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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시인의 본 53선지식 15.5. 경주 옥산서원에서 제 2회 세계명차 품다회 참여
이언적 선생이 성리학자라고 칭하고 있는 옥산 사원에서 차의 셰계 지도자인 최석환 선생이 주관하고 있는 제 2회 세계명차품다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포항에서 운봉 스님과 남륜 스님과 함께 포항을 출발하여 옥산서원으로 갔다,
이언적 성리학자인데 유생으로서의 역할을 바르게 실행했던 유생이라고 본다, 유생에 대한 발론을 하려고 하는 것은 조선불교계에 대한 논쟁을 유발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회재 이언적에 대한 사상적 배경을 고찰하기 위하여 그의 상소문을 이 시대에 읽고 그 의 역사성을 탐미해 보자구나
전주 부윤(全州府尹) 이언적(李彦迪)이 상소를 올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금은 하늘의 명을 받아 중정(中正)한 도덕적 표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팔짱을 낀 채 하는 일이 없어도 덕(德)이 구원해지고 업(業)이 광대해지는 것은 오직 지극한 정성이 쉼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쉼이 없다는 것은 천도(天道)입니다. 대개 임금은 천명(天命)을 받고 천위(天位)에 서는 것이니 진실로 지극히 정성스러운 덕이 위아래에 미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천도를 따라 천직(天職)을 다하여, 천지가 제자리에 서고 만물이 본성대로 육성되는 공적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대저 지극히 정성스러운 덕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이고 둘일 수 없으며 순수해서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것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질 때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번이라도 끊어질 때가 있으면 이는 쉬는 것입니다.《중용(中庸)》에 ‘쉬지 않으면 오래 가고 오래 가면 징험하게 되고 징험하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박후(博厚)해 지고 박후해지면 고명(高明)해진다.’ 하였고, ‘박후해진다는 것은 땅과 짝하는 것이고 고명해진다는 것은 하늘과 짝하는 것이며 멀어진다는 것은 끝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옛 제왕들의 덕이 하늘과 부합되어 시종 간단없이 유구 무강(悠久無彊)한 공적(功績)과 교화(敎化)를 이룬 것은, 모두 그 한마음을 쉬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순(舜)·문왕(文王)·위무공(衛武公)의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순은 50년간 재위(在位)하는 동안에 정치가 안정되고 공적이 이루어졌으며 예악(禮樂)이 잘 갖추어져 공적과 교화가 극치를 이루었어도 오히려 천명을 계칙하는 노래를 지어 임금과 신하가 서로 경계하였는데, 그 내용은 ‘하늘의 명을 계책하여 언제나 경계하고 모든 일의 기미에 유념하라.’ 하였습니다. 이는 하늘을 공경하는 도(道)는 일정한 때가 없이 줄곧 경계해야 하고 아무리 작은 기미라도 전부 살피는데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문왕은 나라를 다스린 지 오래되었는데도 하늘을 밝게 섬기어 아침부터 해 기울도록 밥 먹을 겨를도 없이 힘써 만민을 모두 화평하게 살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시인(詩人)이 ‘하늘의 명이 아름답게도 끊임이 없으시니 아, 나타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왕의 덕의 순수함이여.’라고 기렸습니다. 이는 문왕의 덕의 순수함이 끊임이 없어서 천도(天道)에 화합했던 것을 말한 것입니다.
무공은 95세 때에도 오히려 나라에 경계하여 규풍(規諷)367) 을 구하였고 억편(抑篇)과 같은 경계의 시(詩)를 지어 스스로를 경계하였는데, 그 시에 ‘네가 방에 있어도 조금도 옥루(屋漏)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라. 드러나지 않았다고 보는 이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신(神)의 오심은 예측할 수 없는 것, 어찌 태만하게 공경치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이는 임금은 조회(朝會)에서 여러 신하를 대할 때만 삼갈 것이 아니라, 궁정(宮庭) 깊숙한 곳에 있을 때에도 마음대로 행동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녀 신명(神明)을 대하는 듯이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옛 성제 명군(聖帝明君)들은, 하늘을 본받아 정성스러움을 간직하고 공경을 주로 하여 혼자 있을 때도 삼가서 시종 오직 한결같이 하고 잠시도 끊어질 때가 없이 하며, 나의 치적이 이미 융성하다고 하여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나의 나이가 이미 늙었다고 하여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음으로써, 언제나 남이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두려워해서 소리도 없고 냄새로 없는 경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천지가 감응해서 아름다운 상서가 모두 찾아들고 신인(神人)이 화합하여 재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기의 마음에 구하면 하늘도 감히 어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이 보건대 전하께서 어질고 밝고 공순하고 검박한 것은 타고난 천성(天性)인 것으로 착한 것을 즐기고 배우기를 좋아하면 잘 다스려지기를 힘써 도모하시었습니다. 그리하여 즉위한 지 34년 동안 엄숙하고 공순하고 삼가고 두려워하여 감히 몸가짐을 나태하게 아니하였으며, 새벽에 일어나 덕 밝히기를 생각하고 상제(上帝)를 대하듯 두려워하며 안으로는 음악과 여색을 즐김이 없고 밖으로는 놀이와 사냥을 즐김이 없으며 간언을 따라 어기지 않고 허물을 고치기에 인색하지 않으셨으니, 옛 제왕이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스리는 공적은 나타나지 않은 채 조정의 변이 자주 있었으며 인심이 화합하지 못하여 천변(天變)이 그치지 않으니 이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신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하늘을 본받아 혼자 있을 때를 삼가는 공력이 혹 중단되는 때가 있고 이치를 궁구하고 중도(中道)를 실행하는 학문도 극진하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의 공력이 중단되는 때가 있기 때문에 천리가 순수하지 못하여 인욕이 끼어들며, 상의 학문이 지극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道)를 보는 것이 밝지 못하여 용사(用捨)가 이따금 어긋나기도 하며
정령을 세워도 안정되지 않고 치도를 행하여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근태(謹怠)가 일정하지 않고 군자와 소인을 접견하는 것이 한결같지 않으니, 또한 어떻게 지치(至治)를 융성케 하고 화평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인(聖人)의 허물은 해와 달이 일식이나 월식을 하는 것과 같아서 허물이 있을 때에는 누구나 다 보아 알고, 허물을 고치면 또 누구나 다 보고 우러르는 것입니다.
삼가 간사한 무리를 제거하신 뒤로 전하의 마음이 해가 다시 중천에 있는 것 같아서 그늘진 곳이 모두 없어졌으니, 깊고 어두운 곳까지 비치게 하고 정치의 교화를 새롭게 하는 방법을 생각함에 있어 강구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정이 숙정(肅定)되고 사방의 백성들이 우러렀으니, 요·순의 정치를 다시 볼 것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아, 이때야말로 전하께서 본원(本源)을 바루어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키고 퇴폐된 풍습을 혁신시켜 위로는 천심(天心)에 순응하고 아래로는 인망(人望)에 부응할 수 있는 일대(一大) 기회인 것입니다.
오늘날 나라의 형편이, 비유하자면 장위(腸胃)가 곪아 거의 목숨이 위태로왔다가 겨우 다시 살아난 사람과 같으므로 사독(邪毒)은 비록 제거했다 하더라도 원기가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태이니, 마땅히 안정하여 보호해야 할 것이요 움직여서 변이 발생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영단 묘제(靈丹妙劑)로써 창자와 위를 씻어내고 병근(病根)을 제거한 다음이라야 그 뱃속을 맑게 할 수 있고 혈맥을 배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조금 나은 것에 안심하여 독한 약 먹기를 싫어하여 병을 다스리는 방법을 어기게 되면 병이 심복에 자리하고 있게 되는데, 어떻게 다음에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근래 조정의 거조와 시행하는 일이 진정시키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은 적절한 것이라고 말할 만합니다.
그러나 진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구차하게 우선 당장만 모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강을 정돈하고 상벌을 엄격하게 하여 국세(國勢)를 무겁게 해서, 사설(邪說)이 어지럽힐 수 없고 소인들을 동요시킬 수 없게 하는 것이 바로 참된 진정인 것입니다.
만일 선악을 분간하지 않고 시비를 가리지 않은 채 자기에게 동조하는 자는 좋아하고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자는 싫어하면서 평상적인 습관만 답습하여 등라(藤羅)로 새는 지붕을 막듯이 임시 방편으로 구차하게 시일만 보내면서 진정됐다고 한다면, 기강을 진작시키고 정치와 교화를 새롭게 할 수 없어서, 투박하고 사치한 풍습과 퇴폐 타락한 풍조가 날로 더욱 깊어져 끝내 구원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대저 국가의 형세는 성하지 않으면 쇠하는 것이며 쇠하면 망하는 것이므로 지혜로운 임금은 성할 때에는 쇠함을 걱정하고 쇠한 때에는 진작시킴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쇠한 것을 진작시키지 못하면 끊어질 듯이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병자같아서 갈수록 망하는 데로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흥하고 쇠하고 진작되고 무너지는 근본은 임금의 마음이 순수하고 일정하여 쉼이 없는 데 달려있을 뿐입니다.
안으로 정한 뜻이 없고 밖으로 정한 규범이 없어서 아침에는 부지런했다가 저녁에는 게을러지고 금방 시작했다가 금방 그만두며, 방금 싹튼 바른 생각을 사욕이 빼앗아가고 방금 진출한 어진 신하를 참소하고 아부하는 무리가 이간질한다면, 점점 분란만 일고 시들어 버려 끝내 공효를 이룰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맥(脈)이 병들고 기(氣)가 쇠진해지게 되어 풍사(風邪)가 겹쳐서 목숨이 위급해질 것입니다.
지금 왕도(王道)가 탕평하여 조정이 약간 화합되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상하의 뜻이 아직 믿기지 않고 음사한 길이 아직 막히지 않았습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굳게 덕을 행하고 밝게 사물을 살피시어 어진 사람을 등용하는 데 주저하지 마시고 간사한 사람을 제거하는 데 의심하지 마시어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키고 국맥을 배양하시면 종사(宗社)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서경(書經)》에 ‘그 덕이 한결같으면 그 자리를 보전할 것이요 그 덕이 한결같지 못하면 구주(九州)368) 를 잃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대저 덕을 한결같이 하는 방법은 역시 강직함과 명석함뿐입니다. 명석하지 못하면 강직할 수가 없고 강직하지 못하면 그 명석함을 오래 지켜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성인은 그 도를 오래 행하기 때문에 천하가 그 덕화에 감화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진실로 하늘을 본받아 바른 데 자리하고 이(貳)로 쓸 것을 이(二)로 쓰지 말며 삼(參)으로 쓸 것을 삼(三)으로 쓰지 말고 한결같이 하여 천운(天運)을 광대(廣大)하게 하고 신화(神化)를 유원(悠遠)하게 하면 천덕(天德)에 화합할 수가 있고 따라서 제왕의 다스림을 이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인은 하늘처럼 되기를 바라고 현인은 성인처럼 되기를 바라는데, 순임금과 문왕은 하늘처럼 되기를 희구하여 천도(天道)에 합한 이들이고 위 무공(衛武公)은 성인처럼 되기를 희구하여 거의 성인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정자(程子)가 ‘천도가 있어야 왕도(王道)를 말할 수 있다. 그 방법을 다만 혼자 있을 때에 삼가는 데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순임금의 도를 본받으려 한다면 반드시 무공(武公)이 혼자 있을 때에 삼가던 것을 본받아 밝은 곳에서나 어두운 곳에서나 조금도 다름없이 시종 한결같은 덕으로 한 뒤에야 이를 수 있는 것이니, 상께서는 유념하소서.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경계하기를 ‘덕이 한결같으면 하는 것마다 길(吉)하지 아니한 것이 없고 덕이 한결같지 않으면 하는 것마다 흉(凶)하지 않은 것이 없다. 길흉이 오는 것은 사람에게 달린 것이요, 하늘이 재앙과 상서를 내리는 것은 덕에 달린 것이다.’ 하였습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임어(臨御)하신 지 오래되었는데도 화기가 응하지 않고 재해가 잇따랐으며 또 요즘에는 괴상한 운기가 하늘을 덮고 무지개같은 것이 해를 꿰고 있는데 모두 흰 빛깔이었습니다. 대체로 흰 것은 전쟁을 상징하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구적(寇賊)들이 몰래 쳐들어올 조짐입니다. 혜성(彗星)이 삼태성(三台星)을 침범하고 태백이 주현하고 서리와 우박이 내리고 있으니 이것은 또 아랫사람이 위를 간범하고 음(陰)이 양(陽)을 침해할 형상입니다. 이와 같이 비상한 변이(變異)가 한꺼번에 중첩되어 나타난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근일 또 일식의 변고와 천둥·지진의 재이가 있었습니다. 해는 모든 양의 종주로 임금의 표상인데, 일식이 있었으니 이는 천변(天變) 중에서도 매우 큰 것입니다. 번쩍번쩍 천둥 번개가 요란한 것은 시인(詩人)도 미워하던 것으로, 하늘이 위엄을 가하여 무겁게 꾸짖는 것으로 경고하는 것이 극에 달한 것입니다. 일에는 난(亂)의 계제(階梯)가 있고 정치에는 간사함을 불러들이는 일이 있어서 위망(危亡)의 화(禍)가 곧 닥쳐온다는 것을 하늘이 전하에게 순순히 가르쳐 주시되 기미에 앞서 예시(豫示)하여 성상의 마음을 깨우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임금이 하늘의 경계에 대해 성의를 다하여 삼간다면 그 상(象)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응보는 없는 것이지만 하늘의 경계가 위에 뚜렷한데도 대응할 사람이 밑에서 멍하게 있다면 화환(禍患)이 반드시 닥칠 것입니다.
대개 임금의 덕(德)은 공경하면 순일해지고 게으르면 순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므로 길흉(吉凶)과 재상(災祥)이 오는 것은 임금의 덕이 공경스러우냐 게으르냐에 달려 있는 것이니, 천심(天心)에 순응하고 천견(天譴)에 보답하는 것 또한 어찌 공경하여 한결같은 덕을 가지는 데서 벗어나겠습니까.
옛날의 명철한 임금들은 혹 재변을 만나면 덕을 닦고 일을 바르게 하며 정성과 공경을 한결같게 하여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을 감격시킴으로써 화가 싹트기 전에 소멸시켜 드디어 비업(丕業)을 빛내고 영년(永年)을 누린 이가 많았습니다.
상 중종(商中宗)·주 선왕(周宣王)·한 문제(漢文帝)와 경제(景帝) 같은 이는 재변을 만나자 반성하여 몸을 닦고 사욕을 눌러 이겨 스스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드디어 여기(戾氣)를 변화시켜 태화(泰和)로 만들고 이미 쇠잔한 국운을 변화시켜 중흥시켰으니, 어찌 하늘을 두려워하고 덕을 삼가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쉬지 않은 공효가 아니겠습니까.
신이 지난 여름 구언(求言)하신 성지를 보니, 스스로를 책망하고 허물을 반성하심이 지극히 정성스럽고 간절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으므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하늘의 노여움을 돌이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달이 넘고 계절이 바뀌었는데 대간과 시종 이외에는 한 사람도 일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고 직언을 올려 잘못된 점을 극진히 말해서 상께서 반성하시는 아름다운 뜻에 부응하려는 이가 없었으므로 하늘은 더욱 엄하게 변고를 나타내 보이기를 마지않습니다. 전하께서 아래에 직언을 바라도 사람들이 응하지 않고 위에서 근신을 해도 하늘의 노여움은 더욱 심하니 어찌 까닭없이 그러하겠습니까. 신같이 식견이 좁고도 어리석은 사람이 시의(時宜)도 모르면서 어찌 하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전하께서 근심하고 두려워하시는 정성에는 보잘것 없는 충의(忠義)의 마음이 조금만 있어도 감동되어 스스로 그만 둘 수 없는 터인데, 더구나 용렬하고 고루한 신은 시종의 반열에 있으면서도 지극히 작은 도움도 드리지 못했는데다가 지금 가슴을 터놓고 대책을 물으시는 때를 만나 어찌 소외(疎外)된 사람임을 자처하고 어리석은 충심을 다하여 만에 하나라도 도움이 있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재변을 초래한 원인은 진실로 전하의 일념(一念)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전하의 일념이 천도에 화합되면 하늘이 어찌 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한 가지 정치의 잘못을 개혁하고 한 가지 일의 폐단을 바로잡는 것만을 법으로 여기면서 근본의 소재를 모르면 이 또한 말단입니다. 신이 오늘날 치도(治道)에 가장 관계가 깊고 시무(時務)에 가장 절실한 것을 전하를 위하여 개진하려 하니 상께서는 자애롭게 살펴주소서.
신이 삼가 전사(前史)를 상고해보니, 예부터 걱정하고 애쓰면서 잘 다스려지기를 바란 제왕들은 많았으나 시종 덕을 오로지하여 치적을 거둔 이는 적었습니다. 그 까닭은, 다스려지기를 바랐으나 다스리는 방법을 알지 못한 데 있었던 것입니다. 다스려지기를 바라고 그 방법을 터득하면 걱정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치도(治道)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다스려 보겠다는 뜻은 두었으나 그 방법을 모르면 마음을 수고롭히고 몸이 수척해지도록 새벽에 일어나고 밤이 되어서야 저녁을 먹으면서 부지런히 애쓰더라도 끝내 별다른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황제(黃帝)나 요(堯)·순(舜) 같은 이가 의상(衣裳)만 드리우고 있었어도 천하가 다스려진 것은 오직 그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후세의 임금들도 더러는 정서(程書)도 하고 전찬(傳餐)369) 도 했으니 부지런히 애쓰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침내 선치(善治)를 일으키지 못하고 국조(國祚)를 연장시키지 못한 것은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채 헛되이 잗단 정무에 정력을 낭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다스리는 요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이 말씀드리겠으니 상께서는 정신을 집중시키소서.
대체로 제왕들이 다스리는 도는 지극히 간결하고 지극히 쉬워 번거롭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천하가 비록 크나 다스리는 것은 마음에 달렸으니 지극히 간결하지 않습니까? 사해가 비록 넓으나 다스리는 것이 도(道)에 있으니 지극히 쉽지 않습니까? 마음이라는 것은 몸을 주관하는 것으로 만화(萬化)가 이로 말미암아 나오며, 도(道)라는 것은 마음에 근본하는 것으로 천하 고금이 모두 이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진실 이 마음을 밝혀 만화의 근원을 맑게 하고 이 도를 본받아 만민의 표준을 세우면, 삼재(三才)에 참여하여 천지(天地)의 화육(化育)을 돕는 공(功)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천지가 저절로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저절로 육성되어 기(氣)가 화(和)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될 것이므로 상서로움과 경사가 찾아들 것입니다.《역경(曆經)》에 ‘간결하고 쉬운 것에서 천하의 도를 터득하는 것이니, 천하의 도를 터득하면 사람의 자리가 천지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이를 말한 것입니다.
대체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는 하나의 강령(綱領)이 있고 열 개의 조목(條目)이 있는 것입니다. 강령은 체(體)인데 다스림을 내는 근본이요, 조목은 용(用)인데 법도를 제정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강령을 들면 열 개의 조목이 저절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신이 먼저 하나의 강령에 대하여 말씀드린 다음 열 개의 조목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나의 강령이라고 일컫는 것인가 하면, 임금의 심술(心術)이 바로 그것입니다.
번잡한 서정(庶政)의 치람과 많은 백성들의 휴척(休戚)에 대한 기미가 모두 임금의 한 마음에 근본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온갖 일이 어그러지고 인심(人心)이 어긋나서 여기(戾氣)가 찾아드는 것인데, 이것은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생각건대, 옛 성인(聖人)들이 제왕의 자리에 있을 때는 하늘을 본받아 정치를 하였으므로 마음이 정대하고 광명하고 천리의 공변됨이 순수하여 인욕의 더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미한 것에서부터 드러난 것에 이르기까지 안과 밖이 환하게 밝아서 사사롭고 사특한 폐단이 없었으므로 위에서 기강을 세우면 교화가 아래에 밝게 이루어졌고 법을 제정하면 무시하여 어지럽힐 걱정이 없었으며 영을 내려도 아부하는 자에게 호의를 보이는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진이를 등용하고 간사한 사람을 축출하는 것도 물정에 꼭 맞았으며, 착한 이를 상주고 악한이를 벌주는 것도 한결같이 공론에 따라 하고 감히 털끝만큼의 사정도 그 사이에 끼어 들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마음이 지대 지공(至大至公)하고 움직일 수 없도록 매우 발라서 일 없는 정치를 편안히 행하였으되 절로 백관 중직(百官衆職)의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른바 간결하고 쉬운 도라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만일 이와 반대로 인욕(人慾)과 사의(私意)의 침입으로 공명 정대한 체(體)를 잃는다면 편당(偏黨)을 지어 반측(反側)하는 무리들이 은밀히 시기심을 품게 되어 마음이 날로 뒤숭숭해지게 되고 따라서 간특(奸慝)한 무리의 횡행으로 번쇄한 일이 마구 생겨서 장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를 것입니다. 여기에서 임금의 심술은 바르지 않으면 안 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방법은 또 반드시 학문으로 인하여 얻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개 본심이 착한 것은 그 체(體)가 매우 미약해서 숱한 물욕(物慾)의 공격을 이겨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임금도 위미(危微)의 경계370) 가 있었고, 공자도 극기(克己)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임금이 높고 높은 자리에 처하여 도리를 궁구하는 노력과 공덕을 보존하는 정성스러움이 잠시라도 끊기는 때가 있다면 또 어떻게 심술을 바루고 만사의 강령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선유가 ‘오직 학문으로써 이 마음을 기를 수 있고 오직 공경으로써 이 마음을 보존할 수 있고 오직 군자를 가까이함으로써 이 마음을 지탱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의리와 물욕은 반비례로 소장(消長)하는 것이므로 학문에 뜻을 둔 것이 돈독하면 날로 성현과 한 동아리가 되어 스스로 얻는 즐거움이 있고, 몸가짐을 공경히 하면 신명(神明)이 위에 있는 듯 경건해져서 올바르지 못한 것이 침노할 수 없게 되며, 현인 군자와 가까이할 때만 경계하는 말을 날마다 듣게 되어 아첨하는 말과 간사한 말이 들어올 수 없게 됩니다. 이 세 가지에 힘을 다하면 상의 마음이 맑고 고요해져서 해처럼 밝고 거울처럼 맑게 되어 의리가 주인이 되기 때문에 물욕이 침탈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대체로 경연(經筵)은 임금이 학문을 강론하는 곳이고 어진 사대부를 만나는 곳이며, 경(敬)은 동정(動靜)을 통관(通貫)하고 내외(內外)를 합일시켜 천덕(天德)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신이 보건대 전하께서 즉위 초년에는 정신을 가다듬어 경연에 부지런히 나아가시어 치도를 강구 연마하여 잠시도 게으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근년에 오면서부터는 전혀 처음만 못하시니, 강관(講官)은 입시하여 몇 장(章)을 펴 읽을 뿐 도의를 규풍(規諷)하는 이로움이 없으며, 전하께서도 묵묵히 계시기만 할 뿐 의리의 정미로움을 토론하거나 고금의 득실을 상의(商議)하신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상들이 진달(陳達)하여 경계하는 것도 정령(政令)에 관계된 소소한 일들일 뿐이고, 이윤과 부열(傅說),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처럼 선한 말을 진달하여 애쓰는 사람이 없으니, 전하께서 이치를 궁구하고 덕으로 나아가는 공부에 미진한 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
신은 늘 전하께서 요·순의 도에 뜻을 두시면서, 경연에서는 삼대(三代) 이상의 성경 현전(聖經賢傳)으로 진강(進講)의 근본을 삼지 않으시고, 항상 후세에서 편집(編輯)한, 질(帙)이 호번하여 끝까지 연구하기 쉽지 않은 책을 취하여 【이때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를 진강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진독(進讀)하시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왔습니다. 이런 책들은 번다한 사물(事物)과 제도(制度)에 대해서는 상세하지만 성인(聖人)이 심술을 밝히고 정성스럽게 하는 뜻과 정밀히 하고 한결같이 하는 방법 등은 대체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임금이 다만 옆에 두고 한가할 적에 때때로 펴보면서 고금의 제작(制作) 규모의 장단점을 연구하면 될 것이요, 경연에서 오로지 그것에 정신을 집중시켜 강론하고 궁구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성상의 품성이 높지 않은 것이 아니고 성상의 뜻이 독실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그럭저럭 한 권의 책에다 헛되이 세월을 허비하면서 뜻은 부지런히 힘쓰건만 도(道)는 멀기만 하다는 탄식이 있게 된 것은 당초에 보도(輔導)한 사람의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唐)·우(虞)와 삼대(三代) 때에 어찌 이러한 책이 있었겠습니까. 심학(心學)뿐이었습니다. 한 이치가 만사(萬事)를 꿸 수 있고, 한 마음이 만화(萬化)를 총괄할 수 있는 것이므로 제왕의 학문은 이치를 궁구하는 것뿐입니다. 이치를 궁구하여 마음이 바르게 되면 저절로 몸이 닦이고 가정이 정제해져서 나라와 천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말단의 섭렵을 중지하시고 근본을 힘쓰는데 뜻을 오로지 하시며, 제왕의 학문에 마음을 기울여 정일(精一)의 공부에 마음을 다하소서. 그리하여 날마다 진신(縉紳)들을 대하여 정미한 것들을 강론하시되, 반드시 공경을 주로 삼아 나태하여 끊어지는 병폐를 없게 하시면 전체(全體)가 서게 되어 대용(大用)이 이를 말미암아 행해질 것입니다.
대체로 경(敬)은 성학의 시종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역경(曆經)》에 ‘하늘의 운행은 굳센 것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 하였는데, 쉼이 없는데 이르게 되면 하늘의 덕과 합하는 것입니다. 임금의 덕과 마음이 하늘과 똑같아지면 천심이 즐겁지 않고 재변이 사라지지 않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자(程子)는 경(敬)의 공효를 논하며 ‘총명과 예지가 모두 이로부터 나오므로 이로써 천제(天帝)를 섬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상께서는 유념하소서.
열가지 조목들은 심술의 나머지로, 모두가 다스려가는 공무(功務)입니다.
첫째, 가정을 엄하게 다스리는 것입니다.
《역경(曆經)》 가인괘(家人卦)에, ‘왕이 가정에 충실하면 구휼하지 않아도 길하리라.’고 하였고, 또 ‘믿음이 있게 하고 위엄있게 하면 마침내 길하리라.’고 하였으며, 전(傳)을 쓴 사람은 ‘왕자의 도(道)는 몸을 닦아서 가정을 정제하게 하는 것이니, 가정이 바르게 되면 천하가 다스려진다. 예부터 성왕들은 모두 자기 몸을 삼가고 집안을 바로 잡는 것으로 근본을 삼았다. 그러므로 가정에 대한 도가 지극해진 다음에는 노력하지 않아도 천하가 다스려졌던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가정을 바르게 하는 도는 내외의 한계를 엄하게 하고 존비(尊卑)의 분수를 명백히 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남자는 밖의 일을 올바르게 관장하고 여자는 안의 일을 올바르게 관장해야 하며, 처(妻)는 이에서 체통을 정제하고 첩(妾)은 아래서 받들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부(夫婦)의 분별이 엄하고 적서(嫡庶)의 분수가 명확하면 가정이 정제된 것입니다. 덕이 있는 여자를 채택하고 목소리 곱고 예쁜 여자를 경계하며 동관(彤管)의 사(史)372) 가 있게 하고 늦게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 있게 하며 밖의 말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고 안 말이 밖으로 나오지 말게 하며 뇌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청탁이 행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정을 정제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규문(閨門) 안은 사람이 지나치면 엄하지 못하고 은총이 성하면 의리가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환란은 언제나 예법이 확립되지 않아서 버릇없는 마음이 생기는 데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속으로는 믿으면서 겉으로는 위엄이 있게 하지 못하고 정애(情愛)의 사사로움에 빠져 스스로를 이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궁곤(宮壼)을 바르게 하고 청탁을 막으며 인척(姻戚)들을 검속하여 화란의 싹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고 위엄은 사람의 마음을 엄숙하게 하는 것이므로, 이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가도(家道)가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엄은 역시 먼저 자기 자신을 엄숙히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동일정(一動一靜)을 감히 구차스럽게 하지 않고 일빈 일소(一嚬一笑)를 감히 경솔하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삼가고 두려워하여 가도가 저절로 엄숙해질 것이므로 즐거움이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어 상하의 질서가 정연해지고 내외의 분수가 분명해질 것이니, 어찌 한 사람이라도 사사로운 은총을 믿고 지켜야 할 도리를 어지럽히고 뇌물을 받아들여 조정의 정사를 문란시키겠습니까. 그러므로 ‘위엄있게 하면 길하리라.’ 한 것은 바로 자신을 반성하라는 말입니다. 자신을 반성할 줄 모르면서 가정을 바르게 한 사람은 아직 없었습니다.
삼가 전하께서 가도를 바르게 다스리는 것은 진실로 논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에 액정(掖庭)에서 총애를 믿고 틈을 엿본 변이 있었고 【박씨(朴氏)가 교만 방자하여 제멋대로 한 것을 말함.】 뒤이어 음흉하고 간사한 자가 권세를 잡고 정치를 어지럽히는 화(禍)가 있었습니다. 【김안로(金安老)를 가리킴.】 지금도 대궐 안이 엄하지 못하여 여자들이 정사를 어지럽히는 일이 많이 행해지고, 관직의 제수를 결정할 때에도 이따금씩 지공 무사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서 상의 덕에 누가 되고 있다는 말이 멀리까지 전해 들리는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일에 대해 거론하는 정신(廷臣)이 한둘이 아니니 어찌 본 것이 없이 그러하겠습니까.
대개 궁정(宮庭)의 은밀한 곳과 자리에 들어 쉬실 때 정(情)에 흘러 도리를 해치는 것이 지극히 은미한 것 같아도 영락없이 밖으로 드러나 멀리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임금의 마음은 마치 푸른 하늘의 해와 같아 조금만 흐려도 모든 사람이 보고 있어서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기(禮記)》에 ‘남편의 가르침을 닦지 않으면 꾸지람이 하늘에 나타나 해가 일식을 하고 부인이 순종함을 닦지 않으면 꾸지람이 하늘에 나타나 달이 월식을 한다.’ 하였습니다. 임금의 가법(家法)이 닦이지 않으면 또한 건상(乾象)의 변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니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이러한 은미한 것은 나의 덕에 누가 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 마시고, 척연(惕然)히 경계해 살피시고 분연(奮然)히 뉘우쳐 고치시매 해와 달같이 환히 비치시고 천둥 번개처럼 결단하시어, 아첨하는 무리들이 총명을 막지 못하게 하고 애행(愛幸)을 모두 도의(道義)로 결단하시어 궁곤을 엄하게 하시고 사특한 길을 막으시면, 종사(宗社)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둘째는 국본(國本) 을 교도하는 일입니다.
국본을 보좌하여 교도하는 것이 오늘의 급선무인데, 보좌하여 교도하는 방법은 역사를 강론하고 고금의 득실을 이야기하는 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학문이 점점 몸에 배도록 함양(涵養)하고 훈도(薰陶)하여 그 도를 터득하게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옛날의 명철한 임금들은 태자(太子)를 교양(敎養)할 때 반드시 행실이 돈독하고 방정과 내신(內臣)들까지도 모두 중후하고 조심성 있는 사람들을 골라 삼가 보호하게 해서 전후 좌우에 모두 바른 사람이 있게 하고 출입(出入)과 기거(起居)를 모두 정도(正道)에 맞게 하고 천박하고 속된 말이 들리지 않게 하고 화려하고 사치스런 물건이 눈에 뜨이지 않게 하였으니 덕성을 기르고 신체를 보호하는 것에는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대체로 학문의 도에는 스스로 본말(本末)이 있는 것이니 본이 되는 것을 먼저 하고 말이 되는 것을 나중에 하는 것이 덕으로 나아가는 규칙입니다. 제왕들이 심법(心法)과 성현들의 모훈(謨訓)이 경전(經傳)에 실려 있어서 해와 별처럼 밝게 빛나고 있으니, 마땅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익히 읽어서 여유 있는 마음으로 진리를 이해해야 하고, 진리를 이해만 할 것이 아니라 터득한 실지를 실천하며 도덕의 원리를 살피고 사물의 진리를 밝혀서 그칠 데에 이르고 마음을 다하고 본성을 알아서 하늘에 이르는 것이 학(學)의 근본입니다. 널리 사서(四書)를 섭렵하여 고금의 세변(世變)에 통달하는 것은 이치를 궁구하는 한 단서일 뿐, 학문의 본무(本務)는 아닙니다.
대체로 마음이 도에 통한 연후에 역사를 보면 옛사람들의 시비 득실이 한눈에 환하게 들어오지만, 마음이 도에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역사책을 많이 보려 서둔다면 방만하기만 하여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시비와 사정의 귀결이 엇갈리어 취사(取捨)를 알지 못하게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삼가 보건대 춘궁(春宮)374) 께서는 천품이 고금에 없이 뛰어나게 순수하여 덕의 진취가 빠르므로 가르치기에 번거롭지 않으며 일덕(一德)에는 티가 없고 삼선(三善)375) 이 모두 융성합니다. 저번에 양위(讓位)하시겠다는 명을 받았을 적에, 지성으로 사양하며 울면서 음식도 들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성상의 뜻을 돌리게 하였다는 이야기를 조야(朝野)가 듣고 감읍(感泣)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순수한 효도와 성대한 덕이 지극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까지 하였겠습니까.
다만 염려되는 것은 도와 보호하는 방법이 삼대(三代)의 방법에는 못 미치는데, 빈료(賓僚)에 뽑힌 이들이 어찌 모두 도에 밝고 덕이 있는 선비이겠습니까. 진강하는 책들도 사기(史記)가 많고 마음을 가라앉혀 깊이 생각해야 할 성경(聖經)은 없는데, 여러 사책만 부지런히 섭렵하는 것은 이치를 밝혀 도로 나아가는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임금의 학문은 마땅히 이제(二帝)376) 와 삼왕(三王)377) 을 본받아야 합니다. 삼대 이상에 무슨 역사책이 있어서 읽었겠습니까. 심학(心學)뿐이었습니다. 후세에는 역사책을 보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본말과 선후의 차례는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얼마 전 사림(士林)에서 우익지설(羽翼之說)을 빙자해 음흉하고 간사한 무리의 괴수를 끌어들여 【김안로(金安老)·허항(許沆)·채무택(蔡無擇) 등을 처음 등용할 때의 일이다. 이때 돕는다는 설[羽翼之說]이 있었다.】 사부(師傅)의 자리에 앉혀 놓았으니, 보좌하고 교도한 것이 사리에 어그러진 것이 반드시 많았을 것입니다. 다행히 천조(天祚)를 힘입어 종사(宗社)에 구름이 걷히고 해가 다시 밝았으니, 마땅히 궁료(宮僚)의 직을 중하게 여겨 이름 있고 덕망 있는 선비를 널리 뽑아 권강(勸講)에 대비하되 반드시 오래 그 임무를 맡겨 공효를 이루도록 책임지우소서. 진강하는 책들도 반드시 마음을 밝고 슬기롭게 다스리는 학문으로 근본을 삼아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에 정신을 오로지하게 해서 덕으로 나아가는 방법에 힘을 다하게 하소서. 그리고 이따금 지난 역사를 물어 고금의 변고와 치란의 요점을 연구하게 한다면 본말이 다 갖추어져 성스러운 공덕이 완성될 것입니다.
요즈음 강관(講官)의 숫자도 적은데다 다른 관직을 겸하고 있으므로 맡은 일을 처리하기에 바빠 그들의 사려(思慮)가 혼란하므로 시독(侍讀)하는 데에 마음을 오로지하고 정성을 쌓을 수 없으니, 보좌하여 교도하는 데에는 마땅하지 않습니다. 생각건대 동궁의 학문(學問)이 날마다 달마다 진보되니 간단(間斷)이 있을까 하는 걱정은 진실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보존하기가 어렵고 기질과 습관은 변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한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성인(聖人)이 되기도 하고 광인(狂人)이 되기도 하는 것이니, 보좌하여 인도하는 방법을 극진히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종사의 원대한 계획으로 이보다 더 급한 일은 없으니, 상께서는 깊이 통찰하소서.
세째는 조정(朝廷)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해야 조정이 바르게 되고 조정이 바르게 되어야 백관(百官)이 바르게 되고 백관이 바르게 되어야 만민이 바르게 되고 만민이 바르게 되어야 사방이 바르게 된다.’ 하였습니다. 대저 조정은 사방의 본원이고 왕의 덕화가 말미암아 시작되는 곳입니다. 본원이 맑으면 하류의 물은 흐리게 하려고 해도 흐려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조종을 바르게 하는 일에 힘쓰지 아니하면서 부서(簿書)의 잘못이나 탄핵하는 말단의 일에 구구히 매달려 이것으로 퇴폐한 풍속을 진작시키고 민폐를 근절시키려 한다면, 비유컨대 본원을 흐리게 하면 하류가 맑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니 될 일이겠습니까?
대개 조정을 바르게 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반드시 먼저 기강을 확립시켜 정하는 것과 풍절(風節)로 진작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상하가 잘 다스려져 인도(人道)가 정제되기 때문에 퇴폐되거나 쇠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풍절이란 공도(公道)가 말미암아 행해지는 것이고 직도(直道)가 말미암아 뻗어나는 것입니다. 공도가 행해지지 않고 직도가 신장되지 않으면 기강이 어떻게 확립되겠으며, 기강이 확립되지 않으면 조정이 어떻게 바루어지겠습니까. 그러나 기강과 풍절이 확립되는 것은 또 임금의 심술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삼공이 도를 논하고 육경이 직분을 나누며 시종(侍從)과 대간(臺諫)이 그 사이에서 논하고 규찰하면, 임금은 대공 지정한 마음으로 위에서 총섭(摠攝)해서 시비를 분변하여 알맞게 결단하여 어질고 간사한 것을 살펴 진퇴(進艮)시킵니다. 그렇게 하면 선입견에 좌우되어 한쪽 말만 듣고 한쪽만 믿는 잘못이 없게 되고 폐행(嬖幸)만을 가까이하여 넓게 임하고 넓게 사랑해야 하는 공변됨을 잃는 일이 없게 됩니다. 도가 있는 곳이면 의심치 말고 결단하여 간사한 것이 현혹시킬 수 없게 하고 아첨꾼이 변경시킬 수 없게 하며, 출척(黜陟)과 형상(刑賞)을 한결같이 공론에 따라 하고 어느 특정인에게만 호의를 보이는 폐단이 없게 한 뒤에야 공도가 행해지고 직도가 신장되어 기강이 확립되고 조정이 바르게 됨은 물론 내외와 원근이 한결같이 바르지 않은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임금의 마음이 혹 공명 정대하지 못해서 털끝만큼이라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사사로움이 있다면, 간사하고 아첨하는 무리와 인척(姻戚)·폐행(嬖倖)이 온갖 연줄을 대어 엿보면서 은총을 바라지 않는 자가 없어서 못하는 짓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위로는 상의 총명을 현혹시키고 아래로는 권력을 사사로이 휘두르게 되므로 충직한 의논이 있다고 하더라도 들어갈 틈이 없어져 선비의 풍절이 저상(沮喪)되게 되는 것입니다. 선비의 풍절이 저상되면 공도(公道)가 막히고 직도(直道)가 폐기되는 것이니, 이 때문에 기강이 허물어지고 조정이 어지러워지는 것입니다.
지난번 간흉(奸凶)이 자격도 없이 자리에 앉아 은총을 믿고 제 마음대로 하여 아랫사람의 말을 막고 위의 총명을 가렸습니다. 그리하여 여탈(與奪)이 은혜냐 원수냐로 결정되어 형벌과 복이 그들의 말 한마디에서 결정되었으므로, 사림(士林)이 기운을 잃고 기강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종사(宗社)가 거의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전하께서는 위에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나라를 위하여 따라 죽을 각오로 직언과 정론을 펴 간사한 무리를 물리치려 하지 않았으니 너무도 풍절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림은 풍절이 없었고 조정에는 기강이 없었으니, 국가의 패망이 간발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전의 일을 징계하시고 뒤의 일을 걱정하시어 대공 지정한 마음으로 편사(偏私)의 누를 말끔히 씻어내시고 호오(好惡)의 공변됨을 명백하게 보이소서. 그리하여 풍절을 도탑게 하시고 기강을 진작시키시면 본원이 맑아져 왕화(王化)가 행해질 것입니다.
네째는 용사(用捨)를 신중히 하는 것입니다.
이윤(伊尹)이 ‘관리를 임용할 때는 오직 어질고 재주있는 사람으로 하시어 좌우가 모두 그런 사람이게 하소서. 신하는 위로는 임금을 위해 덕을 펴고 아래로는 백성을 훈도하는 자이니, 어렵게 여겨 신중히 하시며 오직 화하게 하시고 한결같게 하소서.’ 하였고, 맹자는 ‘좌우가 다 어질다고 하여도 안 되며 모든 대부가 다 어질다고 하여도 안 되고 온 나라 사람이 다 어질다고 한 뒤에야 살펴보아서 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 등용하며, 좌우에서 다 옳지 않다고 하여도 듣지 않고 모든 대부가 다 옳지 않다고 하여도 듣지 말며 온 나라 사람아 다 옳지 않다고 한 후에야 살펴보아서 옳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에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용사(用捨)의 득실에 따라 국가의 안위가 판가름나기 때문에, 옛날 밝은 임금들은 신중히 여겨 감히 가볍게 하지 아니했고 어렵게 여겨 감히 쉽게 하지 않았으며 반드시 중의(衆意)를 참작하고 혼자 성찰하여 그 사람의 현부의 실체를 환히 확인한 뒤에 그에 따라 진퇴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어진 사람에 대해서는 깊이 알고 돈독하게 믿어서 의심이 없었고, 어질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밝게 통촉하고 결연히 제거하여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삼대 성왕들이 어진 사람을 임용하고 간사한 사람을 제거하던 방법인데, 후세의 임금들은 이 뜻에 밝지 못하여 거조(擧措)를 가볍게 함으로써 어진이를 임용하고도 끝까지 믿지 못하고 간사한 이를 제거하는 데도 결연히 결단하지 못하여, 어떤 때는 한 사람이 기리는 소리만 듣고 임용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한 사람이 헐뜯는 소리만 듣고 제거하기도 하며 심한 경우에는 전에는 어질다 여겨 임용했던 사람을 뒤에는 간사하다 하여 죽이기도 하고 전에는 간사하다 여겨 물리쳤던 사람을 뒤에는 충성스럽다 하여 총애하기도 하였는데, 용사가 한번 잘못되는 데 따라 치란이 갈립니다. 이는 처음에 그 사람을 판별하지 못한 데 연유한 것이므로, 처음에 잘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신이 보건대, 전하의 마음은 어진이를 좋아하고 간사한 이를 미워하시며 처음부터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으셨습니다. 사람이 어질다는 소문을 들으면 비록 멀리 있다고 하더라도 빠짐없이 선발하였고 사람이 간사함을 아시면 비록 귀총(貴寵)이라도 조금도 용서없이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셨으니, 성상의 마음이 지극히 겸허하고 밝지 않았으면 어찌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다만 한스러운 것은 보도하던 신하들이 광명(光明)한 길을 말미암지 않고 암매(暗昧)한 길을 따른 경우가 많아서 맑고 밝은 덕에 티를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진퇴시킨 사람들과 죽거나 발탁된 관원들이 공론에 합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저 인재의 진퇴와 소장(消長)은 국가에 관계되는 바가 크므로 마땅히 공명 정대한 공론에 따라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 은밀한 데 의탁해서 흑백(黑白)을 변란시켜 자기와 의견을 달리 한다고 배척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 중에 몰래 아뢰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간사한 사람이 아니면 아첨꾼이라고 선현(先賢)이 이미 논하였으니, 현명한 임금이라면 마땅히 깊이 미워해야 할 것입니다.
옛날 한 문제(漢文帝)가 장안(長安)에 이르렀을 때 주발(周勃)이 잠깐 뵙기를 청하자 송창(宋昌)이 물리치면서 ‘할 말이 공적인 말이면 공적으로 말하고, 사적인 말이라면 임금은 사사로움이 없는 법이다.’ 하였는데, 경계하는 바가 엄한 말입니다. 문제의 다스림이 공명 정대하고 음사(陰邪)한 폐단이 없었던 것은 실로 송창의 이 한마디 말378) 에 힘입었던 것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맑은 마음과 한결같은 덕으로 간사한 무리를 억제하시고 올바른 자를 허여하시며 이상(履霜)의 조짐379) 을 막으시고 뱃속으로 들어오는 해독을 경계하소서. 사람을 등용하거나 축출할 때는 언제나 더한층 어렵게 여기고 신중히 하는 뜻을 가지시어 반드시 좌우에 질정하시고 조정과 의논하소서. 또한 반드시 겸허한 마음으로 살피시고 털끝만큼도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는 사사로움을 두지 마시어, 혹 지름길을 통해 현혹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두말 못하게 거절하시고 단호히 물리치기를 태양이 사사로이 비침이 없는 것처럼 하시면, 음흉하고 간사한 것들이 틈을 엿볼지라도 음사(陰邪)를 부릴 틈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아는 것이 명철인데, 이는, 요임금도 오히려 어렵게 여겼다.’ 하였지만, 지금 보면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이 매우 명확하게 드러나 있으므로 분변하기에 그리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옛날 이덕유(李德裕)가 당 무종(唐武宗)에게 ‘군자는 소나무나 측백나무 같아서 홀로 우뚝 서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지만, 간사한 사람은 등나무나 겨우살이 같아서 다른 물체에 붙지 않고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 하였고, 송 인종(宋仁宗)이 왕소(王素)에게 재상에 임명할 만한 사람을 묻자 왕소는 ‘환관(宦官)과 궁첩(宮妾)들이 성명(姓名)을 모르는 사람이어야 좋을 것이다.’ 하여, 이에 부필(富弼)을 재상에 임명하니 사대부들이 서로 경하하였다 합니다. 전하께서는 진실로 공평 무사한 마음을 가지시어 이것으로 신하들의 사정(邪正)을 살피시어 진퇴를 결정하시면 반드시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공론의 배척을 받고 원한을 품고 틈을 노리는 사람들 중에는 반드시 다시 옛날 지름길을 통해 술책을 부리던 짓을 답습하는 자가 있을 것이니, 세밀히 살펴 예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변고(變故)를 겪으신 이후 상의 지혜가 더욱 밝고 마음이 더욱 안정되었으므로 진실로 의심할 것은 없으나, 신의 사사로운 걱정과 지나친 계산으로는 감히 이것으로써 뒷날을 위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상께서는 유념하여 살피소서.
다섯째는 천도(天道)를 따르는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하늘의 마음은 살리는 것을 좋아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며 성인의 마음도 살리는 것을 좋아하고 사사로움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요임금이 하늘을 공경하여 역상(曆象)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절기를 알려 주어 여러 가지 공적이 모두 빛나게 한 것은, 하늘의 살리기 좋아하는 덕을 본받은 정치였습니다. 순임금도 간략하게 아래에 임하고 너그럽게 백성을 다스려 죄는 의심되면 가볍게 결정하고 공은 의심되면 무겁게 결정했으며 형벌은 형벌이 없는 경지에 이르기를 기약하여 가엾게 여기고 조심하였으니, 역시 하늘의 살리기 좋아하는 덕을 본받은 정치였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오래 살고 싶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삼왕(三王)은 살게 하고 상하게 하지 않았으며, 사람이면 누구나 잘 살고 싶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삼왕은 후덕하게 하고 곤궁하게 하지 않았으며, 사람이면 누구나 안정되고 싶어하지 않는 이가 없으므로 삼왕은 부축해 주고 위태롭게 하지 않았으며, 사람이면 누구나 편하고 싶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삼왕은 그 힘을 절약해서 다 쓰지 않았으니, 이 역시 모두 하늘을 따라 어진 정치를 베푼 것이었습니다.
삼대 이후에 이 도를 다한 이는한 문제(漢文帝)와 송 인종(宋仁宗)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별의 형상이 자주 변하고 해와 달이 흉조를 나타내었으며 재이(災異)가 무척 많았었지만, 두 임금은 도를 다해 자신을 반성해서 천심(天心)을 잘 받들었으므로 재앙이 변하여 상서가 되고 화(禍)가 변하여 복(福)이 되었으니, 정치를 닦고 하늘을 받드는 도도 역시 살리는 것을 좋아하고 사사로움이 없게 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그 걱정도 자기 일신상의 걱정을 걱정으로 하지 않고 천하의 걱정을 걱정으로 하였으며, 그 즐거움도 자기 일신상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하지 않고 천하의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하여, 시물(時物)이 번성한 것을 보고는 가난하고 초췌한 백성들을 진구하였고 제영(緹榮)이 올린 글380) 에 감동하여 육형(肉刑)의 참혹함을 면제해 주었으며 사형수의 죄를 의심하여 다시 심사해 수천 명의 목숨을 살려주고 하루 저녁의 배고픔을 참으면서 끝없이 죽이는 것을 슬퍼하였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윤택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극히 정성스럽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화기가 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보건대 전하는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에 근면한 뜻이 지극하여 가엾게 여겨 관대하심을 보이는 전지도 여러번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관리들이 봉행하기를 게을리해서 백성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수탈당하는 것이 전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어서 곤궁하게 된 것이 전보다 심한 형편이니 신은 전하의 하늘을 본받아 살리기 좋아하시는 마음에 혹 정성스럽지 못한 점이 있어서가 아닌가 염려됩니다.
세금이 번다하고 무거워 한푼의 너그러움도 없어서 살길을 찾아 정처없이 떠도는 백성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데도 위안하고 구제해 주는 정책은 없습니다. 형벌이 중도에 맞지 않는 것은 직접 인명에 관계되니, 형장 아래 어찌 횡액을 당하는 참혹함이 없겠습니까. 감옥에는 반드시 억울한 혼(魂)이 많을 것입니다.
지난번 권간(權奸)이 제 마음대로 할 때 오로지 각박하게 하는 데만 힘을 써서 여러번 큰 옥사(獄事)를 일으켜 참혹함이 극에 달했었습니다. 그리하여 형벌할 사람이 아닌데도 형벌을 가하는가 하면 죄를 밝히기 어려운데도 죽였으니, 전하의 인애(仁愛)하는 마음에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깊어지게 되어 어찌 뒤늦게 뉘우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사찰을 철거하고 중을 도태시킨 것은 부정한 것을 물리치는 아름다운 뜻입니다. 그러나 역시 제도(諸道)에 미리 고유(告諭)해서 철거하고 도태시킨다는 뜻을 명확하게 보이신 다음 그 기한을 늦춰 점차 사라지게 했어야 마땅한 것이요, 졸지에 분탕하여 머무를 곳마저 잃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철거를 독려하기 위해 관리를 파견하신 것이 따뜻한 때가 아니고 마침 한겨울 혹독한 추위가 극심할 때여서 중들이 먹을 것도 챙기지 못하고 맨몸으로 놀라 흩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여 늙거나 어리거나 병든 사람들은 구렁에 죽어 나뒹굴고 젊고 힘있는 사람들은 떼 지어 도둑이 되니, 서민들의 피해가 적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조빈(曹彬)은 자제들이 지붕을 수리하려 하자 못하게 말리면서 ‘때가 바야흐로 추운 겨울인데 담벽이나 기와 사이 등에는 온갖 벌레들이 칩거하고 있을 것이니 그것들의 삶을 해쳐서는 안 된다.’ 하였다 합니다. 어진 사람은 미물(微物)까지도 차마 해치지 못하는 것인데, 하물며 임금이 백성들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어질고 성스럽고 살리기 좋아하는 뜻에 어긋나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만물을 살리는 마음을 본받으시고 동포(同胞)라는 의리를 생각하시어 어진 마음으로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공경하는 마음으로 형벌을 삼가소서. 그리하여 모두 순수한 정성에 근본하시고 잘못을 꾸며대지 않으시며 천도를 따르시면, 변이(變異)가 사라지고 복과 상서로움이 찾아들 것입니다.
여섯째는 인심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인심이란 천하가 안정되고 위태로와지는 근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바르면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여 위에서는 공론이 행해지고 아래에서는 풍속이 아름다와지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 하여 위에서는 공론이 행해지지 않고 밑에서는 풍속이 퇴폐하여 집니다. 따라서 국가의 치란과 흥망의 원인이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삼대 때에는 인심이 발랐었는데, 말세에 이르자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이기설과 겸애설이 어지럽히고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의 종횡론(縱橫論)이 훼손시켰습니다. 그래서 인심이 비로소 그 바름을 잃어 공리(功利)를 숭상하고 인의(仁義)를 버리게 되었으므로 드디어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졌던 것입니다. 서한(西漢) 초기에는 인심이 약간 바르게 되었으나 바루고 보익하는 방법이 잘못되었으므로 선비들이 모두 공명만 좋아하고 절의(節義)를 숭상하지 않아서 마침내 아첨이나 하는 풍습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왕망(王莽)을 기리는 글을 올린 사람이 4만여 명이나 되어 한나라가 중도에 쇠미해졌던 것입니다.
동경(東京)이 중흥되자 절의를 숭상하고 염치를 가다듬어 인심이 비로소 다시 바르게 되었었습니다. 쇠망할 즈음에 이르러서는 조정은 혼탁하였으나 초야(草野)에서는 청의(淸議)가 왕성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웅(奸雄)들이 둘러서서 구정(九鼎)382) 을 넘보았으나 끝내 감히 취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누구의 힘이었겠습니까. 그 이후로 내려오면서 역대의 흥망이 모두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으니 전사(前史)를 상고하시면 밝게 징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인심의 사정(邪正)은 교화의 득실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교화가 밝으면 사람들은 모두 선한 데로 향하고 의로움을 사모하게 되며, 교화가 밝지 못하면 사람들은 모두 이(利)로움만 따르고 의로움은 버리게 되어 인심이 바르지 못하게 됩니다.
생각건대 우리 나라는 삼강(三綱)이 확립되고 사유(四維)383) 가 펴져서 교양(敎養)에 도가 있어 절의(節義)가 볼만하였습니다. 전하께서 대통을 이어받아 혼란을 제거하고 바른 데로 돌이키심에 선비들의 풍습이 한결같이 새로워지고 인심이 한결같이 바르게 되어 정직한 자세와 올바른 논의를 영광으로 여기고 유(流)를 같이하고 더러움에 결합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옛날을 배우고 행실을 정제하는 것을 고상하게 여기고 시세를 쫓아 녹이나 구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으니, 이때는 조정이 청명하였고 풍속도 크게 혁신되었으며 천리가 밝아 인욕도 방자한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정의 정치가 변경(變更)되면서부터 인심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하여 옳은 것이 옳은 것인 줄을 모르고 그른 것이 그른 것인 줄을 모르게 되어 사습(士習)이 날마다 천박하고 더러운 데를 향해 달림에 따라 풍속이 마침내 퇴폐해졌습니다. 이리하여 위에는 정기(正氣)가 소멸되고 아래에서는 사특함이 자라나기에 이르렀으며, 간신이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길러 오로지 제 마음대로 처단하였으므로 온 조정이 위력을 따라 그리로 쏠려 심지어는 남에게 뒤질세라 붙좇으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을 몰랐으니 인심이 매우 바르지 못했고 사풍(士風)이 극심하게 허물어졌던 것입니다. 만일 몇 년만 더 끌었다면 글을 올려 덕을 기리기에 이르지 않았겠습니까. 인심이 바름을 잃게 되면 사풍이 확립되지 않고 사풍이 확립되지 않으면 풍속도 따라서 허물어져 구제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시골에는 효도하고 화목하는 풍속이 없어지며 사람들은 음란에 관한 죄를 많이 지어 은혜를 해치고 인륜을 파괴하고 천리를 거역하는 일 등 말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들이 성상의 주위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대부의 집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니 화기를 해치고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 또한 이로 말미암지 않는다고 기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 인심과 풍속은 국가의 원기(元氣)인데 원기가 다 사라지면 명맥(命脈)인들 어찌 오래 지탱되겠습니까. 말하려니 통곡이 나오려 합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정무를 보고 해가 진 뒤에 수라를 드시면서 걱정하고 애쓰시었는데,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오늘날 조정이 다시 화합하고 성상의 정치가 혁신되게 되었으니, 마땅히 인심을 바르게 하고 풍속을 도탑게 하여 원기를 보호하고 국맥을 오래가게 할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교화를 세워서 천서(天敍)의 법 을 돈독하게 하고 기강을 진작시켜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를 밝히면, 인심이 바르게 되어 풍속이 다시 일변하게 될 것입니다. 종사(宗社)와 생령(生靈)들을 장구하게 하는 길이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인데, 세상에는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상께서는 깊이 생각하고 먼 장래를 걱정하셔서 항상 유념하소서, 중종 34년 10월 20일 갑신 2번째 1539년 명 가정(嘉靖) 18년 전주 부윤 이언적이 올린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상소문
이언적의 상소문이기도 하다, 상소문을 보면 그의 관심을 바르게 고찰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는 이언적도 세상을 하직하는 운명을 당하고 있음이다,
이달에 급제(及第) 이언적(李彦迪)이 졸하였다. 언적의 자(字)는 복고(復古)요, 경주 사람으로 회재(晦齋) 또는 자계옹(紫溪翁)이라 자호하였다. 남달리 영특하였고 타고난 자질이 도에 가까왔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였고 성현의 학문에 뜻을 두어 잠심(潛心)·역행(力行)하였으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않았고 성품 또한 과묵하였으며 힘써 재능을 숨겼다.
어려서 급제하여 조정에 있었으나 기묘년간에는 어떠한 인물인지 몰랐다. 중년에 바야흐로 발탁되었으나, 김안로(金安老)에게 미움을 받아 파직되어 전리(田里)에서 7∼8년을 살았다. 평소 고상한 아취가 있어서 경주 북쪽 자옥산(紫玉山) 속에 거처를 선택, 기괴한 바위와 깨끗한 시내를 사랑하여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주위에 꽃과 대나무를 심고, 날마다 시를 읊조리고 고기를 낚으면서 세상 만사를 사절하는 한편, 방안에 단정히 앉아 책을 읽으며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을 깊이 하니, 공부가 전일에 비해 더욱 깊어져서 참으로 정밀하게 터득한 묘(妙)가 있었다.
김안로가 패망하자 다시 부름을 받아 등용되었다가 얼마 뒤에 전주 부윤(全州府尹)으로 나가 청명한 정치를 펼쳤다. 일찍이 10조목의 소(疏)를 올렸는데, 의논이 순정하고 충정이 간절하여 개연히 세도(世道)를 만회할 뜻이 있었다. 중종이 이를 가상히 여겨 참판(參判)에 발탁하였으나 끝내 뜻을 펴지 못하고 또다시 모친의 연로로써 벼슬을 사양하고 모친을 봉양하였으므로 조정에 오래 있지 않았고, 말년에는 병으로 고향에 머물러 있었다. 인종이 즉위하자 특별히 은소(恩召)를 두 번 세 번 내리니 드디어 병든 몸을 일으켜 좌찬성 직을 맡아 조정에 나아갔다. 인종이 승하하자 곧 을사 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 파직을 당하여 고향으로 돌아간 지 2년 후에 강계부(江界府)에 귀양가서 7년 만에 졸하니,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처첩 등이 혹 굶주릴 때가 있어도 조상에게 제사 올리는 예는 정성과 공경를 다하였다. 특별히 한 책을 편집하니 서명은 《봉선잡의(奉先雜儀)》였다. 또 《예기(禮記)》 등의 책에서 효성스런 자손들이 제사를 지내는 데 정성을 다한 일들을 모아서 기록하고 그것을 살펴서 제사를 봉행하였다. 조정에 나설 때에는 나아감과 물러섬, 의견을 아룀에 있어 정직하고 분명하였으며, 늘 요순과 같은 임금의 백성으로 자임하였기에 비록 귀양 가 있는 중에도 오히려 정성을 다하여 조정을 잊지 않고, 《역경(易經)》의 진덕수업(進德修業)의 뜻을 취하고 그 의미를 넓혀 팔규(八規)를 만들어 장차 전달하려 하였다. 그러나 당시 감사였던 홍섬(洪暹)이 시의(時議)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지했으므로 끝내 올리지 못했다. 저서로는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속혹문(續或問)》·《구인록(求仁錄)》이 있다. 또 《구경연의(九經衍義)》를 편찬하였는데, 완성하지 못했지만 공들인 것이 더욱 깊었다. 그의 학문이 연원은 없으나 스스로 사도(斯道)에 분발하니 은연중 빛나서 덕이 행실에 부합되고 문장이 붓끝에서 나오면 교훈되는 말이 후세에 전해져 동방에서 찾아보면 자못 비견할 사람이 드물었다. 선조 원년에 영의정에 추증하였고 시호는 문원(文元)이라 하였다. 명종 8년 11월 30일 임신 3번째 1553년 명 가정(嘉靖) 32년 이언적의 졸기
옥산정사에 도작하니 전국에서 다인들이 모여 있다, 아는 다인들도 있고 해서 다정다감했다, 옥산정사에서 차를 마시고 행사에 참여하니 참 기분이 좋았다
김지장 스님 환생
김지장 스님이 신라에 환생하니
산천에 푸른 뽕잎 고향 그리워
애절한 그 마음하나 피리소리 울리네
세월의 긴긴 밤을 파도처럼 울리고
조선영혼으로 태어난 옥산 정시
언제나 마음의 고향 당나라에 전하리.
불 지장 스님의 영혼이 경주에 와서
차를 마신 그 인연이야 무슨 말로
그리워 또 그리워라 고향에온 금지차
2022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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