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와 세시풍속 중 가장 실컷 노는 정월대보름
▲ 쥐불놀이는 논두렁에 불을 지피며 노는 놀이인데 불깡통을 돌리다가 어렸을 적 옷을 태워먹기도 하였다.
세시풍속은 한 해의 절기나 달 또는 계절에 따라 관습화된 풍속인데 입춘이나 동지처럼 해당 절기에 행하는 풍속이 있고 4대 명절인 설, 한식, 단오, 추석처럼 24절기와 관계없는 제의성에 해당된 것도 있다. 여기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란 속담이 있는데 한식은 24절기인 청명과 거의 같은 날이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삼복이라는 게 있는데 하지(6.21~22)로부터 3경(3주) 뒤 초복(7,11~12), 10일 간격으로 중복, 말복이 있는데 무더운 소서, 대서, 입추 등이 들어 있으며 요건 ‘속절’이라고 말한다.
조상들은 이와 같이 생태, 생업력과 제의성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자연환경과 더불어 즐겁게 생활을 펼쳐온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이야 온상재배로 철모르고 나오는 농작물이 허다하지만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제철에 나오는 농작물에 따라 시절음식(절기음식)이 다채롭게 발달하였으며 놀기 좋아하는 낙천적인 민족이다 보니 놀이문화 또한 발달하였다.
▲ 주인장, 문여소~~ 복들어가요~~ 임실필봉 대보름굿이다. 앞산이 필봉이며 2005년 탐방
전국이 축제의 난장판, 정월대보름
정월 대보름이 되면 방방곡곡 놀이와 축제로 전국이 들썩인다. 수년 전 민속축제를 취재하기 위해 고향인 영광군에 자료요청을 하였는데 동제, 당산제, 지신밟기 등 동네마다 행사가 없는 곳이 거의 없었다. 70년대 새마을운동 한답시고 거의 없어졌던 놀이와 축제가 다시 살아난 건 분명 좋은 일이다.
<농사집들에서 해질 무렵에 홰를 만들어 불을 붙여가지고 떼를 지어 동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달맞이라고 하였다> <<열양세시기>>
<시골사람들은 정월보름 전날에 짚을 장수 깃발 모양으로 엮어서 벼, 기장, 피, 조, 이삭들을 쌓고 또 목화를 거기에 달아서 장대 끝에 씌워 짚 옆에 세우고 새끼를 벌여 매는데 이것을 화적(벼낟가리, 벼가릿대)이라 하여 이로써 풍년들기를 바란다.> <<동국세시기>>
설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는 거의 쉼 없이 세시풍속이 이어지는데 우리 명절 가운데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통시대에는 농사가 본업이었기 때문에 겨울철은 농한기로 여러 놀이가 발달하였고 그 중에서도 농사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 정월대보름을 기점으로 놀이문화는 활짝 꽃피웠다.
정월대보름 풍속을 몇 가지 살펴보면, 먼저 ‘부럼 깨물기’라는 것이 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땅콩이나 잣, 밤, 호두 등을 나이 수대로 깨물어 먹는다. 일 년 동안 무사안녕을 빌며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옛날엔 겨울동안에 먹을 것이 별로 없어 대부분 영양실조 상태인데 이런 영양가 높은 견과류를 먹음으로써 영양보충을 했던 것이다. 견과류는 영양뿐 아니라 뇌발달에도 아주 좋은 음식이다.
어렸을 때 얻어 마신 ‘귀밝이술(이명주)’이라는 것도 있다. 보름 날 아침에 마시는 맑고 찬 술은 귀가 밝아지고 일 년 내내 좋은 소식을 듣게 된다는 소망을 담은 술이다.
그다음에 밥을 먹는데 보름날에는 ‘오곡밥’을 먹는다. 보통 오곡백과를 말할 때 오곡은 쌀, 보리, 콩, 조, 기장을 말하는데 대보름날 오곡밥은 찹쌀에 기장, 찰수수, 검정콩, 붉은팥 등으로 지은 밥이며 성이 다른 세 집의 밥을 먹어야 한 해의 운이 좋아진다고 하여 어린시절 오곡밥 얻으러 다닌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날은 아홉 번 먹어야 좋다고 하여 집집마나 돌아댕기며 먹다가 배터질뻔 하였다. 여기에 아홉 가지 나물을 먹었는데 가지나물, 고구마줄기나물,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호박고지나물, 취나물, 시래기나물, 토란대나물, 아주까리나물로 비타민, 무기질, 미네랄 등이 풍부한 천연영양식이다.
“철수야!”
“응, 누구야?”
“내 더위 사거라~”
‘더위팔기’다. 자연에 의지하는 거 이외 더위를 이기는 특별한 방법이 없는 전통시대에 해학과 재미가 담긴 더위팔기 놀이다.
▲ 경남 창녕군 영산의 골목줄다리기는 청소년들이 펼치는 것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루 액이야 어~루 액이야 어기 영차 액이로구나~~ 정월 이월에 드는 액은 삼월 사월에 막고 삼월 사월에 드는 액은 오월 단오에 다 막아낸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신나는 ‘지신밟기’는 풍물잽이들과 날라리가 흥을 돋구며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지신을 위로하는 놀이다. 마을 청년들은 사대부, 팔대부, 포수로 분장하여 이날만큼은 부잣집에 거들먹거리며 들어가 양반행세를 하며 총을 탕탕 쏘기도 하며 함께 어우러져 술과 음식을 양껏 먹고 마시며 가택의 평안과 마을의 안녕을 빌어준다.
국민학교 4학년 때 어른들 따라다니다가 막걸리를 얻어마시고 하루종일 비틀거렸던 기억이 난다. 술참으로 술주전자 들고가다 목말라 마시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가장 화려한 놀이는 ‘달맞이’다. 너도나도 횃불을 들고 먼저 달을 보겠노라 동산에 뛰어가 일 년 중 가장 큰 달이 떠오르면 횃불을 땅에 꽂고 두 손 모아 소원을 비는 것이다. 생소나무 가지나 대나무 따위를 묶어서 쌓아 올려 만든 ‘달집태우기’는 요즘 각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하는데 달집이 잘 타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달집이 타면서 온 마을을 환하게 밝혀주고 타닥타닥 내는 소리는 귀신을 쫓는다고 한다. 그동안 날리며 놀던 연은 줄을 끊어 멀리 띄워 보내거나(송액영복, 액막이연) 달집에 태우고 그 해 액운이 든 사람의 저고리 동정이나 동정에 생년월일시(사주팔자)를 쓴 종이를 붙여 함께 태우기도 하였다.
우리는 아랫동네 아이들이랑 ‘횃불싸움’과 ‘투석전’을 하였는데 밤이라서 누가 누군지 분간이 잘 안 된다. 싸움은 보통 기싸움이 좌우한다. 기세를 올려 “와~~” 외치며 달려들면 지레 겁을 먹고 내빼기 일쑤였다. 그렇게 과격한 놀이를 하며 놀았는데도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게도 다친 아이가 한 명 없었다.
그 다음 ‘다리밟기(답교)놀이’라는 게 있는데 서울에서는 일 년 동안 다리에 병이 나지 말라며 광통교나 수표교를 걷던 풍습이 있었는데 이건 고려 때부터 성행하다가 양반의 체면과 풍기문란을 염려하여 양반은 14일에 부녀자는 16일에 다리밟기를 하다가 그나마 조선 중기 때는 없어지기도 하였다.
영남지방의 안동, 의성 쪽에는 ‘놋다리밟기’라는 것이 있는데 전라도지방의 강강술래 때 하는 기와밟기랑 비슷하다. 이것은 고려 공민왕 때 홍건족이 침범하여 왕이 왕비랑 피난을 가는데 추운 날 큰 시내를 건너지 못하고 있어 마을의 젊은 부녀자들이 냇물에 뛰어들어 인간다리를 만들어 건너게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 2013년 늦가을에 찍은 전남 영광 우평마을의 줄다리기 모습이다.
또한 ‘줄다리기’를 빼놓을 수 없다. 창녕의 영산 줄다리기와 충남 당진의 기지시리 줄다리기는 줄다리기 줄의 굵기와 길이가 과히 세계적이라 할만하다. 호남지역에서는 외줄을 만드는데 여기서는 암줄 수줄을 서로 교합시켜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시합을 한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성을 상징화된 놀이문화가 많은데 이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산에 탐방 간적이 있는데 줄다리기가 있기 하루 전엔 속칭 애기줄다리기라는 ‘골목줄다리기’를 한다. 동네 골목에서 청소년들이 펼치는 줄다리기로 성인이 되기 전 이 놀이를 통해 일종의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다.
▲ 送厄迎福 모~든 액일랑 다 떠나보내고 만복을 맞이하자요!
▲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볏가리대에 오곡주머니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수 천 시민들의 소원이 매달려있는 소원솟대 - 모든 소원 이뤄지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