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월요일 '헬로 스트레인저'의 첫번째 영화 <박치기>. 어떠셨나요.
68년 교토, 조선학교 청춘들의 일상을 중심으로 재일 커뮤니티 사회의 모습을 그린 영화였지요.
저는 여러번 이 영화를 보았었는데 이번에 볼 때는 어느새 시대성에 집중하게 되더군요.
네, 맞습니다. 68이라는 시대성 말입니다.
일본에서도 혁명의 기운은 거세게 몰아쳤으나
일본 사회의 소수자인 재일조선인의 입장에서 그것을 보았을 때 엄연히 가시화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거리감,
그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사자 운동이 확보할 수 있는 모종의 포지티브한 정치성을 보았던 셈이지요.
제 귀에는 이렇게 들렸습니다.
'너희 일본 다수자들은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있지만,
일본 안에 엄연히 유물론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우리 재일조선인들의 현실을 똑똑히 보아라, 회피하지 마라.'
그런 메시지를 저는 읽어냈던 것입니다.
불가촉천민이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던 당대 재일조선인 부락촌에서 조선인들은 생계를 위해 고철상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쓸모없는' 고철더미를 조선학교 학생들이 일본 대학의 시위현장에 들어가
그것이 '혁명의 무기'라 추켜올리며 고가에 팔아치우는 장면에서는 모종의 쾌감마저도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의 이렇듯 날렵하고 유머러스한 태도가 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명동 시네콰논 일본영화 전용관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가장 깊이 남았던 건 공원 음악회 장면이었습니다.
안성이 북한에 가기로 마음을 먹은 뒤 그를 환송하기 위해 마련한 그 음악회 자리 말입니다.
그 장면에서 <임진강>이란 곡을 처음 들었습니다.
일본의 포크 밴드인 '포크 크루세이다즈'가 일본어로 번안해 불러 히트한 곡 <임진강>.
남과 북을 가로로 가르고 있는 강 임진강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곡 <임진강>.
조선인인 경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 일본인 고스케(강개)가 음악회에 초대받아 함께 이 곡을 연주하며 부르던 장면을 기억하시죠?
일본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는 이들이,
국민주의적 감수성에 익숙한 한국인인 제가 듣기에 좀 어색한 조선어로 임진강을 부르던 장면.
그 낯선 감각. 그 불편했던 감각.
그렇지만 동시에 묘한 온기가 느껴졌던 그 '불편함'의 감각을 저는 지금도 꽤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볼 때는 영화 삽입곡으로 쓰인 The Folk Crusaders의 <슬퍼서 견딜 수 없네>가 동시에 마음 속에 밟히더군요.
이전까지는 <임진강>이 그러했는데 말입니다.
극중 일본인 고스케 혹은 강개가 교토 재일조선인 부락촌과 일본인 구역을 이어주는 다리 위를 지나다
슬픔에 못 이겨 자신의 기타를 박살내고는 다리 밑으로 던져버리던 그 장면에서 흐르던 곡이 <슬퍼서 견딜 수 없네>였는데요.
그 장면에서 음악이 가진 호소력이랄까, 그런 걸 느꼈습니다.
무릇 음악의 힘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닐까요.
말하자면 '감각의 즉각성' 말입니다.
머리를 관통하기 이전에 삽시간에 마음을 울려버리는 그 감각의 즉각성 그리고 무차별성 말이지요.
저는 허다한 우리 인간의 감각들 중에서도 슬픔의 정동(情動),
그것의 힘을, 좀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의 정치성(씩이나!)을 신뢰하는 편입니다만.
대책 없는 낭만이지요?
<박치기>는 참 기이한 영화입니다.
대책 없이 어이없다가는 또 어느새 보는 이의 마음을 찔러버립니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이 곡의 일본어 가사를 제 한 줌의 일본어 실력으로 띄엄띄엄 해독해서는
흐르는 멜로디에 하나하나 얹혀보았습니다.
"카나시쿠떼 카나시쿠떼 도테모 야리키레나이 고노나루세나이 모야모야오 다레카니쓰게요오카"
http://www.youtube.com/watch?v=mBPGsJTm4BU
링크한 영상 속에서는 1968년 발표된 이 곡을 2014년에 아마도 같은 멤버들이 여전히 부르고 있습니다.
늙어버린 그들의 얼굴도 얼굴이거니와 바이올린 선율이 특히 가슴을 찌르고 맙니다.
'헬로 스트레인저'의 기나긴 여정을 마친 뒤 뒷풀이 장소에서 다같이 이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을 문득 상상해보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다시 한번, 앙코르, 이토록 대책없는 낭만. 그럼에도 불구, 얼마든지, 기꺼이!

아 그리고.
독회에 중요한 일원으로 함께 참여해주고 계시는 재일조선인 문학 연구자 윤송아 선생님께서
어제 이양지의 <유희> 한국어 번역본을 들고 오셔서 '헬로 스트레인저' 독회 팀원들께 공유해 주셨습니다.
필요하신 분 귀띔 주시면 기쁜 마음으로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린대로 다음번 영화 시간에는 김지운 감독의 다큐 <항로>를 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주에는 '디아스포라/공동체' 두번째 시간을 갖습니다.
리딩자료는 목요일 즈음하여 이곳 카페에 업로드해 두겠습니다.
아 그리고, 지난주에 이어 사진을 기록해준 문해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마치 함께 영화를 본듯 그 정동이 생생하게 전해져 옵니다.
극과 극을 이어주는 다리를 건너며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그 소통의 간극에 슬퍼서 견딜수 없는
고스케(강개)의 분노하는 마음
슬픔과 분노.
비분강개, 그것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슬픔 없는 분노
분노 없은 슬픔
그것은 다 반쪽입니다.
비분강개하는 그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다면
쉽게 변하지 않는 세상이라도 좀더 살만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헬로 스트레인저 스케치 기다릴게요.
감사합니다~^^
영화를 같이 보진 못했지만 저희와 비슷한 감흥을 받으신 것 같네요.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긴 여정이니 시간 되실 때 한번 부담없이 방문하여 함께해주세요 :)
영화와 문학과 음악, 그리고 시대와 감수성이 어우러진 모임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좋습니다. 아마도 모임의 가장자리에서 이 모든 경계를 아우르는 이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이 계신 덕분이겠죠. 그 잔잔한 역동성이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쑥스럽게 덧붙이자면, 박사논문을 막 끝마칠 즈음엔 제멋에 겨워 '연구자'라는 타이틀을 멋모르고 휘둘렀으나 갈수록 그 칼의 무게에 짓눌려 오도가도 못하는 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헬로~" 모임은 가능하면 그 칼을 공중부양시키고 가볍게(칼이 머리위에 있으니 썩 맘편하지는 않지만...) 들르고 싶습니다. 그저 "재일조선인 문학을 쫌 읽어본 한량" 정도로 취급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잔잔한 역동성'이란 과분한 표현을 제게 선사해주시다니요, 저야말로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난번 이양지의 <유희>에 관한 코멘트 들려주실 때 굉장히 인상적이셨어요. 자칫 편향된 방향의 해석으로 일관할 수도 있었던 것을 다행히 선생님께서 잘 일러주셔서 많이 배웠습니다. 독회에 함께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고 또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 기대됩니다. 며칠 뒤에 다시 뵐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