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입술
오 현 정
새벽 꿈결에 안아 본 당신, 낮 동안 누구를 만나 어떻게 변할지
더 이상 베팅할 수 없으면 검은 가방에 넣어둔 푸른 지갑을
지갑 속 종이돈을 가상화폐로 바꾸세요
당신이 先物이면 내 膳物은 진짜 선물
서로가 물 먹였다 울먹이지 말고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처럼
시가를 물고 검색대를 유유히 통과하세요
실연의 아픔이 뭐냐고 청춘은 물을 거예요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사토시 나카모트의 예지대로
중매쟁이 없이도 당신에게 윙크하는 연인들로 넘칠거예요
아포가토 한 잔 나눠 마시지 않고 온라인으로 황금아기를 낳고
오래오래 비둘기를 품고 미소 짓는 거래가 한창 무르익어 가요
금화와 은화가 반짝이자 쌀과 도자기가 뒷전으로 밀려났듯이
당신이 내려 받은 소프트웨어가 이제 당신의 유일한 자산
캐면 캘수록 몸값이 치솟는 이유는 검게 뒹굴어본 호기심만이
채굴권을 암호로 살 수 있기 때문이에요
비트페이는 이름도 모른 채 주고받은 설렘의 모든 책임을
당신에게 묻는 규약이자 절차
흠결 잡히지 않게 유의사항을 잘 숙지하시면
여의도에서 니혼바시, 월스트리트 어디에 있든
지구상 그 어느 지점보다 당신은 내내 상승세를 그리는 챠트쟁이가 될 거예요
비트코인이란 무엇인가? 비트코인이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이며, 암호화폐란 암호를 사용하여 발행하거나 거래하는 가상화폐를 말한다. 비트코인, 즉, 암호화폐는 사토시 나카모트라는 익명의 인간이 2009년 개발하여 배포했으며, 이 암호화폐는 거래내역을 중앙서버에 저장하는 일반 금융과는 달리,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사용자 모두의 컴퓨터에 그 거래 내역을 저장하게 된다. 암호화폐는 일반화폐와는 달리 중앙은행(발행주체)이 없고, 각자가 암호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무한정의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가 있다. 암호화폐는 민간업자가 발행하고 통제하는 대신 정부의 규제가 없는 화폐이며, 가상의 환경에서만 사용되는 전자화폐를 말한다. 이 암호화폐로는 석유와 원자재를 사고 팔 수도 있으며, 음식값을 지불하거나 영화도 감상할 수가 있고, 앞으로는 현재의 신용카드처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암호화폐(전자화폐)가 종이화폐, 즉, 유로화와 달러화와 엔화와 원화 등을 누르고, 그 어떤 국가나 중앙은행의 통제도 없이 모든 상거래의 결제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는 현재 700개 이상이 존재하고, 이 암호화폐의 잠재적인 가능성 때문에, 이 암호화폐를 사고 파는 투기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비트코인, 즉, 암호화폐는 ‘종이화폐에서 전자화폐로의 통화의 혁명’이며, 모든 국가의 통화체계와 세계적인 기축통화체계를 무너뜨리고, 자유무역의 신호탄이 될는지도 모른다.
나는 전문금융인도 아니고, 더, 더군다나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만일, 비트코인이 주요결제수단으로 모든 상거래를 장악하게 되면 바로 그곳에서 경제적 무질서가 생겨나고, 모든 산업이 마비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듯이, 암호화폐의 순기능이 무너지고, 그 얼굴도, 정체도 모르는 투기자본에 의하여, 전세계의 부가 다 빨려 들어가게 되고, 바로 거기에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될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의 출신성분과 취미와 성격 등을 알면 우리는 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지만, 그 사람의 출신성분과 취미와 성격 등을 전혀 알 수가 없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두려워하고 경계를 하게 된다. 알 수 없는 것은 두려운 것이고, 익명의 인간은 괴물이며, 유령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요컨대 암호화폐의 익명성과 그것이 유통-소비되는 과정을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에서, 바야흐로 전세계는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트코인은 무한한 가능성이고 두려움이며, 비트코인은 또한 자유무역의 대명사이자 무서운 혼돈의 상징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현정 시인의 [비트코인의 입술]은 무서운 입술이며, 전혀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입술에 키스를 해야만 하는 ‘난처함의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비트코인은 지하에 숨어 있는 자이고, 그 정체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천변만화하는 얼굴을 지녔다. 새벽 꿈결에 일확천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품에 안겨 보았지만, “낮 동안 누구를 만나 어떻게 변할지” 불안하고, “당신이 先物이면 내 膳物은 진짜 선물”이라는 불합리한 키스(약속) 때문에 더욱더 불안하다. 이 ‘先物’은 현재 현찰을 받고 미래에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는 재화(비트코인)을 주겠다는 것을 뜻하고, 또한, ‘膳物’은 지금 현찰로 그 비트코인을 샀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 현재 비트코인을 판 당신은 이익을 보지만, 앞으로 비트코인 값이 올라가지 않으면 나는 손해를 보게 된다. “실연의 아픔이 뭐냐고 청춘”이 물으면, “서로가 물 먹였다고 울먹이지 말고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처럼/ 시가를 물고 검색대를 유유히 통과하세요”라는 시구는 이 암호화폐를 사고 파는 상행위가 이미 서로가 그 도박성을 잘 알고 있는 만큼, 그 어떠한 원망도 하지 말라는 것을 뜻한다. 비트코인은 지갑 속의 종이돈을 가상의 화폐로 바꾸어 베팅한 만큼 도박이며, 이 도박은 일확천금이라는 황금률에 맞닿아 있는 만큼 그 중독성이 크다고 할 수가 있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마약왕을 꿈꾸고, 이 마약왕의 꿈이 있는 한, 자기 자신도 모르게 비트코인의 중독자가 된다. 오현정 시인의 [비트코인의 입술]은 마약의 입술이자 도박의 입술이고, 최후의 만찬과도 같은 죽음의 입술이라고 할 수가 있다.
비트코인은 실패도 모르고, 비트코인은 실연도 모른다. 비트코인은 도박을 좋아하고, 비트코인은 마약을 좋아한다.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트의 예지대로 중매장이 없이도 만인들의 연인이 되어가고, “아포가토 한 잔 나눠 마시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황금아기를” 낳는다. “금화와 은화가 반짝이자 쌀과 도자기가 뒷전으로 밀려났듯이” 당신이 암호를 풀고 채굴해낸 비트코인은 앞으로도 캐면 캘수록 천정부지로 그 몸값이 치솟아 오르게 될 것이다. 이름도 묻지 말고, 출신성분도 묻지 말자. 피부색도 묻지 말고, 종교도 묻지 말자. 책임과 약속도 묻지 말고, 온갖 법률과 규제 따위는 무시하고, 오직 당신의 자유와 선택에 의하여, 당신의 미래는 당신이 개척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의 미래는 당신의 자유와 선택에 달려 있고, 당신의 미래는 이 비트코인이 약속해줄 것이다. 자, 모든 미래는 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여의도이든, 니혼바시이든, 또는 월스트리트이든지 간에, 지금, 당장 그 모든 것을 다 걸고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차피 인생은 크게 베팅하는 것이고, 크게 베팅할수록 천하를 다 차지하게 된다. 소인배는 간이 작아 쪽박을 차게 되지만, 천자는 간이 커서 한 나라와 이웃국가와 그 모든 제국들을 다 꿀컥 삼킨다.
인생은 어차피 도박판이고, 크게 걸면 크게 딴다. 이 비트코인, 이 암호화폐의 정체를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힘들지만, 이 암호화폐의 정체를 알아차린 오현정 시인은 이처럼 ‘난처함의 노래’를 부른다. 이 난처함의 노래는 그 주조가 비꼼과 야유로 되어 있지만, 다른 한편, 그 비꼼과 야유 속에는 일확천금의 도박판에 가담하고 싶다는 욕망이 매우 진하게 배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