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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선 마애선정비
밀양지역 최초의 마애 선정비를 밝힌 심충성님
작성자 추구
작성시간 16.06.12
조회수 174
밀양지역 사람들은 이 磨崖碑가 옛 奉聖寺와 관련된 비로만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마애비의 오른편에 나무아미타불이라는 刻字가 있는데다 주변에 옛 奉聖寺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碑面은 오랜 기간 이끼로 덮여 있어 글자를 확인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심충성님이 우연히 이 지역을 지나다 이 마애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곧 이어
마애비에 낀 이끼를 제거한 결과 뚜렷하지는 않지만 비면의 글자를 모두 해독하게 되었다.
" 府使 趙侯載選 愛民善政碑 辛巳 5月 日 "
즉 부사 조재선의 애민선정비로서 1761. 5월에 새겨진 것이다.
조재선(1713-1774)은
1759. 6 부터 1761. 1 까지 밀양부사로 재직했고
1764. 1. 25 부터 1769. 6 까지 장기간 울산부사로 재직했다.
수령으로서 이례적으로 장기간 재직하였기에 울산에는 3 기의 선정비가 남아 있다.
즉, 울산 중구 학성동 학성공원, 북구 강동동 달골마을, 울주군 웅촌면 고연리 반계마을이 그것이다.
밀양에는 이 마애비 말고도 복원된 東軒 앞에 永世不忘碑가 있다.
한편 明宗 15년인 1560. 10. 4에 大司憲 吳謙(1496-1582)은 朝講에서 선정비의 폐해를 지적하였다.
" 근래에 날로 公道가 없어져 허위가 풍조를 이루었습니다.
일찌기 수령들이 선정을 베푼 것 때문에 비를 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정을 베푼 수령들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혹은 品官과 교제를 맺고 술로 환심을 사서
드디어 아주 친밀한 관계가 되어 심지어 부역을 면제해 주고 관물을 뇌물로 주어 은혜를 파는
곳으로 삼는데 품관은 은혜에 감격하여 어리석은 백성을 부려서 비를 세워 줍니다.
과연 잘 다스린 실효가 있다면 監司가 啓聞하고 該曹가 覈實한 연후에 한마디 칭찬하는 말로
유시하더라도 은총이 되는데 교묘한 꾀로 이름을 낚는 것이 이와 같으니 그 폐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
英祖 15년인 1739. 6. 17에는
咸鏡監司 朴文秀의 生祠堂, 善政碑, 去思碑 등을 없애야 한다는 奏請에
대해
영조는 모두 뽑아 없애게 하라(使盡拔去)라고 한 사실도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소위 선정비라는 것은 실제의 선정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선정비 설립을 핑계로
아전들이 일반 백성들을 착취하는 구실로 삼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애비, 오른쪽에 《나무아미타불》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로프와 사다리로 마애비를 살펴 보는 심충성님

이끼를 제거하자 글자가 나타났다.






이런 상태에서 심충성님은 모든 글자를 해독해 냈다.

" 府使 趙侯載選 愛民善政碑 辛巳 5月 日 "
즉 부사 조재선의 애민선정비로서 1761. 5월에 새겨진 것이다.




밝게 웃고 있는 심충성님




글자를 확인한 후 기록으로 남기는 모습
심충성님께 힘껏 " 충성 !!! "
府使趙侯載選永世不忘碑
첫댓글 마애 [磨崖] :
석벽에 불상이나 글자, 그림 따위를 새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