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서둘러, 서둘러!!”
앞서 걷고 있는 Sweet.B멤버들을 독려하며 공항게이트에 들어서는 매니저. 절대적으로 의욕이 없어 보이는 1인 우준성. 준성의 기분을 살피며 어깨를 팔로 둘러 어깨동무를 하고, 씨익 웃어 보이는 윤준. 준성도 그런 윤준의 마음을 안다는 듯 애써 미소를 띤다.
“우앗!!! 내꺼, 우야노. 우야면 좋노.”
“형, 왜 그래?”
“아따, 쏟아뿌따. 아메리카노를 쏟아 뿌따.”
“일단, 닦아봐. 닦아보고, 켜봐.”
“슬마.. 고장 나진 안캤제?”
아메리카노를 먹다 빨대로 튕겨져 들고 있던 태블릿PC에 몇 방울이 튀어버린 상황. 한섭의 별난 반응에 우선은 받아주는 듯 티슈로 슥슥 닦아내고, 전원을 켜보는 대한. 팀 내에 막내로 귀여움만 받아야 할 그는 외모 상으로는 가장 큰 형으로 보이는 노안의 얼굴을 소유한 자. 기기에 관련해서 조립하고, 수리하는데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임대한. 반면, 옆에서 유난떨며 아메리카노 몇 방울에 난리 부르스를 추는 한섭과 그런 한섭을 받아주는 대한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보고 멀뚱히 서 있는 이수현. 유일하게 Sweet.B 멤버들 중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놀아도 돈방석인 멤버로 유명하다. 간간히 써온 작사일과 작곡일로 참여했던 앨범이 꽤 있는 멤버. 현 팀에서 그냥그냥 묻어가는 느낌의 멤버지만 경제력으로는 최고봉에 있는 사람.
“야, 작작 좀 해라. 그깟 걸로 안 망가져.”
“이노마가, 망가질 수도 있다 안 카나!”
“아, 형. 그냥 쉬쉿!! 내가 해주고 있잖아.”
“왜 그래?”
“저 자식, 또 난리다. 지 태블릿PC에 아메리카노 쏟은 것도 아니고, 몇 방울 튄 거 갖고.”
“에.. 봐봐! 어디? 잘되네. 괜한 걱정했다 한섭이 이 자식.”
멤버들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한섭의 태블릿PC를 봐주고 있는데,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터덜터덜 출국 수속을 밟는 준성. 매니저는 그런 준성 곁에 다가서서 슬쩍 재킷 주머니에 휴대폰을 넘겨주듯 넣는다. 휴대폰 무게를 느낀 준성이 아무 말 없이 매니저를 보며 눈짓으로 묻는다.
‘넣어놔. 그리고 며칠 지나서 은근슬쩍 애들한테 돌려줬다고 해.’
그제야 웃는 얼굴을 다시 되찾는 준성. 원래의 준성의 모습으로 방방 뛰면서 멤버들을 부르려고 몸을 돌려 세우는데, 매니저가 황급히 막아선다. 그리고는 준성의 귀에다 손을 대고 속삭이듯 말한다.
‘얌마, 네가 갑자기 이런 반응 보이면 멤버들이 순순히 내가 마음약해서 너한테 핸드폰 돌려줬다 생각하잖아!!’
‘아, 그렇네..’
‘으이구, 내가 애들 불러올 테니까 얘들이랑 먼저 들어가고 있어.’
‘네!!!!’
씩씩하게 몸을 다시 돌려 스타일리스트들과 안으로 들어가는 준성. 옹기종기 모여 있던 멤버들도 서둘러 챙겨서 안으로 들어가는 매니저. 헤드셋을 쓰고, 더 이상 한섭의 행실을 보고 싶지 않다는 듯 앞장서 걸어버리는 이수현. 앞서 들어가고 있던 준성을 발견하고, 달려가 팔로 준성의 목을 감으며 말을 거는 최연승.
“아직도 기분 별루야?”
“뭐…….”
“기집애같이, 적당히 해. 적당히. 어차피 매니저형 맘 약해서 세게 말해놓고, 나중에 뒤에서 돌려줄걸?!”
“큭!”
“너 왜 웃어? 솔직히 말해, 벌써 받았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준성. 방금 전 매니저가 했던 행실과 똑같이, 마치 보기라도 한 듯 경험이라도 해본 듯 말하는 연승이 의심스러워진 준성.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연승을 추궁하듯 보는 우준성.
“뭐냐, 그 눈빛?”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윤준이 다가와 둘의 대화를 궁금해 하듯 묻자, 황급히 준성이 상황을 얼버무리고. 그런 준성의 태도에 말없이 실실 웃기만 하는 연승.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준성과 연승을 번갈아 몇 차례 보는 윤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나른한 오후 즈음. 작업실 안에서 별님은 밤샌 태가 팍팍 나는 몰골로 출근하는 이들을 맞이한다. 밤새 10년 전 일을 생각하며 펑펑 울어 띵띵 부어버린 눈두덩이, 이리 써보고 저리 써보고 하면서 쥐어뜯어 헝클어진 머리모양. 곱게 입고 있던 스커트 차림은 오간데 없이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컵라면을 들이키고 있는 별님.
“전별! 너. 한숨도 안 잔거야?”
“응.”
“야... 너, 사우나라도 갔다 와라 야. 가관이다 진짜. 너랑 일한지 2년째긴 한데..야, 오늘 진짜 최악이다.”
“왜. 가사만 잘 쓰면 되지, 내 몰골까지 간섭이야.”
“너, 울었어?!”
“.........”
“왜? 먼일 있었어?”
“귀걸이…….”
“아.. 귀걸이..! 우선 사우나 갔다가 좀 이쁘게 하고 와.”
“아, 왜. 나 피곤해. 집에 갈래.”
여행에서 바로 작업실로 돌아와서 덩그러니 소파 옆에 놓여있던 캐리어를 끌고 나가려는 별님. 황급히 캐리어를 뺏어 구석 춤에 옮겨두고, 다짜고짜 만원을 쥐어주면서 사우나 다녀오라고 내쫓듯 보내는 미윤. 별님이 화날 때마다 그녀의 치부인 노처녀를 들먹이는 상대의 주인공 조미윤. 과거 영화 음악감독까지 했었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녀는 현재 적당한 규모의 음악작업실에서 가수들 곡 의뢰를 받고, 음반 제작에 이바지하는 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
“여보세요?! 아, 네네. 오시면 됩니다.”
“왔대?! 어이쿠, 뭐 다과라도 준비하고 기다려야 되나? 근데 전별이, 밤샌 냄새가 아직 그득한데 이거 어쩌지?”
황급히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미윤과 작곡가 S.victory. 별님이 먹고 남긴 컵라면 용기 두 개와 널브러지듯 뿌려있는 과자가루, 빵가루, 엎질러진 듯 보이는 콜라의 자국까지. 닦고, 치우고, 문 열어 환기시키고 정신이 없는 둘.
“형!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숙소로 가는 길은 아닌 거 같은데.”
“곡이 나왔대. 그래서 들어보러 갈 거야. 괜찮으면 임시 레코딩도 해보고.”
“엇! 그럼, 우리 곧 컴백하겠네요?”
“아마도. 긴장 바짝 해야 돼.”
소속사 근처에 위치한 5층짜리 빌딩에 차를 세우는 매니저. 멀뚱멀뚱 주변을 살피는 대한과 연승. 낯선 건물 앞에서 어색한 표정을 짓는 준성. 아직도 두 손으로 정성스레 들고 있던 태블릿PC만 보면서 한숨을 푹푹 쉬며 안쓰러워하는 한섭. 숙면중인 수현의 헤드셋을 벗기면서 흔들어 깨우는 윤준.
“여기에요? 몇 층이에요?”
“4층. 401호.”
“내려, 내리자! 가자, 가!”
내릴 기색이 없어 보이는 멤버들을 인솔해서 차문을 열고 건물 앞에 내리는 윤준. 하나둘 차에서 내리고, 조금은 거만해보일수도 있는 표정으로 건물을 한번 훑듯 올려다보는 수현. 매니저를 동반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먼발치에서 터덜터덜 스크류바를 후룩거리며 입에 물고 걸어오는 별님.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Sweet.B 맞죠?”
“네네. 맞습니다.”
“곡과 가사는 모두 완성이 됐는..됐지?”
“으, 응.”
“잠시 작사하셨던 분이 어제 휴가에서 돌아오시자마자 밤샘작업을 하셔서 사우나를 좀 가셨어요.”
“아~ 네. 오실 때 됐죠?”
“네, 아! 저기 오...!!!!”
작업실 문을 열고 당당히 등장하는 별님. 절대적으로 작사를 한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는 모습. 사우나 가기 전에 입었던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은 여전하고, 다만 달라진 건 정돈된 머리와 얼굴, 입에 물고 있는 스크류바 까지만. 들어오자마자 버럭 대려던 별님은 낯선 이들의 인기척을 느끼고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놀란 마음에 물고 있던 스크류바를 입에서 빼서 들고 멍하니 서 있을 뿐.
“누구...? 아, 아...그, 스..스.. 스윗 삐?!”
“아하하하... 아직 시차적응이 안돼서……. 이해해주세요.”
‘전별! 곡 의뢰한 가수. 정신 차려!’
‘뭐...뭣!! 의뢰 가수!! 으악...!! 미리 폰으로 연락이라도 주지!!’
‘했지, 했는데 못 본 거겠지.’
‘자, 잠.. 아씨, 꺼놨었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예의를 갖춰보려고 애쓰는 별님. 도저히 안 되겠는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옷가지를 챙겨 훅하고 나간다.
“미쳤어! 미쳤어! 어후.. 전별님!! 귀걸이는 귀걸이고. 작사는 작사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슨데... 어쩜 이렇게 막사는 애 같니!!”
멤버들 먼저 작업실로 들어가고, 화장실을 들르겠다면서 이제 막 작업실로 향하려고 복도로 나오던 준성. 여자화장실에서 들리는 말에 귀 기울이며 듣고 서 있다. 언제 챙겼는지, 화장품이 그득 들어있는 파우치를 열어 화장을 시작하는 별님. 옷도 원피스로 갈아입고, 신발도 갈아 신고. 이제야 비즈니스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모습을 갖춘 별님.
“하, 됐어. 이정도면 뭐. 괜찮지!”
마음을 가다듬듯 옷을 한번 손을 쓸어 툭툭 털어주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더니 밖으로 걸어 나오는 별님. 구두소리에 기울고 있던 고개를 바로잡고 벽에 바짝 붙어 서는 준성. 별님이 중얼거렸던 말 중에 솔직하게 했던 한 단어... 귀걸이. 항상 갖고 다니던 귀걸이를 귀에 걸어본다.
“아우아.. 으앗! 깜짝이야! 변태에요?! 뭐 하는 거예요, 여자화장실 앞에서!”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어?! 어어어!!!!”
“미쳤나봐. 아 진짜. 저리 꺼져라, 좋은 말 할 때.”
당당히 준성의 어깨를 한손으로 밀쳐내듯 빗겨서 작업실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별님. 별님이 먼저 작업실 안으로 들어서고,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듯 피식 혼자 웃어버리는 준성. 동시에 이상형을 만나고, 귀걸이녀도 찾은 준성. 사뿐사뿐 작업실 쪽으로 걸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어머, 저 사람 왜 저래?! 막 여자화장실 앞 복도에서 기대서서 쳐다보고 있는 거야. 근데 여기까지 따라왔어.”
“준성아.”
“준...성...아?!”
“안녕하세요. Sweet.B메인보컬 우준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