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항. 베네딕토 16세 교황님(2005~2013년 재위)은 “우리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자연환경이 너무나 상처받았다는 것을 인정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회 환경도 상처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악에서 기인합니다. 그 악이란, 우리를 인도할 분명한 진리가 없기에, 인간의 자유가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6항에도 잘못 번역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아버지다운 마음으로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피조물이 손상을 입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라고 우리에게 촉구하셨습니다.”라는 문장은, “아버지와 같은 염려로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창조가 손상된다(창조 질서가 훼손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촉구하셨습니다.”라 번역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피조물이 손상을 입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모르는 바 아니고, 전임 교황님 말씀이라고 인용할만한 문장도 아닙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말씀은 “창조가 손상된다(la creazione risulta compromessa; creation is compromised)”는 것입니다. 즉 “우리 자신이 최종 권위가 되고, 모든 것을 단지 우리 소유물로 여겨 우리 자신만을 위해 소비한다면” 하느님의 창조가 손상됩니다(창조 질서가 훼손됩니다).
6항의 마지막 문장도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높은 법정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 이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면 피조물의 착취가 시작됩니다.” 갑자기 ‘법정’이라는 단어가 나와 생소하지요? 이탈리아어 ‘istanza’를 번역한 것인데, 아무래도 ‘법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2008년에 볼차노-브레사노네 교구 성직자들에게 하신 연설문 독일어본을 보겠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독일분이시니까요. “Und der Verbrauch der Schöpfung setzt dort ein, wo wir keine Instanz mehr über uns haben, sondern nur noch uns selber wollen.” 의역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보다 높은 권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우리 자신만을 바라본다면, 창조의 오용이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여기도 ‘피조물의 착취’가 아니라 ‘창조의 오용’(der Verbrauch der Schöpfung(독); lo spreco della creazione(이); the misuse of creation(영))으로 옮기는 것이 맞겠습니다.
달리 번역한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우리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자연환경이 너무나 상처받았다는 것을 인정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사회 환경도 상처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악에서 기인합니다. 그 악이란, 우리를 인도할 분명한 진리가 없기에, 인간의 자유가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같은 염려로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우리 자신이 최종 권위가 되고, 모든 것을 단지 우리 소유물로 여겨 우리 자신만을 위해 소비한다면 창조가 손상된다(창조 질서가 훼손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촉구하셨습니다. 우리보다 높은 권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우리 자신만을 바라본다면, 창조의 오용이 시작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말씀이 점차 더 명확히 다가옵니다. 생태 파괴는 하느님의 창조에 도전하고 하느님의 창조를 오용하는 것으로서,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 곧 실천적 무신론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