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327]전서=怡神養性[이신양성]
怡神養性
정신을 기쁘게 가지고
천성(天性)을 잘 기른다
원문출처= (成夢井 自警文)
成夢井(昌寧成氏)-양경공 자경문襄景公自警文
孝衰於妻子, 官怠於宦成,
病加於小愈, 禍生於驕盈,
淸心 寡欲, 怡神 養性,
忍快 恥愎.
효도는 처자를 너무 사랑하는 데서 쇠약해지고,
벼슬은 환관이 된 데서 게을러지고,
병환은 좀 나았다는 데서 더해지고,
재화는 교만하고 방자한 데서 생기는 것이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적게 하고,
정신을 기쁘게 하고,
성품을 잘 기르고,
상쾌한 일을 참고,
괴팍한 점을 부끄러워하라.
---《명가의 가훈》-(김종권 가정문고사 1977년초판, p. 171)
[다른해석]
病加於小愈 禍生於驕盈
淸心寡欲 怡神養性 忍怏恥愎
병환은 좀 나았다고 여기는데서 더해지고
재화(災禍)는 교만하고 방자하게 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적게하며
정신을 기쁘게 가지고 천성을 잘 기르며
원망스런 일을 잘 인내하고
괴팍한 일을 부끄러워 하라.
怏 = 원망할 앙,원한(怨恨)을 품고 앙갚음하려고 벼르는 마음.
*怏怏앙앙=마음에 섭섭하거나 시뻐서 앙심(怏心)을 품은 모양(模樣).
*怏怏不樂 앙앙불락 =매우 마음에 차지 아니하거나
야속하게 여겨 즐거워하지 아니함.
*愎=괴퍅할 퍅(다른 표현: 강퍅할 퍅)
원문출처=修山集卷之十四 / 漫筆
漫筆
成夏山夢井。字應卿。
嘗於壁書
孝衰於妻子。官怠於宦成。
病加於少愈。禍生於驕盈。
淸心寡慾。怡神養性。忍快耻復。
三十二字以自警。古人懲艾也如此。
禪經。兀然無事坐。春來草自靑。語意亦自好。
神器秘訣。卽近世兵家論火器者。其下雜引諸兵書。
頗有裨益於今日者。攷其卷弁。則乃昏朝相韓孝純所述
以韓之庸瑣憒憒者而能有此。先輩之不可慢如此。
柳公權曰。心正則筆正。余足之曰。筆正則心正。
盖於胸中冗憒時。習數行字。則心必正矣。
南秋江英特。足以高出一世。第其氣象太露。未免浮快。
雖無昏朝之禍。終非明哲保身之士也。抑其天不永年。
未至聞道之位而然歟。
淸寒子風節灑落。令人聳動於百世之下。緇髡之形。
溷穢之辱。焉能凂其氷懷玉操哉。
圃隱先生節義如文文山。理學如朱晦菴。忠略如武鄕侯。
文章如杜草堂。我東方文物之盛有如今日。亦莫非先生之所啓也。
雖謂之夫子之前未有夫子。夫子之後未有夫子可也。
寒暄先生少豪逸不覊。遊走街市。鞭笞人物。人見先生。
輒避匿。旣長。發憤學文。嘗作詩。有小學書中悟昨非之句。
自此終日危坐。講習不懈。雖家人未嘗見其惰容。
有志之士。亦當如此。
成夢井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응경(應卿), 호는 장암(場巖).
성개(成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희(成熺)이고,
아버지는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성담년(成聃年)이다.
어머니는 김박(金博)의 딸이다. 영의정 상진(尙震)의 매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98년(연산군 4)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했으나
연산군의 난정(亂政)을 보고 벼슬을 단념, 물러나 있었다.
그러다가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녹훈되고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에 발탁되었다.
곧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으로 옮겨 있으면서
최숙생(崔淑生)과 함께 군덕(君德)과 치도(治道)에 관한 9잠(九箴)을 지어
병풍으로 만들고는 왕에게 올렸다.
이어 대사간·동부승지 등을 거쳐 차례로 승지직을 역임하면서 도승지가 되었다.
1509년(중종 4) 이조참판이 되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실려 있는
대선취재급첩조(大禪取才給牒條)가 사실상 도첩제(度牒制)의 폐지로
불필요한 데도 이를 남겨두었다가 혹 숭불(崇佛)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여 이 조목의 삭제를 주장하였다.
그 뒤 대사헌으로 하산군(夏山君)에 봉해졌다.
이어 병조참판·한성부좌윤을 거쳐 1515년 예조참판이 되었을 때,
장경왕후(章敬王后: 중종비)의 상(喪)을 만나 염습(殮襲)을 조속히 거행하라는 왕명에 반대하여 상례법에 따르게 하였다.
이어 한성부판윤으로 전임되었다가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타고난 성품이 단아하고 순수하였다. 학문에 힘쓰며 남과 다투기를 피하고
사람을 아꼈었던 관계로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사류와 가까웠다.
예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양경(襄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