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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어귀에 들어서면 몇 십 년은 훌쩍 뛰어넘은 옛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쿰쿰한 냄새와 무심한 듯 쌓여있는 책 더미들을 보고 있자면 검정 교복을 입고 노점 앞에 쭈그려 앉아 교과서를 고르는 학생 혹은 검정 뿔테 안경을 쓰고 옆구리엔 두꺼운 철학서를 끼고서 먼지 쌓인 책을 뒤적이던 고학생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이 일대는 8·15 해방 직후 일본으로 쫓겨 가는 일본인들이 부두에서 압수당한 물건들을 쏟아놓고 마구잡이로 팔던 난전(일명 도떼기시장)이었다. 일본인들의 물건 중에는 책도 섞여있었다. 책은 상인들에게는 중요치 않은 물건이라 홀대받았지만 책이 귀했던 시절의 학생·지식인들에게는 길에 굴러다니는 황금과도 같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피난민이 부산 곳곳에 정착했다. 피난 온 지식인들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난전에 아끼던 책을 내놓았다.
그즈음, 이북에서 피난 온 손정린씨 부부(구. 보문서점)가 보수동 사거리 입구(현. 글방쉼터) 골목 안 목조 건물 처마 밑에서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와 만화 고물상으로 부터 수집한 헌책을 파는 노점을 시작했고, 차츰 다른 피난민들이 가세하여 비로소 책방 골목이 형성되었다. 마침 책방 골목 인근 구덕산과 보수동 뒷산 일대에는 피난 온 학교가 많았다. 학교는 노천 교실, 천막 교실을 열어 수업을 이어갔다. 자연스레 책방 골목은 학생들의 통학로가 되었고, 읽은 책을 팔고 필요한 헌 책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골목은 항상 시끌시끌했다.
70~80년대 보수동 책방 골목은 부산항을 통해 들어온 수입 잡지나 만화책 등 외국의 신문물을 접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사전이나 교과서를 구하려는 학생들도 여전히 많았다. 당시 인기 있던 톱스타의 사진이 내걸린 최신 잡지와 레코드판을 구하려는 사람도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헌 책에 먼지가 앉을 새도 없을 만큼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다.
매체의 발달로 인해 헌책을 찾는 사람들을 찾기 힘든 요즘, 보수동 책방 골목에 책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다. 그래서 근래 보수동 책방 골목에는 헌책을 구하려는 사람보다 관광객들의 방문이 더 잦은 편이다. 2010년 KBS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에서 이곳을 소개한 이래 부산의 관광 명소로 소문난 것.
보수동 책방 골목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개별 서점들은 책방 안에 북 카페를 운영하기도 하고, 책방 전체가 참여하는 축제를 열기도 한다. 전국 유일의 헌책방 골목 지닌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보수동 책방 골목 문화관을 건립하고 골목을 재정비하는 노력도 기울였다. 요즘엔 예쁜 카페들과 어린이 도서관 등 다양한 편의시설들이 들어서면서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점점 바뀌는 중이다.
우리글방은 단일 건물로는 제일 큰 서점이다. 좁은 책방 골목을 향해 난 입구로 들어가면 8,90년대 레코드판과 오래된 책들이 반겨준다. 서점 중앙에 있는 철제 계단을 따라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책의 미로가 펼쳐진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게 배치된 책장 사이를 걷다보면 또 다른 계단이 나타난다. 건물 반대편 도로변으로 입구가 뚫린 북 카페로 이어지는 계단이다. 우리글방 북 카페에서는 책과 관련한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우리글방에서 나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바닥을 보고 걷게 된다. 유명 작가의 글귀가 보도블록 띄엄띄엄 새겨져 있기 때문. 나도향의 [벙어리], 카프카의 [변신],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등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작품의 글귀가 이어진다. 한두 걸음 앞에 새겨진 글자는 일부러 몇 획이 칠해지지 않은 상태라 정답을 맞춰보는 재미도 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세 갈래 길이 나온다. 큰 도로를 향한 왼쪽 길에는 보수동 책방 골목 문화관과 쉼터가 있고, 가파른 계단길은 예쁜 그림이 그려진 보수동 벽화거리로 이어진다.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가면 책방과 북 카페가 이어진다. 세 길이 만나는 위치엔 골목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식집이 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고로케는 책방 골목의 별미다.