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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함께 멀어져간 북벽의 꿈
알프스 호랑이 원정대, 악천후로 그랑조라스 북벽 포기 후 드루 남벽 등반.
축 처진 어깨 셋.
끝없는 메르 드 글라스 빙하를 타고 힘없이 걸어 내려오는 어깨 위에 얄궂게도 비까지 내려준다.
레쇼 산장(Refuge de Leschaux, 2450m)에서의 사흘 동안의 기다림 끝에 일단 후퇴. 등반이라는 행위를 가로막는 궁극의 적 날씨의 힘 앞에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랑조라스 북벽 등반을 위한 전초기지 레쇼 산장에서 보낸 사흘 동안의 우리의 일정. 자고, 먹고, 북벽보고, 또 자고, 또 먹고, 또 올려다 보고… 아, 한 가지 더. 한숨쉬고…(우리가 뱉은 육두문자가 273만개는 될테다) 그러는 동안 눈으로는 워커 스퍼(Walker Spur)를 수십 번 올랐다.
샤모니에 도착했을 때 우리 숙소 알펜로제의 조문행 사장이 8월에 이런 날씨는 처음이라고 했었는데, 정말 하루 걸러 하루씩 비가 온다. 그럼 북벽엔 눈이 착실히 쌓인다. 서른 일곱 동갑내기 셋이 37년 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 사상, 성향, 철학, 여성에 대한 취향, 이 따위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비슷하지 않을 테지만 이 순간 우리 셋 가슴 속엔 똑 같은 단 하나의 염원 뿐이었다. 딱 사흘만!!! 쨍한 날 딱 사흘만 주라!!! 이틀 눈 녹고, 하루만에 넘어가 주마!!! 하지만 그 순간에도 비는 쏟아지고 있었고 하염없이 레쇼에서 죽치기엔 우리의 원정일정이 너무 짧았다(사실 산장비의 압박도…).
결국 일단 몽블랑(Mont Blanc, 4807m)을 먼저 다녀오기로 하고 후퇴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시작은 꼭 1년전이었다.
주영이와 요세미티 엘캐피탄을 등반하고 하산하던 길, “우리 내년엔 뭐할까?” “아이거 갈까?” “그랑조라스 가자!” “그라자!”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알프스 원정. 주영이는 이미 수년 전에 마테호른을 북벽으로 올랐고 3대 북벽을 꿈꾸고 있었다. 몇 해 동안 함께 산에 다니면서 나도 녀석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난 아직 그만큼의 꿈을 꿀 준비가 안되어있어서 그저 나도 언젠가는 가 보고 싶다 정도였지. 작년 요세미티 원정을 함께 하면서 녀석이랑 간다면 어디든 가겠다 싶었고 흔쾌히 콜~을 외친 것이다. 둘의 작당에 뒤늦게 호은이까지 합류했다. 차. 호. 은. 뭐 내가 설명해서 뭐하나. 5.14, 로체 남벽 원정… 이 정도? 주영이랑은 어려서부터 절친이지만 나랑은 2년 전인가 인수봉을 함께 등반한 게 다였다. 등반밖에 모르는 조용한 친구, 주영이에 호은이면 호랑이가 날개를 단 거다. 이렇게 셋이 모이니 호랑이띠 셋이 호랑이 해에 그랑조라스를 가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알프스 호랑이 원정대”란 이름까지 거창하게 붙였다. 사실 동갑 친구들끼리 원정 한번 가자는 말은 벌써 몇 해 전부터 나왔었는데 이제서야 성사가 됐구나.
지난 겨울 빙벽을 시작으로 정말 빡센 훈련이 이어졌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어떻게든 등반을 하고, 거의 매일 암장운동과 운동장 달리기를 소화했다. 어떤 날은 등반과 운동을 10시간이나 한 적도 있었다. 훈련하는 동안 체중이 5Kg이나 빠질 정도였으니. 난 아마추어인데… 그래도 친구들한테 민폐는 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었다.
70여일간의 미국 등반여행을 마치고 출국 사흘 전에 입국한 호은이도 벌써 새까맣게 그을린데다 체지방률 0%의 준비된 몸이었다. 든든했다. 아쉬운 건 함께 가서 지원조를 자청했던 주영이 처 세헌씨가 갑자기 둘째를 갖게 돼 함께 가질 못하게 된 것.
16일 일정으로 알프스를 찾은 우리의 목표는 일단 두 가지. 그랑조라스 워커스퍼와 몽블랑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몽블랑을 세 번이나 찾았지만 등정을 못했고 주영이랑 호은이도 아직 못올라봤기 때문에 몽블랑도 꼭 해야 한다. 일단 두 과제를 끝내게 되면 나머지는 그 이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드루나 에귀 디 미디 남벽 등반을 하거나, 스위스 제네바 관광을 하면 되겠지(가기 전엔 온통 핑크빛이니까).
샤모니 알펜로제에 짐을 푼 우리는 다음날 아침 바로 에귀 디 미디(Aiguille du Midi, 3842m)로 향했다. 시간을 아끼자. 발레 블랑쉬 설원에 텐트를 치고 1박2일 고소적응 후 그 다음날 바로 출정이다.
몽땅베르(Montenvers)에서 산악기차를 내려 바다에 비유된 거대한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 빙하를 따라 하염없이 오르다보면 4시간 후 절벽에 매달린 성냥갑 같은 레쇼 산장을 만나게 된다. 셋 다 레쇼까지가 처음이라 함께 올라가는 그 동네 등반가들 뒤를 따른다. 그런데 이 사람들 하나같이 레쇼까지 가질 않는다. 다들 그 전에 있는 쿠베르클(Refuge du Couvercle, 2687m) 산장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올해는 날씨가 안좋아서 그랑조라스 등반은 물론이고 레쇼 산장까지 오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렇게 사흘간의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레쇼에서 내려온 우리는 쉴 틈도 없이 다음 날 다시 에귀 디 미디로 올라섰다. 눈이 많이 왔지만 지금이 아니면 올해도 몽블랑에 못간다.
많은 이들이 비교적 무난하게 오르는 몽블랑 노멀루트인 구떼 루트 쪽은, 구떼(Refuge du Gouter, 3817m) 산장 아래에 있는 떼떼 루즈(Refuge de Tete Rousse, 3167m) 산장 부근의 그리아즈 빙하(Glacier de la Griaz) 붕괴 위험 때문에 산악기차가 종착역인 니 데글(Le Nid d’Aigle)까지 올라가지 못한다고 하여, 좀 힘들어도 일명 “The Three Monts Route”로 불리는 트레버스 루트를 택한 것이다.
마침 숙소에 함께 묵었던 코오롱등산학교 김태삼 선생님 왈 “니들 정도면 그쪽으로 가야지. 할 만 할거야.” 이런… 신설이 40Cm나 쌓인 4,000m봉 세 개를 올라야 하는 길이 할 만 하다굽쇼? 어쩐지 새벽 4시에 텐트에서 눈을 뜨고 출발하는 발소리를 기다려도 좀체 떠나는 이들이 없다. 현지 가이드들과 등반가들도 그 깊은 눈을 러셀하면서 몽블랑까지 가는 게 엄두가 안 나는 눈치다.
결국 아침 8시가 되어서야 출발하는 팀이 두엇 있길래 따라 나섰다. 그래도 이 친구들이 러셀 해주면 우린 좀 편하게 가겠구나. 몽블랑을 향해 출발하기엔 무지 늦은 시각이었지만 오늘 안엔 갈 수 있겠지 하고 대책없이 나선 것이다.
아! 정말 멀었다. 가도 가도 끝이 안보인다.
먼저 발레 블랑쉬(Vallee Blanche) 설원에서 따귈 삼각 북벽 오른쪽 설벽을 따라 몽블랑 뒤 따귈(Mont Blanc du Tacul, 4248m) 설릉을 넘어간다. 재작년에 우리가 야영을 하고 내려간 다음 주 눈사태가 나서 8명이 숨진 곳이다. 지금도 거대한 크레바스에 사다리 하나 걸쳐놓고 넘어간다. 크레바스 속이 시커멓다.
이날 따라 날씨는 기가 막히다. 하루 종일 구름구경 못해봤다. 작열하는 태양빛, 세상은 오직 두 색으로만 만들어진 듯, 위는 코발트, 아래는 화이트.
몽블랑 뒤 따귈을 넘어 이번엔 몽 모디(Mont Maudit, 4465m)로 가는 길.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설벽을 계속해서 트레버스하면서 오르는데 오른쪽은 까마득한 절벽이다. 한 발만 살짝 미끄러져도 수백 미터를 굴러떨어져 저 아래 보송 빙하에 쳐박힐 판이다. 서둘러 로프를 묶었다. 안자일렌을 했다고 해도 누구 하나 떨어진다면 제동을 할 수 있을까? 불길한 생각은 떨쳐내자. 정상만 바라보자.
알프스는 참 신기한 동네다.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은데 가도 가도 다가오지 않는 신기한 동네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우리의 전진속도는 굼벵이 같다. 조금씩 마음이 급해진다. 벌써 정오를 한참 넘긴 시각. 몇 걸음 오르고 숨을 몰아쉬고… 벌써 지쳐가지만 잠시 앉아 쉴 시간, 뭐라도 먹을 시간도 없다.
그런데 이런! 앞서 가던 두 팀이 왼쪽으로 틀더니 몽 모디 정상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원래 목표가 몽 모디였건, 몽블랑 가기엔 너무 늦어 방향을 틀었건, 이제 우리 앞엔 2인조 한 팀밖에 없다. 남 신경 쓸 때가 아니지만, 이 동네 처음 온 세 아시안에겐 적잖이 신경쓰이는 상황이다.
게다가 앞 2인조가 바둥바둥거리길래 가 보니, 이거 왠걸, 빙벽이다. 4000미터가 넘는 곳에서 빙벽을 만났다. 각도가 그리 세진 않지만 눈까지 덮인 40m 빙벽이 아찔하다. 우린 각자 피켈 한 자루씩밖에 없는데… 고정로프가 깔려있는 덕에 그리 어렵지 않게 올랐지만 힘을 너무 많이 썼다.
빙벽을 돌파하고 콜 뒤 몽 모디(Col du Mont Maudit)를 넘어서니 앞의 2인조가 안 보인다. 발자국의 궤적을 보니 정상을 포기하고 발로 산장(Vallot, 4366m)으로 피한 듯 하다. 그 길이 더 위험해 보이는데…
몽블랑 정상을 향한 설릉에 올라탔을 땐 이미 오후 5시가 넘은 시각. 그때부터 구조 헬기가 우리 머리 위를 맴돈다. 보통 새벽 5~6시에 정상에 서는데 오후 5시가 넘어 정상을 향해 가는 우리가 위태로워 보였나 보다. 그러더니 정상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뜨기를 두 차례, 아마 여기가 정상이니 힘내라는 메시지인가 보다. 그 배려가 참 고맙다.
결국 오후 5시 반, 정상에 섰다. 길이가 15m쯤 될까, 좁은 설릉으로 이뤄진 몽블랑의 정상. 이날 이 루트를 통해 몽블랑에 오른 건 우리 뿐이었고, 이 순간 그 거대한 알프스 산군엔 우리밖에 없는 듯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봉우리가 내 발 밑에 있는 느낌을 만끽할 동안 하늘은 여전히 그 맑은 빛을 삭히지 않고 있었고, 우리의 다음 여정이 향할 그랑조라스 역시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4번만에 몽블랑의 허락을 얻은 나는 물론, 2번만에 오른 주영이랑 호은이도 마음껏 소리를 지르며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다만 바람이 너무 세서 셋이 함께 사진도 못찍고 더 오래 정상에 머물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그 뒤로는 또 기나긴 하산길이 기다린다.
세 번이나 와봐서 익숙한 구떼 루트로 달리다시피 하산해 길을 떠난지 총 13시간 반만에 떼떼 루즈 산장에 도착해 저녁을 사먹고 몸을 누이니 피로가 몰려온다. 그때까지 파워젤 하나에 바나나 하나 먹었을 뿐이니… 그래도 고소와 체력문제에서 가장 취약했던 내가 이 산행을 거뜬히 해낸걸 보면 훈련을 충실히 하긴 했나보다.
떼떼 루즈에서 밤을 보내고 하산한 아침,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우리는 준비가 다 되었다. 날짜도 여유가 있다. 그랑조라스 워커봉 위에 서 있는 호랑이 세 마리의 모습이 벌써 그려진다.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변수. 날씨를 알아보러 숙소에도 들르지 않고 곧장 산악회관(Maison de la Montagne)을 향했다.
산악회관. 그곳에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우릴 내려쳤다.
그랑조라스 등반 불가!!!
너무나 어이없는 통보에 몇 번이고 물어보고 사정도 해봤지만 협회 사람들과 구조대까지 합세해서 사진까지 들이밀며 안된단다.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작년에 한국등반대의 비극적인 그랑조라스 사고 후 1년 만에 다시 한국인 3인조가 워커 스퍼를 노리고 레쇼에 들어오자 그때부터 이 친구들이 우릴 예의주시해 왔단다. 어쩐지… 레쇼 산장지기 나디아가 무전으로 주고받던 이야기들이 우리 동향을 구조대에 알리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가 재도전을 하려 할 때쯤, 이미 벽상엔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있었고 날씨가 좋아질 희망도 안보이니 아예 포기를 종용한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등반행위에 대해서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존중한다. 등반은 위험한 행위이고 그럼에도 그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래도 등반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면 끝까지 막진 않았겠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막아서는데 나설 배짱은 없었다. 여긴 그들의 동네고 그들의 예보는 정확했으니까.
허무개그다.
할 일이 없어졌다.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20년 칼을 갈고 찾아갔는데 18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단다.
알프스 와서 처음으로 그날 저녁엔 셋 다 말이 없었다. 술을 먹고 주영이랑 호은이는 잔다.
가슴이 답답하다. 자는 주영이와 호은이를 깨웠다.
“출국까진 사흘이 남았다. 내일 드루로 가자!” “오케이!!!”
원정기간 내내 우리 셋은 참 만장일치가 잘 되는 팀이었다.
드루. 정식명칭은 “에귀 뒤 드루(Aiguille du Dru, 3754m)” 또는 “레 드루(Les Dru)”. 나중에 허긍열 선배께 물어보니 “에귀” 란 말은 침봉(針峯)이란 뜻이란다. 그렇다면 세상에 드루만큼 에귀란 이름이 어울릴 봉우리는 없어 보인다.
몽땅베르에서 올려다 보이는 드루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자태와 위엄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건하게 기도하는 손 같기도 하고, 불경하게도 하늘을 향해 거대한 똥침을 날리는 손 같기도 한. 대개는 마테호른이나 난다데비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하는데, 둘 다 난 아직 내 눈으로 못봤으니 드루가 최고다.
어쨌든 3년 전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드루를 드디어 오르게 됐구나.
다시 몽땅베르행 산악기차에 몸을 싣는다. 잠시 쉴 틈도 없다. 보름 동안 우린 참 바쁘다. 다음에 알프스에 다시 온다면 한 달쯤 오자.
드루 남벽 바로 밑에 산장이 있단다. 바로 그 샤르푸아(Refuge de la Charpoua, 2841m) 산장까지 가서 자고 내일 새벽에 등반을 시작한다.
5년 전, 드루 남벽에 도전한 적이 있는 전용학 선배께 전화를 해 자문을 구한다. 샤르푸아는 무인산장인데 몽땅베르에서 1시간 반쯤 올라가면 쉽게 찾을 거라고. 어이구… 4시간 반 걸렸다!!!
올라가 보니 7, 8월은 산장지기가 있었다. 그런데 워낙 사람들이 안오는 곳이고 또 예약도 없어 그날은 내려갔단다. 장비를 챙기고 저녁을 든든히 해 먹고 두터운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새벽 5시 반,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눈이 떠진다. 스프를 끓이고 누룽지를 데워 아침을 우겨넣는다. 오늘이 우리 알프스 원정의 분수령. 다들 말이 없다. 날씨예보는 그렇게 좋진 않다. 오전엔 맑다가 오후엔 구름이 많이 낄 거라고.
6시 좀 넘어 산장 문을 나선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빛에 바로 눈 앞에 까마득히 솟아있는 남벽의 위용과 그 사이에 시커먼 속을 드러내고 있는 빙하의 크레바스들이 일단 기를 한번 사뿐히 즈려밟아준다. 이 순간에 속에서 뭔가가 불타 올라야 하는데… 난 한번 기가 죽는 걸 보면 아직 완전한 등반가는 안됐나 보다.
그런데 출발을 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난관이 우리 앞을 막는다. 산장에서 남벽까지는 직선거리 300m가 안되기 때문에 그 사이의 빙하를 건너는데 1시간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빙하의 상태가 너무 안좋았다. 급경사 꿀르와르에 형성된 빙하라 견고하지도 않았고(실제로 그날 하루종일 빙하 무너지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다), 너무 많이 끊어져 있어 길을 잘못 들면 또 한참을 돌아가야 했다. 결국 빙하의 가장 윗부분을 돌아서 벽에 붙기까지 4시간이 걸렸다! 낭패다. 이제 방법은 없다. 1초를 아껴 오르는 수밖에.
몽땅베르에서 보이는 뾰족한 드루는 서벽인데 몇 해 전 거대한 돌덩이가 떨어져나가 초등루트를 포함해 거의 모든 루트가 없어졌단다. 올해도 다시 조각들이 무너졌을 정도로 붕괴와 낙석 위험이 커 등반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오른쪽으로 돌아 남벽으로 향하면 여러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연봉의 형태인데 그중 가장 높은 주봉 그랑 드루(Grand Dru, 3754m)와 그 앞의 약간 낮은 쁘티 드루(Petit Dru, 3730m)로 오르는 거대한 남벽에 여러 개의 루트가 나 있다.
우리가 현지에서 본 프랑스 산악잡지 몽타뉴(Montagnes)에는 몽블랑 산군의 10대 클래식 알파인등반지가 선정되어 있었는데 그랑조라스 워커 스퍼와 함께 드루 남벽도 실려있었다.
우리는 그 중에서 바스띠앙 콘타민(Bastien-Contamine) 루트를 택했다. 등반거리 750m, 여섯 등급으로 나뉘는 알프스 등반난이도에서 다섯 번째인 TD(tree difficile, very hard)등급으로 바스띠앙(M. Bastien)과 콘타민(A. Contamine)이 1952년에 초등한 클래식 루트이다.
사실 너무 급하게 등반지를 정한 까닭에 우리가 입수한 자료는 전용학 선배와 허긍열 선배의 조언, 그리고 샤르푸아 산장의 루트 개념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등반이지만, 우리의 절박함 그리고 자신감 거기에 환상적인 팀웍까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거대한 바위 기둥을 트레버스해서 넘어가는 첫 피치를 호은이가 앞장선다. 남벽엔 눈은 별로 없을 거라고들 했는데, 이 여름 정말 눈이 많이 오긴 했나 보다. 곳곳에 눈이다. 그래도 어려운 곳은 없어 아직은 빙벽화를 신고 전진했다.
본격적인 등반의 시작인 두 번째 피치는 주영이가 나선다. 벽이 발딱 섰다. 그랑조라스를 가보진 못했지만 등반의 난이도는 여기가 더 셀 것이라는 데 셋 다 합의했다.
세 번째 피치, 좋은 홀드들이 보인다. 아싸, 내가 나서기로 했다. 난이도는 인수봉 취나드 B 정도?
그랑조라스 북벽 등반을 위해 우리는 현지에서 9.1mm 70m 싱글로프 두 동을 구입했다. 북벽을 등반하는 대부분의 팀이 낙석 위험 때문에 더블로프 시스템을 쓰는데, 거기다 우리는 3인조의 등반속도를 높이기 위해 싱글로프로 더블 시스템을 구사하기로 한 것이다.
알프스에선 가끔 가다 하켄 하나 정도 눈에 띌 뿐, 볼트 같은 고정확보물은 찾아볼 수 없어 로프가 다 될 때까지 70m를 나가고 캠 두 개나 암각에 슬링을 걸고 피치를 마무리한다. 그러면 후등자 두 명이 거의 동시에 올라오며 시간을 아낀다. 난 아직까지 국내에서 70m를 나가본 적이 없었는데, 게다가 70m 싱글로프 두 동을 끌고 올라가려니 등반보다 로프 무게가 더 버겁다. 그래도 3,000m가 넘는 고도에서 선등하는 느낌이 전율로 바뀌어 온 몸을 감싼다.
까다로워 보이는 피치는 호은이나 주영이가, 만만해 보이면 내가 나서면서 번갈아 등반을 했다. 선등자는 배낭 없이, 두 후등자는 두 개의 배낭에 짐을 번갈아 나눠지고 등반을 하니까 후등이 더 힘들 정도다.
그렇게 몇 피치를 더 오르다 보니 고도계는 3,600m. 정상이 150m밖에 안남았다.
그런데 오후 내내 밀려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던 가스 구름이 이제는 어느 순간 한 치 앞도 안보일 정도로 진해졌다. 벌써 시간은 6시 반. 설상가상이다. 우박이 눈에 섞여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셋 다 일순간 표정이 굳었다. 하루 종일 등반하느라 지치고 배도 고팠지만 정상까지는 문제 없었는데… 그래도 아직 정상까지 등반하려면 두세 시간은 걸릴 터. 등반대장인 주영이가 어렵게 결단을 내렸다.
“내려가자”.
이상했다. 욕이 튀어나왔어야 했는데… 끝까지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알프스의 날씨를 저주했어야 옳은데… 마음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것이다.
그날 하루 원 없이, 나름대로 치열하게, 또 친구들과 즐겁게 등반을 했기 때문이거나, 어차피 우리의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거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느 새 우리 셋의 마음 속에 알프스를 품은 넉넉함과 진한 우정이 가득 찼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참!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다. 우린 지금 탈출을 감행해야 한다. 볼트 하나 없는 벽에 하강포인트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바로 앞도 잘 안 보이는데. 가스와 우박 속에 70m 로프 꽉 채워서 6번의 하강 끝에 빙하의 정수리에 내려설 수 있었다.
매번 먼저 내려가 하강포인트를 만드느라 호은이랑 주영이가 고생 좀 했다.
그리고 다시 그 험악한 빙하를 우리 발자국을 더듬어 샤르푸아 산장에 피신한 시각이 밤 10시 반. 평소 불면증에 시달리는 내가 곯아떨어지는데 52초밖에 안 걸렸다.
그 다음 아침은 우리가 알프스에서 맞는 마지막 날, 샤르푸아에서 몽땅베르를 거쳐 샤모니까지 돌아가야 한다. 보름 동안의 치열했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 천하의 주영이, 호은이도 이젠 지친 듯. 게다가 비까지 쏟아져 한기가 스민다. 배가 터지게 먹고 뜨거운 샤워를 하고 그냥 뻗고 싶다.
춥고 지치고 배고픈 호랑이들이 메르 드 글라스 빙하를 건너가는데 한왕용 선배의 문자가 들어온다. 트래킹 가이드를 위해 알프스를 찾은 선배와는 알펜로제에서 보름 동안 함께 지내며 참 많이 친해진 터였다.
“우리 후배들 고생했어요. 따뜻한 된장국 끓여놨으니 어서 와요.”
셋 다 눈물이 핑 돌았다. 등반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 기다려 준다는 것, 나를 위해 밥을 지어놨다는 것이 이렇게 감동일 줄이야. 산사나이들의 의리, 선배의 정을 담뿍 가슴에 담고 하산길을 재촉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 알게 된 것도 이번 원정의 값진 열매가 아닐까.
결혼도 하지 않고 거의 매주 산에 다니면서, 또 매년 나름의 원정을 나서면서 주변에서 숱하게 들었던 질문에 난 그럴듯한 답을 하지 못했다. 왜 가나? 왜 오르나?
“산이 거기 있어서….” 같은 철학적인 답은 모른다.
늘 “그냥…”이라 말하고 웃어버렸다. 좀더 멋있는 대답을 하고 싶었다.
난 왜 저 벽을 오르고 싶은 걸까? 그랑조라스 앞에 서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벽을 오르고 나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은 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가지만… 하긴 세상 모든 일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자. “그냥…”이 나에겐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예지 쿠쿠츠카가 그랬던가. “긴 세월 평범하게 살면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을 것을, 저 높은 곳에서는 한달 사이에 체험한다”고. 그럼 우린 보름 동안 한 50년 정도의 경험치는 얻어왔을까?
임덕용 선배의 “꿈 속의 알프스”를 읽으며 막연하게 그려오던 내 마음 속의 그랑조라스를 마주하는 건 좀 미뤄졌지만, 이렇게 모든 경험과 기억이 즐거움으로 가득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일 테다.
그리고 이 친구들과 함께했던 것이 서른 일곱의 내겐 더 큰 축복이다.
이번엔 다음 모험을 기약하지 않았다. 주영인 곧 태어나는 둘째까지 먹여 살리려면 정신이 없겠지. 호은인 새로 일을 찾아야 한단다. 나도 이젠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뭐 하긴 살아가는 것이 모험인 것을.
막연히, 3년 후 마흔 되는 해 다시 오자고는 했다. 한왕용 선배의 말처럼 산은 거기 있고 우리의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다시 올 수 있을 테니.
첫댓글 와~ 멋지다. 가고싶다.....
가시면 되죠 형님~~^^
가슴에만 담고 뒤돌아선 그 그랑조라스를 3년만에 지난해 해낸거로군~~
멋진 호랑이들~~
함께 원하는곳에 발자욱은 찍지 못했으나 평생 갈 가슴 꽉 차는 최고의 추억거릴 공유했으니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가?^^
글발이 좋아서 ☆이작 단편 산서 한권 단숨에 읽어내린 기분이야~~참 좋다~~~
ㅎㅎㅎ고마워요누나~~~~^^
나도 조만간에 간다~~~
형 꼭!
멋지네요~~~
알프스는 걍 그림인거 같아요. 다녀오세요~~~^^
꿈같은 알프스~~~좋은 등반 했네~~^^
진짜 꿈같은........ 요즘 또 꿈을 꾸네요.............ㅋ
한별아 옛날 생각난다.
정말 멋진 도전 다음에도 더 멋진 도전 많이 해라 ....
모든게 해피해피해피......
그렇죠형?
늘 도전하고 성취하고 그래서 행복하고~~~~~^^
한별아.. 금년엔 키르키스탄 가자..
거기두 등반할때 무쟈게 많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