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이 될 수 없었던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비인가 대안학교를 졸업한 청년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공교육 특유의 주입식 교육이나 경쟁문화, 그리고 모둠활동이 매우 폭력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교육을 피해(혹은 두려워)서 대안학교에 진학하게 됐고, 공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교육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교육 자체는 대안이 될 수 있었지만 다른 진로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19살이 된 아이들은 결국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입시학원을 다니고, 수능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대안학교를 나온 너희는 대학 진학이 필수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것은 매우 무책임한 말이었습니다. 과연 지금 이 사회에서 대학 진학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대안을 찾아 대안학교에 왔지만 어째서 결국엔 대학 진학이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수없이 자문하고 고민했습니다. 처음엔 일반학교를 나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하는 그런 정석적인 길이 아닌 대안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지 못한 교사들이나 학교, 또는 저 개인의 잘못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학생 개인이나 교사, 학교의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것은 고졸 이하 학력자를 낙오자로 낙인찍는 이 사회가 문제였습니다.
대부분의 친권자들도 자신의 자녀를 낙오자로 키우지 않기 위해 결국 입시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우리 형에 비해 저는 부모님의 눈엣가시였고, 그런 부모님의 압력에 견디지 못하는 순간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저는 부모에게 대학도 못 간 모자란 자녀로 핍박받아왔고, 차별받아왔습니다.
우리는 학년이 올라가고 20살이 가까워질수록 무섭고 불안해졌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사회에서 대학도 못 간 낙오자로 낙인찍히는 게 얼마나 힘들고 차별받을지 무서웠습니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고졸 이하의 학력자가 살아가기엔 너무나도 힘들고 무서운 현실입니다.
저는 최종학력이 중졸이라 어디 지원서를 넣어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러다간 굶어 죽겠다 싶어 고졸로 학력을 속이고 겨우겨우 구한 아르바이트에서도 사장님한테 대학생이 아니란 이유로 온갖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요. 제가 대학을 가지 않은 탓일까요? 왜 우리나라에선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내가 차별을 받아야 하고 그런 시선을 두려워해야 하는 건가요. 대한민국의 학벌주의는 심각합니다. 학벌에 따라 줄 세워지고, 또 그 사이에서도 서열이 있고, 경쟁이 있고 승리자와 낙오자가 있습니다. 이 학벌주의 사회의 교육 시스템은 분명히 잘못되었고 이제는 바뀌어야 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를 위해, 그리고 입시로 고통받는 모두를 위해 대학입시 거부를 선언합니다.
나는 대한민국 사회의 학벌주의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차별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며, 대학을 가기 위해 입시경쟁에 뛰어들어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도 이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학력으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올 때까지 이 사회를 계속해서 규탄하고 투쟁할 것이고, 언젠가 정말 대학이 ‘선택’ 이 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2019년 11월 14일
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