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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요한계시록의 9가지 문제점. (6) "주의 재림과 교회의 휴거" 문제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현대종교 2001년12월호부터 게재)
<이 난은 월간지 "현대 종교" 2002년6월호에 게재된 민병석 목사의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에 대한 원고 중 그 여섯번째 것입니다. 앞으로 매월 현대 종교에 연속 게재되는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를 이 난에 실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요한계시록 연구와 설교에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의 9가지 핵심 문제>
(6) "주의 재림과 교회의 휴거" 문제
1. 공중 휴거의 견해
공중 휴거(空中携去)란 말은 살전4:17절에서 나온 말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의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일에 대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이 말씀을 한문으로 간략하게 나타내는 방법으로 공중으로 이끌어 올리는 뜻의 '공중 휴거로 표현한다.
어떤 신학자들은 공중 휴거에 대한 언급이 성경에 오직 한 곳에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문자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 곳에 있건 열 곳에 있건 분명한 문장으로 언급되어 있다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온당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점 일획도 오류가 없고 잘못된 표현이 없으며 가하거나 제해야 할 부분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공중 휴거에 관한 종말적 계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
(1) 공중 휴거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
개혁주의 신학의 종말관은 '역사적 전 천년설'과 '무 천년설'의 2대 지류(支流)로 나뉘는데 역사적 전 천년설에서는 교회의 공중 휴거설을 문자대로 인정하고 있다. 휴거의 시기에 대해서는 주님의 재림 직전으로 보고 있는데 휴거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신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교회의 공중 휴거를 전적으로 부인한다. 무 천년설 자가 교회의 공중 휴거를 인정한다면 그것은 이미 무 천년일 수가 없다. 공중 휴거는 전 천년설을 전제로 성립될 수 있는 종말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2) 공중 휴거에 대한 세대주의 신학의 입장
공중 휴거에 관한 한, 세대주의 신학에서는 그 입장이 너무나도 분명하고 너무나도 확고하다. 이들의 휴거설은 '7년 환난 전 휴거'로 일관한다. 이들이 이처럼 7년 환난 전 휴거설을 절대적 사실로 주장하는 이유는 그들의 세대주의 신학에 근거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교회 시대와 7년 대 환난 시대(세대주의에서는 7년 대 환난이라고 부른다)를 구분한다. 교회 시대는 7년 대 환난 직전까지로 규정하고 7년 기간은 교회와는 상관이 없고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한 회복기간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교회의 7년 대 환난 전 휴거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교회의 휴거 기간은 7년간이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와 함께 지상에 내려온다는 시나리오다.
2. 공중 휴거의 성경적 근거
공중 휴거의 성경적 근거는 물론 살전4:17절에만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공중 휴거를 뒷받침해 주는 여러 성경적 근거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 공중 휴거의 성경적 근거
ⓐ 살전 4:17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 살후 2:1'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그 앞에 모인다는 말은 어느 한 곳에 집결되는 상태로 살전4:17절의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말씀과 한 맥이 된다.
ⓒ 마24: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살후2:1절에서 언급한 그 앞에 모임에 관한 일을 천사들이 맡는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다.
ⓓ 단12:11-12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1290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1335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1290일은 유대인들이 환난을 당하는 기간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보다 30일이 많은 기간이며 1335일은 75일이 더 많은 기간이다. 후3년 반에서 75일이 더 지나야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 왕국이 도래할 것이란 말씀이 된다. 그러면 그간의 75일간은 후3년 반기간 지난 후의 기간으로 이 기간은 일곱 번째 대접 심판을 내리시는 최종적인 심판의 기간과 천년 왕국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의 기간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기간이야말로 교회의 공중 휴거기간이라고 받아드려 진다.
(2) 공중 휴거는 왜 있어야 하는가?
ⓐ 세대주의 종말론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시험의 때'를 7년 대 환난 기간으로 보기 때문에 성도들은 7년 대 환난이 이르기 이전에 공중으로 휴거 되어 공중에서 7년간의 '어린양과 함께 혼인 잔치'를 치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그들의 주장은 전 3년 반의 기간이 대 환난 기간이 아니라 두 증인의 예언 기간으로 앞으로 올 후 3년 반의 대 환난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지시기 위한 최종적인 은혜의 기간임을 간과(看過)한데서 온 잘못된 주장이다. 그리고 '시험의 때'로 나타난 후3년 반의 대 환난 기간에도 하나님께서는 공중에서 그의 백성들 보호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예비처에서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계시해 주고 있다. 이 지상에 인류의 역사가 존속하고 있는 한, 하나님의 보호처는 지상에서 이루어진다. 어린 아기 예수가 헤롯왕의 표적이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어린 예수를 하늘로 끌어 올려 하늘에서 보호하신 것이 아니라 애굽으로 피하게 하여 그곳에서 헤롯왕이 죽기까지 보호해 주신 사실을 찾을 수 있다(마2:13-21).
ⓑ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공중 휴거는 대 환난과의 관계가 애매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개혁주의 신학의 역사적 전 천년설이나 무 천년설의 경우, 전3년 반과 후3년 반의 구분이 명백하지 않다. 말하자면 7년 환난 기간을 상징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인류의 종말에 있 을 대 환난 기간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대 환난 기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가에 대한 해답을 내릴 수 없다. 말하자면(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성도들은 이 지상에서 모든 인류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지상에 내리는 재앙이나 환난을 고스란히 겪어야 한다. 이 같은 상태가 주의 재림 시까지 계속되어야 하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비로소 공중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세대주의나 개혁주의나 이 같은 해석들은 비 성경적이며 성도들에게 대 환난에 대한 공포를 심어 줄뿐 주 재림에 대한 소망을 줄 수 없다. 그 무서운 환난을 고스란히 겪은 연후에야 공중 휴거로 주님을 영접한다고 하니 종말에 있을 전쟁이나 적 그리스도의 등장으로 인한 짐승의 표, 기근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 등을 일정한 기간도 없이 모두 겪어야 한다면 이에 대한 두려움이 왜 없을 것인가?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계시록에 계시된 종말적인 재앙이나 대 환난이나 적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핍박 등을 실제 상황으로 보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 공중 휴거가 있어야 할 이유
전 3년 반은 두 증인의 '다시 예언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이 기간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 대한 회개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전개된다. 이 기간은 하나님의 교회에 반드시 있어야 할 기간이다. 이 기간은 대 환난 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피난처나 공중 휴거가 필요치 않다.
1260일간의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이 끝나면 두 증인은 첫째 부활로 하늘로 승천하게 되고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후 3년 반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보호하심을 받게 된다. 이 후3년 반의 보호는 공중이 아니다. '하나님이 치시는 장막'이라고 하였고(계7:15)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라 하였고(계12:6)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는 곳'이라고 했다(계12:14).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곳에서 후3년 반기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된다.
후3년 반의 정점(頂点)은 주의 재림이다. 주의 재림은 일곱 대접 심판 중 여섯 번째 대접에서 이루어진다. 여섯 번째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을 때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는데 적 그리스도의 전 군사력이 아마겟돈에 집결하게 되며 이때 적 그리스도가 최종적으로 이스라엘에게 환난을 주게 된다(마24:15. 단12:1. 슥14:1-5). 계19:11-21절에 언급된 주의 재림은 바로 이때 있게 된다.
여섯째 대접 심판으로 주님의 재림이 있은 후 곧 일곱 번째 대접 심판이 오게 된다. 그런데 이 일곱 번째 대접 심판은 다른 심판인 것이 아니라 바로 짐승의 표를 받아 사단의 백성으로 확인된 모든 인류들과 인간의 죄로 더럽혀진 이 지구 자체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이기 때문에 이 심판은 두렵고 놀라운 재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날을 요엘 선지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했다(욜2:3). 베드로는 이 날에 대하여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다(벧후3:10).
계시록6장에는 여섯째 인을 떼는 사건으로 말씀해 주고 있는데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간다'고 했다(계6:12-14). 지구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은 일곱 번째 대접을 쏟는 사건을 언급해 주고 있는 계16:17-21절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이 같은 심판은 지구 자체의 파멸이기 때문에 지상에는 피난처가 존재할 수 없다. 부득불 지구 밖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여기서 공중으로 끌어올리는 공중 휴거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므로 공중 휴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하나는 주님을 영접하는 장소가 공중이란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최종적인 피난처로서 공중으로 휴거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3. 공중 휴거는 언제 어떻게 있게 되는가?
공중 휴거는 주님의 재림과 함께 있을 것이며 일곱째 대접 심판이 있기 직전에 있을 것이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31).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 시 천사들을 보내서 천사들로 택하신 자들을 모은다는 말씀인데 이 같은 모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란 말씀과 연결되는 말씀으로(살후2:1) 이 말씀은 곧 살전4:17절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라'는 말씀과 한 맥이 된다.
휴거의 방법은 '끌어올리신다'고 했다. 우리는 계14:14절 이하에서 인자 같은 이가 이한 낫을 가지고 곡식을 거두는 모습이 나오고 그 후에 그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져 넣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먼저 곡식(알곡)을 거두어 드리는 모습이 성도들의 공중 휴거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끌어올리는 일은 주의 영이 하는 역사이다(행8:39. 고후12:2. 겔3:14-15). 우리는 휴거 장소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공중'이란 사실만 알고 있다. 공중이란 표현은 '궁창'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궁창을 하늘이라고 말하고 있다(창1:8). 하늘은 광대무변(廣大無邊)하다. 우리는 공중을 지구와 아주 가까운 장소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날에 일어날 지구의 폭발은 지구 가까운 공중에 존재하는 물체까지도 그 뜨거운 열기에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계15:1-4절에서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진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 재앙이야말로 하나님의 진노가 마쳐지는 재앙으로 2절에서 이 재앙을 피하여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들이 일곱째 대접을 피하여 공중으로 휴거되어 하늘 그 어디에서인가 머무르면서 생활하는 성도들의 모습일 것이다.
4. 휴거의 대상과 휴거 성도의 형체
휴거의 대상이 되는 성도는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자'가 될 것이다.
'그 택하신 자들'이라고 했다(마24:31). 이들은 창세 전부터 어린양의 생명 책에 기록된 자들이다(계20:15).
첫째로 예비처에서 후3년 반기간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될 것이다(계12:6).
다음에 유대인들의 남은 자들이 될 것이다(슥14:2). 이들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회개의 은총을 받아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슥12:10. 롬11:26-27).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유대인들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피난처로 피하게 될 것이다(욜2:32. 슥4:5. 사4:2-6). 그리고 이들이 일곱째 대접 심판을 피하여 공중으로 휴거 될 것이다.
세 번째로 대 환난을 통과한 성도들이 될 것이다. 이들은 미련한 처녀들로 세속적인 생활 속에 잠겨 있다가 대 환난(후 3년 반)을 맞이했기 때문에 당연히 대 환난 중에서 회개하게 된다(마25:10. 계11:13. 계12:17). 하나님의 은혜로 후 3년 반의 대 환난 중 생존한 자들은 마땅히 일곱 번째 대접 심판에서 유월 하게 될 것이다(마24:22).
이들 세 종류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의 구원의 은혜도 동일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도 동일하다. 유대인들은 천년왕국에 육체로 들어가고 성도들은 변화된 몸으로 들어간다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이나 일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은 성경의 기초적인 구원론 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변화 받아야 한다면 다같이 변화 받아야 하고 변화 받지 않는다면 다 같이 변화 받지 말아야 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허물어지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지체로서 하나가 된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복음이 전파되기 전 구약 시대에 있는 사건이 아니라 복음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이 무너진 신약 시대 마지막에 있는 사건이다. 그리고 휴거시 성도들의 몸은 육체를 가진 상태의 몸 그대로를 가지고 휴거 된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그 성경적 증거는 이렇다.
살전4:17절에 나오는 성도들의 휴거는 직접적인 공중 휴거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말씀인데 성도들의 몸이 변화된다는 말씀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고전15:51절의 변화는 주 재림 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시기인 백보좌 심판 시에 일어날 사건으로 이 사건은 주 재림의 시기와는 무려 1천년간의 시기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고전15:50-54).
만약 성도들의 공중 휴거시 변화 받게 된다면 무 천년설이 된다. 천년왕국의 존재가 필요치 않는 것이다. 천년왕국은 변화 받은 성도들이 거주할 곳이 아니라 육체를 가진 성도들이 살아갈 곳이기 때문이다.
땅에 거하는 몸은 육체의 몸이다. 자손의 번식은 육체를 가진 인간만이 가능하다. 천년왕국 마지막에 또 한번의 심판이 있게 되는데 이것은 천년왕국에서 번식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천년왕국의 생활은 땅을 개간하여 땅의 식물을 먹고 살아가는 육신적인 생활이므로 변화나 부활한 몸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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