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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의 ‘모호성 해소’와 ‘효과성 제고’를 위한 제언
- 효 ․ 리더십과의 연계를 중심으로 -
효학박사 金鍾頭
Ⅰ. 들어가는 말
인성은 가정교육․학교교육․사회교육의 통합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때문에 인성교육은 인간의 생명이 잉태(孕胎)되는 순간부터 임종(臨終)에 이르기까지 전생애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이다. 그리고 인성은 5세 이전에 대부분이 형성된다는 프로이드의 말처럼 가정에서의 교육이 중요하고, 그 핵심가치로 작용하는 효교육 또한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효에 대한 패러다임이 서로 다르고, 인성교육에 대해서도 종교적 관점이 다르며, 심리학․윤리학․철학․교육학 등 학계의 견해가 다름으로 인해 ‘모호성’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인성교육은 리더의 본보기에 의한 체화교육(體化敎育)을 필요로 한다. 가정의 리더인 부모, 학교의 리더인 교사, 사회의 리더인 어른들의 본보기가 없이는 인성교육의 결실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성교육의 결과는 문화적 산물로 나타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말에서 보듯이 인성교육의 관련이론이나 원리는 외국의 것을 원용(援用)하더라도 방법은 한국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에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전통문화의 계승도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21세기 문화의 시대, 4차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웰빙’과 ‘힐링’의 시대를 지나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문화(文化)는 인간의 삶을 밝게 변화시켜주는 독특하면서도 총체적인 생활양식이다. 그리고 4차산업혁명은 ‘시간·공간·인간’을 데이터화 하여 현실과 가상세계를, 인간을 중심으로 연결ㆍ융합ㆍ혁신함으로써 삶을 질을 높이고자 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이다, 그러나 로봇ㆍ사물인터넷ㆍ모바일 등의 출현은 기계류가 인류를 대신하게 됨으로써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최첨단기술이 나쁜 세력에 이용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은 결국 인간에 의해, 인간의 주도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인성에 기초한 윤리, 도덕이 중요시 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각자의 신념과 가치에 따라 다르지만, 연구자들에 의하면 대체로 ‘건강 ․ 돈 ․ 인간관계’에 의해 좌우되며, 그 중에서도 ‘관계’를 가장 중요시하는데, 그 관계는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의 원초적 관계를 시작으로 형제자매, 이웃과 사회, 국가와 자연 등으로 확대된다는 점에서 효와 연관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행복은 문화의 시대, 4차산업혁명시대를 어떻게 관리하고 대응해 나가느냐에 달려있으며, 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효를 인성교육과 리더십에 접목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인성교육의 모호성을 해소하고, 효과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제시함에 있어, 먼저 효와 인성교육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효에 기초한 인성교육’과 ‘리더십을 수단으로 하는 체화교육’ 방안에 대하여 제언하고자 한다.
Ⅱ. 효와 인성교육의 패러다임 전환과 필요성
1. ‘효’와 ‘효도’는 의미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지금은 효와 인성교육에 대한 패러다임 전한을 필요로 한다. 패러다임(paradigm)은 어떤 사안에 대한 관점이자 ‘생각의 틀’이다. 이는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 인식의 체계를 뜻하는 것으로, 사람은 어떤 사건이나 이슈를 대할 때, 그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 각기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세상을 바라볼 때 어떤 색깔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노란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빨간색으로 보이기도 해서 인식을 달리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효에 대한 패러다임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효는 가족사랑을 이웃과 사회, 국가와 자연으로 확대하여 실천하는 보편적․이타적 가치이다.”라고 인식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효는 고리타분한 것이며,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라고 인식하기도 한다. 일례로 어떤 교수는 군대인성교육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는 학술회의 장에서 “군대인성교육은 8대 덕목 중에서 ‘효’와 ‘예’는 배제되어야 한다.”고 했고, 또 어떤 국회의원은 “인성교육진흥법 8대 핵심가치 및 덕목 중에서 효는 빼야한다.”고 법률개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는데, 이런 현상은 효에 대한 잘못된 패러다임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틀에서 보면 ‘효(孝,HYO)’와 ‘효도(孝道,Filial piety)’는 의미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효는 상호성을 기초로 가족과 이웃, 사회와 국가, 인류와 자연 등과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효도는 자식이 부모에게 향하는 일방향성에 기초하는, 순종과 공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효는 좁은 의미로 가족사랑․가정윤리, 넓은 의미로 보면 이웃사랑․인류봉사․자연사랑․세대공감 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용어의 용처를 봐도 구별이 가능한데, 이를테면 ‘효교육’과 ‘효도교육’, ‘효문화’와 ‘효도문화’, ‘효사례’와 ‘효도사례’, ‘효음악’과 ‘효도음악’, ‘효장려’와 ‘효도장려’, ‘효복지’와 ‘효도복지’, ‘효리더십’과 ‘효도리더십’ 등은 그 의미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현재 효사례로 인용되고 있는 ‘나무꾼과 선녀’, ‘심청전’, ‘향득사지(向得舍知)’ ․ ‘손순매아(孫順埋兒)’ 등에서 주인공의 행위는 ‘효도’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에서 ‘효’와 ‘효도’의 의미는 구별되어야 한다.
첫째, 효에 대한 영문표기에 관해서이다. 사전(辭典)에서는 효와 효도를 모두 ‘Filial Piety(자식으로서 경건함)’, ‘Filial Duty(자식으로서 책임)’ 등으로 표기돼 있는데, 이는 일방향성의 의미라는 점에서 ‘효’의 의미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효’에 대한 영문표기는 태권도(taekwondo), 김치(kimchi), 불고기(bulgogi)처럼 우리식 발음인 HYO로 표기하고, 이는 Harmony of Young & Old의 약자로 해석해서 ‘젊은 세대(자식)와 노인세대(부모)의 조화적 노력’으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 방향성에 관해서이다. ‘효’와 관련된 용어는 ‘효학’, ‘효윤리’, ‘효사상’, ‘효교육’ 등에서 보듯이 전방위적(全方位的) 성격의 용어인 반면 ‘효도’는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도리’라는 일방향성(一方向性)의 용어라는 점에서 방향성이 다르다.
셋째, 대상과 영역에 관해서이다. ‘효’는 ‘부자유친(父子有親)’, ‘부위자강(父爲子綱)’, ‘가족사랑’, ‘세대공감’ 등에서 보듯이 부모와 자식의 쌍방향적인 관계를 시작으로 가정에서 이웃과 사회, 인류와 국가, 자연 등으로 사랑을 확대되는 의미이지만 ‘효도’는 ‘자식이 부모에게 향하는 사랑과 정성’이라는 점에서 대상과 영역이 다르다.
2. ‘교육자’의 입장과 ‘당사자’의 입장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효교육과 인성교육은 부모와 교사 등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자녀와 학생 등 팔로어(당사자)의 입장을 함께 고려함으로써 상하동욕(上下同欲)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그동안 우리는 교육의 당사자(청소년)보다 부모나 교사 등 교육자의 입장에서 추진해온 면이 있다. 그리고 ‘개인’ ․ ‘가정’ ․ ‘학교’ ․ ‘사회’ ․ ‘국가’ 등 각각의 영역의 역할과 기능이 상보적으로 작용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면도 있다. 그러다보니 당사자와 교육자의 긍정적 상호작용보다 교육자의 일방적․주입식교육으로 비춰져 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에서 ‘개인’, ‘가정’, ‘학교’, ‘사회’, ‘국가’ 등의 영역에서 효과성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개인의 영역이다. 청소년 개인들이 가치기준을 정립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등 정체성의 관점에서 각자가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 방안으로는 족보를 이용한 뿌리교육, 가훈교육을 통한 가치교육, 좌우명과 신조 등을 이용한 생애설계 및 인생목표 설정 교육을 들 수 있다. 그러면서 부모와의 관계를 기초로 가족관계, 이웃관계, 학우관계 등을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
둘째, 가정의 영역이다. 가정에서 교육은 가정의 부모가 자녀의 롤 모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논어집주』에 “말로 가르치면 따지고 몸으로 가르치면 따른다(以言敎訟 以身敎從)”고 했고, 『성경』에 “남에게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마 7:12)”고 했다. 자식에게 효도를 받고 싶으면 자신부터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영향을 크게 미치는 사람은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의 행동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예컨대 부모가 막장드라마에 몰입되는 모습을 자녀 앞에서 보여준다든지, 외부에서 귀찮은 전화 왔을 때 ‘없다고 해라’라는 식의 말 등은 자녀의 인성함양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셋째, 학교영역이다. 학교는 교육의 중심(中心)이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3-4세가 되면 부모 곁을 떠나 어린이집 등에서 교사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일찍이 맹자는 “자식은 바꾸어서 가르쳐야 한다(易子敎之)”고 했는데, 오늘날은 핵가족화 및 맞벌이 가정이 되면서 자녀교육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졌으므로 가정에서 부족한 교육을 학교에서 보완케 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넷째, 사회의 영역이다. 사회는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 집단을 일컫는다. 사회교육에는 군대에서의 교육, 직장에서의 교육, 시민사회단체의 교육, 종교단체의 교육 등이 포함된다. 어떤 사회 영역이던 ‘리더’가 ‘팔로어’의 인성을 함양함에 있어서 사회는 ‘환경요인[Advocacy]’으로 작용되기 때문이다.
다섯째, 국가 영역이다. 헌법에 명시돼 있듯이 국가는 국민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즉 국가는 가정교육․학교교육․사회교육이라는 교육의 세 마당이 온전하고 건강하게 관리되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못지않게 하모니의 효 관점에서 어린이날과 학생의 날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Ⅲ. 효에 기초한 인성교육
1. ‘효’와 ‘인성’은 ‘수어지교(水魚之交)’ 관계이다.
인성과 효의 관계는 ‘수어지교(水魚之交)’에 비유할 수 있다. 물과 고기의 관계처럼 공존공생(共存共生)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에서다. 인성이 ‘물’이라면 효는 물에 살고 있는 ‘물고기’에 비유할 수 있고, 반대로 효가 ‘물’이라면, 인성은 ‘물고기’에 해당한다. 물이 오염되면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부모와 스승 밑에서는 올바른 자녀와 제자로 성장하기 어렵다. 그러나 효심이 있으면 자연스레 인성이 좋아지고, 인성이 된 사람은 효심도 갖춰지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효와 인성은 ‘수어지교’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인성은 “세살버릇 여든 간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등의 표현이 말해주듯이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가정교육에서 중요시되는 덕목과 가치는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효’라고 본다. 왜냐하면 효는 부모입장에서 보면 가족을 사랑하고 부모로서 자식을 위하는 것이고,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를 걱정끼쳐 드리지 않고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등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는 ①경천의 원리 ②사랑과 공경의 원리 ③관계와 조화의 원리 ④덕성과 의로움의 원리 ⑤자기성실과 책임의 원리 등 삶의 기본원리로 작용한다. 그래서 효를 인륜질서의 근본이라 하고, 또한 효를 ‘오뚝이의 원리’와 ‘親親愛人(친친애인)’ ․ ‘同心圓(동심원) 이론’의 원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오뚝이가 바로 설 수 있는 것은 무게 중심이 밑에 있기 때문인 것처럼, 교육의 세 마당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가정교육이 중심을 잡아주어야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이 바로 설 수 있다는 점이고, ‘친친애인’과 ‘동심원 이론’은 가까운 사람, 즉 가족을 시작으로 친구와 이웃, 사회와 국가, 인류와 자연 등으로 확대해간다는 의미를 가지는데, 이는 마치 호수 가운데에 돌을 던지면 물결파문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확대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일찍이 공자는 “효는 덕의 근본이며, 모든 가르침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난다.”고 하여, 효를 교육의 원천으로 본 것과 맥을 같이 한다.
2. 인성은 ‘자신’과 ‘관계’를 조율하는 바람직한 성품과 역량이다.
인성함양은 관계가 중요하고 관계는 효에서 시작된다. “효는 관계의 뿌리이고, 칭찬은 관계의 토양이며, 인성은 관계의 결과다(이정식).”라는 표현은 ‘인성’ ․ ‘효’ ․ ‘관계’의 세 요소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인성(人性)의 의미는 각자의 학문적․종교적 견해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이런 관계로 다양한 정의가 존재하는데, 그 중에 하나는 “자신을 조율하고 타인․공동체․자연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바람직한 성품과 역량이다.”라는 정의다. 이는 “인성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이다.”라는 ‘인성교육진흥법’의 정의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인성(人性)의 의미는 ‘인간성(人間性)’의 줄임말로 해석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사람(人)과의 관계(間)에서 상대방의 마음(忄)을 살아나게(生) 하는 성품과 역량’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율(調律, Harmony)은 사전적으로 ‘문제를 어떤 대상에 알맞거나 마땅하도록 조절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용어이다.
인성함양에 대해서는 종교적․학문적으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는데, 종교에서의 교육은 높은 가르침을 통하여 바람직한 인간으로 육성하는데 목적을 두는 교육이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순으로 살펴보면 전통종교의 인성교육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정신에 바탕을 둔다. 불교는 불성을 깨달아 인간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보는데, 여기서 말하는 불성은 ‘부처의 본성’, ‘중생이 본디 가지고 있는 부처가 될 성질’을 뜻한다. 유교는 성선설(맹자)․성악설(순자)․백지설(고자)․성기호설(정약용) 등에서 보듯이 인간의 성품은 선천적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며,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에 목표를 둔다. 기독교는 인성을 ‘영성회복’에서 찾는데, “영성회복은 성령의 9가지 열매, 즉 사랑·희락·화평·오래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절제다(갈5:22-23).”라는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다음 학계에서 보는 인성교육은 ‘인성’이라는 용어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철학․윤리학․교육학에서는 인성을 ‘Character’로 번역하고, 선천적이기 보다는 후천적 교육에 의해 함양되는 도덕적 특성으로 본다. 반면 심리학에서는 인성을 ‘Personality’로 해석하면서 개인적․선천적 특성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모든 학문의 인성교육은 인간다운 인간을 육성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Ⅳ. 리더십이 수단이 되는 본보기에 의한 체화(體化)교육
1. 인성교육에서 리더십은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인성교육은 기본적으로 부자(父子)․사제(師弟)․장유(長幼) 등 수직적 관계를 시작으로 점차 수평적 관계로 넓혀가는 교육이다. 그리고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웃물이 맑지 않고는 아랫물이 맑을 수는 없는 이치의 교육이다. 또한 교육의 결과는 문화적 산물로 나타나게 된다는 점에서 외국의 이론이나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는 삼되, 우리의 환경과 여건에 맞는 내용과 방법을 찾아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가정의 부모, 학교의 교사, 사회의 어른이 본을 보이고 질서를 지키는 것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사람에게는 거울신경(Mirror Neuron)이 있어서 누군가를 닮으려는 속성이 있는 관계로 어려서부터 부모를 본받아 흉내 내게 되고, 이것이 습관화되면서 학습으로 이어져 인성함양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부모․교사․어른의 올바른 모습이 마치 종소리의 여운처럼 오래오래 좋은 기억으로 남도록 하는 링거링 효과(Lingering Effect)로 이어져야 하는데, 여기에는 시대와 문화가 변하더라도 중심 추로 작용하는 핵심가치(Core Value)를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바로 효인 것이다. 인성교육에서 리더십이 수단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도 ‘링거링 효과’로 연계되어야 하기 때문인데, 리더의 본보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내용과 방법이라 할지라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리더십은 선장(Leader)과 배(ship)의 합성어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선장인 리더는 배안에 있는 구성원들과 제반 시스템이 리더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리더의 본보기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리더는 어항 속의 금붕어이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는 ‘정명사상’ 등의 표현에서 리더의 역할과 본보기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인성교육에 있어 리더가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크다. 조직(집단)을 이끌어가는 리더의 리더십 여하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인데, 인성교육에 대한 열정과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리더십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즉 “저 사람은 아는 건 많은데 리더십이 없는 게 흠이야!”라는 표현에는 여러 의미가 복합적으로 함축되어 있는데, 인성교육은 본보기에 의한, 체화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리더십’은 인성교육의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 체화교육은 한국의 효문화를 기반으로, 현대 리더십의 흐름과 연계해야 한다.
한국에서 적용되는 리더십은 한국의 문화에 기초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는 ‘상황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점에 대해 이규태는 『리더십 한국학』에서 “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귤이 아니라 탱자가 열린다.”는 회남자(淮南子)의 ‘남귤북지(南橘北枳)’를 인용하면서, 미국인의 의식구조를 기반으로 발전시킨 리더십 이론을 한국인에게 적용하게 되면 “미국의 귤나무를 한국에 심어놓고 미국에서와 같은 맛이 담긴 귤이 열리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즉 서양인의 의식구조에 맞게 발전시킨 리더십 이론을 여과 없이 한국인에게 가르쳐서는 안 되고, 더군다나 이윤창출에 초점을 두는 기업경영 리더십을 가정과 학교, 공직과 종교, 군대 등에 적용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최소한 세 가지 관점에서 리더 위치에서 살아간다. 자기 자신을 이끌어가는 ‘셀프 리더’, 가정을 이끌어가는 ‘패밀리 리더’, 사회생활에서 누군가를 이끌어가는 ‘조직의 리더’의 입장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리더는 그 조직의 성격에 맞는 성찰적 지식을 기반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효가 배제된 상태에서는 리더십이 나올 수 없다. 왜냐하면 리더십의 시작은 가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재벌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속재산 ‘송사(訟事)’, 각종 ‘갑(甲) 질’ 문화, 그리고 군대에서 중대장도 하지 않은 장교를 외국 위탁교육에서 경영학 리더십을 배워왔다는 이유만으로 군 고급간부 리더십 교육을 전담케 했던 사례도 잘못된 경우이다. 또한 인성교육은 문화적 영향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러나 리더십이 인성교육의 수단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현대리더십의 흐름에도 부합되어야 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효와 리더십, 그리고 인성교육과의 연계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서번트 리더십과 연계한 인성교육이다. 서번트(Servant) 리더십은 서번트적인 자세로 구성원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다. 서번트적 자세란 타인을 위한 봉사에 초점을 두며 구성원들과 소통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마치 하인(종)처럼 봉사(헌신)적 자세로 베풀며 존경받도록 구성원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다. 서번트 리더의 표준 모델은 이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서 찾을 수 있는데, 자식을 위해 평생 동안 뒷바라지하시며 사랑과 공경의 삶을 살아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서번트적인 삶 그 자체이며, 효와 연관되는 것이다.
둘째, 셀프 리더십과 연계한 인성교육이다. 셀프 리더십(Self Leadership)은 내가 원하는 나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리더십이다. 즉 셀프 리더는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어 가는 사람인데, 현대 리더십은 팔로어가 리더의 지시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연에 의해 등장하게 된 리더십이다. 따라서 대효존친(大孝尊親)의 원칙에 따라 부모를 걱정시키지 않고 기쁘게 해드리며,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효와 연관되며, 셀프 리더십은 인성교육과 연계되는 것이다.
셋째, 가치 중심 리더십과 연계한 인성교육이다. 인간은 본디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방향을 선택하는 속성이 있다는 점에 착안한 리더십이다. 가치(價値)란 일반적으로 ‘물건의 값어치’, ‘사물이 지니는 의의나 중요도’, ‘인간 정신의 목표가 되는 보편타당의 당위’, ‘인간행동의 기준이 되는 주요 원칙’ 등 여러 의미로 해석되며,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에 비유하기도 한다. 예컨대 ‘효자남편’은 둔 어떤 아내는 “외롭고 힘들어 못살겠다.”고 하지만, 또 어떤 아내는 “남편이 효자라서 자녀들 귀감이 되고 존경스럽다.”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효는 인간을 경천(敬天)의 삶으로 이끌어주는 보편적 가치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가치 중심 리더십과 인성교육은 연계성이 있다.
넷째, 윤리적 리더십과 연계한 인성교육이다. 리더는 일반적으로 추종자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리더가 추종자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이 미치도록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리더십이다. 따라서 리더는 고도의 윤리성과 도덕성을 가지고 기본적인 가치관에 의거하여 구성원들을 이끌어가야 한다. 21세기 들어 윤리 중심 리더십이 부각되는 이유는 조직의 리더들이 그 조직의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때문인데, 효는 가정윤리로 작용하고, 또한 덕성과 의로움의 원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리더십과 인성교육은 연계성이 있다.
다섯째, 오센틱 리더십과 연계한 인성교육이다. 오센틱(Authentic)리더십은 진정성(眞正性)과 진실성(眞實性)에 바탕을 둔 리더십이다. 이 리더십은 긍정적 자기인식과 자기조절이라는 기반 위에서 자신의 가치와 내면의 소리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리더십의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이는 빌 조지(Bill. Goerge)의 저서 『진실의 리더십(2004)』과 미국에서 ‘동암연구소’를 운영하는 전혜성 박사가 ‘오센틱 리더십의 개념’ 발표(2004)를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어서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 사람으로 만든다』라는 책에서 ‘오센틱 리더로 키우는 7가지 덕목’이 소개된바 있다. 우리가 리더십을 발휘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받고 스스로도 성취감을 높일 수 있는 ‘진정성의 리더십’을 발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연상할 수 있는 리더십은 예컨대 가정의 경우, 부모가 먼저 그 틀을 짓고 아이를 이끌어야 하고, 학교의 경우 학문적으로 집단 구성원의 욕구에 맞는 공동 목표를 세운 뒤 적절한 정신적·물질적 힘으로 그것을 성취시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선장(부모, 스승)이라 할지라도 그 역시 한때는 선원(자녀, 제자)이었고, 그런 그가 수많은 경험을 거쳐 리더에 올랐다는 사실이고, 리더는 태생적 자질 못지않게 후천적으로 교육과 훈련에 의해 육성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며, 후천적 육성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부모(스승)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덕성과 의로움의 원리에 충실하는 효에 기초한 삶은 곧 오센틱한 삶이라는 점에서 인성교육과 연계됨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현대 리더십의 트랜드, 즉 원칙중심 리더십, 임파워먼트 리더십, 이슈리더십, 문화중심 리더십, 감성 리더십, 슈퍼 리더십 등도 효와 연계된다는 점에서 인성교육과 연계할 수 있다.
Ⅴ. 맺는 말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기란 쉽지 않다. 교육이 갖는 참된 의미가 어디에 있고, 본질이 무엇이며, 어떤 기능을 가지는지에 대한 정의(定義)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데 있지 기계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루소).”는 표현에서 교육은 곧 인성교육임을 알 수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표현만큼 효교육과 인성교육에 어울리는 표현은 없을 듯하다. 본보기를 전제로, 이른바 절로 되는 체화교육의 당위성 때문이다. 그래서 인성교육에서의 ‘앎(知)’은 ‘示知(시지, 보고 배우는 지식)’가 ‘聽知(청지, 들어서 배우는 지식)’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示知(시지)’에 의해 교육되어질 때 비로소 ‘앎(知)’→‘느낌(情)’→‘다짐(意)’→‘실천(行)’의 과정에 의해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를테면 가정에서는 부모가 효행을 보여줘야 하고, 학교에서는 교사가 효행을 보여줌으로써 자녀나 제자들로 하여금 마음(知情意)의 작용이 일어나서 행동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가치기준’보다는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른바 ‘정도(正道)’가 아닌데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는 그동안 ‘잘살아보세’에 치중한 나머지 가치 중심적 삶에 소홀히 한 결과이다. 서양에서 300 여년에 걸쳐 이뤄낸 산업화를 우리는 불과 40여 년 만에 이뤄 내다보니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보아야 한다. ‘정신’과 ‘원칙’보다 ‘물질’과 ‘변칙’에 익숙했던 삶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효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그래선 안된다. 이제부터라도 시대성을 감안한, 한국적 효문화를 기초로 인성교육을 해야 하고, 또한 본보기에 기초한 체화교육을 통해 인성교육이 되도록 리더십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인성교육의 모호성을 해하고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인데, 그러자면 한국적이면서 시대에 부합하는 효문화컨텐츠를 개발해야 하는데, 이는 효운동을 하는 우리 모두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필자는 최근 박사학위 논문지도를 마치면서 『대한민국의 4차산업혁명(이민화)』과 『삶의 정도(윤석철)』라는 책 2권을 선물한 적이 있다. 효를 전공한 학도로서 시대성에 맞는 효를 개발해 나갈 것과 효학박사로서 ‘삶의 정도’를 지키며 효문화 진흥을 도모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이러한 노력들이 난세(亂世)에 효에 기초한 인성교육, 그리고 리더십을 수단으로 하는 인성교육을 통해 사회 전반을 건강하게 하는 쪽으로 효문화가 진흥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고, 문화는 천년지대계(千年之大計)라고 한다. 그리고 문화는 교육을 통해서만 진화한다고 보고 있다. 인성교육의 ‘모호성’을 해소하고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효’와 ‘인성’은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점에서 인성교육은 효를 기초로 해야 하고, 본보기에 의한 체화교육이 되도록 리더십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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