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사랑학 - 고부간의 갈등
현대 한국 사회의 가정에 있어 두두러진 특징은 점차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제도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고부간의 갈등'이란 제목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우려가 아닐 뿐더러 가령 부모가 자녀와 따로 살고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서양과는 달리 부모와 자녀, 시부모와 며느리 등 간에는 아직도 끈끈한 인간관계와 정서적인 얽히고 설킴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부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이 어떻게 일어나며 이를 예방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도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고부간의 갈등이 오는 경우는 어떤가?
필자가 정신과 외래진료실과 서울 가정법원에서 오랜 기간 관찰해 볼 때, 다음 몇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시어머니의 문제점을 들 수 있는데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시모의 노인성 망상증의 경우를 들 수 있다.
특히 일찍 남편을 잃고 어렵게 자식을 길렀거나 평소 성격이 너무나 꼼꼼하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 했거나 고고하게 살아온 시어머니의 경우에는 며느리에 대한 오해, 섭섭함, 괴씸함, 증오감 등을 느끼기가 쉬운 것이다.
이때는 물론 사소한 일들을 과장되게 해석하기도 하고 아들이나 며느리가 예사로 한 행동을 보고서도 자기 자신과 결부시켜서 지나치게 해석하여 마침내는 고부갈등을 야기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아들과 며느리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억울해 하며, 지난 날을 후회하거나 불면증, 거식증, 피해망상증 등에 빠지는 것을 흠히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며느리에게서 그 문제점을 찾아보면 다음 몇가지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첫째는 자기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현대를 사는 많은 한국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경향으로 한국의 며느리들도 예외가 아니다.
여권운동, 가정의 민주화, 인생을 즐기기 위한 결혼관 등이 이땅에도 만연되게 되었고, 오늘날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기를 희생한다든가 괴롭고 불편한 관계를 오래 참는다든가 하는 점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듯 하다.
한국의 며느리들이 가지고 있는 두번째의 문제점은 경제적 낭비와도 관계가 있다.
많은 시어머니 세대들이 겪은 빈곤, 눈치보기, 근검절약정신과는 달리 오늘날 젊은 세대의 여성들은 아무리 해도 풍요롭고 잡다한 상품들의 유혹을 많이 받는다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부지불식간에 낭비벽이 있다고 할 것이다.
특히 아들 즉 남편이 출타시 또는 장기로 해외에 나가 있을 경우, 며느리가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돌보고 한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법원이나 정신과 외래 진료실에서 볼 때 많은 며느리들이 가정을 지키는 대신 각종 명목의 모임에 참석하거나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는 슬픔과 외로움을 참지 못한다고 해서 외출, 외박, 여행 등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보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고부간의 갈등이 오게 되고 마침내는 부부갈등과 이혼현상까지 낳게 된다.
이때 외출의 심리는 단지 심심하거나 외로운 경우도 있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일종의 폐쇄공포증 등과도 관련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즉 주부들이 작은 공간과 방 속에 있게 되면 어쩐지 불안해지고, 안절부절하게 되며 넓은 광장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는 일종의 변태심리가 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부간의 갈등을 넘어서고 가정의 평화를 찾는 길은 무엇인가?
첫째로는 지나친 서양풍토, 물질주의, 쾌락주의의 사고를 탈피하는 데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소득증대, 이익추구, 자유 등만을 너무 찾다보니 결국 현대인들이 자신만의 쾌락, 행복, 편의주의 등에 빠져 들어간 것이 문제라 하겠다.
그래서 결국은 정신이 물질을 지배하고 쾌락주의 보다 도덕과 정신적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와 가정형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두번째 처방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보는 훈련과 공감의식을 넓히는 일이고 여기에 상호간에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일일 것이다.
상대의 못마땅한 태도를 나무라거나 비난하기 이전에 "나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며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 이전에 상대방의 설명을 들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번째의 처방은 고부간의 중간에 위치한 남편의 태도도 중요하다.
어머님과 아내의 갈등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기울게 되면 반드시 부작용이 올 것이며 나아가 가정파탄까지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아들이요 남편의 입장에 서서 양측의 갈등을 중개하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
현대는 누구나 고독해 지기가 쉬우며 핵가족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것을 두두러지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서로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하더라도 고부간에 사이좋게 지내게 되면 그 가정은 그야말로 정이 넘치는 복된 분위기를 만들 수가 있을 것이다.
정신의학적으로 보더라도 여러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가 건강하게 자라게 되고 인격형성도 잘 될 것임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