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에 나타난 특이한 표현들
1. 수사학적인 의도를 갖고 있는 칭찬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쓴 그 어떤 다른 서신보다 성도들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 찬 서신이다. 그런데 이러한 칭찬의 표현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사도바울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표현인 것이 분명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분히 수사학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표현들이다. 즉 바울은 이러한 칭찬의 표현들을 통해서 연약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인정해주고 추켜세움으로 지금까지 그들이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도 훌륭히 지켜온 그 덕목들을 유지하며 계속 그 길을 걸어가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부분은 1:6-10절로 이제 신앙생활한지 겨우 4-5개월밖에 안된 자들을 말하면서 이들이 이 마게도니아 전체 기독교인들의 본이 되었다고 대단한 칭찬을 하고 있는 바울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연관된 성경구절인 고후8:1절을 통해서 알아보면 “마게도니아 교회(데살로니가 교회와 빌립보 교회)가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넘치는 기쁨있고 극한 가난 가운데에서도 풍성하게 연보 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단순히 수사학적인 언급으로만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들은 핍박과 극한 가난 가운데 에서도 훌륭한 믿음을 양태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칭찬하고 있는 부분은 2:13-14절인데 여기서 바울은 그와 떨어져 아무런 신앙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도 바울이 전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여러가지 핍박과 어려운 상황을 믿음안에서 잘 견디고 있는 성도들을 칭찬함으로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아울러 그들이 받는 고통과 고난은 전 세계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다 함께 겪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상기시킴으로 그들을 위로하려는 수사학적인 의도도 함께 갖고 있다.
세 번째 칭찬하는 부분은 3:6-10절로 연약한 성도들은 남겨둔 채 데살로니가를 떠나온 바울이 그들에 대한 걱정으로 노심초사 하다가 고린도에 머물고 있을 때 디모데로부터 좋은 소식을 전해 듣고는 그 마음에 기쁨과 위로가 넘치는 상태에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부분이다.
네 번째로 4장에 들어서서 바울은 4:3-12을 통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화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그들이 당면한 도덕적이고 성적인 문제에 대해서 강한 어조로 명령하며 심각하게 교훈과 권면을 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언급을 하기 전에 먼저 4:1-2에서 "너희가 우리에게 받은 바대로 잘 행하고 있다"라고 우선 칭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권면의 말을 하는 도중에도 ?너희에게 더 이상 쓸 말이 없다?(4:9-10) 라고 그들을 또 한번 추켜세우고 있는데, 이러한 모든 칭찬들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성화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우선 칭찬해주고 인정해 줌으로 바울의 말에 그들이 온전히 순종하기를 바라는 교육적 효과가 그 이면에 숨겨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데살로니가교인들에 대한 사랑의 바울의 사랑의 표현
데살로니가전서와 빌립보서는 목사 바울의 자기 양떼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아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타나는 곳인데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그러한 표현들을 먼저 2장과 3장에 걸쳐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먼저 2:19-20의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하는 언급은 빌립보서 4:1(고후1:14, 빌2:16)에도 나와 있는 말로 바울의 성도 사랑에 대한 아주 유명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과 자신의 관계를 아주 가까운 가족적 유대관계를 나타내는 그림언어로 말하고 있는데 2:7에서는 ‘유모’로 2:11에서는 ‘아비’로 2:17에서는 ‘고아’(개역성경에는 ?너희를 떠난 것?이라고 표현되었다)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고아는 바울 역시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떨어져 매우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는 동변상련을 나타내는 그림언어이다. 이러한 감정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는 부분은 바로 3:1에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라고 말하는 부분인데 이 말은 바울이 아덴에 홀로 떨어져 있기를 감수했다는 말이다. 즉 디모데와 동료들을 데살로니가에 보내고 스스로 자기 혼자 떨어져 남는 일을 감당했다는 말인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이 그들을 떠난 것 때문에 버려진 것과 같은 느낌을 갖는다면 나 역시 너희를 그렇게 보기를 원했으나 가지 못하므로 내 동료들을 다 보내고 나 혼자 남아 '방기'되는 경험을 했다는 말이다. 이 말을 한 이후 3장 전체를 걸쳐 바울이 그들의 신앙과 그들의 안녕에 대해서 얼마나 큰 관심과 걱정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간절히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3.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불신자들을 대조
바울은 이 서신서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불신자들을 대조하여 보여줌으로 성도들에게 하나님 백성됨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만이 종말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라는 그 신분에 대한 의식을 강화한다.
1:4 너희는 선택받은 자들이다.
1:9-10 너희가 우상 섬기는 자들로부터 분리되어서(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사시고 참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며 그래서 너희들은 하나님의 심판(장래 노하심)에서 구원 받을 자들이다.
2:13-16 유대교회가 동족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듯이 너희들도 너희 동족들로 핍박을 받는다. (데살로니가 교인과 그들을 핍박하는 동족들을 대조하고 있다.)
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
4:7 우리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받은 자들이다.
4:11-13 여기서는 외인들과 소망 없는 다른 자들과는 다르게 행동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의 질서가 교회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명성을 가져와야 하고 성도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과는 다른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대조하고 있다.
5:13-15 교회 내에서 피차 대할 때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사랑으로 대하라.
이러한 모든 언급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선택 받은 자들로서 참 하나님을 섬기는 구원 받는 백성임 확인시키고 종말에 하나님의 진로로부터 구원 받지 못할 자들과 대조 시킴으로써 이제 막 그리스도인 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서의 자기 의식을 심어 줄려고 한다. 즉 바울은 이들에게 소위 말하는 재 사회화 작업(resocialization)을 하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