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중구문화원 '시·시조창작'수업자료(2017.7.7)-여러 함축들-
석야 신웅순
· 여러 함축 의미들
퍼스의 3항 구조 이론은 기호와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 그리고 기호 사용자가 그 대상에 대해 갖고 있는 정신적 개념인 해석체로 구성되어 있다. 퍼스의 기호는 소쉬르의 기표에 퍼스의 해석체는 소쉬르의 기의와 비교될 수는 있으나 반드시 상응되는 것은 아니다. 기호는 그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대신 나타내는 것이다. 대상체를 대표하는 것이 기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체는 언제나 기호에 의해서 표상되어진다. 일단 기호가 작성되면 기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것이 대표하고 있는 대상체를 지시하게 되어 있다. 기호 사용자는 그러한 기호를 읽음으로써 기호의 지칭 대상에 어떤 해석을 내리게 되는데 이러한 정신적 개념이 해석체이다.
기호는 사용하자마자 대상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해석체가 들어앉게된다. 여기에서부터 외시를 넘어 함축의 차원에 이르게 된다. 기호를 사용하기 이전은 기호의 해석체는 외시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함축 의미의 길로 들어선다. 기호를 사용하자마자 외시 의미는 사라지고 새로운 함축 의미가 그자리에 들어선다.
「광야」의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에서 ‘초인’은 기호이다. 이 ‘초인’의 기호는 지금 여기에 없는 대상체를 가리킨다. '초인'은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한다. 이것이 외시 의미이다.
기호 사용자는 대상체와 가졌던 경험에 의해 원래의 실제 대상체인 ‘초인’을 증발시키고 거기에다 ‘의지나 희망, 광복’과 같은 해석체를 들어 앉힌다. 해석체를 매개로 해서 대상체인 실제 초인을 초인이라는 기호로 그 의미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해석체의 중개 없이는 기호로 표상되어진 대상체의 의미는 불가능하게 된다. 이 때 해석체는 기호와 지칭 대상에 대한 문화적 관습에 따라 그 의미가 한계지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지칭 대상과 가졌던 각자의 경험에 의해 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자의 해석들은 또 하나의 기호가 되어 또 다른 해석을 낳게 된다. 절대적인 해석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끝없이 반향되고 지연된다. 여기에서 기호의 무한한 표류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함축 의미이다.
세상을 가는 길이 여러 길이 있더이다
웬만큼 정을 주고 둥글둥글 살기도 하지만
준만큼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 많더이다
준만큼 받지 못한 서운함이 있더라도
사랑으로 서운함 감싸던 그 사람
이제는 인생의 강가에서 서성이고 있더이다
기억이 너무 멀어 버리고 싶은 길을 두고
오막살이 집 황토벽에 기대어 선 그 사람
오늘도 뭉개진 반쪽 생애를 부활하고 있더이다
-이재창의 「그 친구-밀재를 넘으며․7」
위 시조의 ‘인생의 강가’나 ‘버리고 싶은 길’, 등에서 '강'이나 '길'의 기호는 실제의 대상체인 강이나 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해석체는 인생과 결부된 화자의 현재에 처한 심정을 나타낼 것이다. 독자에 따라 여러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시에 있어서의 기호의 무한한 표류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많은
마침표가
어디에
있는지
간 밤의
나머지를
울어대는
뻐꾸기
오늘은
울음의 반을
그대에게
부치리
- 신웅순의 「내 사랑은 48」전문
위 시조의 ‘마침표’의 해석체는 무엇이며 또 ‘뻐꾸기의 울음’과 ‘울음의 반’의 해석체는 무엇인지. 물론 임을 그리워하거나 보고 싶어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마침표나 뻐구기 울음 등의 기호로 표현한 것이다.
함축 의미는 독자들이 앉히는 주관적인 의미이다. 결국 시의 의미란 독자들의 몫이다. 시가 독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의미로 남는 것은 함축 때문이다. 남들이 쓴 것이지만 마치 누구나다 내 마음을 쓴 것처럼 느껴져야한다. 시인은 그러한 영양소를 끝없이 제조해내야 한다.
- 신웅순,한국시조창작원리론(2009,푸른사상), 290-2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