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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담론201 (2014년 17권 4호 통권 56호)
IMF 경제위기 이후 초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에 나타난 부(富) 담론 분석 †
장 형 철*
국문요약
이 연구는 IMF 경제위기 이후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 한국사회에 종교 특히 개신교는 경제적인 부에 대한 어떤 이해를 제공하였는지 초대형 교회 목회자의 설교를 분석하는 것을 통하여 알아본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는 그들의 부에 대한 설교가 사회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설교 안에서 어떠한 종교적 부(富) 담론이 만들어 졌으며, 그 담론이 어떠한 사회적 영향력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설교 안의 부 담론이 한국사회의 지배적 담론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 분석한다. 분석은 페어클로프의 비평적 담론분석이론을 사용하여 이루어졌다. 분석 결과를 보면 초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부 담론은 기독교인이 되면 부자가 된다는 확신과 부자가 되고 나서 해야 하는 행동을 제시하며 부자의 완전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부 담론속에서 부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표상되며, 나아가서 부자가 되는 축복을 받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십일조를 포함한 헌금이라는 해석이 제시되고 있 다. 그리고 설교자들은 돈 대해서 부정적 진술을 하는 인식양태와 함께 십일조와 현금 등을 통해 완전하고 진정한 축복을 받은 부자가 된다는 의무양태를 사용하여 중산층 이상의 청중들이 자신을 부자 기독교인으로 자기동일화를 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개신교의 부 담론은 한국사회 전체에서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신자유주의적 부 담론과 종속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 담론 안에서 중산 층 이상의 신자는 자신을 부자로서 자기동일화 할 수 있지만 가난한 신자는 타자 가 되어 배제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개신교 부 담론은 종교의 궁극적 가치인 보편 적 사랑과 사회적 정의의 실천을 어렵게 하며 나아가서 이데올로기화된 종교 담론 이 되어버릴 수 있다.
주제어: 장르, 담론, 스타일, 양태, 사회적 상호작용, 표상화, 해석, 자기동일화, 이데올로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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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2012 년도 정부재원 ( 교육과학기술부 사회과학연구지원사업비 ) 으로 한국연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NRF-2012-330-2012S1A3A2033608).
* 인덕대학교 교목 / 종교사회학
Ⅰ. 들어가는 말
세계최빈국에서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은 근대화 과정 속에서 언제나 발전을 강조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1997년 대한민국이 외환부 족으로 인해 국제통화기구(International Monetary Fund, 이하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던 경제위기 소위 IMF 위기는 한국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IMF 위기는 한국사회에 대량실업, 비정규직 증대, 임금추락, 여 성고용불안 증대, 부당노동행위 급증 등으로 대표되는 삶의 위기를 가져왔다 (강수돌, 1998: 58-63).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사회에는 경제적인 부 ( 富 )가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 되었다. 이 연구는 이러한 IMF 경제위기 그리고 그로인해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 한국사회에 종교 특히 개신교는 경 제적인 부에 대한 어떤 이해를 제공하였는지를 초대형 교회 목회자의 설교를 분석하는 것을 통하여 알아보려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들의 부에 대한 설교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떠한 사회적 담론을 만들고, 그 담론이 어떠한 사회적 영향력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담론으로서의 설교가 한국사회의 지배 적 담론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 그 역학관계를 밝혀내는 것을 이 연구의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이 논문은 첫째로 IMF이후 한국 사회 계층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둘째로 설교의 담론적 성격과 설교가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을 논의 할 것이다. 셋째로 본격적으로 초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에 나타난 부 담론을 페어클로프(Norman Fairclough)의 비평적 담론 분석 이론(Critical Discourse Analysis Theory)을 활용하여 분석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교 속의 부 담론이 갖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밝혀 보도록 하겠다.
Ⅱ. IMF 위기 이후 중산층의 변화와 개신교
IMF 위기는 한국에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가져왔다. 박길성(2003: 124) 은 한국인의 삶의 질, 사회갈등, 사회적 자본 등을 측정하는 사회조사를 통해 IMF 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개인관계 중심, 심각한 경제갈등과 지역갈등, 취약한 공적 신뢰와 견고한 사적 신뢰 등의 특징을 가진 사회가 되었다고 분석 하였다. 그리고 은수미(2009: 25)는 지니계수 분석을 통해 IMF 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소득 불평등이 커졌으며 이로 인해 양극화 현상이 심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한국사회의 계층 또한 변화 하였다. 함인희 (2012)는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활용하여 3개의 시점(1998년, 2003년, 2008 년)의 중산층(중위 소득의 50-100%에 속하는 경제적 중산층)의 변동 추이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는 표1에서 보는바와 같이 중산층은 급격한 감소추세에 있다(함인희, 2012: 546).
<표 1> 중산층 가구 규모 추정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한국 개신교인들의 계층적인 특성을 살펴보자. 2008년 한국종합사회조사(이하 KGSS)의 결과에 의하면, 한국의 관리/ 전문직의 7.1%가 불교, 35.3%가 개신교, 11.8%가 가톨릭, 그리고 42.4%가 무종교이다. 또한 같은 해 조사에서 가구 연수입이 약 4,000만 원 이상인 중간계급 중 19%가 불교, 29%가 개신교, 11%가 가톨릭, 그리 고 38%가 무종교이다(김상욱 2009:130). 2009년 KGSS에서는 개신교인의 41.6%가 관리전문직 그리고 16.7%가 생산기능노무직이다. 그리고 같은 해 KGSS에서 직업에 따른 개신교인의 종교집회 참석빈도를 보면 아래의 표 2와 같이 전문가, 기술자 및 준전문가, 사무직원, 서비스 근로자 및 상점과 시장판매 근로자가 높은 참석빈도를 보인다. 이 직업들 중 서비스근로자와 상점과 시장판매 근로자를 제외하고 다른 직업들은 우리사회의 중산층 이상의 직업이라고 볼 수 있다.
<표 2> 개신교인의 직업별 종교집회 참석빈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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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 2 는 2009 년 KGSS 결과를 필자가 응답자의 직업을 독립변수로 재구성 하였다 .
이러한 결과에서 볼 수 있는 것은 IMF 이후 최근까지 한국사회 안에서 개신교는 주로 중산층 이상의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의 종교이며 중산층 이상이 상대적으로 종교생활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강인철도 2005년 인구센 서스 결과를 교육정도와 직업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기독교인 2) 의 중산층화 경향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강인철, 2013: 320, 323). 그렇다면 IMF 이후 개신교의 어떤 요소가 중산층 이상의 계층을 끌어 들이고 있는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가장 큰 이유가 한국 개신교가 중산층(또는 그 이상의 계층)과 일종의 친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특히 개신교 제의(예 배)의 핵심인 설교와 중산층의 경제적 욕망 사이에 이러한 친화성이 있을 수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중산층은 현재 감소하고 있고 나아가서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산층은 자신들 이 부유층이 되거나 최소한 중산층으로 남기를 원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부( 富 )에 대해서 언급하는 강단에서의 설교는 그들의 지대한 관심의 대상인 부와 나아가서 중산층이나 그 이상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자기동일화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을 실제적인 것으 로 확인 하려면 설교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이에 따라 필자는 이 논문의 네 번째 장에서 비평적 담론 분석 이론을 사용하여 설교가 어떠한 사회적 담론을 구성하며 나아가서 부에 대한 어떠한 이해와 해석을 제시하며 사회와 상호작용을 하는지 분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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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인철은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의 중산층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잘 알려진 바대 로 개신교와 가톨릭은 역사, 성장 추이, 교리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개신교와 가톨릭의 중산층화는 같은 현상이지만 원인과 양상이 다를 수 있다. 이에 대한 것 은 다음 연구로 미루고 이 연구에서는 개신교의 중산층화만을 중심으로 다루겠다 .
Ⅲ. 담론과 설교
1. 설교의 담론적 특성
푸코(Michel Foucault)에 의하면 담론은 기호들의 연속된 집합으로 인해 구성된 것으로서 어떤 독특한 존재양식을 부여받을 수 있는 언표 (statements 또는 enouncements)이다. 담론은 담론이 말하는 대상, 담론이 말하여지는 장소와 방법, 그리고 말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 즉 주체에 의해 만들어진다(Foucault, 1972: 107). 그러므로 담론은 단순한 언어 구성물이 아니라 주체의 사회적 행위로 보아야 한다. 누구도 스스로 ‘이것은 담론이 다’라고 하면서 말하지 않지만 담론은 언제나 말하여 지고 있다. 담론을 통해 주체는 진실(또는 진리)을 구성하고 강조하며 그것이 주체의 권력으로 정당 화(또는 합법화) 되어 지식이 된다. 이러한 담론은 단순히 그 어떤 것의 실체나 관계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실체나 관계를 직접 형성하고 구성한다. 어떤 실체나 사건에 대해 말하는 각각의 담론들은 그 담론들을 말하는 각 각의 사회적 주체들의 방법과 입장에 의해서 구성되기 때문이다 (Fairclough, 1992: 3-4).
그런데 담론은 또한 개인적 집단적 의식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서 주체를 구성하기도 한다. 예거와 마이어(Siegfried J ä ger and Florentine Maier) 에 의하면 주체는 행위자일 뿐만 아니라 담론의 생산물이다(J ä ger and Maier, 2009: 37-38). 그들에게 담론은 첫째로 개인의식과 집단의식을 형성한다. 그리하여 개인적 주체나 집단적 주체를 구성한다. 둘째로 주체가 행위를 결정 할 수 있다면 주체를 형성하는 담론도 행위를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주체의 행위가 사회 안에서 구체화(또는 물질화 materializations)된 것을 실체라고 한다면 담론도 사회적 실체를 구성한다 (J ä ger and Maier, 2009: 36-37). 이러한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주체를 형성 하고 실체를 구성하는 담론의 특성을 설교도 가지고 있다. 설교는 예배에 참석한 개인들에게 그리고 회중들에게 기독교인으로서 주체성을 형성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설교학자 이성민은 설교사역 내용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고 설교사역의 목적은 진리의 선포와 그로인한 삶의 변화라고 밝히고 있다(이성민, 2007: 186, 193). 담론이 주체를 구성하는 것처럼 설교는 청중들로 하여금 기독교인으로서의 개인적인 그리고 집단적인 주체를 형성하도록 한다. 그리고 설교는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으로 변화된 삶을 세상에서 살도록 권면함으로써 다시 말해 신앙행위를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사회 안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존재의 실체를 구성 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담론은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 즉 말 또는 언어의 덩어리이다. 담론은 바로 언어로 만든다. 그러므로 담론을 염두에 두고 언어의 특성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어는 언제나 사회적 행위와 연결되어 있다. 언어는 그냥 말하여지지 않는다. 언어는 언제나 맥락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사회적 상황 속에서 사용된다. 페어클로프에 의하면 언어적 현상은 사회적이다 (Fairclough, 2001: 19).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정하여진 방법으로 사회의 영향 을 받으면서 그리고 사회 안에서 언어를 사용한다. 즉 사람들은 사회 안에서 말하고 듣고 읽고 쓴다. 또한 페어클로프는 사회적 현상은 언어적이라고도 주장한다(Fairclough, 2001: 19). 왜냐하면 언어는 사회적 상황 안에서 어떤 사회적 과정이나 행위를 표현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회적 과정이 나 행위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제국주의, 사회주의, 해 방, 또는 테러리즘등과 같은 언어들을 정치가들은 일률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각 정치가들은 이러한 언어들을 자신들의 정치행위나 과정의 성과물을 얻기 위한 투쟁을 할 때 서로 다르거나 또는 서로 양립 할 수 없는 의미로 종종 사용한다. 이처럼 언어는 단순히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만 이 아니라 사회적 행위나 현상을 진행하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개신교 예배의 핵심은 설교이다. 그리고 설교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로서의 설교는 예배가 진행되는 상황 안에서 또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맥락 안에서 청중들과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설교라는 언어적 현상은 사회적이다. 그리고 또한 설교의 언어는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신앙을 확인하고 점검 하게 하며 앞으로의 삶을 결정하는 구체적인 과정을 진행시킨다. 즉 청중들 의 사회적 행위를 설교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이끈다.
2. 담론으로서 설교의 사회적 성격
한국 개신교회는 목회자(설교자) 중심이다. 2012년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이하 한목협)가 의뢰하여 글로벌 리서치가 수행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 개신교인의 현재 다니는 교회의 출석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집 과 가까워서’이고 그 다음이 ‘목사님의 설교’이다(한목협, 2013: 134). 그런데 아래의 표3에서 보듯이 가까워서라는 이유는 1998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고 있고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라는 이유는 증가하고 있다. 또한 표4에 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신앙성장에 가장 크게 도움을 받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교회예배/목사님의 설교가 63.6% 다른 항목 보다 압도적으로 높다(한목협, 2013: 122).
<표 3> 현 교회 출석이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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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목협의 조사결과를 필자가 재구성하였음
그러므로 설교는 사회적 수준에서 개신교인 청중들에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설교가 종교적 진리의 선포와 보편적인 사랑과 같은 종교적 가치를 선언한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설교가 종교적인 가르침 일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담론을 만들고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다. 특히 개신교 예배에서 말하는자인 설교자와 듣는 자인 청중이라는 일종의 계급적인 위치의 차이로 인해 일종의 권력관계도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설교는 개신교인 청중들에게 신앙인으로써 말하고 행동해 야 하는 것을 제안하거나 통제하는 기능을 가질 수 있다.
3. 분석할 설교들
필자는 이러한 설교의 사회적 성격을 염두에 두면서 분석의 대상을 초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로 선택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의 설교가 초대형교 회에서 다수의 청중에게 직접 행하여지고, 이후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에서 서비스되거나 SNS를 통해 확산되며, 나아가서 책으로 출판 되어 담론으로 서 대중적인 확산력과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는 초대형교회의 목회자인 곽선희 목사(소망교회), 김홍도 목사(금란 교회),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이동원 목 사(지구촌교회) 그리고 김동호 목사(높은 뜻 숭의교회)들의 주일예배 설교를 IMF가 시작된 직후인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정리하여 분석하였다. 그러나 일일이 모든 설교현장을 방문 할 수 없으므로 1998년 이후부터 2012년까지 출판된 주일예배 설교집을 모두 정리하고 분석하였다. 이들 설교자들은 IMF이후 한국사회가 변화할 때부터 최근까지 초대형 교회에서 담임 목회를 하였다. 김홍도 목사는 2008년에 그리고 곽선희 목사는 2003년에 각 각 은퇴하였지만 여전히 정기적으로 설교를 하고 있다. 물론 다른 초대형 교회의 설교자들도 있다. 그러나 주일예배 설교집을 출판 하지 않는 목회자의 경우 는 임의로 제외 하였다. 그리고 유사한 성격이나 지역의 초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경우는 한명만 임의로 선택하였다. 단 김동호 목사의 경우는 2000년 연속적으로 3개월 동안 부( 富 )를 주제로 행한 주일설교를 기초하여 재편집한 저술인 “깨끗한 부자”를 참고 하였다. 김동호 목사는 개신교계에서 논쟁중인 ‘청부론( 淸富論 )’의 중심에 있는 설교자이기 때문에 선택 하였다. 그리고 각 설교자의 강해 설교집은 설교를 한 시기가 명확히 파악이 되지 않으므로 제외 하였다. 이들 설교자들이 1998년에서 2012년 까지 출판한 설교집은 아래 표5와 같다.
<표 5> 초대형 교회 설교자의 출판된 주일예배 설교집
위의 설교집들에서 ‘부’( 富 )나 ‘부자’ 또는 ‘물질의 축복’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경우를 정리하여 보면 아래의 표6와 같다.
<표 6> 부에 대해 언급한 설교
Ⅳ. 텍스트와 담론 분석
예거와 마이어에 의하면 담론 분석의 목적은 특정 시간대에 사회에서 무 엇이 말하여지고 또 말하여 질 수 있는지 정리함으로써 담론을 분쇄하여 풀어내고, 그 담론의 한계를 확대하고 축소하는 테크닉을 밝혀내는 것이다 (J ä ger and Maier, 2009: 36). 담론분석의 주된 대상은 일차적으로 텍스트이다. 그러나 담론이 텍스트는 아니다. 담론은 언어와 텍스트를 포괄한다. 세부적으로 구별한다면 담론은 언어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전과정을 의미하고 텍스트는 그 과정의 한 일부이다. 왜냐하면 담론의 언어는 일련의 사회적 과정을 통해 텍스트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즉 텍스트는 결과물이고 언어는 그것을 만드는 제작자이다(Fairclough, 2001: 20). 담론은 좀 더 추상적이다. 담론은 지식과 구조의 형태와 속성을 내포하는 반면에 텍스트는 담론에 대한 구체적이고 독특한 실현이다(Ruth Wodak, 2008: 6). 그리고 담론은 텍스트를 생산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사회적 조건과 관련되어 있다. 이 사회 적 조건은 담론이 발생하는 사회적 환경, 담론의 기반이 되는 사회기관 그리고 나아가서 사회전체를 의미한다(Fairclough, 2001: 20).
그런데 담론분석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담론이 사건이나 사고에 대한 특정한 해석과 해석의 과정이라면 텍스트는 바로 그 해석과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자원이다. 그러므로 담론분석은 첫째로 텍스트와 텍스트의 제작과 해석과 정을 살펴보는 것이고 둘째로 그 해석이 만들어진 사회적 조건 즉 맥락 (context)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Fairclough, 2001: 21). 이러한 텍스트 자체 그리고 텍스트와 사회의 상호작용(interaction)으로 만들어진 해석 (interpretation) 그리고 그 해석의 바탕이 되는 사회적 맥락을 페어클로프는 <그림 1>과 같이 표시하였다(Fairclough, 2001: 21).
<그림 1> 텍스트, 상호작용 그리고 사회적 맥락으로서의 담론
이를 초대형 교회 목회자 설교 속에 나타난 부 담론 분석에 적용해 보면 먼저 설교문(텍스트)에 나타난 부에 대한 서술들이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 하며 제작되고 또 부를 어떻게 해석하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이 만들어진 사회적 조건 또는 맥락과의 관계를 따져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텍스트 분석을 진행 할 것인가? 페어클로프 에 의하면 텍스트는 ‘장르’(genres), ‘담론’(discourses), 그리고 ‘스타일’ (styles) 세 가지 국면에서 분석이 가능하다(Fiarclough, 2003: 16-17). 텍스트 의 ‘장르’를 분석한다는 것은 텍스트가 어떤 문법과 표현유형을 사용하며 발 화하여 어떤 일을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담론’은 텍스트가 무엇을 표상하고 특정 현상에 대해 어떤 해석을 제시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스타일’은 텍스트 내에서 대명사, 문법, 어휘, 그리고 조동사들을 사 용한 양태(modality)를 통해 어떻게 자기 자신을 특정 담론에 전념케 하 여 자기동일화 4) (self-identification)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Fairclough, 2010: 75). 이러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설교에서 무엇이 어떻게 말하여지고, 부에 대한 어떤 표상과 해석이 형성되며, 그리 고 설교를 듣는 중산층 청중들이 어떻게 자신들을 개신교인으로 자기동일화 하는지 알 수 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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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기서 자기동일화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여 그것에 동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 좀더 자세한 내용은 5 장의 스타일 분석에서 다루겠다 .
5) 물론 초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의 설교를 이상의 세 국면을 중점적으로 분석하여 유형 을 나누어 보면 한 설교자가 특정한 유형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 그리고 한 설교 자에게서 한 가지 이상의 유형이 나타나기도 한다 . 그러므로 이 논문에서 제시하는 설교자의 유형은 대표적인 예로서 제시하는 것이지 특정 목회자가 한 가지 유형만을 나타낸다는 것은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둔다 .
Ⅴ. 설교에 나타난 부 담론 분석
1. 장르
대형교회 설교자의 부에 대한 설교의 장르는 크게 선언형, 증언형, 강조형 세 가지로 나타난다. 선언형의 대표적인 예로는 김홍도 목사의 설교를 들 수 있다.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교회 6)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생 자까지 우리를 위해 주신 하나님이 그 까짓 물질 같은 것을 안 주시겠습니까? 7)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또 물질을 주실때 물질에 치우쳐서 하나님의 몫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데서 물질 의 사고가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김홍도, 2005b: 289).
증언형의 대표적인 예로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들 수 있다.
축복의 노다지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이 하루는 가난한 집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갓난아이를 안은 젊은 여인이 몸져누워 있었습니 다 (중략) 결국 그는 아기엄마에게 돌아가 갖고 있던 돈을 주고 돌아왔 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밥값이 없어 굶어야 하는 허드슨 테일러 앞으로 웬 우편물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상자를 열어 보니 놀랍게도 10 실링짜리 금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가 가난한 사람에게 주자 하나님께서 후히 갚아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하나님께서 후히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 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축 복은 모두 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구원도 언약입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입 니다. 물질적인 축복도 언약입니다. (조용기, 2007: 339).
강조형은 김동호 목사가 주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아래의 예와 같이 그는 신앙인의 부자됨을 설교한다.
세상의 불평등을 치유하는 부자가 되라
나는 부자로 사는 것이 좋다. 나는 가난한 삶이 되는 것은 싫다. 그러나 가난이 무섭지 않다. 가난하게 되는 것이 싫지만 만일 가난하게 되더라도 그 속에서 행복하게, 성공적으로 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결국 가난을 극복 할 것이 다. 나는 정말 그럴 자신이 있다(김동호, 2001: 178).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색다른 점이 있다. 김동호 목사는 다른 설교자와는 다 르게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부자의 완전함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그는 청중들에게 부자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에 대한 관심을 유도한다.
세상의 불평등을 치유하는 부자가 되라
부자가 되었다고 곧 인생의 승 리와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것이 행복한 삶 자체를 보장 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부자를 잘 사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김동호, 2001: 178).
이상 세 가지의 유형은 모두 청중들의 사고와 행위를 이끌어내는 기능을 한다. 먼저 선언형은 설교자의 선언을 수용하게하고, 증언형은 설교자가 제시하는 실례를 듣고 그것을 신뢰하게 한다. 그리하여 기독교인 되면(또는 신 앙이 있으면) 부( 富 ) 즉 물질의 축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한편 강조형의 경우는 부자가 되고 난후 반드시 해야 하는 행동의 필연성을 강조하면서 진정한(또는 완전한) 부자 김동호 목사의 표현대로 한다면 “깨끗한 부자”가 되어야 함을 제시한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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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 논문에서 인용되는 설교의 맨 앞부분의 굵은 글씨는 해당 설교의 제목이다 .
7) 인용 설교 안의 밑줄 친 부분은 필자의 강조이다 .
8) 김동호 목사 설교의 이러한 측면은 담론과 스타일 분석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다 .
2. 담론
연구 대상 목회자들의 설교에서 나타나는 부( 富 )에 대한 표상화와 해석을 차례로 살펴보자. 우선 부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표상된다.
지존자의 초청
이 세상의 물질은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인간이 죄를 범하고 타락하여 이것을 사용할 줄 몰라서 문제가 된 것이지, 물질이 악한 것은 아닙니다 (중략) 예수님도 물질 문제에 시험을 당하신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물질의 시험을 당하고, 물질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면서 이것을 통해서 또한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마 4:3).지금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려운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고 하겠지만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돈이 귀한 것을 몰라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부어 주신 이 엄청난 물질의 축복, 이 기적을 경홀히 생각한 데에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돈 있는 자를 비난했습니까? 돈만 벌면 다냐? 국가가 경제만 성장하면 되느냐? 여러분, 우리에게 찾아온 돈을 우리가 박대하여 온 국민이 내쫓은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6.25전쟁 후 폐허 속에서 일어난 것은 정치를 잘 했기 때문에, 혹은 경제 제일주의로 나가서 이만큼 살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축복하셔서 물질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김삼환, 2003: 146).
그런데 이러한 ‘부는 축복이다’라는 담론의 변형된 형태도 나타난다. 이 형태는 ‘부자는 축복 받은 자’라는 단순한 논리가 조금 복잡해진 형태이다. 대표적인 예가 곽선희 목사의 설교이다. 그는 부자를 어리석은 부자와 지혜로운 부자로 나누어 구별하려한다.
행복을 잃어버린 부자
세상에는 두 가지의 부자가 있습니다. 하늘나라를 위해서 재물을 하늘에 쌓아둔, 하늘에 많이 쌓아둔 그런 부자가 있는가하면 땅에다 쌓아두고, 쌓아둘 수 있는줄 알고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아주 망가져버리는 부자가 있습니다. 비참한 인간, 돈의 노예가 된 인간, 거기다가 목숨을 건 인간,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여러분, 내게 불필요한 것이 없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아무쪼록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맙시다 . 지혜로운 부자 하늘나라에 대하여 부요한 그런 부자, 금생과 내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그런 부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곽선희, 2004: 245).
그리고 이러한 부에 대한 변형된 담론을 좀 더 발전시킨 설교자가 김동호 목사이다. 그는 마태복음 6장 19절과 20절 9) 을 풀이 하면서 부자됨의 의미를 상기 시킨다.
돈은 복이 아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받아 부자가 된 사람은 물질의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물질의 은사를 받은 것이다. 은사는 주를 위해 쓰라고 주시는 것이다. 물질도 주를 위하여 바로 쓰라고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는 것은 복을 누리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바로 사용하라고 주시는 것이다. 은사는 쓰면 늘고 쓰지 않으면 소멸하는 특징이 있다. 주를 위해 바로 쓰지 않으면 물질의 은사 역시 자연 소멸 하게 될 것이다. 반면 물질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을 잘 사용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더 크고 많은 물질의 은사를 주시리라고 나는 믿는다(김동호, 2001: 22).
김동호 목사는 축복 받으면 부자된다는 기존의 기복신앙과는 다르게 진정으로 축복 받은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자 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부를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해석을 삽입한다. 그는 이렇게 진정한 부자가 되기 위 한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 낸다. 즉 그는 부를 얻는 것만으로 축복 받은 자가 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부를 얻고 제대로 사용하는 것을 추가한다. 그러므로 돈 자체는 경계해야 하지만 돈을 제대로 사용하는 부자는 여 전히 축복 받은 자로 표상된다. 그러나 정용섭(2006: 91-92)은 김동호 목 사의 이러한 설교를 “본말이 뒤바뀌어 있다”고 비판한다. 김동호 목사는 설 교에서 자신의 인생관이나 철학과 경험이 우선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사족으로 사용된다(정용섭, 2006: 94). 김성건은 한국의 IMF 위기 이후 심화된 사회적 양극화를 배경으로 최근에 등장한 김동호 목사의 이러한 청부 론이 주로 중간계급 가운데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주장한다(김성건, 2013: 309). 김동호 목사의 설교는 일견 이웃사랑과 나눔 등의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설교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의 보물을 땅에 쌓아두 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는 본문보다 더 강하게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본문 들 10) 을 그는 어떻게 해석 할지 매우 궁금하다. 김동호 목사는 부자가 된다 는 것은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여 승리한 결과라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는 자본주의적인 사회 문화 정치 경제체계로 인한 한국사회의 기회의 불평등과 분배의 불균형을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비판하지 않는다. 그는 경제는 잘 모른다고 말한다(2001: 6). 그러면서 그는 부자는 물질의 은사(gift)를 받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은사(물 질)를 잘 사용하여 축복 받은 자가 되라고 설교한다.
김동호 목사는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설교를 계속 반복한다(김동호, 2001: 15, 73, 103, 159, 166, 191). 이는 담론의 테크놀로지 중 하나인 반복사용이다. 페어클로프는 담론의 중요한 전략으로써 상징들의 배열과 그것이 산출하는 의미를 자연스럽게 여기게끔 만드는 대표적인 언어적 테크놀로지로 반복사용과 완곡어법을 제시한다. 반복사용은 특정 단어 또는 단어군을 이례 적으로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이다(Fairclough, 2001: 96-97). 현실의 특정한 측면 또는 현실의 특정한 분류도식을 응축하는 단어들을 반복하는 것은 각인 효과가 있으며 반복된 언술을 자연스럽게 진실로 믿게끔 하는 이데올로기 효과가 있게 만든다. 한편 완곡어법은 부정적인 효과를 막기 위해 더욱 관습적이고 친숙한 단어로 대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어클로프는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유폐하는 것을 격리로, 탈출을 실종으로, 감금병동을 출입제한병동으로 표현하는 제도화된 언어관행을 논의 한 바 있다(Fairclough, 2001: 9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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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 오직을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 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 개역 개정판 ).
10) 이러한 예는 많다 .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고 나를 따르라 ( 마태복음 19:16-30) 는 본문과 자신의 재산의 대부분을 재분배하는 삭개오의 이야기 ( 누가복음 19:8) 가 그러한 본문들이다 . 심지어 산상수훈 ( 마태복음 5 장 또는 누가복음 6 장 ) 에서는 가난한 자들이 받는 축복과 부자들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예수의 선언이 나온다 .
김동호 목사가 ‘하늘에 보물을 쌓는 보물‘을 반복 강조하여 각인 하는 것처럼 이동원 목사도 ‘축복,’ ‘지혜로운 자,’ ‘면류관,’ ‘깨끗함’ 등의 언어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 선택은 또한 부정적인 표현을 배제하고 성스러움을 잘 나타내며 교회에서 친숙한 종교적 수사를 사용하는 이동원 목사의 완곡어법을 잘 보여 주기도 한다.
지혜로운 사람을 위한 면류관
세 번째 면류관은 재물의 면류관 혹은 부요의 면류관입니다. 잠언 14장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지혜로운 자 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 이 말씀은 재물을 모으는 두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지혜롭게 모으는 사람과 어리석게 모으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존경받는 부자가 있고 손가락질 을 받는 부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정당하게 돈을 벌고 또 낭비하지 않고 근검절약해서 하나님께 받은 축복으로 이 웃을 돕고 섬기면서 사는 부자가 된다면, 이것은 명예로운 부자입니다. 깨끗한 부자이며 존경받는 부자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 사회가 선진국으로 갈수록 존경받는 부자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중략)부끄러운 부자는 남을 속이고 뇌물을 받고 착취를 통해 재물을 얻은 부자들입니 다. 그들은 손가락질을 받는 부자들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부자들이 일 반 대중의 미움의 대상이 되는 원인은 그들이 돈을 정당하게 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선진국이 되면, 좀 더 정직한 사회가 되면 아마 정직하게 돈을 번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존경을 해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의 재물은 축복의 재물입니 다. 정말 아름다운 재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 곧 지혜롭게 인 생을 살고 지혜롭게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재물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아니, 재물 그자체가 면류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재물은 그자체 가 면류관이며 그 자체가 영광스럽다는 말입니다.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며 그의 수고의 결과입니다. 땀 흘림의 결과입니다. 그의 근검과 저축의 결과입니다. 그가 애쓴 결과입니다. 그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그 자체가 면류관이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입니다. 저는 깨끗한 부자가 아주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들에 게 약속하신 세 가지 면류관은 무엇입니까? 아름다움의 면류관과 영화 의 면류관 그리고 부요의 면류관입니다(이동원, 2006: 19).
이동원 목사는 이러한 완곡어법을 자주 사용하여 매우 선택적인 언어구사를 한다. 그러나 다른 초대형 교회 설교자들과 비교하였을때 부에 대한 해석의 커다란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는 매우 세련된 언어를 선택하여 보수주의적 신앙을 설교하고 있다. 이러한 반복쓰기와 완곡어법은 권력집단의 실 제적인 이해관계를 은폐하고 청중이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게 하는 이 데올로기적 효과를 낳는다. 이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부자는 축복받은 자라는 이러한 표상을 기반으로 하여 초대형 교회 설교 자들은 물질 축복을 받거나 부자가 되는 가장 분명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십일조를 포함한 헌금이다. 이러한 ‘십일조와 헌금을 하면 축복을 받는다’ 는 해석은 의무적, 직설적, 그리고 우회적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의무적인 형태는 조용기 목사와 김홍도 목사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거두려면 심으라
그뿐 아니라 우리는 물질의 십일조를 심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는 율법 시대의 잔재로서 은혜의 시대에는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세워지기 430년 전에 이미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심음으로써 생활 속에 물질의 부족함이 없는 길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 성찬을 받았으면 우리의 얻은바 소득 중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십니다(조용기, 2001: 165).
직설적인 형태는 김삼환 목사에게서 잘 나타난다. 십일조는 축복을 부른다고 직설적으로 설교한다.
두려워 할 것과 두려워하지 않을 것
말라기 3장 8절에 십일조를 지키지 않는 것은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으로 잘 지킨 개인이나 민족은 모두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릴 때 우리가 더 욱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릴 때 우리가 더욱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김삼환, 2004b: 210).
하나님의 자녀
십일조를 하면 성도의 생활이 발전합니다. 요즘같이 과학이 발달하고 지식이 발달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은혜 안 주시면 교회 나올 사람이 누가 있고 십일조 생활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은혜를 주십니다. 십일조를 해보면 십일조가 점점 늘어납니다. 우리 교회도 개척할 때 교인들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내 집 가진 분이 없었고 차 가진 분도 없었습니다. 너무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서 저는 하나님 앞에 우리 교인들 복 받는 것이 소원 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때 어려웠던 집사님들이 다 좋은 집에 좋은 차 갖고 사업도 늘리고 엄청나게 축복을 받았습니다(김삼환, 2009: 218).
이동원 목사도 십일조는 최소한이라고 직설적으로 설교한다.
선교 사업을 감당하는 원리
헌금은 수입에 비례하게 드려야합니다. (중략) 많이 얻으면 많이 얻은 대로, 적게 얻으면 적게 얻은 대로 저축해서 헌금해야 합니다. 저는 이 개념 속에는 헌금은 십일조 이상의 것이라는 정신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십일조는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의 백성들 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의 최저라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십일조는 최저의 기본적인 헌신의 표시였습니다(이동원, 2001: 337).
이들과는 다르게 강남 소망교회 교인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곽선희 목사는 우회적으로 헌금을 강조한다. 11)
행복을 잃어버린 부자
소망교회 목사로서 저는 가끔 이상한 질문을 받 습니다. 예배당을 짓노라고 작은 교회, 시골교회에서들 얼마나 애를 씁 니까. 이럴 때 저를 만나가지고 “서울 1번지 압구정동 여기에 사는 사람 들은 돈이 많다는데, 목사님은 교인도 많고 돈도 많을 텐데 저 좀 도와주세요”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습니다. 그때 제가 대답하는 말이 있습니다. 해볼까요? “교인주머니에 있는 돈은 돈이 아닙니다. 헌금한 것만 돈이지. 교인주머니에 돈이 얼마가 있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입니 까.” “그게 하나님의 나라와 무슨 상관이냐”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친 돈만 돈입니다(곽선희, 2004: 245).
곽선희 목사는 부 보다는 신앙을 강조하며, 부 자체에는 의미가 없고 부가 헌금이 되어 사용될 때만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설교에서 청 중들에게 제시하는 부에 대한 심도 있는 기독교적 해석이나 신앙적 경제 윤리는 찾기 힘들다. 그래서 정용섭(2008: 23, 27)은 곽선희 목사의 설교는 궁극적인 것을 지향하는 것 같지만 결국 궁극적인 것에 대한 해석이 없는 설교라고 비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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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는 2003년 소망교회 은퇴 이후부터는 예수소망교회에서 설교를 계속해 오고 있다 . 하지만 이 교회가 중산층 이상들이 주로 거주하는 분당에 위치한다는 것을 감안 한 다면 그의 설교의 청중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
3. 스타일
초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문의 스타일은 청중들에게 어떻게 자신을 개 신교인으로 나아가서 축복받은 자로 자기동일화를 할 수 있는지 제시한다. 자기동일화 과정은 텍스트 안에서 진행된다. 그렇다면 텍스트에서 사용된 양 태를 살펴보면 자기동일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다(Fairclough, 2003: 159). 양태를 살펴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어떤 조동사를 사용하여 문장표현을 만드는지 살펴보는 것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진술할 때 와 무언가에 대해 질문을 할 때 그리고 무언가를 요구를 할 때 그들이 얼마 나 많이 그리고 어떻게 전념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Fairclough, 2003: 165). 자신이 전념하는 정도에 따라 사람들은 자기언어와 표현에서 사용할 양태의 유형을 선택한다. 양태의 유형은 크게 지식을 교환하는 ‘인식양태’와 행위를 교환하게 하는 ‘의무 양태’로 나뉜다. 인식양태에는 저자가 사실에 대 해 전념하여 말하는 ‘진술’ 유형과 다른 사람의 진실에 전념하여 그 진실을 이끌어 내는 ‘질문’ 유형이 있다. 그리고 의무 양태에는 저자가 의무와 필연 성에 대해 전념하여 말하는 ‘요구’ 유형과 저자가 행위에 전념하여 말하는 ‘제안’ 유형이 있다(Fairclough, 2003: 167-168).
곽선희 목사는 자주 인식양태의 진술유형을 사용한다. 그는 돈에 대해 부정적으로 진술하며 부자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에 대해 설교 하는데 전념한다.
과연 여기 계시는 하나님
여러분 예를 들어, 우리는 돈을 축복이라고 생각해서 돈을 달라고 부귀영화를 달라고 몸부림을 치지만 정말로 하나 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그걸 안주십니다. 오히려 있던 것도 가져가 십니다. 그런 후에 무엇이 복인지를 알면 그 다음에 복을 주십니다. 돈이 얼마나 귀하다는 걸 안 다음에 돈을 주십니다. 돈을 쓸 줄 안 다음에 돈을 주십니다. 돈을 쓸 줄 안 다음에 돈을 주십니다. 여러분, 돈을 쓸 줄 모르는 자에게 돈을 준다면 그건 복이 아니지요. 그건 아예 저주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줘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요. 어린아이들에게 주는 것 과 마찬가지입니다. 칼 쓸 줄 모르는 자에게 칼을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 까. 이것을 복이라고 할 수 없지요(곽선희, 2008: 364).
김동호 목사도 인식양태의 진술 유형을 자주 사용한다. 그도 부에 대해 설교 할 때 돈에 대해 부정적으로 진술한다. 그는 이러한 양태사용으로 자신의 청 부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전념한다.
돈에 대한 바른 몫 가르기
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늘에 쌓을 수 있는 돈과 하늘에 쌓을 수 없는 돈이다. 참으로 우리를 복되고 부하 게 하는 것은 하늘에 쌓을 수 있는 돈 뿐이다. 하늘에 쌓을 수 없는 돈은 절대로 우리를 복되게 하지 못한다. 도리어 그 돈은 우리의 삶과 존 재를 가난하게 하고 우리의 인생에 화와 저주가 될 뿐이다(김동호, 2001: 120).
조용기 목사는 의무양태의 요구 유형을 자주 사용한다. 그는 이른바 하나님 과의 약속(십일조와 헌물)의 의무를 지켜야만 축복을 받는다는 선언에 전념 한다.
살리시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 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킬 때 나타납니다. 그 언약은 십일조와 헌물입 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헌물을 바칠 때 물질 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주니께 서 부족함이 없도록 주실 것을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 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 23:1, 2)라고 시인했습니다. 신앙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 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부요와 풍성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신다는 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신앙고 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조용기, 2004: 247).
이러한 설교문의 양태들은 청중들이 십일조와 헌금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을 비기독교인과 가난한 자로부터 분리하여 물질의 축복을 받는 조건을 충족시킨자,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쓰는 자 그리고 나아가서 올바른 신앙인으로 스스로를 표상하는 자기동일화를 가능하도록 유도한다.
Ⅵ. 부 담론의 이데올로기화
이상의 담론분석으로 본 초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는 매우 개인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들의 설교에서 사회에 대한 구조적 이해와 생산된 경제 가치의 분배 문제 그리고 빈곤의 해결을 위한 공동체나 연대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부의 담론 즉 재물로 축복을 받는 담론은 개신교에만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면 이러한 부 담론은 한국사회 전체와는 어떤 상호관 계가 있는가? 보닼 (Ruth Wodak)은 담론의 텍스트들은 언제나 과거나 현재의 다른 텍스트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상호텍스트성 (intertextuality)은 어떤 동일한 주제나 사건 또는 주 행위자 대한 계속적인 언급이나 다음 텍스트로 주된 주장을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Wodak, 2008: 3).
IMF를 벗어난 직후 한국 사회전체는 부자 되기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간단한 예로 IMF 이후 부자 되기에 대한 사회적 담론의 텍스트는 각종 도서 출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서점인 알라딘에서 “부자”를 제목으로 1998년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검색하면 1468권이 그리고 2000년대 초반 한 때 유행 했던 ‘10억 만들기’의 “10억”을 제목으로 검색하 면 50권이 검색된다. 12) 또한 IMF 구제금융을 전액 상환 했지만 경제적인 후유증이 남아 있었던 2011년 12월과 다음해 초까지 인기 있었던 광고 중의 하나가 밝은 표정의 여배우가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는 신용카 드 광고였다. 그러나 신용카드와 부자 되기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다만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예쁘게 포장하여 신용카드회 사의 이미지에 덮어씌운 것이다. 사회적 공감을 조작하여 자본주의 금융 산 업의 핵심 상품인 신용카드 광고를 한 것이다.
IMF 이후 한국사회에서 경쟁에서 승리하고 부자가 되는 것을 표상하는 이러한 지배적 사회담론의 텍스트와 초대형 교회 목회자의 부에 관한 설교 텍스트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축복 받은 자는 부자’라는 개신교의 부 담론 은 단독적인 담론이 아니다. ‘부자가 되어야 한다’, ‘부자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지배 담론이 개신교까지 확산 된 것 이라고 볼 수 있다. 지배담론의 확산이란 하나의 제도적 장 혹은 영역에서 지배적이었던 담론이 과거에는 다른 담론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었던 그 밖의 사회시스템 영역까지 확장 되는 것을 의미한다(신진욱, 2011: 32). 예를 들면 학문의 장소인 대학이 대기업에 흡수 되면서 시장논리와 기업경영 이론에 의해 구조 조정되는 것과 같다. 한국 개신교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전 방 위적인 침투에 예외가 아니다. 박상언은 한국 개신교의 무한 성장주의와 선 교 지상주의를 신자유주의의 기독교적 형태로 본다(박상언, 2008: 74, 79). 종 교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종교에서는 구원(또는 깨달음)과 보편적 사랑의 메시지 그리고 그것들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핵심들을 선포(전달)해야 하는 설교 속에서는 오히려 종교인 ( 宗敎人 ) 부자( 富者 ) 담론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2013년 교황 프 란체스코1세가 발표한 권고문 “복음의 기쁨” (Evangelii Gaudium) 특히 그 내용 중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던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는 언급과 큰 대조를 이룬다.
그런데 지배 담론이라 함은 단지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동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정 담론이 사회적 지배관계를 정당화 하는 내용과 지배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말한다(Fairclough 1995: 40-41). 한국 개신교는 축 복받은자는 부자라는 담론을 통해 교인들을 자기동일화 시키고 나아가서 자신을 중산층 이상으로(또는 부자로) 규정하는 사람들을 교회로 유입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 속에서 가난한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축복 받은 자가 될 수 없다. 이러한 과정이 자연화(naturalization)이다. 자연화는 담론을 일반상식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데올로기는 그 이데올로기를 구현하는 담론 형태가 자연스러워 질때 비로소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가능 하게한다(Fairclough, 2001: 76). 그리하여 결국 개신교 부 담론은 가난한 신자들에게는 축복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자의식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하여 실패감과 절망감을 갖게 한다. 그리고 중산층 이상이나 부자들에게는 축복 받은 자라는 자기정체성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는 또한 나아가서 부를 기독교 안에서 합리화 시키는 자본의 영성화 그리고 중산층 이 상들만 교인이 되는 교회의 계층화 그리고 나아가서 개신교회의 초대형화 지향으로 나타난다(박상언, 2008: 85).
IMF 이후 한국 개신교의 이러한 부 담론은 자연화 과정을 거쳐 이데올로 기화(ideologization) 되고 있다. 김동호 목사의 경우를 살펴보자. 김성건은 김동호 목사의 청부론은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진 사람에 대한 보상 보 다는 높은 사람들의 권능감과 자기정당화를 부추긴다고 주장한다(김성건, 2013: 309). 김성건은 나아가서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보수 주류( 主流 )가 신봉하는 번영의 복음(prosperity Gospel)은 베버(Weber, 1976: 115)가 말하는 이른바 ‘과도적 이데올로기’(transitional ideology)의 역할을 주로 담당하며 또 한 종교의 사회변동이나 사회통합의 기능 보다 오히려 ‘사회통제’의 기능을 더 수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김성건, 2013: 310). 중산층 이상의 신자들은 김동호 목사의 부자 기독교인 담론 즉 ‘청부론’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가난한 신자는 그러한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청부론은 중산층 이상의 신자 들만을 위한 계급지향적 신앙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하고 있다.
곽선희 목사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의 청중 대부분은 한국의 자본주의적 사회구조 내에서 이미 부자라는 지위를 성취한 사람들이다. 13) 그리고 이 부자 청중들은 한국에서 부(또는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적인 가치와 사회적 삶의 의미를 구성하고 있는 주체들이다. 그의 부자론을 페쇄(Michael Pecheux)의 선구성(pre-constructed)개념을 빌려와 설명하여 보자. 선구성은 지배적 사회담론이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게 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선구성은 이데올로기적 호명이 담론 보다 항상 먼저 있어서 담론이 구성한 실체에 그리고 담론자체에 의미를 주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echeux, 1983: 156). 즉 담론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얻기 위한 선구성이 먼저 존재한다는 것이 다.
-------------------------각주--------------------------
12) 2013 년 11 월 25 일 인터넷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검색
13) 곽선희 목사는 2003 년 은퇴 할 때까지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에 위치한 소망교회에서 담임목회 하였고 이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예수소망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설교하고 있다 .
곽선희 목사의 부자론에서도 부자라는 호명을 받은 청중이 선재하고 그들을 위한 기독교인 부자담론이 구성된다. 그리고 이 부자 담론 안에서 ‘부자’ 와 ‘신앙인’이라는 본래 서로 다른 종류의 언어 즉 세속적 언어와 종교적 언어는 결합된다. 이러한 담론 내에서 작동하는 기제를 페쇄는 접합이라고 한 다(Pecheux, 1983:156). 접합은 담론 내에서 서로 분리된(또는 관계없는) 단어 들이나 절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 기제이다.
“재물을 하늘에 많이 쌓아둔 부자”(곽선희, 2004: 245)와 “돈을 쓸 줄 모르는 자에게 돈을 준 다면 그건 복이 아니지요. 그건 아예 저주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2008: 364) 라는 언표들은 곽선희 목사의 설교에서 나타나는 접합의 예들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두 기제(선구성과 접합)의 작동을 통해 곽선희 목사의 청중은 자신을 부자 기독교인으로 자기동일화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축복 받은 자는 부자라는 이데올로기적 종교담론은 맑스주의 입장에서 허위의식이나 의식조작이라고 비판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리덴 (Michael Freeden)이 밝히듯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최근의 관점들은 이데 올로기 개념이 안고 있는 위험을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것 보다는 사회정치적인것에 대한 특정한 인식을 자연화하고 탈쟁론화 (decontestation)하는 이데올로기의 속성에 더 집중되어 있다(Freeden, 2003: 68, 127).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이데올로기는 사회정치적 사건과 체험에 대 한 인식에 주로 관련되며, 그에 대한 특정한 인식이 마치 그 자체에 내재해 있는 자명한 진리인 듯 믿게끔 하며, 이러한 자연화를 통하여 다른 인식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효과를 갖는다. 말하자면 부자가 주체로 인식된 세계에서 빈자는 타자이고 배제된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서 이데올로기화된 부 담론 은 종교의 궁극적 가치인 보편적 사랑의 실천을 어렵게 한다. 이른바 종교가 이데올로기화 되는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 담론은 설교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기능 즉 사회의 부조리와 왜곡된 구 조를 고발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뜻을 선포하며 복음의 시대를 진단하는 예언 자적 기능(정인교, 2003: 74)을 하기 어렵게 한다.
Ⅶ. 나오는 말
이 연구에서 필자는 IMF 경제위기 이후 사회변동과 관련하여 한국 개신교는 경제적인 부에 대하여 한국사회에 어떤 이해를 제공하고 그것이 한국사 회와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였는지 밝히려 했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는 초대 형교회의 목회자인 곽선희 목사, 김홍도 목사, 조용기 목사, 김삼환 목사, 이 동원 목사 그리고 김동호 목사의 설교에서 나타나는 부에 대한 담론을 분석 하였다. 분석은 페어클로프의 비평적 담론분석이론을 사용하여 설교 텍스트가 어떤 문법을 사용하며 발화하여 어떤 행위를 수행하고 또 어떻게 상호작 용 하는지를 살펴보는 ‘장르’, 텍스트가 무엇을 표상하고 특정 현상에 대해 어떤 해석을 제시하는지 알아보는 ‘담론’ 그리고 텍스트 내에서 대명사, 문법, 어휘, 조동사들을 사용한 양태를 통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동일화 하는지를 파악하는 ‘스타일’등 세 가지 국면으로 진행됐다.
초대형 교회 설교자들의 부( 富 )에 대한 설교의 장르는 선언형, 증언형 그 리고 강조형의 세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이들 형태는 모두 사회적 행위를 유발한다. 선언형과 증언형은 신앙이 있으면 또는 기독교인이 되면 부자가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한편 강조형의 경우 부자가 되고 나서 해야 하는 행동을 제시하면서 부자의 완전함을 강조한다. 또한 초대형 교회 설교자의 부 담론은 나름의 부에 대한 표상화와 해석이 있다. 우선 부( 富 )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표상된다. 그런데 이러한 표상화를 변형하여 부자를 깨끗한 (또는 지혜로운) 부자와 불행한(또는 어리석은) 부자로 구별하는 형태가 나 타난다. 그리고 물질 축복을 받거나 부자가 되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십일조 를 포함한 헌금이라는 해석이 등장한다. 스타일에 있어서 설교자들은 돈 대 해서 부정적 진술을 하는 인식양태와 함께 십일조와 현금 등을 통해 완전하고 진정한 축복을 받은 부자가 된다는 의무양태를 사용하여 중산층 이상의 청중들이 자신을 부자 기독교인으로 자기동일화를 할 수 있게 한다. 이상의 장르, 담론, 스타일 세 가지 국면으로 본 한국 개신교의 부 담론은 사회 전체에 대한 관점 보다는 개인적인 관점 즉 누가 물질의 축복 받은자 이고 그렇지 않은 자이며 그들은 어떻게 행동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개신교의 부 담론은 한국사회 전체에서 지배적으로 작동 하는 신자유주의적 부 담론과 종속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 담론 안에서 중산층 이상의 신자는 자신을 부자로서 자기동일화 할 수 있 지만 가난한 신자는 타자가 되어 배제된다. 초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설교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부 담론은 종교의 궁극적 가치인 보편적 사랑의 실천을 어 렵게 하며 나아가서 이데올로기화된 종교 담론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 담론은 설교의 예언자적 기능을 저해한다.
설교가 본래의 종교적 기능을 되찾기 위해서는 사회의 지배적 담론에 종속되기 보다는 그것에 저항하고 나아가서 기독교의 보편적 사랑을 전파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데 기여 할 수 있는 담론을 생산하고 유포하여 한다. 이성민은 그의 저서 “해석학적 설교학”에서 아래와 같이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설교문제를 지적하며 설교는 복음의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교가 설교를 위해서 존재 할 때 설교는 우상이 되어 버린다. 설교는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고 변증하는 것이지 설교자체가 설교가 될 수 없다. 설교자의 설교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되고 있는 오늘의 시대에 종교 개혁자 루터가 활동을 한다면 그는 개신교회가 설교를 우상화 했다고 다음과 같이 강력히 비판 할 것이다. ‘이런식의 설교는 교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진리의 선포가 아닙니다. 이런 식의 설교는 미신적인 것이지 복음의 진리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로 돌아가야 합니다’(이성민, 2007: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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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Critical Analysis of the Wealth Discourse Appeared in the Sermons of Ministers of Korean Mega-churches since the IMF Crisis
Jang, Hyung Chull
(Chaplain of Induk University / Sociology of Religion)
This research aims to discuss how the economic wealth is conceived in Korean Protestantism since the IMF economic crisis by means of analyzing the dicourse of wealth appeared in the sermons of ministers of Korean mega- churches. More specifically, this research attempts to reply some questions such as 'what is the social implication of these sermons?', 'in what way was the wealth discourse produced in those sermons?', 'how can this wealth discourse have some effects on Korean society?', and 'how can this religious discourse have an interaction with the dominant social discourse? By employing critical discourse analysis theory of Fairclough, this article discusses that the wealth discourse in the ministers' sermons leads the belief of which the blessed are the rich. Also it causes the rich to perform social behaviors in order to approach the perfection of the blessed. The discourse also represents that the economic wealth is the blessing of God. In tandem, there is an interpretation of which tithing and making financial contribution to the church can guarantee the blessing of wealth. And utilizing their own epistemic and deontic modality, the minsters lead their audience, the rich or upper middle class, to identify themselves as rich Christians. This wealth discourse of Korean Protestantism is subject to the dominant social discourse of wealth produced under the strong influence of neo liberalism after the IMF crisis in 1997. In this religious wealth discourse, the lower middleclass and the poor can be excluded and become the others. If so, the wealth discourse cannot imply the universal love and social justice for everyone and endangers to become a religious ideology.
Key Words
Genre, Discourse, Style, Modality, Social Interaction, Representation, Interpretation, Self-identification, Ideologization
[2013. 01. 20 접 수] [2013. 02. 07 수 정] [2013. 02. 25 게 재 확 정]
저자 장형철은 영국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에서 박사학위 ( 종교사회학 ) 를 받았다 . 주요 관심분야는 종교 / 문화사회학, 사회문화 이론및 연구방법론이다 . 주요 논문으로는 “종교와 사회적 자본 : 한국 개신교회를 중심으로” 『 현상과 인식 』 제 37 권 1/2호 (2013), “혼성화 이론으로 본 한국 개신교의 성장과 감소 : 새로운 개신교 문화담론을 향한 한 시도 ” 『 담론 201 』 제 15 권 2 호 (2012) 등이 있다 . ❑ E-mail : jangwm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