를 줄 수 없다고 밝 히고 있는 것이다.36)
2. 대승의 열반 사상과 행복
초기불교에서 열반은 貪瞋痴의 三毒에 의한 번뇌가 다하여 소멸하는 것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에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하고 열반에 이르는 것이 가장 궁극적인 목표였다. 이것을 도덕 실천의 측면에서 본다면, 단순 히 알거나 실천하는 것을 넘어서 성품의 차원에서 완전한 지멸37)을 이루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는 지향해야하는 것과 지멸해 야 하는 것이 설정되어 있고 부정적인 것을 여의고 긍정적인 것을 획득한다는, 즉 세간에서 출세간이라고 하는 일방적인 방향성이 전제가 된다.
그러나 중론에는 열반을 자성의 측면에서,
얻을 것도 없고 도달할 것도 없으며,
단멸한 상태도 아니고 상주하는 것도 아니며,
발생하는 것도 아니며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열반이라고 한다.38)
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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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양정연, 쫑카빠의 대승보살계사상 연구, 163.
36) 양정연, 쫑카빠의 대승보살계사상 연구, 106~107 참조.
37) 안옥선, 불교 덕윤리에서 부정적 성향의 제거 , 불교학연구, 제26호, 불교 학연구회, 2010, 251.
38) 中論, 대정장30, 34c. “無得亦無至 不斷亦不常 不生亦不滅 是說名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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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의 실상은 空, 무자성이라는 관점에서 열반 역시 무 자성이고 空이다. 따라서 열반에 대해,
생사를 떠나고서 별도로 열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실상의 뜻이 이러한데, 어떻게 [생사와 열반을] 분별하겠는가?39)
라고 말하는 것이다. 열반은 무자성이기 때문에 생사와 구별이 없다고 보는 중관의 실체적 측면이 유식에서는 그 체성이 본래 적정하다40)고 하는 ‘本來自性寂靜涅槃’으로 표현된다. 유식문헌에서는 대승장엄경론과 성유 식론을 통하여 초기불교와 달리 보살의 자리이타 사상이 강한 무주처열반 과 본래자성청정열반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41)
일체의 생사는 괴로움을 體로 삼고, 無我를 성품으로 삼는다. 보살은 괴로 움에 대해 여실한 지혜를 얻고, 무아에 대해
위없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 와 같이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 나서, 대비의 마음에서 유래하여 생사에 대한 염리심이
생기지 않는다. 수승한 깨달음에서 유래하여 또한 번뇌에 의한 괴로움도 없다. 그러므로 보살은 不住涅槃을 얻고 생사
에도 머무르지 않는다.42)
본래자성청정열반은 일체법의 모습이 진여의 이치인 것을 말한다. 번뇌에 오염되었다고 해도 본래 청정하며 무수하고
무량한 공덕을 미묘한 공덕을 지니고 있으며 [중략] 일체의 유정과 평등하게 함께 공유하고 있으며 [중략] 오직 진실한
성자만이 내면적으로 증득하는 것이다. 그 성품이 본래 적정하기 때문에 열반이라고 한다. [중략] 무주처열반은 [중략]
대비심과 반야로 도움을 받음으로써 생사와 열반에 머무르지 않고, 유정에게 이익과 안락을 미래세가 다하도록 하며,
항상 적정하기 때문에 열반이라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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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中論, 대정장30, 21b. “不離於生死 而別有涅槃 實相義如是 云何有分別.”
40) 瑜伽師地論, 대정장30, 544c. “當知涅槃其體寂靜.”
41) 관련된 연구는 최종남, 유가행파 문헌에 있어서 열반의 종류에 관한 연구 , 33~40 참조.
42) 大乘莊嚴經論, 대정장31, 637a. “一切生死以苦為體以無我為性。菩薩於苦得如 實知。於無我得無上覺。如是得知覺已。由大悲故於生死不生厭離。由勝覺故亦 不為煩惱所惱。是故菩薩得不住涅槃。亦不住生死。已說大悲不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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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43)
초기에 번뇌의 소멸이라는 열반의 정의가 대승의 무아와 공성, 보살의 이념인 자리이타의 성격과 결합하면서 무주처열반, 본래자성청정열반의 개념으로 긍정적이고 폭 넓게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살이 진정한 중생 구제의 이타심을 버리지 않고 행한 모든 행위는 설령 그 자체가 죄가 되는 性罪라고 할지라도 번뇌를 떠난 보리심의 마음에 서 행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 다. 보살이 열반에 들어가는 것과 윤회 세계에 다시 들어오는 것은 범부와 같은 번뇌를 없앴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서원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윤회 세계에서의 보살의 삶은 바로 열반의 상태와 다르지 않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초기불교와 달리 대승에서는 행복을 논의하는 데 두 가지 관점이 요구된다.
첫째, 열반의 개념을 확장시키거나 전환시켜야 한다.
둘째, 행복을 최종의 궁극적인 상태가 아니라 그 과정까지 포함해야 한 다.
초기에 열반 개념은 수행자 자신의 실천적 수행이라는 점에서 번뇌의 소멸이라는 現身의 측면과 윤회에서 벗어나는 사후의 측면으로 제시되었다. 이것은 항상하지 않는 조건에 따른 현상세계를 괴로움이라고 규정했을 때, 이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의 목표를 자신만이 아닌 중생 구제로 설정하는 보살은 번뇌에 따른 윤회의 고통이 아니라 보리심에 근거한 서원에 따라 주동적으로 윤회의 흐름 에 들어가는 실천 수행의 길을 선택한다.
행복을 정의하면서 궁극적인 것이며 自足(autarkeia), 즉 단독적인 것이 아 니라 더불어 사는 사람까지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고 행동의 목적44)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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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成唯識論, 대정장31, 55b. “一本來自性清淨涅槃。謂一切法相真如理。雖有客 染而本性淨。具無數量微妙功德。 [중략] 一切有情平等共有 [중략] 唯真聖者自 內所證。其性本寂故名涅槃。 [중략] 四無住處涅槃。 [중략] 大悲般若常所輔 翼。由斯不住生死涅槃利樂有情窮未來際用而常寂故名涅槃.”
44)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숲, 2013, 37~3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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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평생토록 유덕한 활동에 전념하는 사람에게 ‘행복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자질들을 갖고 있거나 앞으로도 가지고 있을 사람들, 즉 그렇다고 인정되는 사람들에 게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45) 이러한 점을 보살의 서원과 실 천 수행의 내용과 연관지어보면, 그 과정의 측면에서 행복이 논의될 수 있 음을 알 수 있다.
보살의 원심은 보살이 윤회 세계를 유전하는 데 중생 구제의 목적 방향성을 설정해준다. 보살계를 통하여 보살은 자리이타를 실천하는 종교적, 윤리적 실천 규범으로 목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자신을 지속적으로 조율하 게 된다. 보살은 윤회 세계에 머물기 때문에 번뇌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살계에는 오롯이 열반을 지향하는 율의계가 원심과 마찬가지로 근본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미 열반 성취를 위한 성품을 지니게 된다. 이와 같이 본다면, 원심을 지니고 자리와 이타의 완성을 추구하는 보살은 열반의 가능성과 지속된 실천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그 삶 자체가 행복의 범위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V. 결론
본 논문은 행복을 보통 ‘생활에서의 만족이나 흐뭇한 상태’로 정의하는 경우, 그것이 최종적 목적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때, 불교에서 대승 보살 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불교에서도 행복은 괴로움이 없는 궁극적인 것으로 설명되고 그 종교적 완성인 열반이 행복인 것으로 표현된다. 초기에는 이 세상이 항상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괴로움이고 따라서 번뇌에 따라 윤회하게 되는 사슬에서 벗어 나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행복에 대한 정의가 번뇌를 여의 고 윤회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한정하는 경우, 중생 구제의 서원을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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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51~5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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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 세계에 기꺼이 들어서는 대승 보살의 경우는 행복의 논의 대상 에서 제외되어 버린다.
보살의 이러한 실천 수행의 과정이 행복의 범주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에 대한 정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행복 에 대한 정의에서 궁극적인 것이면서도 자신뿐만 아니라 더불어 사는 다른 사람까지 포괄해서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보살의 실천 수행은 자신과 중생의 열반을 성취하기 위한 보리심의 발현에 따른 것으로서 모든 행위가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보살은 이미 열반을 성취할 능력과 가능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중생 구제라는 자비심에 따라 그 짐을 스스로 지고 윤회 세계에 들어온다. 범부의 경우는 번뇌에 속박되어 윤회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보살은 이미 수행을 통하여 번뇌에 오염되지 않는, 열반을 위한 성품을 지속적으로 완성시킨다. 그들은 서원을 통한 보리심의 발현을 위해 윤회 세계에 머물며 자리와 이타의 성숙을 위해 궁극적인 깨달음의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윤회의 과정에서 보살은 무아와 공이라는 실체적 측면에 대한 지혜와 욕망의 조절을 통해 성품의 완성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따라서 열반이나 윤회 세계에 머무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분별이 있지 않으며 열반을 위한 그 과정 역시 차이가 없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궁극적인 목적’으로 정의되는 행복에 대한 논의는 그 실천 과정까지 포함하여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불교의 행복 개념과 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