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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와 그리스 성지순례(6. 최종회)
6월 30일 입살라 국경을 지나 터키 입국. 이스탄불 도착. 그랜드바자르
Lucy Hotel의 아침 일출도 일품이었다. 호텔을 7:40분에 출발하여 10:10분에 국경을 통과하였다. 국경통과하는 긴 다리는 그리스쪽은 파란색, 터키 쪽은 빨간색 난간으로 되어 있다. 국기의 색깔을 딴 것이다. 국경을 통과하는 시점에서 현지 가이드들도 바뀌었다. 터키로 들어서니 국경지대인 입살라(ipsala)에는 많은 논들이 즐비했다. 익숙한 우리 농촌 풍경이 전개되었다. 이동우 현지 가이드에 의해 터키 강의가 있었다.
터키는 유목민 후예라 바다에 소홀하고 게 같은 비늘없는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스와 영토분쟁이 있었을 때 터키는 바다의 섬들을 대부분 그리스에 넘겨 주었는데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민의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사원에 열심히 가지도 않고, 특히 국부(國父)로 여기고 있는 아따투르크가 이슬람교를 세속화해서 공무원과 여대생들은 히잡(Hijab)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히잡이란 아랍권 여성들이 쓰는 이슬람식 머리 수건으로, 13세 이상만 되면 코란의 규범에 따라 입게 되는데 얼굴만 내놓는 두건 모양이다. 한편 차도르(chādor)는 타인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도록 눈 부분을 제외하고, 전신을 온통 뒤집어쓰는 것으로서 망토형이며, 흔히 검은 목면으로 만들어진다.
이스탄불로 가는 도중에 점심식사를 하고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에서 도착하니 16:30분이었다. 한 시간동안 구경을 하고, 고려정에서 한식으로 식사를 한 후, 우리가 첫날 머물던 The City Hotel에서 짐을 풀었다. 하루내내 그리스에서 터기로 넘어오는데 보낸 셈이다.
<터키 그랜드 바자르 입구> <그랜드 바자르 유료화장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는 실크로드의 유럽 쪽 종점 지역이며, 지금의 장소가 비잔틴 시대부터 무역의 중심지였다. 오스만 투르크(Osman Turk 혹은 Ottoman)가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서 1455-1461년에 걸쳐 두 개의 주 아케이드(main arcade)가 만들어졌고, 점차 바깥부분으로 넓혀갔다. 지진,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과 복구를 거듭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으며, 현재 18개의 출입구와 4천개가 넘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성(城)과 같이 생긴 입구에 들어서면 둥근 돔 모양의 천장을 한 미로 같은 상점골목으로 들어서게 된다. 보석 및 카페트 세공품, 도자기와 유리 공예품, 각종 향신료와 기념품 상점들이 즐비하다. 곳곳에 경찰들이 있어 치안을 확보하고 있었다.
입구를 나서니 바로 옆 골목에 고서시장(Old Book Bazaar)이 있어 들어가 봤더니 각종 전통 그림과 책들이 가득했다. 또한 그랜드 바자르 문 앞에는 핸드폰을 팔고 있는 아주 초라한 좌판, 군밤과 옥수수를 파는 리어카가 눈길을 끌었다.
<그랜드 바자르 앞 구운 옥수수 장수> <그랜드 바자르 옆골목 중고 휴대폰 판매상>
7월 1일 보스포러스해협, 톱카프궁전, 아야소피야박물관, 히포드롬, 불루모스크
(1) 보스포러스(Bosphorus) 해협
아침 식사후 맨 먼저 보스포러스 해협 유람에 나섰다. 골든혼(Golden Horn)에 있는 에미뇌뉴(Eminenue) 항구에서 출발하여, 유럽지역 돌마바흐체(Dolmabahce) 궁전앞을 지나 오르타괴이(Ortakoey) 사원 부근에 있는 보스포러스 다리 밑에서 우회전하여, 아시아지역 베일레르베이(Beylerbeyi) 궁전 앞으로 해서, 크즈탑(Kiz Kilesi)을 지나 갈라타(Galata) 다리를 통과하여 돌아오는, 한 시간이 조금 넘는 크루즈였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고 있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길이가 30Km 정도이며 마르마라(Marmara) 해와 흑해(Black Sea)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보스포러스는 그리스어로 ‘소가 지나간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느 날 제우스는 이오(Io)라는 다른 여신과 한눈을 팔게 되었고 헤라여신은 쥐로 하여금 제우스신을 감시하게 하였다. 제우스가 이를 알아차리고 들키지 않기 위해 하늘을 구름으로 덮었다. 헤라가 바람을 일으켜 구름을 없애자 제우스는 이오를 소로 변신시켰다. 그러자 헤라는 눈치를 채고 소를 괴롭히려고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할 수 없이 제우스는 이오를 헤라에게 주었다. 헤라는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코스에게 지키도록 명령을 한다. 그러나 제우스는 아들인 아르메스에게 아르코스를 재워달라고 부탁을 한다. 헤르메스는 지팡이로 아르코스 눈을 하나씩 건드려 잠을 재우고 이오를 헤라 몰래 꺼내온다. 이 사실을 안 헤라는 아르코스의 눈 100개를 모두 꺼내 수컷 공작새 꼬리에다 붙여 버렸다. 소가 된 이오는 처량하게 유럽을 떠돌다가 바다를 건넜는데 이때 이오가 건넜던 바다라는 의미인 '이오니아 해'가 되었으며 이곳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 아시아 땅인 아나톨리아(터키본토)로 거쳐 이집트로 갔다. 그래서 이곳 이름이 '소가 건넌 해협'이라는 의미를 가진 보스포러스해협이 되었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 <츠라안 팰리스 호텔>
해협을 따라 배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화려한 건물들이 병풍처럼 드리워진 가운데 웅장한 석조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돌마바흐체 궁전이다. 원래는 목조건물이었는데 큰불이 난 이후 석조 건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이 궁전을 재건하면서 든 비용 때문에 오스만 제국이 흔들렸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화려한 궁전이다. 금 14톤과 은 40톤이 장식에 사용되었다고 하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보낸 세계에서 가장 큰 샹들리에가 있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터키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아따투르크가 마지막 생애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조금 더 가다보면 츠라안 팰리스 호텔을 만나게 된다. 예전에 왕족이 사용하던 궁전을 개조하여 호텔로 사용하고 있으며, 터키에서 가장 비싼 호텔이라고 한다. 많은 국가 귀빈들이 묵었다갔으며 헬리콥터 승하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이윽고 보스포러스 다리 가까이에는 바로크풍으로 지은 오르타쾨이 모스크가 보인다. 오토만 시대에 술탄들의 휴양지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내외부 건물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주변 길을 따라 노천 레스토랑과, 일요일에 열리는 바자르가 유명하다고 한다.
오르타쾨이 사원 맞은 편 아시아지역 언덕에는 부엌시설이 없는 베일레르베이 궁전(Beylerbeyi Palace)이 있다. 그곳에 살던 황제의 가족이 음식 조리하는 냄새를 싫어해 음식은 강 건너의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만들어 날랐다고 한다. 주로 여름궁전이나 외국 사신이 머무는 영빈관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보스포러스해협 유럽쪽에 있는 오르타쾨이 사원> <보스포러스 해협 오른쪽 베일레르베이 궁전>
유럽쪽 해변은 신도시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고급별장들이 많은 부유층이 살고 있다면, 아시아쪽 해변은 고전적인 18세기 대저택들과 목조궁전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가난한 지역이라고 한다.
이곳 가까이에 총 길이 1560m, 넓이 33.40m, 높이가 64m인 보스포러스 제1교가 있다. 1973년에 독일기술진에 의해 준공되었으며 아시아대륙과 유럽대륙을 연결하는 이 다리는 터키 공화국 건국 5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
1988년 완공된 제2교는 터키 일본 이탈리아 전문가들이 설계 및 건설한 다리로, 제1교보다 약간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스탄불을 정복한 터키왕을 기리기 위해 술탄 메흐멧 다리(The Faith Sultan Mehmet Bridge)로 명명되었다.
종점 가까이에 오면 해협 입구의 바위 위에 크즈탑이 보인다. 현재의 건물은 이브라힘 파샤(Ibrahim Pasa)에 의해 1719년 건립되었다. 원래 1600년대에 감옥과 전염병 환자들의 격리병원으로 사용된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레스토랑과 카페로 활용되고 있다.
크즈탑에도 얽힌 전설이 있다. 비잔틴 시대 어떤 왕이 딸을 낳았는데 성인이 되기 전에 뱀에 물려 죽는다고 하여 이 돌섬에 집을 짖고 살게 하였다. 그런데 성년이 되는 해 생일 전날 육지에서 배달된 과일바구니에서 뱀이 나와 결국은 예언대로 뱀에 물려 죽었다고 한다. 운명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니 만사 편안한 마음으로 순응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겠다.
점차 항구에 도착하면 멀리 언덕 위로 톱카프 궁전과 갈라타 대교가 보인다. 갈라타 다리 난간에는 배가 오가는 교통정리를 하기 위해 육지 도로처럼 신호등이 붙어 있다.
<크즈 타워> <갈라타 다리 밑을 통과하는 유람선>
(2) 톱카프 궁전 (Topkapi Palace)
톱카프 궁전은 ‘대포문 궁전’이라는 뜻이다.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거주하였으며, 지금은 당시 궁전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많은 화려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궁전 박물관이 되었다.
골든혼과 마라마라해를 바라보며 보스포러스해협과 교차하는 자리에 세워져 있으며 4개의 정원과 그 주변에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했던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정원에는 아야 이레인 교회(Aya Irene)가 있는데 귀족들이 예배를 드렸던 곳으로 지금은 이스탄불 비엔날레에만 개방된다고 한다. 제2정원은 의회가 열리는 정원으로, 입구의 아름다운 건축물은 바뷰스 살렘(Babues Selam)이라고 하는데 현재 톱카프 궁전의 입구로 사용되고 있다. 현판에 화려한 아랍서체로 쓰여진 글은 ‘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제3정원에는 왕실학교가 있었으며 현재 보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제4정원에는 아름다운 바그다드 정자가 있으며 골든혼과 갈라타 지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또한 보스포러스 해협이 한눈에 들어오며 아래로 내려가면 카페와 레스토랑이 여행자들을 반기고 있다.
특히 우리 순례단이 관심이 있었던 제3정원에 있는 보물관은 네 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는데 아브라함이 사용하던 그릇,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검, 요셉의 옷 등이 특이하였다. 사진촬영이 철저히 금지되어, 여기 제시된 사진은 톱카프 궁전 소개 브로셔에 나와 있는 것으로, 보물관을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넓은 홀이다.
그 외에도 유명한 곳이, 궁전 입장권과는 별도로 입장권을 구입해서 들어 갈 수 있는 하렘(Harem)지역인데, 1578년 무라트 3세 황제를 위해 지은 것으로 술탄과 술탄의 어머니, 황제비와 후궁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함께 기거했던 곳이다. 하렘은 그 자체가 마치 작은 성과 같은 구조로, 술탄과 그 가족들은 노예와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생활했기 때문에 많은 부속건물을 거느리고 있다.
원래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1453년 당시 메흐메트 2세는 현재의 이스탄불 대학교가 있는 자리에 황궁을 지었었다. 1475-78년에 지어진 톱카프 궁전은 동로마 제국의 성곽이 있었던 곳에 지은 새궁전이다. 궁전 입구 양쪽에 대포가 배치된 데 연유하여 톱카프 궁전으로 불리게 되었다.
<Fountain Hall, Chamber of Holy Relics. 보물관>
(3) 아야 소피아 박물관
점심 식사후 찾은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의 아야 소피아 박물관(Aya Sofya Museum)은 이스탄불에 있는 정교회 대성당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티움 건축의 대표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360년 이스탄불이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름이 바뀌었을 때,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두번의 큰 소실을 겪은 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서 AD537년 재건되어, 현재는 박물관으로만 쓰이며 기독교와 이슬람사원의 모습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특히,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거한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없고, 알라만 존재한다”고 외치면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부터 이 대성당을 몰수, 모스크로 사용할 것을 선언하였다. 톱카프 궁전 쪽에 위치해 있어,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매주 금요일 예배때마다 방문하였으며,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격식 높은 모스크 중 하나로 여겨졌다. 1923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그리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은 하기아 소피아의 반환과 종교적 복원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터키 정부는 하기아 소피아를 인류 모두의 공동유산인 박물관으로 지정하고 그 안에서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종교적 행위를 일절 금지했다.
<소피아 박물관 내부 벽화: 디시스> <소피아박물관, 예수님과 마리아>
(4) 블루 모스크와 히포드롬
하기야 소피아 박물관에서 도보로 5분거리에 있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Sultan Ahmet Camii)는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대표적인 모스크로, 오스만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의 명령에 따라 1609년에 시작하여 1616년에 완성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스크 안 벽면을 온통 뒤덮은 푸른빛을 띠는 도자기 타일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블루 모스크 바로 북쪽 자리에 히포드롬(Hippodrome)이라 불리는 고대 동로마 제국의 마차 경기장이 있다. AD203년 이곳에서 마차경주가 최초로 열렸다고 하며 당시에는 세계의 각 지역에서 가져온 기둥, 조각상, 오벨리스크 등이 전시되었다고 전해진다. 남아 있는 유명한 조형물은 기원전 15세기 이집트에서 만들었다는 데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Theodocius Obelisk)다. 원래 이집트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에 있던 것을 알렉산드리아까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아들이 옮겨놨는데, 그 이후 율리아누스(Iulianus)황제가 이스탄불까지 운반한 것이다. 또한 AD479년 그리스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있던 것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곳으로 옮긴, 헬레니즘 유물중에 가장 오래된 뱀기둥(Serpent Column)도 있으며, AD940년 콘스탄티누스 7세가 만든 오벨리크도 남아 있다.
<히포드롬 오벨리스크> <히포드롬 뱀기둥>
주마간산 격으로 이스탄불을 구경하고 가까이에 있는 카페에서 아스크림과 차를 마시며 보스포러스해협과 소피아박물과, 블루모스크를 멀리 보면서 성지순례단의 임무를 마감하였다. 항상 모든 여행의 끝은 아쉬움으로 장식되기 마련이다. 패키지 투어에서는 시간적 제약과 단체 요원 전체를 만족시킬 수 없는 제약으로 만족스럽게 보고 듣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공항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가야하기 때문에 저녁식사는 도시락으로 준비해서 공항에 도착하였으나 비행기 시간이 2시간이나 늦어지는 바람에 대한항공에서 준 무료 식사쿠폰에 얼마를 더 얹어 식사를 하고 공항 구석구석을 살폈다.
<블루모스크 부근 카페에서> <카페근처 카페트상점에서 카페트를 짜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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