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나그네
조명래
화전민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등골을 덜어내고 속울음으로 비축한
흔적의 명의 ( 名義 )는
솜사탕으로 녹아내려 거머질 수 없었던,
몆평 땅위로 짙어오는 숲은
바람에 동화되어 내 등을 떠 밀었다,
삼십년의 빌딩 숲을 맴돌다
가슴 속까지 스민 생채기 안고
군청의 귀촌 자금으로
탯줄 묻은 산 능선 한 귀퉁이를 빌렸다
기둥을 세우고 마룻대를 세워 마련한
그 지붕 아래 몸 뉘이다가
밑둥 잘린 나무에 가뿐 숨을 내려놓고
괭이 한자루로 짊어진 배낭 풀어 헤쳐
뿌리 찾아 일구는
산골 나그네
스러져간 녹색 풍경을 색칠하고
아래로 아래로 추락한 오늘을 건져 올린 하루 해
굽은 소나무 한 그루 햇살이 스러져간
마른 나무가지 사이로 물이 차 오른다
(2023년 김유정 문학회와 강원일보사가
주체한 일반부 운문부 최우수 작품상임)
봄 - 봄
조명래
코 점막 레이더에 감지된 이상 징후
창밖의 들녘은 몸살 앓듯
재치기를 할 때면
잔 가지에 멍울이 툭! 툭!
들녘은 파란 기운이 하나 둘 돋아
색칠하는 산동네
6남매 모두 빠져나간 대청마루에
등굽은 그림자를 친구 삼아
귀를 열고 계시던 어머니
가슴에 꽃씨 하나 심었다
(김유정 문학회와 강원일보사가 주체한
2023년 일반부 운문부 최우승 작품상임)
5,18의 함성
조명래
푸르름 찬란한 오월이여
그대들의 숨결소리 들리어온다
가슴속 응어리진 대못들이
오월을 피바다로 물들이고
잔잔한 숨소리 아 ! 고뇌여
울어지친 함성속에
나의 고뇌도
슬피 울어 제친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불티
가슴 여미는 지침돌은
오월이 오면 환상의 도가니에
울분을 토한다
어머니의 사랑
조명래
푸른 빛 일렁이는 물결
달빛처럼 보드랍다
잔잔한 물결은 어머니의 자장가소리
나의 슬픔에찬 고뇌를 잠재우고 계신다
떠오르는 해를 가슴에 품듯
오늘도 태양을 내게 주신다
상처의 아픔을 감추기라도 하듯
어머니의 그 품속으로 살며시 보듬어 주신다
삼십년의 세월이 녹아 내리며
우산 속 빗물은 물결따라 흐르고
철들기전에 떠나간 어머니의 고은 얼굴
못잊어 그리움에 몸부림치면
달빛같은 가슴으로 나를 안아 주신다
끝이 아닌 시작의 바램
조명래
소쩍새 울던 시절도
파랑새 날던 시절도
꿈이 아닌 현실속에
몽당 연필같은 기억도
수레바퀴 도는 이시간에도
난 꿈을 꾸고 있다
반백년 인생사 오점을
먼지처럼 털수 있다면
날개 달고 뛰어 넘는
무지개 인생길을 걷고싶다
걸어온 길 험난해도
시작의 도약이 나를 반긴다
오색찬란 일곱색깔
환희의 꿈을 쫓으리라,
장작을 패다
조명래
산 능선 아래 자리 틀고 앉은 집 마당
계절이 콜록일때 장작
한 채를 주문했다
근육이 바짝 마른 몸이
로켓 배송으로 당도한 마당 한켠에서
사내가 날 세운 도끼를 거머지고 힘껏 내리치면
통나무는 비명을 지르고
사방으로 흩어져 길을 잃었다
내리친 모퉁이에 사내가 걸어온 시간이
서성이고 있다
나뭇결의 속살처럼 나도 한때는
산등성이를 겅중거리며 계절을 색칠하고
곳간에 흔적을 차곡차곡 쌓았었던,
이마에 땀을 닦으며
호흡을 몰아숸다
산그늘 내려앉은 마당에
걸어온 발자국의 흔적을 그림자로
차곡차곡 채워놓는다
온돌방에 누워 장작 패던 팔뚝에 파스를 바르고
T,V 화면 속 슬픈 드라마를 보다가
저무는 겨울 햇살을 다독다독
아궁이 에서 타오른 하루해
내 그림자를 위로하고 있다
봄은 싹을 키운다
조명래
봄은 사랑을
꽃피우는 계절
그대 숨결 들려온다
아지랑이 파릇 돋고
얼었던 땅
녹을즈음
가슴 한켠
아롱진 향기
봄바람에 젖어 젖어
돌고도는 수레바퀴
내인생도 봄날
그대 생각,
봄이 오는 길목
조명래
꽃피는 춘삼월
내 나이에도
봄이 오는가
딱 좋은 나이
겨울가고 봄이 오듯
이른봄날
왠지 부끄러운
소년 하나 서있다
바닷가의 추억
조명래
자잘한 은빛 모래
행복의 춤 추듯이
발가락 사이
헤집고 다닌다
파도는 너와 내게
안길듯 스러지고
뜨겁게 타오르던 태양도
바다 앞에선 꽁지를 감춘다
물장구 치던 옛 시절 그리워
가슴 언저리 추억을 음미하며
옛일을 되새겨 본다
아 청춘아
간다는 말도 없이
너는 어데로 갔니,
사랑나무
조명래
북한강 기슭에
천년 세월로
꿋꿋이 선 산맥 하나
역사를 새긴다.
해와 달 라이브 까페에선
축복의 노래
물안개 처럼 피어 오르고
사랑나무 다정한 그늘
너의 품속에 안겨
전설같은 옛 이야기 듣는다.
두런 두런
사랑 꽃이 핀다
북한강이 詩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