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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락리 경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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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순 시인방 스크랩 방울새는 청포묵장수를 울리지 않았어요
권창순 추천 0 조회 18 13.10.16 21: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40489

권창순 창작동화

 

방울새는 청포묵장수를 울리지 않았어요

-순수한 새들만의 이야기로 꾸며 보았습니다

 

방울새 쪼록이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답니다. 쪼로로록, 쪽쪽쪽!

어디 그뿐인가요. 포르르르~ 날 수도 없지요. 하늘을 날 때면 노란색의 큰 띠 모양이 선명한 날개. 그 날개가 굳어 버렸으니까요.

방울새 쪼록이는 갈증 때문에 뭉툭해진 부리로 냇물을 찍어봅니다. 그러나 목이 아파 두어 모금밖에 넘길 수가 없습니다.

‘방울새가 아니야, 절대로! 청포묵장수를 울린 건 파랑새라구!’

방울새 쪼록이는 재판관의 판결에 승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먼 길을 걸어 동학산 아래까지 온 것입니다.

몇 해 전, 방울새 쪼록이는 새들의 재판관에 의해 두 가지 벌을 받았습니다. 절대 날아다니지 말 것. 절대 노래를 부르지 말 것.

방울새 쪼록이가 벌을 받게 된 이유는 그 옛날 방울새조상들이 청포묵장수를 울렸는데 그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재판관님, 전래 동요를 들어 보세요. 청포묵장수를 울린 건 파랑새가 분명해요. 방울새는 결백해요.”

방울새 쪼록이는 재판관에게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재판관은 얼음처럼 차갑게 판결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순박해서 색깔 구분을 분명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녹두꽃과 녹두꼬투리를 따먹는 너의 조상방울새들을 보고 파랑새라고 했을 뿐이다. 공개할 순 없지만 확실한 증인도 많다. 그러므로 방울새 쪼록이는 유죄!”

탁! 탁! 탁!

재판관은 재빠르게 나무망치를 세 번 치고는 퇴장해 버렸습니다.

그 후로 쪼록이는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숲에서도, 냇가에서도, 들판에서도 아무도 쪼록이를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방울새친구들도 쪼록이를 외면했습니다.

“쪼록이는 바보! 인정한다고 고개만 끄덕여도 될 걸. 왜 고집을 부려서 벌을 받아.”

“뭐, 혼자만 결백하다고? 그래 잘났다.”

“쪼록이는 노래도 못하고, 쪼록이는 날지도 못하는 못난이래요!”

친구들의 조롱에 쪼록이는 너무 외로웠습니다. 쪼록이가 외로움을 달래려고 속삭이듯 노래를 불러도, 냇가를 살짝만 날아도 어느새 고자질을 당했습니다.

쪼록이는 결코 노래를 부르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노래가 부르고 싶으면 그루터기에다 부리를 마구 박았습니다. 다시는 날지 않겠다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는 동안 쪼록이의 마음엔 미움만 가득 찼습니다.

“나, 쪼록이만 빼고 방울새들은 다 바보야.”

방울새 쪼록이는 냇가를 뒤뚱뒤뚱 걸으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럴 때면 언제나 조약돌이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쪼록아, 친구들을 미워하지 마.”

“날 외톨이로 만들었는걸. 난 그들이 미워서라도 어떻게든 진실을 밝혀낼 거야.”

“밤이 오면 별이 빛나듯 언젠가 진실도 그렇게 빛을 낼 거야.”

“아니야. 진실은 당장 찾아내야 하는 거야. 우리 방울새는 결코 청포묵장수를 울리지 않았거든. 난 떠날 거야. 확인하러.”

“어디로?”

“방울새조상님들이 살고 있는 동학산 아랫마을 녹두밭으로.”

“힘들 텐데”

“걱정 마.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다 말씀해 주셨어. 녹두꽃 그림도 주시고.”

쪼록이는 다시 뒤뚱뒤뚱 걸으며 엄마를 생각했습니다.

“우리 방울새조상님들이 그 청포묵장수를 울리지 않았죠?"

“또 그 얘기구나. 너도 다른 애들처럼 살았으면 좋으련만.”

오랫동안 누워 지내던 엄마가 조용조용 말했습니다.

“옛날 동학산 아랫마을에 마음씨 착한 청포묵장수가 살았단다. 그는 녹두를 사다가 청포묵을 만들어 팔았지. 그래서 보리쌀도 사고 아픈 어머니 약도 샀단다. 가난했지만 참 행복했지. 그런데 어느 날 청포장수는 슬프게 울고 말았단다. 녹두를 구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파랑새 때문이죠?”

“그래, 파랑새가 녹두밭을 다 모두 망쳐놓았기 때문이지. 네 외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란다.”

“엄마는 녹두밭에 가 보셨나요?”

“아니. 싼 수입 녹두 때문에 누가 그 농사를 지어야 말이지. 어릴 적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한 엄마는 네 외할머니의 말씀대로 녹두꽃을 그리곤 했을 뿐이다.”

“엄마, 동학산 아랫마을에 가면 녹두꽃도 볼 수 있고 청포묵장수도 만날 수 있나요?”

“그 옛날, 그 먼 길을 너 혼자 어떻게.”

“그 곳에 가면 우리 방울새조상님들도 만날 수 있죠?”

“만날 수야 있지만, 가엾은 내 새끼.”

엄마방울새는 방울같은 쪼록이의 머리를 부리로 부비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날개죽지 속에 고이 간직했던 그림 한 장을 꺼냈습니다. 엄마방울새는 쪼록이를 보며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녹두꽃 그림을 잘 간직하여라. 부디 용기를 잃지 말고. 이 엄마는 어디서나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부디 착하게 살아다오.”

엄마방울새는 울먹이는 쪼록이를 꼬옥 안아주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방울새 쪼록이는 눈물을 닦으며 뒤뚱뒤뚱 동학산을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동학산 골짜기를 한참 오르다 보니 너럭바위위에 짚신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방울새 쪼록이가 다가가자 떡거머리 총각 돌쇠의 짚신이 조롱하듯 말했습니다.

“너, 파랑새지?”

“아냐! 난 방울새야!”

“웃기지 마. 넌 분명 파랑새야. 어저께 돌쇠 주인님을 따라 산 넘어 아랫마을로 품앗이 갔을 때 보았어. 너와 닮은 수많은 새들이 날아다니는 걸. 밭주인은 그 새들 때문에 올해에도 청포묵장수가 울고 가겠다고 했어. 그런데 좀 이상하긴 해. 파랑새라면 왜 진한 하늘색 깃털이 없는 거지?”

“난 방울새라니까 그러네. 내가 보여주지!”

방울새 쪼록이는 답답한 마음에 푸른 하늘로 날아올라 정말 그 새들하고 닮았는지 확인해 주고 싶었습니다. 녹색이 조금 섞인 날개를 활짝 펴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날려고 몸부림치던 방울새 쪼록이는 뒤뚱거리다 돌부리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날지도 못하는 파랑새래요.”

“뒤뚱거리는 파랑새래요.”

짚신들이 놀려대자 쪼록이는 뒤뚱뒤뚱 달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돌쇠 짚신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래, 그래, 방울새야. 녹두밭 근처에는 쥐구멍도 많단다. 그렇게 부끄러우면 얼른 가 숨으렴. 하하하하!”

‘뭐! 쥐구멍?’

방울새 쪼록이가 달리기를 멈추고 뒤돌아섰을 땐 아이들이 우르르 바위위로 올라와 짚신을 꿰차고 저만큼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쪼록이가 동학산 정상에 올랐을 때 산 아랫마을은 단풍잎처럼 곱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재판관은 아주 현명하다네. 착한 청포묵장수를 울린 건 방울새니까. 깔깔깔깔.”

“불쌍한 방울새, 이젠 날지도 못하는구나. 그래도 우리 파랑새님들께 항상 감사하며 살라구. 호호호호.”

“왜냐구?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청포묵장수를 울린 건 우리 파랑새라고 믿고 있으니까. 좀 억울하긴 하지만 방울새들을 위해 영원토록 자비를 베풀지. 하하하하.”

‘방울새는 결백하다구.’

방울새 쪼록이는 얄미운 파랑새들의 말을 잊으려고 더 부지런히 밤 산길을 걸었습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말입니다.

방울새 쪼록이가 동학산 아랫마을 동구에 도착하였을 때입니다.

“방울새야, 춥지? 조금만 기다리면 따스한 햇살이 내릴 거야.”

지친 쪼록이를 보며 안타깝게 말을 건넨 건 풀잎이슬이었습니다.

“그럼, 넌 사라지잖아.”

“아니야, 내가 햇살을 사랑하는 거야.”

“사랑한다구?”

“그래. 먼저 사랑하면 가만히 있어도 빛을 내거든. 그리고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방울새야, 먼저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 봐.”

“하지만 난 결백한 방울새야. 빨리 그걸 증명해야만 해.”

방울새 쪼록이는 뒤뚱거리며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길을 달렸습니다. 방울새 쪼록이가 숨을 몰아쉬며 잠시 어느 초가집 울타리 옆에 멈추어 섰을 때였습니다.

“아범이 청포묵을 만들어 팔아야 보리쌀도 살 텐데. 그래야 어린것들이 또 굶지 않고. 녹두밭이 온통 파랑새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마른기침 섞인 할머니의 슬픈 목소리를 듣자 방울새 쪼록이는 더욱더 파랑새와 친구들이 미웠습니다.

방울새 쪼록이는 청포묵장수가 보고 싶어 울타리 구멍으로 조심조심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청포묵장수는 보이지 않고 할머니 한 분만 콜록거리며 먼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었습니다.

넋을 잃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자 방울새 쪼록이는 견딜 수 없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방울새 쪼록이는 골목길을 빠져나와 들판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달리던 방울새 쪼록이가 그만 밭두렁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녹두밭을 망친 게 바로 우리 방울새!’

쪼록이 앞에는 엄마가 주신 그림과 똑 같은 녹두꽃이 천지였습니다. 그 녹두밭엔 방울새 쪼록이와 꼭 닮은 새들로 가득했습니다.

“엄마! 우리 방울새가 착한 청포묵장수를 울렸어요. 우리 방울새가 녹두밭을 망쳤어요.”

쪼록이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가 계신 파란 하늘을 바라다보았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쪼록이의 슬픈 모습을 지켜보던 조상 방울새들이 포르르~ 날아왔습니다.

“애야, 울지 마라. 우린 결코 녹두꼬투리를 따먹지 않는단다.”

쪼록이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럼 누구예요?”

“우리도 모른단다.”

“제발 변명하지 말아요. 저렇게 녹두밭 위를 날아다니는 게 그럼 파랑새인가요?”

“우리 방울새들이지. 하지만 우린 미래에서 온 후손방울새에게 맹세할 수 있단다. 결코 녹두꼬투리를 따먹은 적이 없다고!”

“거짓말! 거짓말이예요.”

“우리 후손방울새 쪼록아, 녹두밭을 자세히 보렴. 녹두밭을 날아다니는 건 분명 우리 방울새들이다. 그러나 우린 녹두잎을 갉아먹는 배추벌레를 잡아먹을 뿐이란다.”

한 조상방울새가 부리에 문 배추벌레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그럼, 왜 결백을 주장하면 않나요?”

“결백한데 왜 주장을 하니?”

“주장하지 않거나 그걸 증명하지 못하면 바보가 되고 왕따를 당하기 때문이예요. 모든 새들에게 우리 방울새들의 진실을 보여 주세요. 네?”

“진실은 언젠가 빛을 낸단다.”

“아니예요. 진실은 당장 밝혀내야 하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넌 욕심쟁이구나. 너 하나만을 위해 모두가 나서주길 바라는.”

“아니예요. 방울새 모두를 위해서예요.”

“그렇다면 저 녹두밭 위를 한 번 날아보렴. 그리고 쪽쪽쪽! 쪼로로록 쪽쪽쪽! 하고 노래를 불러보렴. 가슴이 펑 뚫릴 거야. 넌 할 수 있어.”

“그래, 넌 할 수 있어. 네 결백을 네가 믿는다면!”

“배추벌레는 꿀맛이란다.”

조상 방울새들이 배추벌레사냥을 위해 일제히 날아올랐습니다. 그러나 방울새 쪼록이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지고 조상방울새들이 냇가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녹두밭엔 노란 별빛이 출렁거렸습니다.

“난 날 수 없어. 노래도 부를 수 없어. 너무 오랫동안 날지도 않고 노래도 부르지 않았거든. 그리고 여기까지 오느라 난 너무 지쳤어. 그리고 결백을 주장하지 않는 조상님들께 정말 실망했어. 모두 미워. 우린 바보처럼 살았어. 너무 억울해. 억울하다고.”

깜빡 잠이든 쪼록이는 낯익은 목소리에 놀라 깨었습니다.

“쪼록아, 넌 할 수 있어. 내가 햇살을 사랑하는 것처럼 해봐.”

“먼저 사랑하라고?”

“그래.”

“짧은 시간 진주처럼 빛나는 건 싫어.”

“꿈이 이루어지는데 시간이 길고 짧은 건 중요하지 않아. 파랑새를 사랑한다고, 재판관도 사랑한다고, 네 친구들도 사랑한다고, 조상님들도 사랑한다고 소리쳐봐. 먼저 사랑하면 모두가 정다울 거야. 사랑하면 진실은 더 빨리 빛을 내 거든.”

“내 마음에 미움이 가득한대도?”

“그래.”

아침이슬은 햇살에 진주로 빛나다 사라졌습니다.

‘그래, 사랑한다고 외쳐보는 거야.’

방울새 쪼록이는 목의 아픔을 참으며 소리쳤습니다.

“파랑새를 사랑한다! 재판관도 사랑한다! 모든 방울새도 사랑한다! 조상님들도 사랑한다! 나도 사랑한다!”

이때였습니다.

쪼로로록, 쪽쪽쪽!

순간 쪼록이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은 쿵덕쿵덕 절구질을 하였습니다.

“정말, 네 노래는 이슬이 구르듯 아름답구나!”

“언제나 그런 노래를 부르렴!”

쪼록이는 조상방울새들과 함께 포르르~ 녹두밭 위를 날고 있는 자신을 보며 더욱 놀랐습니다.

“내가 내 결백을 믿고 먼저 사랑하면 이렇게 즐겁구나.”

“그래, 우리들 후손방울새 쪼록아, 네가 자랑스럽구나.”

“부디 조심해서 잘 가거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언제나 정직하면 된단다. 그리고 먼저 사랑해라. 그러면 미워하거나 분노하지 않을 거야. 다시 말하지만 진실은 그 다음의 문제거든.”

쪼록이는 엄마의 그림이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녹두밭을 한 번 더 포르르~ 날았습니다. 그리고 동학산을 향해 힘차게 날개를 퍼덕였습니다.

“모두 안녕히 계세요.”

쪼록이가 날아간 동학산으로부터 짙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녹두밭 둑 밑 작은 구멍마다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보, 잠도 충분히 잤으니 밤새 또 포식을 해보자구요.”

“그런데 등줄쥐님의 집 입구를 막고 있는 이건 또 뭐야.”

“아빠, 그 귀찮은 증인 출석통지서 아닌가요?”

“끝난 재판을 다시 하잔 말인가.”

“혹시 모르죠. 하지만 이번에도 방울새들에게 뒤집어씌 우자구요.”

“멋진 생각이오. 우린 밤새워 맛난 녹두꼬투리나 몽땅 갉아 먹읍시다. 하하하하.”

등줄쥐가족이 구멍을 막고 있던 녹두그림을 밀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리고 침을 꿀컥꿀컥 삼키며 녹두밭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웃 등줄쥐가족들도 하나 둘 녹두밭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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