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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주류성이야기 주류성(周留城)과 백강(白江)은 부안에 있다.
하루신선 추천 0 조회 61 13.05.17 09:2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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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9.03.06 17:03

    첫댓글 본문에서 주류성의 필요조건을 아래처럼 제시하였다.
    1. 복신장군의 지휘소가 있고, 칭병 우거 했던 (*1)窟室이 있다.
    2. (*2)‘웅진강으로부터 백강으로 향했다, 했는데, 백강은 웅진강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3. (*3)‘不觀氣像’으로 백제군이 무너지다.-이는 백제, 일본, 신라, 당 4국이 결전을 감행할 수 있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방대한 해안지대여야 한다.

    위 내용을 답글로 부연하면,

  • 작성자 19.03.06 17:07

    첫번째 복신굴이다.
    복신은 주류성 굴에 칩거하다 풍왕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부흥군의 최고지도자가 머문곳이 굴이었다는 것은 주류성이 치소가 있는 기존 산성이 아닌, 산악지역에 급조된 산성임을 알수있다. 그런데 그 굴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연동굴 일까, 인공굴 일까? 석굴일까, 토굴일까? 전쟁중에 만들어진 굴이라면 토굴이었을 확률이 높다. 그런 복신굴의 존재유무가 주류성을 확인하는데 필요조건은 될 수 없다.

  • 작성자 19.03.06 17:11

    두번째 백강의 위치다.
    백강의 위치논쟁에 앞서 백강과 백촌강의 성격부터 밝혀야 한다. 본문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고서의 기록들은 백제의 지리에 어두운 당나라, 왜의 사람들에 의해 전해들은 백제부흥군의 이야기를 옮겨놓은 기록이기에 많은 부분 내용이 뒤섞이고 혼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자연스럽게 백강과 백촌강은 글자대로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위 주장처럼 다른곳에서 찿아야 한다. 그런데 위 주장과 같은 곳은 서해안에 수없이 많다. 아산만도 그중에 하나다.

  • 작성자 19.03.09 21:59

    세번째 不觀氣像의 해석이다.
    부안 주류성을 주장하는 분들은 썰물의 영향으로 왜의 배들이 갯벌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여 전멸한 것으로 주장한다. 그럴듯하지만 당시 당 수군의 배가 더 크고 더 상류에 진을 치고 있었다. 또한 왜의 400척 배들이 바다에서 이동하는 선단의 거리는 적어도 1km 이상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상당수의 배들이 갯벌에 빠졌다는 주장을 하는지 의아스럽다.
    不觀氣像은 글자 그대로다. 왜수군은 거친 풍랑에 스스로 무너졌고, 당 수군은 해안에 정박하고 있어 풍랑을 피한후에 왜 수군을 좌우에서 공격하여 전멸시킨 것이다.

  • 작성자 22.06.04 14:41

    윗 글에는 우금산성의 취약점은 거론하지 않았다.
    우금산성과 성산은 아래 내용을 설명해야 한다.
    1, 토질이 척박하여 농잠하기 어렵다.
    2, 농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백성이 굶주린다.
    3, 산악지역에 있어 방어에 유리하다.
    4, 서북쪽으로는 띠를 두르듯 古連旦涇이 흐르고 동남쪽에는 깊은 수렁과 커다란 둑으로 된 제방이 자리한다.
    5, 한자 그대로 避城(피성)을 정확히 고증하여야 한다. 지금은 단지 ‘辟城’의 오기로 설명한다.
    일본서기에 수록된 避城(피성)은 ‘辟城’의 오기,라는 설명은 객관적이지 못하다

  • 작성자 19.03.09 22:01

    당나라 수군의 170여척 배들은 웅진강(공주)에 머물 수 없고 단지 몇척만이 가능할 뿐이다.
    필연적으로 백강해전은 웅진에서 출발한 당 수군이 아니다.
    소정방이 이끈 13만 대군을 운송하려면 얼마나 많은 배들이 필요할까?
    부흥군을 구원하러 온 왜의 400여척 배에는 일만여명 뿐인건 잘못된 기록인가?
    당나라 군사들이 타고 돌아가야 할 생명과도 같은 배을 어디에 상륙 정박시켰을까?
    소정방의 상륙, 유인궤 손인사의 상륙장소는 금강하구가 아닌 안전한 신라지역 아산만이다.
    백강과 백촌강은 다른 곳이고, 백촌강 손량은 아산만 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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