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 문씨(南平 文氏)는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을 관향으로 삼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문다성(文多省)은 고려 개국공신이다
문씨(文氏)의 선계는 마한, 백제의 토착 성씨이라고 한다. 남평 문씨의 시조 문다성(文多省)은 고려개국 벽상공신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지고 무성(武成)의 시호를 받았다. 이 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남평을 관향으로 하고 있다. 문다성은 남평현(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출신이었다. 갓난 아기 때 남평현의 장자못이라는 연못가의 높은 바위 위에서 발견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장자못가에 문암(文巖)이라는 전설 속의 바위가 남아 있다.[1]
시조에서 중시조까지는 해석상 모순이 있어 1731년 장흥 월천서원 발간한 남평문씨 최초의 족보인 신해보에서 문익(文翼)을 중시조(1세조)로 하였고 이후 최초의 합의된 대동보에서도 중시조를 1세로 하여 세계를 정리하였으며 최신의 대동보도 이를 따르고 있다.
중시조 문익(文翼)은 고려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해 헌종 1년(1095) 근신으로 보제사 상량준비문 받고, 숙종3년(1098) 찬선대부, 급사중(종4품)을 거쳐, 1099년 3월(숙종4년) 요나라에 원자 책봉 임무를 마치고 좌복야에 승진하였다. 1102년 직문하성사로 서북면 병마사를 하고, 1103(숙종8년) 우산기상시(정삼품)로 승진하고, 예종 3년(1108) 병부시랑지어사대사 충상장군 병부상사, 1112(예종7년) 참지정사(종2품)로 누진하였다. 시호(諡號)는 경절(敬節)이다.
남평 문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8명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