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48) 씨, 그는 곡절 많은 인생을 살았다. 회사원에서 목사, 정비기술자, 그리고 경매`부동산을 가르치는 교수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동안 직업을 네 번이나 바꿨다. 그는 열심히 살았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다. 그는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을 들어봤다.
◆강의로 하루해가 짧아
그는 하는 일이 많아 하루해가 짧다고 했다. 대구가톨릭대학교와 수성대 평생교육원에서 경매를 강의하고 있으며 영남외국어대학에서 부동산재테크공인중개사
그는 직업을 네 번이나 바꾸는 등 곡절 많은 삶을 살아오면서 언제나 바쁘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회고했다. “다른 사람에 비해 4배는 더 산 것 같아요. 이제는 수강생들로부터 강의를 잘한다는 말도 듣는 등 기반을 잡았으며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회사원에서 목사, 그리고 경매`부동산 강의하는 교수로
그는 상주 외서면에서 태어났다. 초교 6학년 때 상주읍내로 나와 자취하면서 중학교를 다녔다. 대구로 나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영화와 오락에 빠졌다. 재수
입사 5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목사가 되고 싶었어요.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 목회자가 되기를 바라셨어요. 저는 결정하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하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면 추진은 빨라요.”
목사가 되려면 신학대에 가야 했다. 문제는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였다. 특히 아들을 위해 산판을 하면서까지 뒷바라지 한 아버지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저의 손을 잡으며 우셨어요. 아버지는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손가락이 없습니다. 그 손으로 저의 손을 잡으며 우시는 거예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면 안 되겠냐며 사정을 하는 겁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신학대에 입학했다. 김천에서 첫 목회자 생활을 시작했다. 개척교회였지만 열심히 했다. 구미에서 다시 경기도 안양으로 옮기면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행복했어요. 보람도 있었고요.”
뜻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2층 교회가 도로로 수용되면서 비워줘야 했다. 그것도 싼값으로, 그리고 땅 사기를 당했다. “법을 알았어야 했어요. 당시 전 너무 몰랐거든요.”
목회자인 자신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기도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봤다. 처음 순수하고 패기로 가득 찼던 신심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어디 가고 하나의 직업으로서 목회를 하고 있는 자신이 싫었다.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목회자 생활을 시작한 지 15년, 당시 나이가 45세. 다시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였어요. 앞길이 막막하더라고요.”
산에 오르고 또 올랐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두 달을 고민하다가 부동산과 자동차 정비 자격증공부
공부시작 4개월 만에 2급 자동차 정비 자격증을 취득하고, 연이어 공인중개사 자격증
정비업체에 취직했다. 사장은 나이도 있고 해서 정비 일보다 사고처리와 보험보험설계입찰
대학 부설 평생교육
그것도 학교 사정으로 그만두게 됐다. 그러나 수성대와 대구가톨릭대 평생교육원에서 경매 강의 자리가 났다. 또 영남외국어대학 부동산재테크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도 이런 저를 보시면 아마 용서하실 것입니다.”
최재수 기자 biochoi@msnet.co.kr / 사진 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의 다른 기사
첫댓글 교수님 글 잘읽고 갑니다. 인사드리러 간다고 하고는 못 찾아뵙네요.. 지금은 가게 정리하고 집만 지키고 있습니다.
조만간 대신동 사무실로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교수님은 실물이 훨씬 멋지십니다ㅎㅎㅎ
감사합니다. 좋은 인연으로 맺어져서 넘 행복합니다. 시간 되실 때 편하게 오세요...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넘 멋지세요^^교수님
안녕하세요 ᆞ교수님 저도한번찾아뵌다고저나통화는했는데 늘생각뿐이었네요 ᆞ지송해요 ᆞ여전히열강하시는것같아 짱입니다^~^ ᆞ이제 약속은안하고 불쑥찾아갈겁니다 ㅎㅎ
상황 되실 때 오세요.. 반도공인중개사사무소에 많이 있습니다.. 강의 때는 강의 가구요..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