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 회개하다의 성경적인 올바른 이해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4:17절)
먼저 회개라는 헬라어 단어 명사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는 본래 그 마음을 부수고 다시 세운다는 뜻으로‘마음을 바꾸다, 마음을 더 좋게 바꾸다, 다르게 생각하다, 회개하다’로 번역된 동사 헬라어 단어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와 그 의미가 일치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바꾸다, 마음을 더 좋게 바꾸다, 다르게 생각하다, 회개하다 로 번역된 동사 헬라어 단어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는 함께, 후에, 뒤에 라는 전치사 메타(μετα)와 마음으로 알다, 이해하다, 생각하다, 인지하다 라는 의미의 노에오(νοέω)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노에오(νοέω)는 동침하다(마1:25), 절대적 의미로써 알다, 확신하다, 생각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기노스코(γινώσκω)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회개하다 헬라어 단어 동사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는 단순히 국어사전적 의미인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다 라는 행동양식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깊이 깨달아 알아버린 마음의 상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회개하다의 헬라어 단어 이 메타노에오는 하말티아(ἁμαρτία-빗나가다, 죄를 짓다)와 연계하여 볼 때 과녁에서 벗어나 있는 어두움의 실존을 알아 버린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며 그 마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그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한 잃어버린 양 비유(눅15:7)에서 주인이 잃어버린 양을 찾고는 죄인 하나가 회개하였다 라고 말하고 있으며, 잃어버린 드라크마 비유(눅15:10)에서도 주인이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고는 죄인 하나가 회개하였다 라고 말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가 한일은 하나도 없고 주인이 모두 한 일입니다. 이것은 또한 계속 연이어 나오는 잃어버린 둘째 아들을 찾으시는 아버지 비유(눅15:11-24)를 통해서 둘째 아들이 스스로 회개하여 돌아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홀로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돼지우리 속에서 돼지 된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인식하고 자각하게 된 둘째 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 찾아짐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한 것이라고는 자기에게 주어진 제한된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행복과 쾌락을 위해서 돼지처럼 산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마음이 그에게 임하여 그 자신이 자신의 돼지 됨을 바라보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들이 외부에서 침투한 은혜의 결과로 자신의 돼지 된 모습을 자각을 하자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돼지우리 같은 세상에서 눈을 들어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이 세상이 돼지우리이며, 자기가 돼지이며, 자기가 추구했던 것이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자, 그 때에 아버지가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아버지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와 반면에 그의 아버지는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마15:24)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모두가 아버지가 하신 일입니다.
그러니까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의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며 사는 삶이 돼지우리 속의 돼지 같은 삶이며, 자신들이 추구하는 모든 세상의 힘들은 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는 것을 올바로 자각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회개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개의 주도권은 찾는 이에게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비유를 통해서 미리 그걸 말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스스로 회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가입되어 있어야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에서 전부 주인이 찾아 나서서 찾아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회개를 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 라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경험케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개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찾아나서는 분의 의해 주도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걸 내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것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인간은 생래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신 뜻으로 따라서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원죄)“기록된 바 (이 땅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
그러니까 첫 아담 안에 속한 모든 인간들은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즉시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의 인생을 위해 열심히(열나게) 하나님과 다른 반대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로 가면, 네가 스스로 가는 길은 죽음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 측에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 그 방향을 바로 잡을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그 성령께서 우리를 원치 않는 방향에서 진리의 띠를 띠우고 너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가 끌고 갈 것이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우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한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절)
그런 의미에서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는 내가 보편적인 일반상식에 근거하여 어떤 것을 인식하며 생각을 하고 있었고, 정의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야! 그거 아니야! 라고 다른 개념으로 가르쳐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걸 올바로 깨달아 보게 해주는 걸 메타노이아,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 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나’라고 하는 자신의 내면 인격의 실체를 올바로 자각하고 시인하는 자, 즉 자신의 도덕과 윤리와 착한 행위 등으로 자신을 위장해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거짓인격, 가면인격이 벗겨지고 그 안에 진짜 “나”의 인격이 자기 자신에게 폭로가 될 때에 비로소 제가 창기 맞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 맞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위장 된 실체의 겉 가면을 벗고 자신의 내면의 실체를 겉으로 드러내어 내가 죄인 중에 괴수 맞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자 그걸 회개라고 합니다. 또한 그렇게 회개한 자를 가리켜 나그네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자신의 실존(실체가)이 먼지이며, 거름더미이며, nothing이며, 존재도 아닌 무능력자로서 어두움으로서의 처음자리임을 깨달아 아는(γινώσκω) 자들은 하나같이 피조물의 본래의 자리인 주체의 자리에서 내려와 객체의 자리에 서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자기고백, 자기부인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임으로, 이게 바로 다나토스의 죽음, 즉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묶이는 그 죽음으로 죽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걸 가리켜 그리스도와 나와의 연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 아래에서 그 “나”의 내면 인격을 내가 볼 수 있게 되는 것, 진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 그게 회개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회개에서 필연적으로 격발이 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내게는 예수가 필요합니다! 라는 상한 심령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개, 메타노이아,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는 어떤 것을 반성하고 단순히 뉘우치는 차원의 그런 개념이 아니라 어떤 것을 다른 차원의 것으로 보아 아! 이것이 아니였구나! 하고 그 세계관과 가치관의 쉬프트(이동)가 일어나서 유턴을 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다르게 봐 버린 것입니다. 자신이 가는 길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힘의 원리적인 구조에 따라 사는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서의 출세와 성공이 곧 행복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악한 생각임을 깨닫고 생명이신 예수님께 마음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사도바울은 아! 난 이게 열심인줄 알았고 이게 하나님을 위하는 것인 줄 알았어! 근데 깨달아 알고 나니까 아니 이게 탐심이었네! 그리고 하나님은 그걸 교회를 핍박하고 나를 핍박하는 거라고 말씀을 하시네! 그러니 당연히 이 열심에서 돌아서는 것, 그걸 회개(메타노이아)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회개, 메타노니아,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는 유턴을 하라는 뜻이 됩니다. 힘의 원리로 사는 이 세상의 가치로부터 턴 하여 그 길과 반대 방향으로 가라는 뜻이 회개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비로소 그의 인생관, 역사관, 세계관, 가치관이 이전과 다르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크로노스의 세상 역사 속에서 카이로스의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를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성경에서 말한 참 된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은 회개는 인간 측에서 생산해 내고 격발시켜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나서는 분에 의해 주도되는 것임으로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서 찾아지는 자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긍휼의 선물이기에 그분의 열심만을 면목 없이 찬양하게 되는 것을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올바른 회개의 의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