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설거사의 아내와 딸
동봉스님(월간불광 198호)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 647)은 16년간 재위하면서 분황사를 창건하고 황룡사 구층탑을 세우며 첨성대를 건립하는 등, 불교는 물론 천문학에까지 깊은 관심을 가졌던 장한 여성이다.
자장율사를 중국에 보내어 중국의 불교와 문화를 수입하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신라시대에 이미 여성이 국가를 통치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현실을 민주주의국가라 자칭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관심과 자부심을 갖게 하며 또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정무위원들이야 또한 그렇다 하더라도 그 흔한 지역구 입법위원들 중에 여성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것은 그 잘난 유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민족의 살갗 밑으로 흐르는 여성 경시풍조의 핏줄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러한 사상은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데서 생겨나는 인간불평등의 풍조일 뿐만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 느끼는 감성들이기도 하다.
앞으로 지자제선거를 눈앞에 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봄직한 일이다. 여성들이 어느 정도나 후보로 등장할지도 의문이지만 과연 여성들에게서 얻는 표는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사회에 진출하여 당당하게 국정을 논하고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오직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바로 이 선덕여왕 때 부설이라는 유명한 선객이 있었다.
그는 출가와 재가를 초월하여 하나의 뛰어난 수행자였다.
그는 환속한 뒤 거사라는 꼬리를 달고는 있으나 어쨌든 발군의 선각자요 선사였다.
선사(禪師)란 출가인에게만 붙여주는 출가인의 독점물이 아니라 출가와 재가, 남성과 여성을 막론하고 누구나 그 경지에 도달하면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부설이 깨달음을 이루어 한국불교계에 재가자로서의 확고한 자리를 인식시켜 준 데에는 부설 자신의 수행도 수행이려니와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의 힘이 컸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설의 부인인 묘화(妙花)는 말한다.
“내 비록 아녀자로서 당신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는 했으나 당신이 최고의 깨달음을 구가하기 위해 수행한다면 내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오직 당신을 위해 돕겠소.”
수행하는 데에는 다섯 가지 인연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는 외호연(外護緣)이다. 정치적으로 늘 보호를 받아야 함이다.
둘째는 단월의 연(壇緣)이다. 경제적인 문제를 신도들이 해결해 주어야 함이다.
셋째는 납자연(衲子緣)이다. 즉 도반들이 올바라야 한다.
넷째는 도연(道緣)이다. 도를 닦을 수 있는 인연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연(內緣)이다. 안으로 갖추어진 기본적인 신앙심과 결정된 의지가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부설은 이미 다섯 가지 인연이 구족된 셈이다.
불심이 깊은 선덕여왕의 치세하에서 외호를 받았으니 이보다 더 좋은 외호연은 다시 없을 것이요, 단월의 연과 납자연은 부인이 해 주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도연도 마찬가지다.
부설은 그 스스로 내연만 있으면 된다.
부인은 남편을 향해 한때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신을 연꽃으로 피워내기 위한 밑거름이 되겠소. 당신의 흙탕물이 되겠습니다. 언젠가는 나를 바탕으로 해서 당신은 훌륭한 선각자가 될 것이요. 진흙탕을 바탕으로 하여 피어나는 아름다운 연꽃처럼 말이오.”
묘화(妙花)란 곧 묘법연화(妙法蓮花)를 뜻하는 이름이다. 묘법은 연화로 비유된다. 묘법은 사바세계에서 탄생하는 법이다. 마치 연화가 번뇌로 비유되는 진흙탕에서 피어나듯이 말이다. 부설은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비로소 그 공덕이 부인과 아들 딸에게 있었음을 시인한다. 묘화 부인과 아들 등운, 딸 월명이 없었다면 자신의 깨달음은 불가능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고귀한 생각인가.
거름이란 항시 지저분한 법이다. 온갖 곡식들을 길러내고 초목을 무성히 자라게 하는 거름은 지저분하다. 깨끗한 거름은 없다. 유마경에서는 말한다. “연꽃은 맑고, 깨끗한 허공에서는 필 수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깨달음은 출세간에서는 불가능한 법이다. ”라고. 사람은 남에게 항상 좋은 사람으로 남기를 원하다. 착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비춰지길 바란다. 깨끗한 사람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그런데 묘화는 그 스스로 남편에게 남편의 깨달음을 도와주는 밑거름이 되길 바라고 있다.
항상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써만 인식되길 바라지 않는다. 때로는 악처의 역할도 서슴치 않는다. 딸 월명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월명은 부친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환속한 수행자의 딸이라는 꼬리가 붙은 것이 늘 불만이었다.
“아버지는 그 훌륭한 출가자의 길을 떠나 환속한 처지에 무슨 도를 닦겠다고 하십니까?”
부설은 자존심이 상한다. 영희 • 영조 두 도반들에게 당하는 자존심도 자존심이려니와 특히 제 속으로 낳은 딸에게조차 그런 얘기를 들을 때는 마음으로부터 커다란 분심이 일곤 하는 것이었다.
월명은 나중에 출가하여 위대한 고승이 되었으며 변산(邊山)에 월명암(月明庵)을 지어 후학들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묘화 부인은 부설이 입적한 뒤 그 동안 미뤄왔던 자신의 공부를 시작한다. 자신의 공부를 미뤄온 것은 오로지 남편의 공부 뒷바라지 때문이었다. 그녀는 염불삼매에 들기를 잊지 않았다.
자나깨나 오직 아미타불을 생각하고 극락세계를 관상(觀想)하며 아미타불 명호를 염송한다. 아들과 딸이 이미 출가하고 나니 더욱 홀가분해진 자신을 돌아본다. 남편을 도와 깨달음을 이루게 한 자부심을 뿌듯이 느끼면서 아들과 딸의 성불을 염원한다.
부설은 묘화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파계한 뒤 재가불가자의 길을 걸었으며 항상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기를 원하였으며, 묘화는 부설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사랑을 배웠고 참된 인생이 무엇인가를 터득한 것이다.
어느 때 묘화는 부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진(眞)과 속(俗)에 대해 어떻게 생가하십니까?
선(禪)과 정(淨)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부설은 진과 속, 선과 정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부설의 얘기가 끝나기를 기다려 묘화는 웃으면서 말한다.
“얘기가 너무 장황하군요.” 그러면서 그녀는 손바닥을 펴서는 앞뒤로 한 번씩 뒤집어보고는 자리를 뜬다. 부설은 비로소 부인의 경지가 자신의 경지보다 한 수 위임을 깨닫는다.
세간과 출세간의 관계란 바로 손바닥과 손등으로 비유된다.
손등과 손바닥은 모두 손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
때까지 부설은 자신이 환속한 것에 대하여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오로지 선(禪)만이 최고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부인의 일착자(一着子)를 보는 순간 그의 고정관념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대신 모두를 하나로 보는 툭 트인 한 생각이 자리함을 깨닫는다.
부설은 선과 정토를 둘러보았으나 묘화는 선과 정토가 본디 하나임을 깨우쳐 준다.
묘화 부인은 백세가 넘도록 장수하면서 아미타불 염불삼매에 들곤 했는데 마침내 아미타불의 영접을 받아 극락세계에 태어난다. 묘화 부인은 그 자신 아미타불이 된다.
그리하여 부설의 선(禪)과 자신의 정토를 하나의 고리로 연결시킨다.
오늘날 우리 여성들은 어떠한가.
그들 역시 남편과 자녀의 완성된 행복을 위해 자신의 공부를 뒷전으로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오직 자비만으로.
첫댓글 저희 엄마도 이글대로 그렇게 살아오신거 같네요...엄마한테 잘해드려야겠어요...엄마!엄마두 공부 멈추지말구 자신의 인생을 좀더 즐기셔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