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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몽구(夢龜) 가. 생졸 : 1564 ~ 1597.6.16(선조 30년) 나. 파명 : 기성군파(16세손) 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내용 ▶ 2월 초1일 [양력 3월 14일]<임진>새벽에 망궐례를 했다. 가랑비가 잠간 뿌리다가 늦게야 개었다. 선창(여수시 연등동 입구)으로 나가 쓸만한 널빤지를 고르는데, 때마침 방천안에 몽어 떼가 밀려 들어 왔기로, 그물을 쳐서 이천 마리를 잡았다. 참으로 장쾌했다. 그 길로 전선 위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우후 이몽구(李夢龜)와 함께 새 봄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라. 대쥬신 제국사의 권5에 실려있는 내용을 재편집 본 ▶ 제 2차 출전(사천, 당포, 당황포 율포해전)
5월 27일 원균은 왜 함대 10여 척이 사천포와 곤영까지 쳐들어와서 그의 잔존 함대 3척을 이끌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인 노량까지 도망쳐 왔다는 공문을 이순신에게 보냈다. 사천포는 전라좌수영에서 불과 50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순신은 이억기 전라우수사에게 지원하라 요청하고, 자신은 먼저 23척의 전선만을 거느리고 출전하였다. 이 때 유진장에게 윤사공을 임명하고, 조방장 정걸에게 후방의 지휘를 맡겼으며, 그 자신은 우후(虞候:부사령관) 이몽구를 데리고 출전하였다. 5월 29일 제 2차 출전은 여수에서 출발하여 사천으로 향했다. 하동을 지나자 숨어있던 원균이 함선 3척을 끌고 합류하였고 함대는 노량을 거쳐 사천으로 계속 항진하였다. 사천에 당도하니 사천 포구에는 12척의 대형함이 정박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밀물이 될 때까지 기다려 적선을 완전히 격멸시켜 버리고 왜적 2600명을 도살하였다. 사천의 함대를 격멸하고 6월 2일 오전 10시경, 찾고 있던 왜적의 대장선이 당포에 있음을 발견하고 포구 입구를 막고 전투태세를 취하였다. 이에 왜적들도 정예함 아타카 함을 앞세우고 공격태세를 취하였다. 이때의 함대는 가메이 고레노리 함대로서 이순신의 함대를 향해 쳐나오고 있어 곧바로 본격적인 해전이 시작되었다. 이순신은 학익진의 깃발을 올리고 거북선을 앞세워 진격해 들어갔다. 돌격 대장 이언량은 거북선을 이끌고 맹렬히 돌격해 적의 기함 아타카를 노렸다. 거북선은 기함의 밑을 치고 들어가 거북 머리의 현자포로 적장 고레노리를 향해 발사했고, 정확한 현자포는 고레노리가 서있던 층루를 무너뜨렸다. 고레노리는 아래층으로 굴러 떨어졌고 부사령관 이몽구가 적선에 뛰어들어 고레노리의 목을 베었다. 이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서 고레노리가 받은 임명장이 적힌 금부채를 빼앗아 왔다. 이후의 전투는 기함을 잃고 허둥대는 왜함대를 이순신의 함대가 학익진과 정자 타법을 이용해 철저하게 격파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 함대는 기함을 포함한 적선 21척을 격파하고 2820명을 도살하였다. 이순신 함대는 당항포 해전 후 율포에서도 3척의 적함을 격침하고 3척을 나포하는 전과를 올렸는데 제 2차 출전의 전과는 다음과 같다. 적함 69척 격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