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가난한 조각가가 대리석 가게 앞을 지나다가
거대한 원석의 대리석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가격을 물었을 때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 돌덩어리라면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그것을 팔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보시다시피 가게는 비좁은데 그 돌덩이가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어서 아주 골칫거리입니다.”
그 조각가는 주인에게 감사의 표시를 한 후
그 대리석을 자신의 작업장으로 운반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작품을 구상한 후
정과 망치로 작업을 시작했고,
2년이 지나 그 조각가는 작품을 완성시켰다.
그 조각상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이었다.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 그리고 시인이었지만
그는 조각가라는 말을 가장 좋아했고,
나에게 있어 조각이란
“돌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을 꺼내는 작업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이 불길 속의 내 혼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가장 가까이에 서 있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던 깊은 신앙심의 예술가는,
돌 속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무릎에 안고 계신 성모님을 보았고,
그 영감을 돌덩이에 새겨 넣었다.
그래서 애물단지였던 돌덩이는 위대한 예술가의 손을 통해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던 소중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으로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십자가에서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은 후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몸을 의탁한 아들로서의 마지막 안김,
그 아들 예수를 무릎에 누이고 담담하게 슬픔을 삼키는
고요하고 경건한 어머니.
그 피에타 성모님을 나는 오래 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던
르네상스 종교미술 전시회에서 처음 만났다.
미술관을 나오면서 작품의 엽서 한 묶음을 샀는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들어있었다.
그때 나는 그 엽서를 내 책상에 항상 두었는데,
성모님의 고통이 생생하게 되새겨짐을 느끼곤 했다.
피에타상을 만들었을 때 25살이었던 미켈란젤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데다 워낙 걸작이다 보니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날 어떤 롬바르디아인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하자,
화가 난 그는 피에타상이 있는 성당으로 몰래 들어가서
마리아의 어깨에서 가슴을 가로지르는 띠에,
‘피렌체 사람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고 새겨 넣었다.
저녁이 되어 성당 밖으로 나온 미켈란젤로는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보았다.
그때 그는 저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을 만드신 분은
‘어디의 누가 만든 하늘이다'라는 표시를 하지 않는데,
고작 내가 만든 작품 하나에 경솔한 행동을 하다니… 하고 후회했다.
그 이후 그는 어떤 작품에도 사인을 하지 않았다.
그런 미켈란젤로는 살아 있는 동안에
훌륭한 전기가 2편이나 출판된 최초의 예술가로서 생전에 유명해졌는데,
그의 예술 생애에 대한 기록이 당시나
그 이전의 어느 예술가보다도 훨씬 풍부하게 남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하느님의 작품인 대자연을 보면서
자신의 작품에 사인 않기로 작정한
그의 겸손한 마음을 하느님께서 보신 건 아닐까?
그래서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의 예술을
기록시키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 의정부주보 삶의 향기에서 가져온 글 ▒
≫미켈란제로의 피에타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경건, 자비, 슬픔"의 의미를 지니며,
고유명사로서는 그리스도교 미술에 자주 표현되는 주제로,
보통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은 구도를 특히 이렇게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