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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 문화란 무엇인가] 그런데 바다와 해양에 해당하는 영어는 sea, ocean, maritime, marine 등 네 가지 정도다. sea는 대체로 바다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land에 상응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고 가까운 연안에서 대양에 이르는 바다 전체를 포괄한다. 이에 비해 ocean은 연안 역을 벗어난 대양을 지시한다고 할 수 있다. maritime은 항해 기술, 선박, 항만 등 어업 이외의 바다와 관련된 영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구미(歐美)에서 maritime anthropology[해양 인류학]라는 개념이 일반적인 것을 보면 그 의미를 넓게 잡을 수 있는 소지는 많다. 예를 들어 영국 연안의 바다와 관련한 역사와 유산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는 『Maritime Britain』도 maritime의 범주에 연안의 풍경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동아시아에서 대체로 해사(海事)로 번역되며 해상 교통, 배와 선박 기술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비하여 보다 넓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 용어가 marine이다. 가령 marine tourism[해양 관광]이 해안과 해양을 포괄하는 해양 레크리에이션을 뜻할 때 그렇다. 이 경우 일이 행해지는 공간 영역을 의미하는 경향이 크다. 해양 문화는 해사[maritime]를 중심에 두고 연안[coast]과 대양[ocean]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해항 도시 부산의 변화 양상과 같은 도식에 보듯이 부산은 남항과 북항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해항 도시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근대화 과정에서 부산의 위상은 항만에 있었고 이 항만을 통하여 해양 문화가 성장해 왔다. 오늘날 해양 문화는 항만 중심에서 해항 도시와 포구, 그리고 연안의 다양한 문화 활동 등을 포괄한다. 이러한 부산의 해양 문화적 특성은 결절성[nodality], 혼종성[hybridity], 네트워크[network], 다문화성[multi-culture] 등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첫째, 결절성을 살펴보자. 해항 도시 부산은 식민 도시로 출발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나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왜관(倭館)’의 존재 방식을 생각하면 상당 부분 보충될 내용을 가진다. 왜관이 전근대 교역과 교류의 장이었다는 점에서 부산은 동아시아 지역적 네트워크의 한 결절점[nodal point]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서 해양교역 도시라는 역사적 정체성을 설정할 수 있다. 이러한 정체성은 21세기가 요구하는 해항 도시의 문화적 특성으로 확대할 수 있다. 인접 도시와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적응력과 유연성을 발휘하는 해양 문화가 부산의 특성인 것이다. 둘째는 혼종성이다. 식민 도시 이래 여러 계기에 의해 진행된 문화 혼종화는 부산을 다문화 네트워크 도시로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식민 시기의 범월(犯越)과 이산(離散), 해방 공간과 6·25 전쟁기의 내국 이민, 근대화 시기의 이촌 향도 등 다양한 역사적 경험들은 부산을 문화적 허브이자 세계로 열린 혼종 문화의 해항 도시로 만들었다. 셋째는 네트워크이다. 해항 도시 부산은 일본과 러시아와 중국을 잇는 네트워크임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이(異)문화가 다양한 장소와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차이나타운과 러시아 등 외국인 이주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다문화 공간이 여기 저기 활성화되고 있다. 넷째는 다문화성이다. 해항 도시 부산에는 여러 가지 양상으로 에스닉 스폿(Ethnic Spot)이 형성되어 있다. 부산역 앞 초량이 대표적인데 가게의 간판이나 거리에 있는 언어적 경관이 외국 국적의 사람들의 활동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동남아 여러 나라들에서 온 이주자들의 독자적인 생활 세계는 지역적 삶의 변동을 가져오고 있으며 미디어를 통하여 지역에 새로운 문화 회로를 형성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도시를 변용한다. 이들의 시야는 몸은 로컬 영역인 부산에 있지만 그들의 국가와 지역을 향한 더 넓은 세계와 네트워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해항 도시 부산에는 항구와 포구가 60여 개나 된다. 도심에 있는 부산항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인데 일제 강점기부터 많은 배들과 사람들이 오갔다. 부산항은 가덕도 신항이 만들어지면서 재생을 기다리고 있다. 북항 일대가 아름다운 친수 공간을 지닌 해양 신도시, 해양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면 부산의 면모가 크게 일신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바다가 열린 북항과 달리 가덕도에 가 본 이들은 또 다른 경험이 주는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바다가 부두가 되었으므로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상전벽해(桑田碧海)]는 옛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바다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부산 신항의 위용에 압도당하지 않는 이 없을 것이다. 변화가 현대 도시의 속성이라 하지만 가덕도 일대의 변모는 가히 경이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부산에는 이처럼 큰 항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크고 작은 항구와 포구들이 해안선을 따라 즐비하다. 부산항이나 부산 신항이 주는 위압적 느낌이 아니라 포근하고 편하게 우리를 맞거나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반기는 포구와 항구들이 많다. 또한 변화의 바람에 새 단장한 항구가 있는가 하면 스펙터클한 도시 공간 속에서 초라한 모습을 감추고 있는 항구도 없지 않다. 경우에 따라 아파트 사이 혹은 공장 건물들 사이를 가르는 항구와 포구도 있다. 크게는 세계적인 항만에서 적게는 옛 정취가 묻어나는 포구가 60여 개나 있으니 우리가 사는 부산을 항구와 포구의 도시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부산은 산과 강과 바다를 다 가진 도시다. 바다에서 볼 때 좌로 낙동강이, 우로 수영강이 흐르고 있다. 태백 산맥의 자락이 남해로 침강하는 끝머리에 위치하고 있기에 구릉지가 많다. 금정산·백양산·엄광산·구봉산·구덕산·천마산 등의 연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낙동강과 수영강 연안에 비교적 넓은 평야를 끼고 있다. 특히 낙동강 하구는 삼각주가 발달하여 습지와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다. 하지만 장산·황령산·금련산·복병산·증산·용두산·천마산 등의 산맥이 바다로 뻗어 내려 바닷가 평야의 발달이 미약하다. 일찍이 수영강 연안의 분지인 동래가 이 지역의 중심을 이룬 것은 산으로 둘러쳐진 지리적 여건을 반영한다. 우암 반도와 영도 그리고 두송 반도가 천연의 방파제가 되어 부산만, 감천만, 다대만을 이루고 있어 부산은, 일찍부터 포구가 발달하였고 개항과 더불어 부산항이 형성되고 발전하면서 세계를 향한 해항 도시가 되었다. 오늘날 부산은 기장과 낙동강 서안에서 가덕도에 이르는 광역 도시가 되면서 원도심의 항만뿐만 아니라 복잡다기(複雜多岐)한 항구와 포구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300㎞에 달하는 해안선[자연 해안선 219.5㎞, 인공 해안을 포함한 해안선 306.2㎞]에 배치된 각기 다른 형태와 규모의 항구와 포구, 그리고 해양 경관에 대한 재인식이 요구된다. 2. 부산 항구와 포구에 대해 필요한 재인식 이처럼 필요한 재인식은 세 가지이다. 첫째, 식민 도시에서 출발하여 근대 도시를 경과해 오면서 항만과 배후 산업 중심으로 발달해 온 부산의 공간에 대한 문화적 성찰을 담는다. 1995년 광역화하면서 기장, 강서 지역의 편입으로 대규모 주변부가 형성되면서 이들을 모두 포함하는 인식 지도가 요청되는 한편 산업 중심의 근대 도시를 넘어서 문화와 생태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해양 문화 도시로 가는 길에 대한 탐문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부산의 항구와 포구에 대한 관심은 육역 중심의 시각을 교정하고 해역으로 눈을 돌려 대규모 항만[북항과 신항]~중규모 항구[다대항, 감천항]~어항[도심 어항과 어촌 어항]~포구 등 다층적인 해양 지리를 구성하는 일과 연관된다. 다시 말해서 항구·포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부산의 다채로운 해양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셋째, 항구와 포구에 대한 재인식은 해안의 마을, 장소와 공간, 그리고 경관의 문화정책, 공간 디자인, 장소 마케팅의 가능성을 찾고 미래 지향적인 해양 문화 도시의 밑그림을 구상하는 일과 이어진다. 이리하여 항구와 포구와 더불어 다양한 친수 공간들을 네트워킹하는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인간화된 보행 도시에 대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해안이 보이는 전체적 특징은 남해와 동해의 점이 지대[부산항을 경계로 동해의 성격과 남해의 성격이 드러남]로 크고 작은 만과 이들 사이에 반도와 섬들이 분포하며 전체적으로 복잡한 해안선을 형성하고 있다. 파도가 강한 외해에 접한 해안은 해식애나 파식대 등이 발달하였고, 해수욕장이 있는 내만과 낙동강 하구에는 사구가 발달하였다. 본디 천혜의 경관을 지녔으나 개항 이래 물류 중심의 항만 정책에 의하여 매립과 매축이 빈번하였고 근대화 과정에서 공단 조성과 어항 개발 등으로 해안이 크게 변형되었다. 그런데 항구와 포구의 경관은 삶의 터전으로서 역사성과 삶의 역동적 현장성이 드러나는 곳이다. 하지만 매립되고 매축되어 사라진 경우, 쇠락하여 방치된 경우, 재개발로 덧칠된 경우 등 경관과 친수 공간의 기능이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개별 항구와 포구를 특성에 맞게 디자인하여 차별화하면서 상호 연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즉 어업 쇠퇴에 따른 어민 공동체 분열과 와해, 개발에 따른 갈등 심화 등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항구와 포구의 경관을 살리고 이를 발전시켜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해양 문화를 진작하는 방안이 절실하다. 3. 여섯 개 권역으로 나눈 부산 항구와 포구 부산의 항구와 포구를 공간적 특성에 따라 크게 여섯 개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기장 권역, 해운대·송정 권역, 광안리·용호 권역, 부산항 영도·송도 권역, 다대·장림 권역, 강서·가덕 권역 등인데 행정 구역을 염두에 두지 않고 순전히 인문 지리적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기장 권역과 송정·해운대 권역을 나눈 것이 뚜렷한 기준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송정·해운대 권역과 광안리·용호 권역을 나누는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과 같다. 물론 용호 권역과 부산항의 경계는 비교적 뚜렷하다. 그러나 북항과 남항을 아우르면서 영도와 송도 권역을 함께 묶은 것도 자의적이다. 감천항과 다대포항을 독립시켜도 무방할 것인데 이들을 낙동강 연안의 장림 권역과 같이 두었다. 낙동강 하구의 여러 항구와 포구와 가덕도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은 것도 무리는 없지 않다. 그러므로 권역에 지나친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이들 항구와 포구들이 각기 고립되지 않고 연계되는 방안을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기장 권역은 효암, 월내, 임랑, 문동, 문중, 칠암, 신평, 동백, 이동, 이천, 학리, 죽성[두호], 월전, 대변항, 신암, 서암, 동암, 시랑리 공수이다. 송정·해운대 권역은 송정, 구덕포, 청사포, 미포, 동백항이다. 광안리·용호 권역은 우동, 민락, 남천, 용호[분포], 백운포이다. 부산항 영도·송도 권역은 북항, 하리, 중리, 대평, 남부민항, 암남이다. 다대·장림 권역은 모지포, 감천항, 서평포, 다대항[다대포], 홍티, 보덕, 장림, 하단이다. 강서·가덕 권역은 진목, 중리, 하신, 동리, 신호, 성산, 대저, 순아, 선창, 율리, 장항, 천성, 대항, 대항 새바지, 외양, 동선 새바지, 눌차, 항월, 정거이다. 한 지역에서 항구와 포구가 우세한 위치에 있는 경우와 부차적인 위치에 있는 경우가 있다. 부산이라는 전체의 관점에서 부산항이나 신항의 지위는 거의 절대적이다. 이와 달리 주변의 관점에서 대부분의 항구와 포구는 개별 지역에서 우세한 지위에 있다. 기장 권역의 대다수 항구와 포구가 그렇고 강서와 가덕 권역이 이와 같다. 그런데 기장 권역이라 하더라도 해수욕장을 옆에 둔 임랑 포구는 매우 주변적이다. 마찬가지로 송정 해수욕장, 해운대 해수욕장, 광안리 해수욕장, 송도 해수욕장의 양단에 존재하는 송정항, 구덕포항, 미포항, 동백항, 민락항, 남천항, 암남항 등은 부차적 지위를 면치 못한다. 이와 더불어 공단이나 아파트 단지 사이에 놓여 있는 하단항, 장림항, 홍티항이나 아파트 단지나 도심에 있는 우동항, 용호항 등도 공간적 위상이 낮다. 그런데 이처럼 공간적 위상이 우세종이 아니라 하여 항구와 포구가 간과될 수는 없다. 오히려 항구와 포구는 해양 도시 부산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해양 문화를 이끌어 가는 지배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4. 희망의 북항 재개발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은 부산의 항구와 포구를 두고도 해당된다. 부산의 해안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보석처럼 알알이 박혀 있다. 저 멀리 가덕도의 바닷길을 걸어 보라. 확 트인 바다와 수려한 경관이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다대포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하구는 또 어떠한가? 겨울이라도 좋을 것이다. 노을을 받으며 군무하는 새떼들의 경쾌한 비상과 만날 수 있지 않는가? 몰운대의 바다와 태종대의 바다는 서로 같으면서 다르다. 해안 길이며 등대며 해송 사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마치 바위 속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을 마시는 듯 신선하다. 왁자한 자갈치는 고기 냄새처럼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 남항의 홍등 등대와 남부민 방파제의 백등 등대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도 조화롭다. 그 안에서 부산의 활기가 퍼덕인다. 눈을 돌려 백운포에서 바라보는 오륙도는 어떠한가? 이기대 바다를 돌아 광안리며 해운대며 송정에 이르는 바다는 하늘이 내린 축복이다. 그 축복의 길이 삼포를 거쳐 기장 끝에 이르렀으니 세계 그 어느 도시도 부산만큼 많은 해양 생태 문화 자산을 가지고 있진 못할 것이다. 그런데 부산의 해안에 점점이 박힌 보석들은 저마다 빛나고 있으나 서로를 비추는 데 인색하다. 길들은 도심과 공단과 아파트 단지로 자주 끊어진다. 바다로 가는 길들은 더 넓은 자동차도로가 가로 막는다. 그러니 서 말 구슬들이 꿰어지지 못하고 흩어져 있다. 이러한 사정에는 역사적 요인들이 많다. 일제 강점기 항구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부산항 중심으로 개발된 것이 그 첫째라면 해방 이후 귀환 동포와 6·25 전쟁 피난 인파의 정착으로 도시가 급속하게 팽창한 원인도 있다. 근대화 과정은 강가와 바닷가를 매립하거나 매축하여 공단을 건립하였다. 그러니 부산은 모자이크하듯 덧붙여간 누적 도시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반짝이는 바닷가 보석 풍경들을 제쳐 두고 부산의 해안을 다시 보자. 먼저 도심항만은 고립 단절되어 있다. 그래서 주변 지역과 조화롭지 못할 뿐 아니라 소통을 가로 막는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군사 시설이 해안 길을 차단하는 경우도 많다. 이와 더불어 사유지, 국가 시설, 아파트 단지, 호텔, 친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교량, 방파제, 호안 대규모 구조물, 테트라포드 등 경관을 차단하고 풍경을 단순한 공간으로 추상화하는 인공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도시와 해안의 소통은 어떠한가? 잘 만들어진 친수 공간이 있고 몰운대, 태종대, 이기대 등 경관이 있어도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 또한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희망이 있다. 북항 재개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선대 부두에서 감만 부두를 거쳐 허치슨 부두에 이르기까지 컨테이너로 가려졌던 바다가 북항에 이르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북항을 새로 디자인한다고 한다. 그 동안 북항은 폐쇄형 항만으로 운용되었다. 지금 재개발을 기다리며 맨 살을 드러낸 부두뿐이지만 빈 공간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북항 재생이 특정 공간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차제에 북항을 위시한 부산의 항구와 포구를 연계하여 디자인하고 네트워킹하는 방안들을 모색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가령 부산 대교 건너 봉래동 창고 지역을 보라. 부산 대교에서 봉래동 물양장과 그 주변 도로를 내려 보다가 그 아래에 서서 낮은 시선으로 해변도로 일대를 둘러보면 확연히 다른 느낌이 온다. 퇴락한 듯하나 색상 표에도 없는 색깔을 띤 배들이며 창고와 거리들이 바다와 어울려 묘한 정취를 선사한다. 부디 바다와 조화된 풍경으로 재생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북항의 재생은 영도와 남항 그리고 송도를 배제할 수 없다. 북항과 남항 그리고 영도는 함께 놓여 있다. 더불어 송도의 암남항에서 한편으로 부민항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편으로 영도 대평항으로 연결되는 고리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부산이 근대적인 항구 도시가 되는 것은 개항 이후인데 일제가 용미산 등을 깎아 매축하여 만든 부두가 북항의 원형이다. 북항은 일제 강점기 관부 연락선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도를 품고 왕래하던 곳이고 해방과 더불어 귀환 인파가 몰려들던 공간이다. 또한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과 물자가 수송되어 오고 숱한 피난민들이 밀려든 항구이다. 분단을 맞아 섬이 된 한국이 근대화를 위해 세계로 나아가던 희망의 출구이기도 하다. 이제 북항은 항만 기능을 신항에 이양하고 센트럴 베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새 단장에 들어갔다. 일제 강점기 부산부였던 구 시청이 헐리고 그 자리에 롯데 백화점과 초고층 롯데 월드가 건립 중에 있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도 다리도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과정에 들어갔다. 일본이 영도를 배후 공업지로 활용하기 위하여 놓은 다리인데 6·25 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혈육을 찾아 몰려들었던 애환이 서려있는 장소다. 영도 다리는 40계단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장소에서 장소감[sense of place]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것의 역사성이 보존될 때이다. 텅 빈 북항도 허다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 하나는 도시의 번잡하고 산만한 다양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창백한 합리주의를 뒤집는 도시의 역동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둘 다 옳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절충은 좋지 않은 발상인데, 롯데 월드와 봉래동 창고 거리가 공존하는 것을 마냥 역동성으로 예찬할 수만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북항 주위에는 글로벌 도시의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도색될 롯데 월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도 다리와 같이 잘 알려진 장소와 더불어 정겨운 뒷골목들이 공존하는, 매우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공간과 장소가 있다. 그러므로 북항을 매개로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노래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은 아름다운 바다와 살맛나는 거리가 어우러져 인간적인 교감이 일어나는 보행 도시를 꿈꾸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야기하는 도시와 침묵하는 도시가 있다. 전자는 많은 전통과 기억을 보존하고 있어서 장소마다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다. 가령 우리가 경주나 파리나 로마에 갈 때 도시가 말을 걸어온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런 도시일수록 걷고 싶고 오래 남고 싶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후자는 개념 도시[concept-city]라고도 불리는 도시로 고층 빌딩에 반듯하게 구획된 도로를 뽐낸다. 자주 자신의 위용으로 사람들을 위압하기도 한다. 이러한 도시는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할 수 있다. 대규모 쇼핑몰이며 어마어마한 테마 파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추억으로 남지는 않는다. 기억에 남을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다. 현대의 도시는 보편적인 세계 도시[global city] 이미지와 더불어 장소의 감각이 살아 있는 보행 도시를 동시에 꿈꾼다. 부산도 세계 도시를 지향하면서 보행 도시를 함께 열어가야 하는데 마린 시티, 센텀 시티, 센트럴 베이 등이 세계 도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면, 산비탈 주거 지역의 골목길이나 금정산과 장산과 황령산 등 숱한 산으로 가는 길들과 도심 하천과 낙동강과 수영강을 따라가는 수변 길, 바닷가 포구와 항구들에 이르는 길들은 보행 도시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항구와 포구를 이어가는 길을 형성하는 일이 요긴하다. 사실 어항과 포구는 부산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뺄 수 없는 요소다.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난개발로 상실되어가는 장소성을 회복하는 재생 플랜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침이 아름답고 사철 바다가 다양한 표정으로 우리를 반기는 기장 지역 해안은 아직 살아 있다. 소규모 하천 만나는 포구가 많고 전통적인 어업 마을도 여럿이다. 황학대와 시랑대 등 유서 깊은 장소도 있고 일광과 학리 등 스토리텔링을 간직한 곳이 많다. 경우에 따라서 고리 원자력 발전소조차 랜드 마크로 디자인되는 것이 좋겠다. 멸치와 미역 등 특산물을 매개로 한 테마 박물관을 만들 수 있고 이를 체험하는 공간도 조성하면 된다. 영도와 송도 못지않게 해녀의 문화가 잔존하는 곳도 기장이다. 송정은 기장과 해운대를 잇는 결절점이다. 그래서 더없이 중요한 공간이다. 어쩌면 해운대보다 더 강조되어야 할 바다가 아닌가 한다. 삼포[구덕포, 청사포, 미포]를 거쳐 해운대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지금도 동해 남부선 철길이 있어 낭만이 숨 쉬는 장소이다. 송정역사를 이 지역 네트워킹의 한 중심으로 삼아서 철길의 기억과 해수욕장의 추억을 잘 보존한다면 멋진 장소로 재생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해운대 마린 시티나 센텀 시티의 이미지를 옮겨 갈 필요는 없다. 지금껏 살아있는 장소감을 유지하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해와 동해가 살을 맞대는 부산의 해안! 기암괴석이 즐비하면서 다른 한편 모래사장과 갯벌이 발달한 곳! 낙동강 유역은 그야말로 해양 문화의 보고이자 부산의 미래를 결정할 시금석이다. 무엇보다 유역(流域)이라는 말에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연스런 물길은 물론 인위적인 도로조차 흐름에 장애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목표 지향의 근대화 과정에 유역의 아름다움이 크게 훼손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공단이나 아파트 속에 갇힌 포구들조차 재생의 여지가 많다. 더 나쁜 생각은 포기하는 것.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모순 형용을 이곳에서는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제 몸에 비치는 모든 그림자를 끌어안던 강물이 몸을 푸는 곳, 바다. 강, 육지 속의 바다! 강이 바다에 이르는 그 유역은 생명의 활기가 그득하다. 포구는 삶이 가진 꿈과 꿈이 가진 삶의 특성이 어우러지는 생명의 터전이다. 낙동강, 서낙동강, 조만강, 평강천, 지사천, 맥도강 그리고 샛강들. 이 강들이 바다와 만나는 낙동강 하구 삼각주의 남단엔 포구들이 많다. 퇴적으로 형성된 지형이므로 동해안과는 경관이 다르다. 기장의 경우, 산맥이 바다 앞까지 닿아있고, 그 사이로 흐르는 하천이 바다와 만난다. 하지만 강서는 해안 지형이 평평해 비록 어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지만 기장에 비해 농경의 성격이 강하다. 이곳에서는 민물과 짠물이 섞이면서 하구의 염분 농도는 자주 바뀐다. 때문에 민물고기, 민물과 바닷물이 섞인 곳에 사는 물고기, 바닷고기 등 다양한 어종이 모두 나타난다. 포구와 포구의 네트워킹, 낙동강과 가덕도 바다를 이어야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