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여행기 김희선 2003년 2월 5일 수요일. 지금 시각 20시 13분. 우리 일행을 실은 비행기가 서서히 거대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인천 국제 공항. 난생 처음 타 보는 비행기라 벌써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하늘을 날아오르기 위한 최초의 날개짓.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들에 감사드리며 이 벅찬 순간을 맞이한다. 쉴새없이 들려오는 안내원의 목소리. 비행기의 굉음과 함께 약간의 진동이 느껴지고, 조금씩 뒷걸음질하던 비행기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활주로를 따라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아, 저 높은 하늘을 날아오르기 위해 이렇게 기나긴(?) 태동을 거쳐야 하는구나. 빨리 날아오르고 싶은 탓일까? 어두운 밤, 공항의 찬란한 불빛 속에서 활주로를 기어가는 비행기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드디어 이륙의 시간. 힘찬 도약이다. 거센 파도와도 같다. 지금 시간 20시 25분. 비행기의 용틀임과 함께 내 마음도 힘차게 요동친다. 금새 초승달이 보인다. 공항의 불빛은 멀리 사라지고 깜깜한 밤하늘에 저 가녀린 달이 줄곧 우리를 지켜 본다. 저 아래 점점이 뿌려진 불빛들이 아득히 멀어져 간다. 저 별 어디에선가 어린 왕자가 새침데기 장미에게 물을 주고 있겠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과 상자 안의 양을 바라볼 수 있는 어린 왕자가 그리워진다. 서울, 제주, 상하이, 홍콩, 방콕. TV에선 우리가 거쳐갈 항로를 안내하고 있다. 지금 비행기는 바다 한가운데를 날고 있나 보다. 줄곧 곁에서 우릴 지켜 주는 고마운 달과 캄캄한 밤하늘에 크고 작은 등불이 되어 초롱 초롱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다 문득 당신 목소리가 들려온다. "돌아와야 해. 꼭 돌아와야 해. 알았지?" 인천공항에서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던 당신의 말이 그땐 우스꽝스럽게 들려왔었는데 이제 이 높은 하늘 한가운데서 왜 다시금 찡한 가슴으로 들려오는 것일까? 저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나도 몰래 눈물이 고인다. '아, 그렇구나. 당신은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자주 일어나는 비행기 사고-. 비행기의 고도를 따라 별들은 저 아래까지 쏟아져 내린다. 발 아래 아득히 내려다 보이는 건 분명 인간의 불빛이건만 저 건너 별들의 무리와 한데 어울려 반짝거리는 모습이 마냥 신비롭기만 하다. 이제 달은 점점 높아져 가고 반짝이는 불빛의 향연은 점점 가까워진다. 지금 시간 새벽 1시 4분. 바다 위에서 그토록 빛나던 수많은 별들은 어디로 가고, 또 달만 홀로 외로이 떠 있는가? 세월의 흐름따라 눈가의 잔주름이 깊어가건만, 아직도 어릴 적 수학여행 때 느꼈던 그 감흥과 설레임이 되살아나니 새삼 놀랍기만 하다. 돈무앙공항. 도시의 모습이 휘황찬란한 불빛과 함께 한눈에 들어오고 비행기는 또다시 둔탁한 몸놀림을 반복한다. 비행기의 날개짓이 더욱 거칠어지고, 둔탁한 몸놀림이 거세진다 싶었는데 드디어 착륙. 지금 시간 2시 3분.(현지 시간 오전 0시 3분) 주님 감사합니다. 낯선 이국땅에서의 첫 발디딤. 비행기는 처음과 같이 또 다시 느린 걸음을 계속한다. 시작의 순간이 그토록 힘들었듯이 끝마침의 순간도 이렇듯 더딘가 보다. 비행기는 정해진 활주로를 따라 충실히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드디어 멈추었구나. 네 힘든 수고를 고마워하며, 이제 이 자리를 뜬다. 지금 시각 2시 13분. 우리 일행은 방콕에 있는 소피텔 리조트에서 들뜬 마음을 뉘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 뷔페를 배불리 먹고 왕궁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운전대가 우측에 있어 왼쪽 문으로 버스에 올라 차량들 사이로 즐비한 오토바이 행렬을 바라보며,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그네들의 문화를 음미한다. 과속 카메라나 음주 단속은 아예 없다고 현지 가이드가 말한다. 우리네처럼 빨리빨리 병은 없는 것인가? 스스로 교통질서를 지키는 사람들. 마음 한 켠에서 부끄러움이 살짝 인다. 건축 양식도 우리네와는 판이하게 달라 한 건물 안에 다닥다닥 붙은 작은 문들이 무척 답답한 느낌을 준다. 차가 지나가는 길가엔 무척 낡고 조잡해 보이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곳엔 일제 차량이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단다. 일본인들을 특히 좋아한다는 태국인들의 모습은 특이한 면을 지니고 있다. 수도라지만 도로나 건물들이 무척 퇴락해 있다. 비위생적인 길거리 상가들의 모습들도 눈에 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건물들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오래된 듯 하고, 먼지 날리는 도로변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여워 보인다. 현지 시간 9시 15분.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는 상점들이 많다. 오토바이 형태의 세 발짜리 택시의 모습은 서글픔마저 일게 한다. 전반적인 발전상이 우리 나라의 70년대 모습을 보는 듯 하다. 낙후된 도시의 변두리 모습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간혹 LG, KIA MOTORS, HYUNDAI 등의 간판이 보이매 친지를 만난 듯 반가워진다. 건물벽을 타고 지나가는 시커먼 전기선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위험스레 매달려 있고 도색되지 않은 건물의 흰벽들이 회색빛으로 물든 채 신음하는 듯하다. TAXI-METTER라 쓰여진 원색의 택시들이 촌스럽게 지나간다. 택시는 두 종류다. 2km에 1달러씩 내는 서민형과 메타에 따라 요금이 올라간다는 TAXI-METTER의 택시.
태국 처녀 가이드의 안내로 왕궁과 에머럴드 사원을 방문했다. 금빛 도금을 한 이 왕궁 -현재 국왕은 다른 곳에 머물고 이곳은 관광용임- 에는 왕실 결혼식장과 왕족 장례식장이 있었고 에머랄드 사원 안엔 웅장하게 자리잡은 불상 앞에서 많은 방문객들이 경배를 드리고 있었다. 이곳에선 신과 모자를 벗어야 하고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 있었다. 영빈관은 지금도 국빈을 맞이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단다. 이어서 찾아간 수상 시장. 유람선을 타고 짜오프라야강을 달리매 상쾌한 바람과 차가운 물결이 가슴속에 시원히 파고든다. 강가에 늘어선 수상 가옥 -야자나무로 지어 물에서도 썩지 않는다 함- 을 바라보며 태국의 이국적인 풍취에 마음껏 젖어들 수 있었다. 부채와 각종 토산품을 파느라 애절하게 손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 속엔 애처러움마저 배어 있었다. 새벽사원에 들러 웅장한 사원의 모습을 바라보니 어쩌면 저리 웅장하고 정교하게 지어놓았을까 감탄이 절로 난다.
이제 점심을 먹고 파타야로 향한다. 방콕 중심가를 지나가니 건물들이 무척 깨끗하고 반듯했다. 태국은 빈부의 격차가 특히 많은 나라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을 시기하지 않고 공생공존하며 부자는 빈자에게 많은 배려를 한단다. 길거리 식당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에는 여자들이 집안 일에 얽매이지 않고 식사는 거의 식당에서 하며, 빨래도 빨래방에 맡겨 해결하곤 한단다. 결혼은 예식장에서 하지 않고 사원에서 하며, 주로 저녁에 식당에서 피로연을 가지고 짝수달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태국여자는 결혼 시 몸만 가고 남자는 여자집에 지참금을 가지고 간다. 일부다처제로 4명까지 법적 허용이 된다고 하니 아직도 이런 곳이? 태국은 불교나라이라 묘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화장을 하여 일부는 강에 뿌리고 일부는 평소 좋아한 곳에 뿌리고 일부는 사원에 안치한단다. 이곳에서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이 240여 가지이며 승려는 존경의 대상이다. 그리고 비구니는 없다. 태국인들은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하며, 특히 왼손을 불경시하여 졸업장을 받을 때도 오른손으로 받는단다. 6월∼11월까지가 우기이며, 건기.우기.여름으로 분류된단다. 동남아시아에서 외세의 침입을 받지 않은 유일한 나라. 6.25전쟁후 우리나라에 파병하여 쌀원조(알랑미)를 해 준 나라.
방콕에서 두 시간 가량 차를 달려 파타야에 도착했다. 파타야 해변은 세계 10대 휴양지답게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알카차쇼를 관람하고 미니시암으로 향했다. 미니시암은 작은 태국이란 뜻이다. 태국의 옛 국호가 시암이라던가? 1924년에 Kingdom of Tiland라고 이름하였단다. 미니시암에는 세계 유명 건축물들을 1/20로 축소해 놓았는데 자유의 여신상, 런던브릿지, 남대문, 독일 쾰른 성당, 람세스 사원, pieta(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그의 싸인이 성모마리아의 어깨끈에 유일하게 남아 있음) 등등 무척 많은 볼거리들이 있었다.
타이만의 검푸른 물결을 헤치며 우리는 산호섬으로 향하였다. 하얗게 부딪혀오는 물거품들. 그곳에서 페러세일링을 하고 코끼리 쇼를 관람한 후 타이거200으로 향했다. 호랑이 쇼와 악어쇼, 그리고 원숭이 쇼를 관람할 때 조련사를 무서워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무척 안쓰러웠다. 두 발로 서서 걸으며 제법 인간의 박수를 유도하기도 하는 원숭이를 보노라니 잘 길들여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잘 길들여져 인간들을 즐겁게 하고 돈벌이까지 시켜주는 이 동물들. 잘 길들여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다. 정글속에서 위용을 뽐내던 맹수가 인간의 품에 안겨 우유를 빨며 사진을 찍히고, 인간의 매를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모습은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처연하기까지 하다. 그 독으로 인해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이 이는 전갈의 무리를 인간의 몸에 붙여 놓고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 쇼를 마치고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며 주는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는 원숭이의 모습, 조련사의 손끝에서 인간의 머리조차 자신의 입속으로 드나들게 하는 악어.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하지만 이런 짜릿한 맛을 즐기는 게 우리 인간의 참 모습이 아닌가?
내려오며 야자수를 마시고, 파인애플 농장을 찾아 파인애플과 대나무밥(카우라)을 먹은 후 왕족이 운영한다는 거대한 보석센터를 방문하여 보석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보탠 후, 방콕을 향하여 가는 길 저 편에 무쇠를 달구어 놓은 듯한 시뻘건 빛깔의 해가 신기하리만치 동그란 형태로 하늘 저 편에서 지고 있었다. 토산품점을 거쳐 석식 후 돈무앙 공항으로 향하였다. 이제 이곳 방콕을 또 다시 찾을 날이 있을까? 파타야 해변만큼은 또 다시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올 때와 같이 이제 또 비행기는 비상을 위한 걸음마를 시작하였다. 이제 조금 후면 우린 또 다시 저 상공으로 떠오르겠지. 공항 관제탑의 이륙 지시를 기다리며 비행기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난생 처음 해 보는 해외 여행. 감격의 순간들을 지나 이제 돌아가는 거다. 아아 또 다시 떠오르는 이 격동의 용틀임. 방콕이여 안녕히.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날아 오른다. 아름답게 반짝이던 수많은 지상의 별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온통 검기만 한 허공. 방콕 상공을 벗어나서 신비로운 별들의 향연을 바라보며 잠을 이룰 수가 없는 밤을 보냈다. 이제 먼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비행기는 구름바다 위를 날고 있다. 동중국해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이 푸르고도 흰빛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름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하늘은 더욱 짙은 푸른빛으로 변해 있다. 저 멀리 별 하나가 초록빛을 뿜으며 외로이 반짝이고, 흰 구름 사이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는 하늘빛과 똑같은 모습으로 누워 있다. 날이 점점 밝아옴에 푸르른 바다 위에 흰 구름, 그 위에 회색빛 또 하늘빛 점점 더 짙어지는 남색 위에 보랏빛 붉은빛이 돌고 그 위엔 주황 연노랑 연둣빛 연한 하늘빛...... 저 아래 바다로부터 하늘 저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빛깔을 띠고 있어 그 모습이 경이롭기만 하다. 흰 구름의 무리들이 저 건너까지 경계선을 이루며 사라져가고 이제 푸르른 바다만이 군데군데 보이는 섬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비행기는 우리나라 상공으로 들어선다. 정겨운 우리 국토 위에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비행기 날개 밑으로 햇살이 지나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지 못했음이 안타깝다. 구름바다 사이로 간간이 높은 산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동녘하늘은 이제 온전히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아래는 한 점 틈도 없는 흰구름의 바다다. 좀 지나니 장엄한 산맥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흰구름도 저 높은 산맥만은 넘나들지 못하나보다. 그 장엄함을 경외하며 비껴가고 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자마자 인천 국제 공항의 짙은 안개로 착륙이 불가능하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항로를 김포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서울 상공이다. 아래에 월드컵 경기장이 보이고 산과 집과 나무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행기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솟아있는 아파트의 무리들. 비행기는 안개 속을 뚫고 드디어 땅에 발을 내디뎠다. 착륙한 것이다. 그러나 인천공항에 내려야 할 여러 비행기들이 모두 김포공항으로 회항한 관계로 우린 두 시간 반을 그대로 비행기 안에 있어야 했다. 입국 허가를 아직 받아내지 못한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서 또 한 시간 반을 기다리는 동안 여기 저기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큰소리가 들렸고, 밀치고 당기며 항의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부끄러운 일이다. 기상이변이 아닌가? 많은 외국인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추태를 보여야 한단 말인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이왕 생긴 일 웃으며 기다립시다."하고 말하는 한 신사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으며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난생 처음 해 본 해외 여행. 수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던 정녕 유익하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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